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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임여성의 수가 많은 지역부터 순차적으로 적혀있다.
▲ 가임기 여성수 가임여성의 수가 많은 지역부터 순차적으로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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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전국, (우)서울 분포
▲ 행자부에서 발표해 논란이 된 '가임여성 지도' (좌)전국, (우)서울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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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행정자치부는 지역별 임신, 출산, 보육 지원 혜택, 출산율 등의 정보를 실은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행정자치부는 국민들에게 지역별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주고, 각 지자체별 저출산 정책을 국민들이 쉽게 파악하는 동시에 지자체 간 저출산 극복을 위한 경쟁적 노력을 유발하기 위해서 출산지도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모바일앱도 개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 홈페이지는 공개 단 하루 만에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행자부는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하여 더 좋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현재 홈페이지는 수정 작업 중입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수정 공지문을 홈페이지에 게시한다.

여론이 들끓은 가장 주된 이유는 홈페이지에 공개된 '가임기 여성 분포 지도' 때문이다. "가임기 남성 지도"를 요구하는 목소리부터 "출산율과 여성 인구 수와의 상관관계를 밝혀라", "가임 여성이 지역 특산물이냐"라는 목소리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나는 비록 인구학을 개론 수준 정도로 접했지만, 그들의 분노 섞인 질문에 정부를 대신해 대답할 수 있다. "그렇다." 국가에게 여성이란 늘 그런 존재였다.

가임 여성이 '지역 특산물'이 된 역사는 18세기 통계학의 발달과 인구 개념의 탄생에서 기원한다. 미셸 푸코(Micheal Foucault)는 16세기경 발명되어 18세기 비로소 현재와 유사한 틀을 갖추게 된 '통치성'(governmentality)을 논한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 통치성이란 기존의 제왕적 권력 혹은 사법적 권력과는 다른 유형의 권력이다. 그것은 국가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합리적 계산을 토대로 '사회적 법칙'을 생산하는 권력이다.

그에 따르면 18세기, 인구의 개념이 발명된다. 그러나 이 인구는 단순히 '사람 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현상에 들러붙은 사람들"의 수다. 가령 기존에는 노인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유행한다는 보고가 정부로 들어가면 "노인네들 중에서 전염병에 시달린 사람들의 수"를 조사해야 했다면 이젠 "65세부터 70세의 노인들 중 전염병 A에 감염된 사람들의 지역적 분포, 동거인의 여부와 수, 경제적 계급, 학력"을 조사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현상을 바라봄에 있어서 인구는 더욱 작고 파악 가능한 계열로 쪼개진다. 또한 위와 같은 방식으로 통계학은 인구가 그 자체의 변동, 행동 방식, 활동을 통해 특정 '경제적 효과' 역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위와 같은 통치성의 시대에서 그것을 지탱하고, 둘러싼 대표적 담론이 바로 통계학, 인구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통계학, 인구학의 고향은 통치자의 은밀한 집무실이었다. 그것은 항상 국가 기밀사항이었던 셈이다. 고대부터 중상주의 시기까지 인구는 곧 국력이었으나 18세기, 중농주의 시대부터 인구는 국력을 위해 조절, 배치, 순환되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를 최초로 공식 제안한 사람이 그 유명한 맬서스(Malthus, T.R)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의 대표적 주장은 아마 사회과학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숱하게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바로 과거 철저하게 가족의 영역이었던 출생을 '국가 권력'이 '조절'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경제'라는 시대적 합리성으로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섹스'가 비로소 국가 권력의 통치 하에 놓일 토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맬서스 본인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에 피임을 반대하였고 19세기, 20세기에 걸쳐 맬서스주의의 기본적 가정을 믿되 피임을 통한 산아제한을 찬성하는 '신맬서스주의(Neo-Malthusianism)'가 전 세계를 휩쓴다.

