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스틸 이미지.

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스틸 이미지. <로그 원>은 이전의 <스타워즈> 시리즈를 충실히 오마주하면서도, 그 시선을 비튼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스타워즈> 시리즈는 매력적이고 장엄한 세계였다. 은하계에 걸친 수많은 세력들이 서로 충돌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종족들이 저마다의 삶을 살아간다. 저항군은 제국에 맞서며, 공화국은 분리주의 세력들과 싸운다. 그 전쟁의 이면에는, 포스의 양극단에 선 제다이와 시스의 대립이 있었고, 여섯 편에 걸친 루크와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일대기는, 은하계를 관통하는 빛과 어둠의 흥망성쇠를 다룬다. 소중한 인연을 잃고 어둠에 물든 다스 베이더가 훗날 최후의 제다이가 된 루크와 광선검을 맞댄 것은 단순히 혈육의 비극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포스의 의지에 의해 예정된 선과 악의 화신이었다. 은하계 역사의 중심에는 그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그늘 속에 은하계의 보잘것없는 개인들은 철저히 가려졌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저항군 군인들을 보라. 그들은 루크와 함께 제국군에 맞서다가 장렬하게 전사한다. 일부 특정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대로 잊힌다. 예컨대 <제국의 역습>의 초반부에서 루크는 동료 파일럿의 죽음을 확인하자마자 주저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제다이의 귀환>에서 레아와 함께하던 특공대원들은 특별한 활약을 벌이지 못하고 스톰트루퍼들에게 생포 당한다. 그들은 영웅들을 보조하는 단역에 불과했다. 제국이 멸망하는 승리의 순간에서 그들은 기뻐할 뿐, 희생과 비극에 대한 애도는 사라진다. 물론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들의 이야기가 없던 것은 아니다. 비디오게임과 애니메이션, 소설 등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가 다루어졌으니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설정이었을 뿐이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는 아나킨과 루크의 거대한 대립관계 사이에 비어있던 틈을 메꾸는 외전으로, 스타워즈 세계 속의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역사를 이룩했는가에 관해 이야기 한다. <새로운 희망>의 도입부에서 짤막하게 언급되는, 저항군 특공대가 데스 스타의 설계도를 입수하기까지의 과정을 새로운 시각을 통해서.

이상적이지 않은, 현실적인 저항군의 모습

 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스틸 이미지.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는 시리즈의 오랜 전통이었던 오프닝 스크롤을 과감하게 생략한다. 신화 속 영웅의 일대기로서의 영역이 아닌, 역사 속 개인의 영역에서 스타워즈 세계를 다루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우리가 이제까지 알던 저항군은 자유를 위해 은하계 각지의 다양한 종족들이 뭉쳐 의기투합한 만들어진 정의의 세력이었다. 은하제국이라는 절대 악에 맞서는 명분으로 뭉쳤으므로 그건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존재를 신화로 포장하기보단 역사 속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문제점을 지닌 군사집단으로서 묘사한다. 예컨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저항군 인물들을 생각해보자. 진 어소와 함께 서사의 중심을 끌어내는 카시안 안도르는 임무를 최우선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군인이며, 걸림돌이 된다면 자신의 친구도 일말의 고민 없이 사살한다. 그는 제다 행성의 동료들과 민간인들이 제국에게 몰살당할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운명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더불어 영화 중반까지 진 어소와 심각한 문제로 다툰다. 여기에 더해, 저항군 수뇌부는 서로의 의견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하고, 일선 지휘관이 제멋대로 이탈하는데도 별다른 제지를 못 하는, 그러니까 숭고하기는커녕, 명분을 제대로 내세울 수나 있는 의심스러운 집단으로 묘사된다.

제타 행성에서 이 점은 더욱 노골적 드러난다. 비록 독자적인 투쟁노선을 걷는 것이지만, 쏘우 게레라의 파벌은 민간인들을 방패 삼아 제국군에 저항하는, 그러니까 미국인들의 시각에서 보는 중동권 무장단체의 흡사한 양상을 보여준다. 물론 스타워즈 세계에서는 그들 나름대로 고충을 통해 생겨난 투쟁의 모습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대의를 위해 자기희생을 감내하는 숭고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조지 오웰이 '카탈로니아 찬가'를 통해 증언한 공화파 내부의 지루한 인간 군상에 가깝다.

진 어소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그녀의 이야기가 루크 스카이워커의 이야기가 흡사하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루크가 그랬던 것처럼, 진 역시 변방 행성에서 조용히 살던 도중 제국군에 의해 가족들을 잃고 저항군에 합류한다. 하지만 그것은 신화적 영웅이 성장하는 계기가 아니었다. 제국의 전쟁범죄에 맞서 투쟁을 시작한 이들에게는 흔히 있는 사연에 불과하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루크는 레아를 성공적으로 구하지만, 진은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한다. 이후 루크는 저항군의 상징이 되나 진은 지도자들에게 외면당한다. 두 사람의 차이는 분명하다. 루크에게는 포스가 함께 했으나, 그녀에겐 아니었다.

그렇기에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는 스타워즈 연대기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진은 선택받은 영웅도 아니었고 저항군의 소모품에 불과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새로운 희망의 서막을 끌어내고, 저항군의 각성을 끌어낼 것이라는 걸 이미 안다. 그것은 진이 선택받은 영웅이기에 짐작 가능한 운명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성공했다는 사실이 본편에서 언급되었기에 아는 것이었다. 거기에 포스는 없었다. 하지만 희망으로 뭉친 개인들이 있을 뿐이다.

절망적이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스틸 이미지.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는 스타워즈 신화를 현실의 이야기로 뒤집는다. 이를 위해 영화는 본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을 영화 내의 주요 장면으로 오마주 한다. 가령, 데스 스타와 엔도 행성의 제국군 기갑부대에 대해 생각해보자. 본편에서 데스 스타는 은하계의 스케일과 제국의 사악함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엔도 행성의 눈밭을 걸어오던 AT-AT는? 서서히 걸어오며 화력을 쏟아붓는 것이 인상적이긴 했지만 루크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존재로서 다가온다. 진과 그 일행이 직접 목격하는 데스 스타는 재난 그 자체였다. 베이즈가 쏜 대전차 화기에도 끄떡하지 않는 AT-AT 전차의 위용에서, 우리는 개인이 시선에서 바라보는 스타워즈의 전쟁이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광경임을 알 수 있다.

 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스틸 이미지.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많은 이들이 영화 결말 부의 다스 베이더에 주목한다. 그건 당연하다. 다스 베이더가 강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가 보아왔던 다스 베이더의 포스는 그가 하급자들에게 화풀이하는 순간에만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가 다스리는 포스가 얼마나 압도적인 존재인지 확인할 수 있을 수 있다. 특히, 스카리프 전투에서 치루트가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야 겨우 끌어낼 수 있던 것이 포스의 의지였음을 상기한다면 더더욱.

그렇기에 우리는 다스베이더에 맞서는 저항군 승무원들에게 더욱 주목해야만 한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히는 와중에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다스 베이더의 초월적인 힘 앞에서 그들의 사투는 의미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데스 스타의 설계도를 포기하지 않으며 각자의 손을 거쳐 -이제는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간- 추억 속 레아 공주의 손에 전해진다. 이쯤에서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가 어째서 승산 없는 싸움을 시작한 이들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보잘것없는 개인들의 희망이 모여 역사의 흐름이 이루어졌음을. 역사의 영웅들은 이들이 없었으면 탄생하지 못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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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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