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의 새로운 가능성이 된 KBS <마음의 소리>

시트콤의 새로운 가능성이 된 KBS <마음의 소리> ⓒ KBS


지난 연말부터 이광수는 주말 밤마다(?) 바빴다. 2016년 12월 24일 종영한 <안투라지>에서는 주인공의 사촌 형이자 카메라 울렁증을 가진 만년 조역 연예인으로, 6일 종영한 <마음의 소리>에서는 만년 백수 웹툰 작가 지망생 조석으로 분했다. 서로 다른 채널, 다른 장르의 드라마지만, 첫 회부터 맨몸으로 목욕탕에서 열연했던 <안투라지>나, 마지막 회까지 나체바람으로 거실을 활보하던 <마음의 소리> 조석은 '이광수' 하면 떠오르는 캐릭터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순수하지만 사회적응력은 조금 떨어지고, 열심히 하려 하지만 세상의 코드와 맞지 않아 보는 사람에게 안타까운 웃음을 짓게 만드는. 하지만 그리 다르지 않은 캐릭터로 출연했던 두 작품의 반응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온도 차가 크다.

<안투라지>와 <마음의 소리>, 그 다른 행보

 김병옥과 김미경 배우의 '케미'와 '연기력', '센스'가 빛났던 시트콤 <마음의 소리>

김병옥과 김미경 배우의 '케미'와 '연기력', '센스'가 빛났던 시트콤 <마음의 소리> ⓒ KBS


두 작품의 화제성은 방영 전부터 대단했다. 미국 HBO에서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안투라지>를 리메이크하고, 화제 웹툰이었던 <마음의 소리>를 '웹드라마화'했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자, <안투라지>는 첫 방 시청률(2.264% 닐슨)이 최고 시청률이 되고 만다. <안투라지>와 달리 <마음의 소리>는 비록 금요일 밤을 달군 예능들에는 못 미치는 성적(4.7% 닐슨)이지만 전작이었던 <언니들의 슬램덩크> 못지 않은 시청률을 얻었다. 무엇보다 웹 동시 방영 작품으로 최단 시간 네이버 조회수 100만 돌파, 3천 6백만 뷰(view)를 넘기며 웹드라마 전체 조회수 1위, 한한령에도 불구하고 중국 웹 조회수 1억뷰를 넘기는 기록을 경신하는 놀라운 성과를 내며 '성공작'으로 평가받는다.

똑같은 리메이크작임에도 무엇이 두 작품의 행로를 갈랐을까? 첫 방송부터 알몸 열연을 선보였다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하지만 결국 그 행보를 가른 것은 '리메이크 운용의 묘'였다. 미국 케이블 드라마의 선정성을 한국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고스란히 옮겨온 <안투라지>는 우리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농담과 욕설을 해 비호감을 자처했다. 따지고 보면 삶의 민낯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안투라지>와 그리 다르지 않은 <마음의 소리>는 배경을 가족으로 설정한다.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서 살다 보면 누구라도 공감할 가족들의 '지질한' 속내,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가족애를 시트콤 형식으로 그려내며 똑같은 이광수임에도 호감과 비호감으로 그 길을 달리하게 했다.

<마음의 소리> 그 흥행의 배경

 선방했으니 됐다? 더 많은 '가족 시트콤'을 보고 싶다.

선방했으니 됐다? 더 많은 '가족 시트콤'을 보고 싶다. ⓒ KBS


그러나 어쩌면 이런 평가에 대해 <안투라지> 제작진은 억울할 수도 있겠다. 비록 인기 미드이지만 대중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미국 케이블 채널 작품과 이미 명망을 충분히 얻은 만화가 조석의 <마음의 소리>를 비교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마음의 소리>는 이미 확보된 대중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하지만 시트콤 <마음의 소리>를 그것만으로 또 '퉁치기'엔 아깝다. 드라마화하는 과정에서 웹툰 그 이상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캐릭터 구현에서 시트콤 <마음의 소리>는 성공적이었다. 웹툰 <마음의 소리>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관심을 끌었던 등장인물들은 배역 선정에서 "절묘하다"는 찬사를 이미 받았고, 방송 중 빈번하게 등장하는 웹툰과 이질감조차 느낄 수 없는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다수의 작품에서 잔인한 악역으로 등장했던 김병옥 배우의 전작 캐릭터를 활용한 '쉰(50)세계', 김미경 배우의 에피소드도 배우의 장점을 유감없이 살려냈다.

가족, 한 꺼풀 벗기면 권위도 무색하고, 논리 따윈 없는 '먹고 자고 싸며' 끊임없는 갈등을 조성하는 인간 공동체 '기본 단위'의 민낯은 지상파 시트콤에 가장 어울리는 소재였다. 이미 <하이킥> 시리즈에서 검증됐듯. 마지막회, 웹툰 작가로 성공한 조석은 '마음의 소리' 그 자체였던 가족에 고마워했다. 되돌아보면 '우리 가족 참 웃겨'라는 공감대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익숙하고 친숙한 소재'가 <마음의 소리> 성공 비결이었다.

덕분에 시청률이라는 늪에서 나오지 못해 각 방송사에서 고사되고만 '시트콤'이라는 장르가 부활할 가능성을 열었다. 몇 년 만에 MBC <복면가왕>에 등장한 최민용이 연일 검색어에 오르내리듯 한때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던 시트콤이 지상파에서 설 자리를 잃고, 케이블에서조차 발을 내밀지 못하게 된 것은 결국 '시청률' 때문이었다. 비록 <마음의 소리>가 양 방송사의 터줏대감이 된 금요 예능의 벽을 뚫진 못했지만, 전작보다 나쁘지 않은 시청률을 선방했다는 점에서 오후 11시대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연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청률 무용론'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시청률에 의존하지 않고 웹과 지상파, 양수겸장의 방식으로 시트콤 부진을 뚫고 나간 전략은 활로를 뚫은 것이라 볼 수도 있다. 특히 웹상 접근성이 좋을 짤막한 에피소드 중심의 줄거리, 그 스토리 라인 몇 개를 다시 모아 한 회분 시트콤으로 편성한 방식도 지혜로운 운용의 묘라 할 수 있겠다. 덕분에 <마음의 소리> 2, 혹은 또 다른 운용의 묘를 가진 시트콤의 귀환이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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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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