우리나라는 위에서 서술한 통치성부터 신맬서스주의까지, 서양에서 300년 이상 집적되어온 과정을 1960년 이후 급격하게 압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1960년이라고 특정 연도를 언급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 인구 센서스의 역사 때문이다. 인구센서스는 현상에 들러붙은 인구를 측정하고 그들을 조절, 배치하는데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1960년도(UN지정 세계 센서스의 해) 미국 국제개발처, 미국대외원조처, IBM사, 수많은 자본가들이 후원하는 미국 인구협회의 원조를 받아 최초의 근대적 인구 센서스를 실시한다.

눈여겨 봐야 할 점은 기존(일제강점기)과 달리 신맬서스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인 미국과 자본가들의 개입으로 변화한 조사 항목이다. 그렇다. 1960년 우리나라 센서스는 최초로 총 출생 자녀 수를 측정하고 바로 다음 1966년 인구 센서스에서는 1년간 출생아 수를 측정한다.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이외에도 경제활동사태, 산업을 최초로 측정하고 최초로 표본집계를 실시한다.

인구센서스의 역사
 인구센서스의 역사
ⓒ 통계청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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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인구>와 <경제>의 결합 토대가 닦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70년도 "가족계획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실시된 산아제한정책이 그토록 강력하게 추진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이처럼 통치성, 신맬서스주의, 센서스, 인구학 등이 이미 그 판을 깔아놓았기 때문이다.

앞서 길게 늘여놓은 내 주장을 요약하면 출산지도 논쟁의 원인이 인구학이며 인구학은 위와 같은 통치성의 발달 과정에서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보다 세밀하게 인구학에서 정의하는 출생률, 출산력 등 정의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정의는 '합리적 계산'에 근거한 것이며 또 이 합리적 계산은 실제 전 세계의 국가 통치 과정에서 없어선 안 될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 논리적 과정 이후 우리는 비로소 이렇게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에게 애초에 여성은 "애 낳는 기계"이자 가임여성은 "지역 특산물"이라고 말이다.

인구학에서 출산력(fertility)을 대표하는 지표는 다양하다. 조출산율(crude birth rate), 일반출산율(general fetility rate),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지표일 것이다. 이 지표들은 순차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그 이유는 조출생률의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허점'을 일반출생률이 보완하고 또 일반출생률의 허점을 합계출생률이 보완하는 형태로 발전/적용해왔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조출생률이란 특정 년도 1년간 발생한 출생아 수를 당해 연도의 연앙인구(7월 1일 기준으로 존재하는 인구 수)로 나누어 1000분율로 나타낸 것으로, 인구 1천 명당 출생아 수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때 문제가 발생하는데 단순히 모든 인구 중 출생아 수를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직접 출산을 하는 여성 외 노인, 아이, 남성을 연앙인구에 포함한 것이다. 연령층이 유난히 높은 지방과 상대적으로 연령층이 훨씬 낮은 도시를 비교할 때를 비롯해 다양한 상황에서 비교, 분석이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일반출산율이 만들어진다. 이는 특정 년도 1년간 발생한 출생아 수를 당해 연도의 15-44세(경우에 따라서는 49세) 여성 연앙인구로 나누어 1000분율로 나타낸 것이다. 즉 가임여성 1천 명당 출생아 수를 의미한다. 이때부터 여성은 연령을 기준으로 출산 가능한 집단, 출산 불가능한 집단으로 유형화, 계열화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논리적' 문제점이 있는데 여성을 가임, 불임 두 유형으로 나누다보니 가임여성 내 연령별로 다양한 출산율을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제 가장 합리적이라고 여겨져 기사, 논문에서 자주 쓰이는 합계출산율이 등장한다. 합계출산율의 정의는 '출산 가능한 여성 나이인 15세부터 44세(경우에 따라서 49세)까지를 기준으로 한 여성이 평생 살면서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한다. 계산 방법으로는 일반적으로 연령별 출생률의 합계로 구하는데 15세부터 44세까지 각 연령의 여성이 지난 해 낳은 여성의 수를 각 연령별 전체 여성의 수로 나누어 모두 더한 뒤 이를 1000분율로 표현한 수라고 할 수 있다. 즉 일반출산율과 달리 가임여성을 연령대별로 다시 잘게 쪼갠 뒤 이를 합친 출산력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나는 각 출산력 지표가 '보완'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이 때 보완의 의미는 '더욱 순수하게 임신할 수 있는 여성'을 찾는 과정이다. 아니, 더욱 순수하게 임신할 수 있는 여성의 신체를 찾는 과정이다. 지표, 측정치는 필연적으로 정치성을 내포한다. 지표의 구성 과정에서는 말 할것도 없거니와 그것의 사용은 일종의 훈육의 효과를 가진다. 일종의 수행성(performativity)이다.

