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쪼개듣기'는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코너입니다. 화제작 리뷰, 업계 동향 등 다채로운 내용을 전하겠습니다. [편집자말]
 지난해 12월 발매된 `김광석 - 다시` 표지

지난해 12월 발매된 `김광석 - 다시` 표지ⓒ CJ E&M, With 33


"인생이란 강물 위를 뜻 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숫가에 닿으면 물과 함께 썩어가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 '일어나'(1994년) 중에서

현란한 사운드의 댄스 음악의 급부상과 반비례해서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쓰러져가던 1990년대 한국의 포크 음악은 몇몇 재능있는 음악인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였다. 이 무렵 빼어난 가창력으로 가슴을 울리는 노래를 들려줬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김광석이었다.

하지만 재능을 다 꽃피우지 못한 채 1996년 1월 추운 겨울날 갑작스레 우리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대중음악의 획을 긋다

 지난 2014년 재발매된 김광석 4집 표지

지난 2014년 재발매된 김광석 4집 표지ⓒ CJ E&M, With 33


대중들에게 김광석이란 존재를 처음 알렸던 '거리에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가 각각 수록된 동물원의 1집과 2집(이상 1988년)은 아마추어적인 화법으로 제작되었음에도 1980년대 대중음악의 한 획을 그은 걸작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요 멤버 간 음악에 대한 자세 차이가 두드러졌고, 전문적인 음악인이길 원했던 김광석은 1989년 결국 동물원을 떠나 '기다려 줘', '너에게'를 담은 자신의 첫 독집 음반을 내놓으며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이어 '사랑했지만'(한동준 곡), '사랑이라는 이유로'(김형석 곡)를 담은 2집 (1991년)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이 무렵까지는 그저 노래 잘 부르는 발라드 가수나 공연 전문 가수로만 정도로만 각인되어 있었다.

1992년, 김광석 음악의 전환점이 된 3집을 통해 그는 진정한 아티스트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수록곡 '나의 노래'(한동헌 곡, 원제는 '노래')는 그러한 작업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민중가요, 동물원 시절 노래에서부터 자신의 솔로 3집까지의 곡들을 선별, 재녹음한 <다시 부르기 1>(1993년)은 원곡을 능가하는 리메이크곡이 없다는 전례를 뒤집으며 음악인로서의 위치를 다지는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 특히 김현성 원곡의 `이등병의 편지`는 지금까지 손꼽을 만한 리메이크 명곡으로 재탄생했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와 더욱 진지해진 자신의 모습을 담은 자작곡 `일어나`를 수록한 4집 (1994년)과 이정선, 양병집, 한대수 등의 곡들을 리메이크했던 <다시 부르기 2>(1995년)은 조동익 밴드(함춘호 기타, 조동익 베이스 및 편곡, 박용준 키보드, 김영석 드럼)의 뛰어난 연주가 빛을 발한 작품이었다.

이를 통해 1990년대 한국적 포크 록의 완성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일련의 작업 과정에서 그는 좌절한 듯한 모습을 내비쳤다. (실제 김광석은 한동안 공연 무대에서 '사랑했지만'을 부르길 꺼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어찌 보면 편안함을 원했던 대중들이 김광석에게 고난의 길을 걷도록 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1996년 1월 6일 그는 많은 의문을 남긴 채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뒤늦게나마 SK텔레콤, KBS 등을 통한 다양한 추모 기획, 각종 공연, 음반 재발매 등이 이어지곤 있다. 하지만 아직도 대중 중 일부는 김광석을 그저 '가창력 뛰어난 가수'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다.

언제나 웃음 띤 목소리로 "행복하세요"라고 끝인사를 하던 심야 라디오 DJ 시절과 대학로 소극장에서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건만 이제는 많은 이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 간다는 느낌마저 든다.

21년이 지난 지금, 김광석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다시 한번 그에 대한 경의와 애도의 뜻을 표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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