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중국의 그랜드캐년 타이항산(太行山)은 산둥(山東)성과 산시(山西)성을 가르는 경계다. 영화 <산이 울다(喊山)>는 1984년 타이항산 안산핑 고립된 산골의 협곡마을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펼쳐진다. <산이 울다>는 2005년 루쉰(魯迅)문학상과 인민문학상을 수상한 산시성 출신 여작가 거수이핑(葛水平)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기도 하였다.

영화의 배경은 1984년 타이항산의 고립된 협곡마을이다. 구불구불한 길처럼 멀고, 벗겨도 양파처럼 여전히 베일에 싸인 영화 속 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영화의 배경은 1984년 타이항산의 고립된 협곡마을이다.구불구불한 길처럼 멀고, 벗겨도 양파처럼 여전히 베일에 싸인 영화 속 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남편 라홍(腊宏)은 어린 딸이 갓난아이를 돌보는 사이 문을 닫고 아침을 준비하던 벙어리 아내 홍샤(紅霞)를 강제로 침대로 던지고 자신의 욕망을 채운다. 이웃집 호기심 많고 강직한 청년 한충(韩冲)은 과부 친화(琴花)와 산을 사이에 두고 덫을 놓아 오소리를 잡는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다음날 '펑', 덫의 뇌관이 폭발하는 소리와 비명소리, 오소리를 잡기 위해 놓아둔 덫에 라홍의 다리가 잘리고 라홍은 결국 죽게 된다. 벙어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마을 사람들은 한충이 남편을 잃은 과부와 두 아이에게 2만 위안을 지급할 때까지 세끼 식사와 함께 잘 돌볼 것을 결정한다. 침묵의 세계에 사는 벙어리 홍샤의 고요함과 그와 대비되는 '펑' 소리와 함께 시작된 한바탕 산골마을의 소동이 영화를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해준다.

남편 라홍에 손에 들린 도끼 아비 부(父)는 원래 돌도끼(斧)를 손에 쥐고 있는 모양에서 유래된 한자로 ‘거대한 아버지의 부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남편 라홍에 손에 들린 도끼아비 부(父)는 원래 돌도끼(斧)를 손에 쥐고 있는 모양에서 유래된 한자로 ‘거대한 아버지의 부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눈여겨봐야 할 점은 라홍이 죽기 직전 자신이 들고 다니던 도끼를 아내 홍샤에게 던지는 장면이다. 아비 부(父)는 원래 돌도끼(斧)를 손에 쥐고 있는 모양에서 유래된 한자로 사냥과 채집에 써야 할 도끼를 자신의 아내에게 던지는 장면은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라홍이 얼마나 왜곡된 삶을 살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1966-1976) 10년은 하방(下放)이란 이름으로 많은 아버지들이 가정을 떠난 '거대한 아버지의 부재'를 겪어내야 했던 시대였다. 영화에서 남주인공 한충의 아버지가 한충이 6살 때 감옥에 갔다가 20년 만에 돌아오는 설정은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홍샤는 남편이 죽자 흐릿한 거울을 닦아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고, 태연하게 서랍에 소중히 간직해온 비누로 머리를 감는다. 자신을 억압하던 남편의 죽음으로 조금씩 자아의 정체성을 찾아가려는 홍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남편의 장례식 때는 흙과 돌을 관에 던지며 오열하더니, 마을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고는 또 웃음을 참지 못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남편을 잃은 충격에 제정신이 아닐 거라 여길 뿐이다.

남편을 죽인 한충이 자신과 두 아이를 책임지도록 하는 마을사람들의 결정할 때에도 홍샤는 자신의 이름을 직접 글로 쓰며 금전적 배상을 거부한다. 벙어리인줄만 알았던 그녀에게 이름이 있었고, 그녀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또 글을 쓸 줄도 아는 어엿한 인격체임이 드러난다. 홍샤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남편의 따뜻한 보살핌이지 금전적인 조건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남편의 옷가지며 이불을 모두 불태워버린다. 홍샤에게 남편의 죽음은 상실과 슬픔이 아닌 해방과 새로운 자유를 향한 시작이다.

그리고 잠시 한충과 홍샤의 행복한 날들이 이어진다. 홍샤는 세숫대야를 쇠막대기로 두드리며 새벽 산을 오르며 스스로 맞이한 행복을 자축한다. 마치 어둠에 잠든 산을 깨우기라도 하듯이. 이 장면은 영화의 엔딩에 다시 등장한다. 영화의 제목은 <산이 울다>로 번역되었지만 함산(喊山)의 정확한 의미는 "산을 큰 소리로 부르다"는 뜻이다. 혀가 잘려 언어를 잃어버린 벙어리 홍샤의 이 두드림과 소리 없는 함성은 중국 농촌의 억압된 여성의 해방과 사랑을 잃어버리고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공동체에게 정신적 각성을 촉구하는 포퍼먼스로 슬프고 아름답다. 홍샤의 외침은 소리가 없지만, 그래서 더 멀리 울려퍼진다. 고립무원의 산 속에서 한 벙어리 여성이 보여주는 작고 외로운 싸움이지만, 그 울림이 새들을 깨우고 침묵하던 산을 깨워 멀리 여명이 밝아오게 한다. 

