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으로 들어간 '캡틴 판타스틱' 벤과 6명의 아이들, 그들에게서 대안적 삶과 교육의 완벽한 모습이 엿보인다. 이들에게 어떤 앞날이 펼쳐질까.

숲 속으로 들어간 '캡틴 판타스틱' 벤과 6명의 아이들, 그들에게서 대안적 삶과 교육의 완벽한 모습이 엿보인다. 이들에게 어떤 앞날이 펼쳐질까.ⓒ ?(주)더쿱


어딘지 알 수 없는 깊은 숲 속, 누군가가 사슴과 대치하고 있다. 달려들어 사슴의 목을 베는 그. 새카맣게 칠한 얼굴에 뭔가 이루었다는 표정이 읽힌다. 곧 근처에서 숨어 있던 사람들이 나온다. 다들 어리다. 그리고는 어른 남자 한 명이 나와 사슴의 심장을 빼낸다. 사슴을 쓰러뜨린 이의 얼굴에 피를 바르며 심장을 먹게 하곤 '이제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는 식의 말을 건넨다. 숲 속 부족의 성인식 같다.

첫 장면만으로는 영화의 성격을 전혀 알 수 없는 이 영화, <캡틴 판타스틱>이다. 알고 보니 그들은 한 가족, 아버지와 아이들 6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숲 속 부족이 아닌, 숲 속으로 들어간 가족이다. 6명의 아이들은 아버지 '캡틴 판타스틱' 벤의 철저하고 완벽한 통제 교육 하에 훈련, 책읽기, 음악, 토론, 생존 등에서 한계 이상의 능력을 뽐낸다. 그 기저에는 현재 '바깥  세상'에 대한 깊은 불신과 좌파적 이상주의가 깔려 있다.

아이들을 위한 대안 교육, 제대로 된 인생을 위한 대안적 삶의 모습이 엿보인다. 아무래도 벤이 절대적인 신념으로 기획하고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 삶인 듯, 아이들도 군말 없이 아버지의 교육 방식에 따른다. 첫째의 미국 유수 대학 합격 소식과 넷째의 반항아적인 기질이 불안하지만, 캡틴 판타스틱의 카리스마를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어 보인다. 이들에게 어떤 앞날이 펼쳐질까.

완벽함 속에 깃든 불안함

영화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기에 앞서 말하고자 하는 건, 이 영화가 누구에게나 '인생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거다. 출중한 영화적 재미로 시간가는 줄 모르게 보고, 메시지가 단번에 전해지고, 연기와 내용과 OST까지 완벽하며, 무엇보다 너무나도 '조화'로운 결말이 가슴을 치며 깊은 여운을 남길 것이다. 한 콘텐츠에서 파격의 불안감과 혁신의 환희를 엿볼 수 있다는 게 기적이다.

완벽할 것 같은 이 가족에게도 큰 위기가 닥친다. 어느 정도 예견된 위기인데, 바로 엄마의 부재다. 3주나 넘게 돌아오지 않고 있는 엄마, 비록 아버지의 통제 하에 철저히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걱정 없어 보이지만 아이들은 엄마가 그립다. 벤은 시내로 가서 부인의 소식을 듣는다. 정신병에 걸려 동생 집에 지냈던 부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재미, 메시지, 연기, 내용, OST, 그리고 결말까지 완벽한 영화 <캡틴 판타스틱>. '인생 영화' 리스트에 올리는 것에 주저함이 없을 줄 안다.

재미, 메시지, 연기, 내용, OST, 그리고 결말까지 완벽한 영화 <캡틴 판타스틱>. '인생 영화' 리스트에 올리는 것에 주저함이 없을 줄 안다.ⓒ ?(주)더쿱


아이들에게 알리는 벤, 울부짓는 아이들, 급기야 넷째는 아버지가 엄마를 죽게 했다며 분노한다. 오랫동안 세상과 동떨어진 삶으로 미쳐서 자살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다시 벤의 통제 하에 교육 받는 아이들. 기존의 한계를 넘는 힘듬에 불안, 불만, 그리움 등이 스며든다. 머지 않아 와해될 것 같은 흔들림이 보인다.

와중에 부인의 유서를 읽는 벤, 딸의 장례식에 오면 경찰을 부르겠다는 분노 어린 장인어른의 말을 무시하고 아이들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바깥세상의 횡포에 맞서, 엄마를 '구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은 그들뿐이다. 이 행동은 그들의 삶에 터니포인트가 될 것이다. 유서는 '절대 매장은 안 된다. 불교식으로 화장해 달라. 뼛가루는 변기에 내려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엄마를 구하는 데 성공할까?

