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병신년 한 해 참 많은 일이 있었다. 한국 영화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봄날 비온 뒤 새순이 솟아오르듯 일일이 따라가기 어려울만큼 많은 이슈가 터지고 이내 수그러들었다. 그 가운데 몇은 오래 지속됐으나 대부분은 사람들 곁을 스쳐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스쳐지나갔다 해서 의미가 없는 일은 아니다. 때로는 의미 있는 목소리가, 가치 있는 사건들이 더욱 빨리 사라지기도 한다. 수첩만 좋아하고 남과 나누지 않는 사람의 말로가 어떠한지 너무나 잘 알기에 올 한 해 한국영화계에서 일어난 특별히 기억할 만한 사건들을 여기 적어 나누려 한다.

모두 세 편으로 나눠 쓰는 기획으로 상편에선 지난 12달 극장가 풍경을 살펴봤고, 중편에선 한국사회에 긍정적 파문을 남길 수 있었을 좋은 영화를 돌아봤으며, 이번 하편에선 지난 한 해 한국영화계에서 발생한 의미 있는 일을 되새겨 나누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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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7월 20일 개봉한 <부산행>은 2016년도 유일의 1000만영화로 누적관객수 1156만명을 기록했다. 한국극장 역대 흥행 9위.

▲ 부산행 7월 20일 개봉한 <부산행>은 2016년도 유일의 1000만영화로 누적관객수 1156만명을 기록했다. 한국극장 역대 흥행 9위. ⓒ NEW


1. 4년 연속 관객수 2억명 돌파

영화는 관객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아무리 예쁜 꽃도 누가 봐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듯, 아무리 좋은 영화도 관객이 들지 않으면 말짱 헛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6년 병신년 한국 영화계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올 한 해 극장을 찾은 관객수는 2억1300만여명으로 지난 2013년 이후 4년 연속 관객수 2억명을 넘어섰다. 다만 지난해보단 약 400만명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돼 2010년 이후 매년 전년보다 많은 관객을 유치한 기록은 이어가지 못하게 됐다.

그렇다 해도 관객수 2억1300만여명은 대단한 성과다. 한국인 1명이 1년에 4편 넘게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뜻으로 전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독보적인 수치다. 서울만 놓고 보면 1년 6편에 육박하고 가장 적게 보는 광역자치단체인 경상남도도 3편이 넘어 한국인의 문화수준이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역대최다, 개봉편수 1500편 돌파

한해 극장에 걸리는 개봉영화 수도 전년도보다 300편 이상 늘어난 1535편을 기록했다. 한국영화와 외국영화 모두 큰 폭으로 늘어 한국 관객들이 만날 수 있는 영화의 외연이 크게 늘어났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하지만 이 수치를 곧이 곧대로 믿어서는 곤란하다. 한국사회 전반이 그렇듯 한국 영화계의 양극화도 매년 심화되고 있으며 1000만에 육박하는 대작의 반대편에는 수천 관객을 모으기도 힘에 부치는 작은 영화가 수두룩하다. 이는 세계 영화계에서 인정받는 일류 감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대만 출신의 명장 허우 샤오시엔의 <자객 섭은낭>이 서기와 장첸, 츠마부키 사토시 등 한국에서도 유명한 배우를 여럿 내세우고도 1만5000여명의 관객을 모은 데서 잘 드러난다.

중국 영화계의 기수로 꼽히는 지아장커의 <산하고인>엔 1413명의 관객이 들었고 그보다 못한 영화도 부지기수다.

할리우드 유명 스타가 즐비하고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부문을 수상한 영화라고 흥행하는 것도 아니다. <스포트라이트>, <스티브 잡스>, <헤이트풀8> 같은 작품이 상영기간 내내 상영관 확보에 고전하며 사라져간 것이 대표적이다.

 영화 <스포트라이트> 포스터

영화 <스포트라이트>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3. 문 닫는 작은 영화관 속출

2015년 기준 CJ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3사가 시장점유율 92%를 장악한 현실은 작은 영화의 숨통을 더욱 옥죄고 있다. 한국 관객의 상당수가 특정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멀티플렉스에 가서 영화를 고르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 같은 관람행태에서 작은 영화들이 살아남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작은 영화는 평일 오후 7시 이후, 주말 낮 이후 시간대를 배정받기가 쉽지 않고 이로 인해 경쟁에서 더욱 도태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작은 영화에 숨통을 틔워줄 독립영화관이 속속 폐관해 아쉬움을 사고 있다. 지난 5월 스폰지하우스 광화문이 영업을 중단했고 이달 31일엔 인디플러스가 폐관한다. 둘 모두 영화진흥위원회의 정책변경으로 폐관을 맞았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적지 않다.

 12월 31일 문을 닫는 영진위 직영 독립영화관 인디플러스

12월 31일 문을 닫는 영진위 직영 독립영화관 인디플러스 ⓒ 인디플러스


영진위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에 따라 지난 2002년부터 매년 20곳 내외의 예술영화전용관을 선정해 지원해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기존 사업을 폐지하고 연간 최대 48편의 한국 예술영화를 선정, 마케팅 및 배급비용을 지원하기로 결정하며 재정상황이 열악한 영화관들이 속속 문을 닫기 시작했다.

