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연속 관객 수 2억 명 돌파, 극장에 내걸린 개봉작 역시 1500편으로 신기록을 작성했다. 한 편의 1000만 영화가 탄생했고 내적으로 주목할 만한 작품과 영화인도 여럿 등장했다. 양적으로 더없이 풍요로운 한 해를 보낸 한국 극장가는 2017년 새해에도 외연을 더욱 넓혀나갈 기세다.

지난 한 해, 많은 이들이 꿈을 이뤘다.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신진기수로 꼽혀온 연상호 감독은 의외의 블록버스터를 연출하며 상업영화 감독으로 변신했다. 충무로는 그의 차기작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첫 장편 <우리들>로 유수의 시상식에 불려 다닌 윤가은 감독에게도 2016년은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됐다. 많은 영화팬들이 그녀의 영화를 2016년 한국영화계의 발견으로 손꼽는다. 어디 그들뿐일까. 지난 한 해 동안 수많은 스타가 탄생했다. 그리고 그보다 많은 이들이 제2, 제3의 연상호와 윤가은이 되기를 꿈꾸며 자신을 담금질하고 있다.

지난 12월 개봉해 많은 이에게 잊을 수 없는 감상을 선사한 <라라랜드>는 꿈꾸는 바보를 위한 한 편의 매혹적인 판타지다. 이 영화가 그토록 극찬을 받은 데는 현실서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 꿈이 끝내 달성되는 순간의 감동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와 같은 판타지의 이면엔 스러지는 수많은 좌절이 자리한다. 누군가에게 현실은 꿈꾸는 자를 바보로 만들고 청춘을 조금씩 부스러뜨리며 삶을 한 발자국씩 낙오시킨다. 올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은 바보가, 청춘이, 삶이 무너졌을까.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2017년 정유년 한 해, 그래도 많은 드라마가 쓰이길 바란다. 9회 말 투아웃에 터지는 역전 만루홈런처럼 감동적인 드라마가 펑펑 터지는 한 해를 기대한다.

그와 같은 마음으로 정유년 해오름달 출격하는 기대작 5편을 가려 뽑아 소개한다. 지난해 10편에 비해 절반이 줄어든 5편을 추리게 돼 더욱 고민이 컸다. 한국영화를 한 편쯤은 뽑고 싶었으나 설정의 참신함, 제작진의 면면, 배우의 화려함, 연출 의도와 시리즈를 거듭하는 집념 등에서 할리우드 작품 5편이 기대작 목록을 모두 채웠다.

[하나] <패신저스>

패신저스 2013년 <그래비티>, 2014년 <인터스텔라>, 2015년 <마션>를 잇는 또 한 편의 우주배경 흥행작이 될 수 있을까? 이 영화 흥행에 모튼 틸덤의 미래가 걸려 있다.

▲ 패신저스 2013년 <그래비티>, 2014년 <인터스텔라>, 2015년 <마션>를 잇는 또 한 편의 우주배경 흥행작이 될 수 있을까? 이 영화 흥행에 모튼 틸덤의 미래가 걸려 있다. ⓒ UPI 코리아


4일 개봉하는 <패신저스>는 방대한 우주 가운데 인간에게 초점을 맞춘 드라마로 전작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주목받은 모튼 틸덤이 연출을 맡았다. 2007년 이후 할리우드 제작사 사이를 떠돌아다니며 최종선택을 받지 못한 시나리오 가운데서는 가장 매력적인 작품으로 꼽혀온 것이 최근 CG의 비약적인 발전 등 여러 부분을 고려해 영화화가 확정된 것이다. <프로메테우스> <닥터 스트레인지>의 각본가 존 스파이츠가 시나리오를 집필했고 할리우드서 가장 뜨거운 배우로 꼽히는 크리스 프랫과 제니퍼 로렌스가 남녀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이야기는 개척 행성을 향해 5258명의 승객을 태우고 떠난 초호화 우주선에서 예기치 않은 사건이 벌어지며 시작된다. 120년으로 예정된 동면여행 중 단 두 명의 승객이 남보다 90년 일찍 깨어나게 된 것. 우주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이들이 모두가 잠든 우주선에서 마주하는 이야기가 최첨단 기술력과 함께 흥미롭게 그려진다.

2013년 <그래비티>, 2014년 <인터스텔라>, 2015년 <마션>까지 우주를 무대로 한 영화가 매년 등장해 인기를 끈 상황에서 2017년 벽두를 장식할 <패신저스>가 어떤 반향을 가져올지 주목된다. 할리우드에서 이룬 성취와 달리 한국에선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두 배우 제니퍼 로렌스와 크리스 프랫의 활약도 기대를 모은다.