취사선택의 어려움

멀고먼 길을 떠난 이 가족, 제대로 된 바깥세상 구경이 처음인 듯하다. 많은 걸 보고 느끼고 겪는 아이들, 벤이 생각하지 못한 또 다른 교육의 시작이다. 현대인들의 삶과 교육에 대한 벤의 극단적인 대안 방식, 바깥에 나오니 그들이 '틀린' 것 같다. 가족들도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 또한 바깥세상을 인정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훨씬 더 우월하고 또한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잘못된 삶을 살고 잘못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못한 채 더 심한 극단으로 치달을 것만 같다.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 완벽한 듯 보이는 것만 있을 뿐이다. 분명 벤의 가족은 완벽에 가깝다. 육체, 정신, 지혜, 지식 면에서 또래 아이들이 절대 따라올 수 없는 능력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첫째가 미국의 최고 대학들에 모두 합격하지 않았는가. 물론 아버지 몰래 따로 교육을 받았겠지만, 그 기반은 분명 아버지의 교육 덕분이지 않은가. 그런데 완벽하진 못하다.

6명의 아이들 중에서도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첫째, 그의 바깥세상 체험은 충격적이었다. 자신이 받은 교육으로는 바깥세상을 설명할 수도, 그곳에서 잘 살아갈 수도 없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책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순 없다고, 아니 정말 사소한 것조차 설명할 수 없을 때가 많다고,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조차 되지 못한다고. '다름'의 대안을 넘어선 '틀림'의 극단이 불러온 폐해다.
 완벽해 보이는 벤의 가족들이지만, 그들은 참으로 극단적이다. 바깥 세상 사람들도 그들의 방식을 '틀렸다'고 하지만, 그들 역시 바깥 세상 사람들의 방식을 '틀렸다'고 한다. 다를 바가 없지 않나?

완벽해 보이는 벤의 가족들이지만, 그들은 참으로 극단적이다. 바깥 세상 사람들도 그들의 방식을 '틀렸다'고 하지만, 그들 역시 바깥 세상 사람들의 방식을 '틀렸다'고 한다. 다를 바가 없지 않나?ⓒ (주)더쿱


'올바른' 극단이 '올바르지 못한' 극단을 만나 혼란에 빠진다. 곧 수습하고는 더욱더 확고한 올바름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발견해낸다. 아니, 발견해내야 한다. 자신들이 무조건 올바르지 않다는 걸. 올바르고, 올바르지 못한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정녕, 굳이, 그들이 올바르다는 걸 증명하려면 스스로 만든 프레임에서 벗어나 '다름'의 시선을 장착해야 한다. 그렇지만 참 어려울 거다.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한다'는 게.

이 영화가 전하려는 '조화'의 모습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머릿속,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벤의 신념이 투영된 교육 방식이 정녕 완벽해 보인다. 비단 교육뿐 아니라 삶까지도. 문명 이전에, 인간 본성에 가까운 삶인 것 같다. 올바르고 훌륭해 보인다. 그런데, 이미 문명은 발달할 대로 발달해 있다. 너무나도 올바르고 훌륭하고 완벽한 그들은 바보가 될지 모른다. 그들은 '위대'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완벽한 '정답'일 수 없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현대인 대다수의 삶은 어떨까. 누군가는 충만한 행복으로, 누군가는 불만어린 시선으로, 누군가는 회의와 만족의 모순으로 살아간다. 아마 공통적으로 자신과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게, 인류 문명 전체에게 비웃음을 날릴 것이다. 속물들이라고, 비인간적이라고, 형편없다고. 인류는 결코 만물의 영장일 수 없다고. 그렇지만, 그렇다고, 틀린 건 아니다. 위대하지도 않고 정답하고는 한참 거리가 멀다고 해도 말이다.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고민이 있기에, 극단을 멀리할 수 있다. 균형 감각과 다양성이 있다.

 이 영화의 위대한 점은 '조화'에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완벽에 가까워 보이는 가족을 끌어내리는 꼴이 아니라, 성장의 방정식으로 더 완벽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녕 어려운 것일 텐데.

이 영화의 위대한 점은 '조화'에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완벽에 가까워 보이는 가족을 끌어내리는 꼴이 아니라, 성장의 방정식으로 더 완벽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녕 어려운 것일 텐데.ⓒ ?(주)더쿱


오래 전부터 '상대적', '조화'라는 말을 신념 비슷한 걸로 삼아왔다. 이를 추구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어떻게? 어떤 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견했다. 그 방법을, 그 모습을. 다름 아닌 영화 <캡틴 판타스틱>이 전하려는 '조화'의 모습이다.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고. 자신의 극단적 신념에서 '다름'을 '틀림'으로 인지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버리고, 그 자리에 '다른 것'들의 괜찮은 요소들을 배치한다. 올바르고 훌륭하고 완벽해 보이는 것들은 가지고 가되, 그로 인해 출현하는 절대적이고 적대적인 배제와 자만심을 버리는 것이다. 그 반대도 가능하다. 특유의 균형 감각과 다양성에 올바르고 훌륭하고 완벽해 보이는 것들을 최대한 흡수하는 것이다. 추상적이고 이상적이라고? 그럼 여기에 디테일하고 회의적인 면을 장착하면 되겠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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