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까칠하게 공연을 보고, 이야기 합니다. 때로 신랄하게 '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잘 만든 작품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하지 않을까요?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 작품들이 더 많이 올라오길 바라봅니다. [편집자말]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프레스콜 지난 2016년 12월 6일, 서울 백암아트홀에서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두 남자의 우정을 그린 이 작품은, 매년 겨울마다 많은 팬을 설레게 하는 '힐링극'으로 평가 받는다.

▲ 토마스와 앨빈 지난 2016년 12월 6일, 서울 백암아트홀에서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두 남자의 우정을 그린 이 작품은, 매년 겨울마다 많은 팬을 설레게 하는 '힐링극'으로 평가 받는다. ⓒ 곽우신


서울 백암아트홀을 꽉 채우며 수많은 관객을 웃고 울린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아래 <솜>)가 다음을 기약하며 관객과 이별했다. 지난 2016년 12월 6일 개막하여 지난 5일, 팬들의 박수 속에서 막을 내렸다.

이번 시즌 <솜>은 작년과 같이 토마스 역의 고영빈, 강필석, 조성윤과 앨빈 역의 김종구, 홍우진이 함께 했다. 또한 많은 팬이 다시 보고 싶다며 기다려온 이창용과 새로 합류한 김다현도 이번 이야기를 아름답게 써내려갔다.

벌써 몇 번의 공연을 거치며, <솜>는 남성 2인극의 대명사처럼 자리 잡았다. 많은 뮤지컬 콘서트에서 남성 배우들은 극 중 넘버 '나비'를 부른다. <솜>에 출연하지 않았던 배우인데도 말이다. 많은 팬이 겨울만 되면 <솜>의 공연을 기다리며 앓을 정도로,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이 공연에 합류하기 위해 배우가 시간을 낼 정도로 하는 이와 보는 이 모두 행복하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남성 2인극의 대명사인 작품 안에는 '여성 2인극'의 가능성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급진적인 변화'는, 생각보다 간단한 실천으로 이뤄질 수 있다. 다음 시즌 혹은 언젠가 <솜>에서 여성 배우 두 명의 연기를 볼 수 있지 않겠냐는 상상과 함께 글을 시작해 본다.

남성극과 여성극의 차이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프레스콜 지난 2016년 12월 6일, 서울 백암아트홀에서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두 남자의 우정을 그린 이 작품은, 매년 겨울마다 많은 팬을 설레게 하는 '힐링극'으로 평가 받는다.

▲ 남성 2인극의 대표작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대표적인 남성 2인극으로 꼽힌다.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 만약 여성 2인극으로 바꿔본다면 어떨까? ⓒ 곽우신


많은 연극·뮤지컬 팬은, 남성 배우들만의 다양한 무대가 존재하는 반면, 여성 위주의 극이 매우 드문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그러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이 남성 N인극을 여성 N인극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혹은 기존 극의 남성 캐릭터들을 여성 캐릭터로 바꾸며 머릿속에서 '상플'(상상 플레이)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급진적인 상상은 실제로 실현된 적이 별로 없다. 오히려 그나마 존재하는 여성 캐릭터들마저 남성 캐릭터로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2016년 공연된 <아랑가>의 경우, 처음 학생 공연 당시 여성 캐릭터였던 '사향'이 제작 과정을 거치며 실제 공연에서는 남성 캐릭터 '사한'으로 바뀌었다. <곤 투모로우>는 리딩 당시 여성 캐릭터였던 명성황후가 사라지고, 대신 가상의 남성 캐릭터 이완을 추가했다. 캐릭터가 극 속에서 담당하는 서사가 바뀌었다고 해도, 이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배우의 성이 달라질 필요마저 있었을까. 가뜩이나 여성 캐릭터가 설 자리가 좁은 연극·뮤지컬 장르에서 말이다.

물론 남성이 연기하던 인물을 여성 배우가 재해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 여성 헤롯이 등장한다거나, <트레이스 유>의 우빈을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예시 말이다. 신선한 시도이지만, 여성 캐릭터에 대한 팬들의 목마름을 해결하기에는 다소 부족했던 것 같다.