[둘] <얼라이드>

얼라이드 스티븐 스필버그 주변을 맴돌던 영화인 가운데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거장으로 성장한 로버트 저메키스의 영화. 브래드 피트와 마리옹 꼬띠아르가 주연을 맡았다. 11일 개봉.

▲ 얼라이드 스티븐 스필버그 주변을 맴돌던 영화인 가운데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거장으로 성장한 로버트 저메키스의 영화. 브래드 피트와 마리옹 꼬띠아르가 주연을 맡았다. 11일 개봉. ⓒ 파라마운트 픽처스


현존하는 최고수준의 연출가 가운데 하나인 로버트 저메키스의 신작이다. <빽 투 더 퓨쳐> 시리즈, <포레스트 검프>, <죽어야 사는 여자>, <콘택트>, <캐스트 어웨이> 등 그가 세상에 내놓은 걸출한 작품만도 열 편을 헤아린다. 2015년엔 <하늘을 걷는 남자>로 몇 년 간의 공백을 깨고 복귀, 거장의 품격을 증명하기도 했다. 지금은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사이에서 줄타기 곡예를 펼친 남자의 실화를 통해 저메키스는 미국의 화려한 어제에 멋스런 헌사를 보냈다.

<얼라이드>는 저메키스가 꺼내 든 새 도전장이다. 어느덧 65세로 노장의 반열에 접어들었지만 익숙한 장르를 벗어나 40년대를 배경으로 서스펜스 스릴러 연출에 나선 그에게 청춘의 단면이 읽히는 듯도 하다. 1942년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를 배경으로 영국군 장교와 프랑스 비밀요원의 운명적 사랑, 그로부터 이어지는 충격적 반전이 관객을 빨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2차대전 당시 화려했던 카사블랑카와 적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런던을 대비시키며 철저한 고증과 최첨단 특수효과를 활용해 멋진 영상을 구현했다고 한다. 진중한 드라마와 첨단 기술력을 조화시키는 데 도가 튼 연출자로서 로버트 저메키스의 역량이 한껏 발휘된 작품이길 기대한다.

개인적인 아픔을 딛고 연기 일선에 복귀한 브래드 피트와 할리우드와 유럽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마리옹 코티야르가 주연을 맡았다. 11일 개봉.

[셋] <딥워터 호라이즌>

딥워터 호라이즌 현대중공업이 설계한 석유시추선이 멕시코만에서 폭발한 이유는?

▲ 딥워터 호라이즌 현대중공업이 설계한 석유시추선이 멕시코만에서 폭발한 이유는?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2010년 4월 20일. 세계 최대의 석유업체 BP(British Petroleum)의 석유시추선 딥워터 호라이즌호가 멕시코만에서 폭발했다. 이 폭발로 바닷속으로 연결돼 있던 시추 파이프가 부러져 엄청난 원유가 바다로 새어 나왔다. 7억7860만 리터(L)에 달하는 원유가 해수면으로 떠올라 광대한 기름 막을 이뤘고 햇빛과 산소가 차단돼 이 지역 해양생태계 전체가 질식할 위험에 처했다.

재앙에 가까운 상황은 BP가 극적으로 시추공을 막아 더 원유 유출을 차단하고 뜻밖에 발견된 심해 박테리아가 바다 위에 뜬 기름을 분해하며 일단락됐다. 이 기간에 무려 4925만 리터(L)의 기름을 바다 위에서 불태웠고 과학자들이 동원돼 온갖 방법으로 기름을 제거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원인이 된 폭발사건 자체만도 충격적이었다. 폭발 당시 불기둥이 70미터(m) 넘게 치솟았다고 보고됐으며 11명의 근무자가 시추선에서 사망했다. 해양생태계 전체의 피해까지 감안하면 단 한 건의 사고가 앗아간 생명이 어마어마할 정도다.

이 충격적 실화를 연출한 감독은 피터 버그다. 대단한 흥행작을 만든 감독이 아닌지라 생소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영화팬들 사이에선 믿고 보는 감독으로 꼽힌다. <프라이데이 나잇 라이트>를 통해 운동장 위에서 몸을 부딪는 선수들의 땀방울 하나 숨소리 하나까지 영화에 고스란히 담아냈고, 2013년 작 <론 서바이버>에선 그 박동을 전투의 현장에 그대로 옮겨 놓은 대단한 연출자다.

영화에 실제 못지않은 현장감을 불어넣는데 남다른 재주를 가진 버그에게 딥워터 호라이즌 호 사건이 맡겨진 건 운명적인 일이다. 피터 버그 감독이 스포츠와 전쟁에 이어 재난영화에서까지 재능을 만개시킬 수 있을지 몹시 기대된다. 결과는 25일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 딥워터 호라이즌 호는 현대중공업이 설계했다.