지표의 사용은 그것을 표준으로 만들며 지표의 정의(definition)는 '정의(justice)'가 되어린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언어의 문제'와 비슷하다. 여군, 여 조종사 등 여성들에게는 '여'가 붙고 항상 정상성을 가진 남성들에게는 굳이 '남'이 붙지 않듯이 '출산력' 혹은 '출산율'의 정의와 그것의 범세계적 사용은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추월하고 또 혹자는 역차별을 논하는 이 시대에 여성의 신체와 국가의 관계를 다시 한번 고찰하게 한다.

출산지도 논쟁은 국가, 학문, 그리고 국가학이라고 불리고 현대적 삶의 논리 구조가 된 인구학이 얼마나 남성적이며 여성혐오적인지를 보여주는 예다.
 출산지도 논쟁은 국가, 학문, 그리고 국가학이라고 불리고 현대적 삶의 논리 구조가 된 인구학이 얼마나 남성적이며 여성혐오적인지를 보여주는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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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우리나라에서 여성은 워딩 그대로 "(남자)애 낳는 기계"였다. 조선시대 성교육은 대개 결혼식 하루 혹은 이틀 전날 부모가 담당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곧 결혼할 자신의 딸에게 "용한 무당이 알려준 남자 아이 잉태하는 날짜에 관계를 맺을 것", "머리를 동나쪽을 하고 관계를 맺어서 남자 아이를 가질 것", "시간대는 또 어떠한 시간대에 할 것" 등 구체적인 지시를 했다고 한다. 출산은 가문이 통치하는 수단이자 가문을 유지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이 비윤리적이고 반인류적인 이야기가 조금 다른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마치 통치성의 시대로 넘어와 경제가 가족의 영역에서 국가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처럼 섹스 역시 국가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 때 사용되고 (심지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홍보되는 인구학적 측정치, 즉 출산율은 여성의 몸이 국가, 경제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넌지시 지시하고 있다.

인구학적 측정치가 대중에 의해 의문시되는 시대다. 계산적 합리성과 과학적 정확성을 논하는 자들은 "가임여성이 아이를 낳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므로 이 개념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을 개발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과거 한 학회에서 존경하는 여성학자 한 분이 대신 했었던 것 같다.

"여기 계시는, 주로 숫자를 만지시는 여러분은 아무렇지 않게 변수를 넣을때 계급 넣고, 학력 넣고, 젠더 변수 넣으시죠. 그러나 전 장담합니다. 여러분들 대부분은 그 젠더 변수를 넣는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있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 남/녀로 분할되어 함수식에 들어간 이들의 치열한 삶과 그 의미를."

출산지도 논쟁은 국가, 학문, 그리고 국가학이라고 불리고 현대적 삶의 논리 구조가 된 인구학이 얼마나 남성적이며 여성혐오적인지를 보여주는 예다. 그리고 이것을 거부한 대중들. 그들은 이제서야 국가의 자궁에서, 지역의 특산물에서 벗어나 인간이 되고자 한다. 이렇게 의문을 품자.

"그대들의 이성은 지금, 여기 있는 나에게 정말 그렇게 중요한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중복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출산지도, #인구학, #가임기, #여성학,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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