남성이 할 수 있는 역할, 여성이 할 수 있는 역할,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규정된 남성성과 여성성의 이분법에 갇혀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이처럼 '만들어진 개념'을 연극·뮤지컬을 비롯한 많은 서사 장르에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성찰치 필요하다. 이는 여성 캐릭터의 서사를 축소하며, 때로 존재하던 여성 캐릭터마저 지워내기도 했다.

남성이 할 수 있는 역할, 여성이 할 수 있는 역할 구분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겠지만, 지금 당장 이런 급진을 이루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직 수많은 남성 중심적인 서사 장르들을 여성 캐릭터가 이끄는 것은 꽤 어렵다. 첫째로, 이는 남성성을 체화한 캐릭터를 단순히 여성 배우가 연기만 했을 뿐, '여성'이 아닌 인물로 만드는 것에 그칠 가능성이 너무도 높다. 그렇다고 캐릭터를 모두 '여성'으로 만들기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여성성'을 재생산하는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결국, 기존 서사의 변화는 어렵다. 이는 새로운 서사의 탄생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남성 서사에는 존재하는 다양성이, 여성 서사에는 매우 희귀하다.

앨빈과 토마스의 차이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프레스콜 지난 2016년 12월 6일, 서울 백암아트홀에서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두 남자의 우정을 그린 이 작품은, 매년 겨울마다 많은 팬을 설레게 하는 '힐링극'으로 평가 받는다.

▲ 변해가는 토마스 토마스는 변한다. 학년이 올라가고, 학교에 진학하고, 대학을 준비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유능한 약혼녀도 있고, 사회적으로 성공도 거뒀다. 그 성공을 위해, 그는 사회가 요구하는 과정을 충실하게 따른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자아찾기는 그 이후부터야 시작된다. ⓒ 곽우신


극 중 앨빈과 토마스가 서로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기는 토마스가 앨빈에게 야한 잡지를 권하는 'The Normal'에서 드러난다. 토마스는 앨빈에게 적극적으로 성인 잡지를 권유한다.

"여기 잡지 좀 봐봐, 앨빈. 웬만한 애들 다 봤어. 벌레는 그만 좀 내버려 두고 섹시한 여자 가슴에 파묻혀봐."

앨빈은 단순히 아이 같은 인물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부여된 남성성을 내재화하지 않는 인물이다. 앨빈은 토마스가 보여주는 '제시카 알바의 가슴'이 있는 '야한 잡지'에 관심이 없고 오히려 자신이 미쳐 보지 못한 '애벌레'에 관심을 가진다.

반대로 토마스는 극 중에서 사회적인 남성으로 보인다. 이는 나비를 쫓는 앨빈과 대조되어 나타난다. 토마스는 제시카 알바의 가슴에 관심을 보이며, 그 사진을 '웬만한 애들 다 봤어' 라며 자신 또한 봤음을 밝히고 앨빈에게 권유한다. 더는 핼러윈 파티에서 천사의 옷을 입지 않고, 야한 잡지를 보는 것은 학교를 진학하여 아이들과 적당히 어울리기 위해 거치는 '사회화' 과정이다. 토마스는 앨빈이 또 아이들에게 따돌림당하며 맞지 않을까 걱정하며 이 과정에 함께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극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두 캐릭터의 차이는 사회화 속에서 '오이디푸스 단계'를 통한 남성성의 획득 여부로 어느 정도 설명될 수 있다. 아이들은 생물학적 성을 지닐 뿐, 모두 사회적인 양성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이 단계를 통해 남성(male)은 '남성(man)'이 되며 '남성'에게 부여되는 권력을 획득한다. 이는 자연스레 토마스와 앨빈의 다른 성장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남성성을 체화한 토마스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승승장구하며 시상식에서 상까지 받게 된다. 하지만 앨빈은 시골 책방에서 책을 판다. 둘의 사회적인 위치는 달라졌다.

이런 점에서 앨빈을 재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다음 시즌, 여성 페어도 하나쯤 있으면 어떨까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프레스콜 지난 2016년 12월 6일, 서울 백암아트홀에서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두 남자의 우정을 그린 이 작품은, 매년 겨울마다 많은 팬을 설레게 하는 '힐링극'으로 평가 받는다.