[넷] <스노든>

스노든 총리실 민간인 사찰과 카카오톡 검열, 테러방지법 통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까지. 한국사회의 현실에 이 영화만큼 울림이 큰 영화가 또 있을까?

▲ 스노든 총리실 민간인 사찰과 카카오톡 검열, 테러방지법 통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까지. 한국사회의 현실에 이 영화만큼 울림이 큰 영화가 또 있을까? ⓒ (주)리틀빅픽쳐스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박근혜 정권 내내 그 존재 가능성이 언급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실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각계 예술인들이 들고일어난 건 물론이고 박영수 특별검사가 나서 블랙리스트의 진위와 작성자, 배후를 파헤치고 나섰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실세들의 이름이 언급되는 가운데 정권 총책임자인 박 대통령도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권이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을 검열하고 불이익을 주는 행태는 그리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 국무총리실 산하 부서에서 민간인을 사찰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고 현 정권에서도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 해킹업체로부터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더욱이 테러방지법이 시행되며 수사기관이 당사자에 통지 없이 상당량의 개인정보를 조회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국가감시 위협은 그리 새로운 공포가 아니다.

이 같은 한국의 현실에 큰 울림을 줄 영화가 25일 개봉한다. 올리버 스톤의 신작 <스노든>으로 NSA(미국 국가안보국)의 무차별적 개인정보수집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이야기를 다뤘다.

스노든은 NSA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근무하던 2013년, NSA가 내·외국인의 전화와 이메일을 무차별적으로 감시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영국 <가디언> 기자 글렌 그린월드에 폭로했다. 이후 NSA가 일반 시민뿐 아니라 최소 35개국 국가지도자들의 통화까지 도청한 사실이 드러나며 사태가 더욱 퍼졌다. 스노든은 미국 정부의 처벌을 피해 2013년부터 현재까지 러시아에 망명한 상태다.

스노든의 이야기가 영화로 다뤄진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은 로라 포이트라스의 다큐멘터리 <시티즌포>로 스노든이 직접 출연해 NSA가 시민들을 일상적으로 감시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내용으로 꾸려졌다. <시티즌포>는 한 편의 영화이기에 앞서 그린 월드의 기사와 마찬가지로 스노든의 폭로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올리버 스톤의 <스노든>은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와 그 이면에 자리 잡은 것들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첫 영화가 되겠다. 그린 월드와 포이트라스는 물론 스노든이 관계 맺던 지인들도 극 중 인물로 다수 등장한다. 인간성을 말살하는 왜곡된 권력의 폭압을 영화의 주제로 자주 다뤄온 올리버 스톤의 역량이 이 영화에서 만개할지 자못 기대된다.

[다섯]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 황선홍 홍명보 최용수 최진철 유상철 다들 감독하는데 밀라 요보비치는 현역이네. 박수 짝짝짝.

▲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 황선홍 홍명보 최용수 최진철 유상철 다들 감독하는데 밀라 요보비치는 현역이네. 박수 짝짝짝. ⓒ UPI 코리아


다섯 편의 기대작 가운데 한국영화를 한 편쯤은 꼽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한참 고민했지만 끝내 이 영화를 버릴 수 없었다. 폴 W. S. 앤더슨의 끝내주는 시리즈물로 비디오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 가운데서는 독보적인 히트작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이 바로 그 영화다.

시리즈 첫 편이 황선홍 홍명보가 뛰던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개봉했으니 <레지던트 이블>이 얼마나 오래된 시리즈인지 짐작할 만하다. 2000년대 들어 4번의 월드컵이 치러지는 동안 이 시리즈는 무려 6편이 나왔다. 그 사이 주인공 밀라 요보비치는 감독 폴 앤더슨과 결혼에 골인했고 딸까지 얻었다. 젊고 매력적인 여전사는 불혹의 애 엄마가 되어 다시 지상으로 나와 좀비들을 끝장내기 위한 혈투를 벌인다.

조지 로메로의 좀비 영화에 B급 SF 물의 감성을 덧입히며 출발해 <레지던트 이블>의 세계관 안에서만큼은 안젤리나 졸리 부럽지 않은 여전사를 빚어냈던 시리즈. 때로 좀 멀리 나아간 듯했고 자주 재탕에서 삼탕까지 우려내 맛이 잘 안 나는 듯도 했지만, 어느덧 관객과 함께 나이가 든 흔치 않은 시리즈가 됐다.

설 연휴 동안 지난 시리즈를 돌려보고 이 영화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도 괜찮은 감상법이 될 수 있겠다. 25일 개봉.

아, 참. 한국 여심을 저격하기 위해 이준기가 특별출연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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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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