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연기대상>의 송중기 송혜교

KBS <연기대상>의 송중기 송혜교 ⓒ KBS


12월 31일은 참 이름다웠던 '병신년'의 마지막 날이다. 그 토요일, 변함없이 광장에는 10번째 촛불 집회가 열렸고, 전국에서 110만 명의 국민들이 참석해 집회 누적 참가 1천만 명을 넘겼다. 그렇게 한 해의 마지막 날 광장에선 촛불이 타올랐는데 우리가 가장 접하기 쉬운 매체 TV는 어땠을까. 촛불과 함께 좀 달라졌을까?

아쉽게도, 연일 '블랙리스트'를 지시한 이와 그 조력자들이 드러나는 이즈음, TV 시청자들은 그저 연말 시상식에 참석한 연예인들의 개념 발언 한 마디에 통쾌해 할 수밖에 없었다. "암흑이 없다면 별이 빛날 수 없고, 어둠과 빛은 한 몸"(한석규) 과 같은 추상적 발언들 말이다.

관록의 실종

몇몇 수상자와 시상자의 개념 발언을 제외하고는 각종 시상식과 가요제전은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하나 찾자면 지상파 3사가 제야의 종소리 중계에서 약속이나 한듯 현장음을 소거해버렸다는 사실이다. MBC와 KBS는 자체 스튜디오에서 팡파르를 울렸고, SBS는 원경으로 종로 보신각을 스쳐 지나듯 담았을 뿐이다. 보신각으로 행진하겠다는 집회 주최 측 발표에 두려웠던 걸까. 아니면 타종 행사에 함께 담긴 촛불 집회 행렬이 방송국 집안 잔치에 누가 될까 걱정해서였을까.

애초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 위안부 할머니들이 함께 하는 타종 행사가 못마땅했을 수도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격동적이었던 2016년이었건만 여전히 연말 시상식 무대는 그런 세상의 흐름과는 별개인 연회장 같았다. SBS 시상식 말미 <그것이 알고 싶다> 출신의 박정훈 사장의 "변화하는 환경에 걸 맞는 방송을 만들겠다"는 출사표가 다소 생소하게 들리는 이유다. 정말 내년을 기약해야 할까.

특히 KBS는 31일 <연기대상> 시상식에 앞서 고두심과 최수종을 등장시켜 올해가 시상 30주년임을 자축했다. 최수종이 열연한 여러 대하드라마 소개와 함께 한류 붐을 일으킨 <겨울연가> 관련 영상이 이어지며 그 30년의 관록을 무색하게 했다. 공영방송사라는 권위를 내새워 다수의 조연 연기자와 중견 연기자들을 시상식에 초대는 했지만 대부분을 들러리로 전락시켰다. 오죽했으면 김영철씨가 그분들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을까.

입으로는 30주년을 칭송했지만, 정작 시상식은 올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태양의 후예>와 <구르미 그린 달빛>에 대한 집중도만 드러났다. 대상을 받은 송혜교, 송중기 커플은 방송 중간 몇 번의 인터뷰를 통해 상에 대해 무안할 만큼 질문을 받았다. 카메라는 그런 이들의 동정을 놓치지 않았다. 그나마 면피라면 단막극에 대한 시상 정도랄까.

여전한 제 논에 물주기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한석규가 발언하고 있다.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한석규가 발언하고 있다. ⓒ SBS


그나마 KBS는 시상 과정에서 구색은 갖추었지만, SBS는 더욱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장르별로 나눈 게 민망할 정도로 체면치레 같은 시상이 많았다. 또 매번 행사 이후 구설수에 오르곤 했던 이휘재를 진행자로 세워 스스로 권위를 깎아내렸다. 하긴 대상을 투표에 따른 인기상으로 전락시킨 MBC보단 낫다고 할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시청률에 목을 매는 방송국 사정답게 결국 시상식은 학교에서 성적 좋은 아이에게 주는 우등상처럼 시청률 그래프에 따른 지 오래다. 대상을 받을 때 관록의 배우들이 박수를 받으며 시상대에 오르던 그 권위를 찾는 게 무색해졌다. 대상의 주인공은 점점 젊은 연기자들 몫이 되었고, 상을 받은 당사자들도 무안해 하는 상황이 매년 연출되곤 한다.

그나마 한석규가 <낭만 닥터 김사부>로 대상을 받았지만 23.7%(닐슨코리아 기준)의 시청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결과다. 한석규는 수상 소감을 통해 "가치가 죽고 아름다움이 천박해 지지 않기를,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환기했지만, 그 소통과 공감은 '시청률'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인정받을 수 없는 세상이 요즘이다.

거리의 촛불에 아랑곳없이 여전히 시청률 지상주의와 제 논에 물주기 식, 그리고 아이돌 음악 위주의 지상파 방송사 행사를 보고 있노라면 '자괴감'이 든다. 무엇이 무서운 걸까. 제야의 종소리 현장의 그 명백한 사실조차도 중계하지 못하는 이들이다. 과연 새해 우리는 달라질 수 있을까. 그 어느 곳보다도 강고한 방송 현장의 씁쓸한 현실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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