마을에서 홍샤를 쫓아내려는 사람들에 맞선 한충 장애를 지닌 소수자를 배척하려는 전체주의에 대한 상징으로 볼 수 있다.

▲ 마을에서 홍샤를 쫓아내려는 사람들에 맞선 한충장애를 지닌 소수자를 배척하려는 전체주의에 대한 상징으로 볼 수 있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그러나 한충과 홍샤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한다. 회상으로 제시되는 홍샤의 아픈 과거, 그리고 죽은 남편이 저지른 유괴,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경찰의 등장은 그동안 덮고 있던 한충의 살인사건을 다시 불거지게 한다. 마을사람들은 혼란의 원인이 된 홍샤를 마을에서 내쫓으려한다. 한충은 자신이 자수하면 마을에 피해가 가지 않을 테니 홍샤를 마을에 살게 해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마을 사람들 앞에서 한충은 죄 값을 치르고 돌아와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경찰이 마을에 들어와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반전이 시작된다. 사고인줄만 알았던 남편 라홍의 죽음엔 홍샤의 치밀한 계획이 숨어있었고, 방에서 라홍의 입과 코를 막아 질식사하게 한 것도 홍샤였다. 홍샤는 왜 남편을 죽였을까? 이유는 그가 바로 어렸을 때 자신을 유괴해서 혀를 잘라 말을 못하게 했으며, 강제로 결혼해 임신하게 하고 온갖 폭행을 가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 홍샤의 회상으로 드러난다.

1976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죽고,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개혁개방이 시행되지만, 영화의 배경이 된 1984년은 남방의 연안에서 시작된 그 발전의 불씨가 아직 산골까지는 전해지지 못한 시점이다. 마오쩌둥은 여성도 하늘의 절반(半邊天)을 떠받들 수 있다며 여성을 혁명세력으로 끌어들이긴 하지만, 농촌에 남았던 그 봉건적 남성 중심사상까지 바꾸어 놓지는 못했다. 어릴 적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홍샤는 자신을 납치해 성폭력으로 아이를 낳게 한 남편과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었고, 남편을 죽이는 것에서 자신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홍샤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다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려는, 그리고 돌아와 자신과 결혼하겠다고 까지 하는 한충을 차마 그렇게 보낼 수 없어 자신의 죄를 자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경찰에 붙잡혀 가는 홍샤와 그 뒤를 쫓아가는 한충 상처투성이인 인생을 우리는 저렇게 순수하게 감싸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던진다.

▲ 경찰에 붙잡혀 가는 홍샤와 그 뒤를 쫓아가는 한충상처투성이인 인생을 우리는 저렇게 순수하게 감싸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던진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영화의 마지막은 되돌아봄과 달려감의 엇갈림으로 맺어진다. 홍샤와 한충은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지만, 이제 앞만 보고 함께 달려갈 길만 남았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침묵으로 버티고 선 타이항산에 거대한 아침이 밝아오기까지 어둠은 또 한동안 지속되겠지만 말이다. 언어를 잃어버린 벙어리의 침묵으로 산을 깨울 수 없기에 자신의 몸을 던져 산을 깨우는 수밖에 없었던 홍샤는 어쩜 지금도 세수대야와 쇠막대기를 두드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침묵하는 산을 깨우는 홍샤의 몸짓 벙어리인 홍샤는 세수대야와 쇠막대기를 두드리며 기존의 윤리관과 세계에 맞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 침묵하는 산을 깨우는 홍샤의 몸짓벙어리인 홍샤는 세수대야와 쇠막대기를 두드리며 기존의 윤리관과 세계에 맞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영화 <산이 울다>는 산처럼 무겁게 버티고 선, 도끼로 상징되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윤리가 지배하는 사회를 향한 함성이자 울부짖음이다. 자기만의 언어를 잃어버린, 아니 삶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홍샤를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공동체의 집단이기주의로부터 보호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은 철없는 이웃집청년 한충이다. 한충은 또한 장애를 지닌 소수자에 대한 편견, 여성주의, 공동체의 존속과 개인의 문제 등 영화의 무거운 주제들을 그 솔직하고 천진난만한 삶의 자세와 어려움에 처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가볍게 이어준다.

한충이 있기에 영화 <산이 운다>는 온통 상처투성이인 인간을, 언어 장애가 있는 사회적 약자를, 죄를 짓고 감옥으로 멀어져가는 그녀를 우리는 과연 달려가 따뜻하게 안아주고 사랑할 수 있느냐고 관객들에게 물을 수 있게 되었다.

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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