▲ 이창용의 앨빈 토마스에 비해 앨빈은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남성성을 따르지 않는다. 그의 성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가 토마스를 생각한 게 사랑이었는지 우정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그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앨빈에게 토마스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그걸로 충분하다. ⓒ 곽우신


앨빈이 남성성을 내재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는 '양성성을 모두 지닌', '오이디푸스 단계를 지나지 않은' 인물로 그려질 수 있다. 앨빈은 그저 남성 배우가 연기하여 남성으로 인식될 뿐, 그대로 여성 캐릭터로 변환하더라도 큰 위화감은 들지 않는다. 앨빈은 남성성을 체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성성을 체화하지 않았던 앨빈을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것은 그래서 약간의 변화로도 가능하다. 성적 당위성이 그다지 존재하지 않는 채 자연스레 남성으로 설정됐던 인물을 여성으로 바꾸는 것은, 어찌보면 소극적인 각색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연극·뮤지컬 무대의 상황을 고려하면 급진적인 결과물을 낳을 것이다.

그렇다고 토마스는 그대로 두고 앨빈만 여성으로 등장해서는 새로운 문제가 등장할 수 있다. 우선, 이성애 규범이 전제된 이성애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은 흔히 친구로 그려지지 않는다. 수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여자(남자) 사람 친구가 진짜 가능하냐'와 같은 질문이 꾸준히 올라온다. '여사친', '남사친'이라는 개념이 등장했지만 공연에서 <솜>의 '우정'을 이성애적 에로스처럼 보이지 않게 표현하기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다. 또한 남성과 여성이 사회 젠더적으로 가질 수 있는 권력이 다르다는 점에서 현재의 <솜>이 가진 우정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표현하기도 꽤 어려운 숙제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솜>의 여성 버전을 제안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토마스도 여성 캐릭터로 그려낸 온전한 여성 2인극 <솜> 말이다. 물론 여성 배우들의 <솜>은 기존의 <솜>과 약간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앨빈은 '양성성'을 지닌 남자 캐릭터지만 토마스는 '남성'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The Normal' 같은 넘버는 여성 토마스일 경우 바뀔 것이다. 남성 토마스의 애니와의 관계는 여성 토마스의 다른 애인과의 관계로 전환되며 이 또한 변화할 수 있다.

토마스가 기존 '남성으로서의' 사회화를 거친 인물이라고 상술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흔히 규정되는 남성성에 갇혀 있는 인물도 아니다. 강인하고, 거칠고, 터프한 맨박스에 가두기에 그는 섬세하고 여린 인물이다. 그래서 갈등한다. 부여된 것 그리고 강요된 것들이 다르다. 그렇기에 여자 앨빈과 대비되면서 여자 토마스가 보여줄 모습은 더욱 흥미롭게 표현될 것이다.

사회적으로 젠더 권력을 지닌 남성 간의 결합은 여성 간의 결합과 그 의미나 결이 다소 다르다. 권력이 없는 여성들끼리의 결합은 충분히 시도되지 않았기에 낯설다. 그래서 더더욱 가부장제 사회에 도전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이를 시도하는 것, 그 자체는 어렵고 낯설지 몰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여태껏 연극·뮤지컬의 많은 팬은 '여성극'에 목말라 했다. 올해도 <솜>은 나쁘지 않은 흥행 성적을 보이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제 바랄 것은 <솜>의 귀환과 여성 토마스와 여성 앨빈의 등장이다. 다음 시즌에는, 한 페어 정도는 '여성' 토마스와 앨빈을 함께 캐스팅해도 되지 않을까.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프레스콜 지난 2016년 12월 6일, 서울 백암아트홀에서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두 남자의 우정을 그린 이 작품은, 매년 겨울마다 많은 팬을 설레게 하는 '힐링극'으로 평가 받는다.

▲ 금방 돌아오기를 연기하는 배우도, 바라보는 관객도 행복한 작품인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또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지만 금방 돌아오리라고 모두가 기대하고 있다. 그 기대에, 여성 페어 하나 정도 추가되는 건 어떨까, 다른 기대를 살짝 얹어 본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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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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