문화예술의 근간을 이루는 다양성을 뒷받침하는 이들 작은 영화관의 폐관은 한국 영화산업 전체의 기초체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관객 역시 사회적, 개인적 의미가 큰 작품을 만나기 어렵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영화산업의 다양성과 공공성을 증진해야 할 영진위가 이 같은 상황에 눈을 감고 심지어는 적극 조장하고 있는 데 대해 영화계 안팎의 사람들이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23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영화단체의 영진위 김세훈 위원장, 박환문 사무국장 고발 기자회견에서 영진위의 영화발전기금 유용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한국영화감독조합 대표 봉준호 감독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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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낙하산에 비위까지, 표류하는 영진위

지난 몇년 간 무얼 위한 기관이냐는 비판과 조롱에 시달려온 영진위는 최근 김세훈 위원장과 박환문 사무국장이 검찰에 고발당하며 체면을 구겼다. 고발주체는 8개 영화관련 단체로 제작가, 감독협회 등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단체가 두루 참여했다. 이는 박 사무국장이 성희롱과 부적절한 자금집행 혐의로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에서 중징계요구 처분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뤄진 조치로 사실상 영화계 전반이 영진위 지도부에 대한 불신임을 표하고 나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김 위원장과 박 사무국장은 영화계와 무관한 경력으로 임명당시부터 논란이 됐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이 재직했던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출신인 김 위원장은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 학과 교수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싱크탱크 역할을 한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을 지냈다. 박 사무국장 역시 박 후보 대선캠프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추진위원 출신이다.

그간 영진위는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 편법운영,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 삭감, 특정 영화인과 제작·배급사를 지원사업에서 배제하는 등 한국영화 발전에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사왔다. 최근 터져나온 영화인들의 반발은 오랫동안 억눌린 분노가 곪아 터져나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5. 외압에 시름하는 문화예술계

한국 최대의 영화축제로 불려온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 만큼 초라한 적이 있었던가 싶다. 영화제 측이 세월호 침몰참사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강행하자 부산시와 영진위의 지독하고도 저열한 외압이 시작됐다. 이용관 전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해임되고 검찰에까지 기소되자 상당수 영화인과 관객들이 영화제를 보이콧하는 등 반발했다. 매년 성장하던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엔 전년보다 30% 가까운 관람객이 줄어들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랄까. 박근혜 정권 내내 그 존재가능성이 언급됐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실재한다는 사실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의록과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폭로 등을 통해 확인됐다. 정부가 영화·연극·음악·미술·문학 등 광범위한 분야를 망라하는 리스트를 작성하고 리스트에 오른 대상에 대해 직접적인 피해를 준 것으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을 위배한 행위다.

앞서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퇴진을 압박한 혐의로 기소된 상황에서 문화예술계에 대한 현 정권의 외압이 어느정도로 광범위하게 이뤄졌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영화계 전반에 무의식적 자기검열이 일반화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정책이나 사회적 이슈를 비판하는 영화조차 그 수위가 턱없이 낮은 경우가 많아 문화예술계가 야성을 잃은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부가 관계된 사안을 비판한 영화가 그로 인해 상영관 배정을 못받아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문화예술계를 넘어 관객 사이에서도 퍼져나가고 있다.

 배우 김의성이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해 'Independent Film Festival Busan'이라고 적은 종이를 들어보이며 영화제의 독립성을 요구하고 있다.

배우 김의성이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해 'Independent Film Festival Busan'이라고 적은 종이를 들어보이며 영화제의 독립성을 요구하고 있다. ⓒ 부산국제영화제


6. 올해도 외면받는 대종상, 권위 있는 영화인의 축제 절실

칸,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 아카데미 시상식 같은 권위 있는 영화축제가 왜 한국에 없을까? 전통으로 치면 대종상이나 청룡영화상도 이들 못지 않고 규모로 따지면 아시아 최대인 부산국제영화제가 있지만 이들에 그만한 권위가 있느냐 물으면 좀처럼 답하기 어렵다. 더욱이 대종상이 2년째 파행을 겪고 부산국제영화제가 외압에 휘청대는 것을 보니 권위 있는 영화축제의 존재가 더욱 갈급하게 느껴진다.

올해 대종상엔 전년에 이어 주목받는 영화인이 대거 불참했다. 박찬욱의 <아가씨>, 이준익의 <동주>, 연상호의 <부산행>, 윤가은의 <우리들>같이 여타 시상식에서 주목받은 작품도 모두 빠졌다. 이들 모두가 참석했다 해도 수상작과 수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이 불투명하고 일부 영화계 인사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는 점은 마찬가지였을 테다. 없던 권위가 생길리 만무하다.

수상작과 수상자를 선정하는 과정과 원칙을 관리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상 중에 최고라는 노벨상이 보여주지 않았던가.

영화를 많이 보기로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한국인들이 그에 걸맞은 영화축제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제53회 대종상영화제' 배우들 대거 불참 배우 이병헌을 제외한 각 부문 후보들이 대거 불참한채 27일 오후 서울 군자동 세종대 컨벤션센터에서 <제53회 대종상영화제>가 열렸다.

배우 이병헌을 제외한 각 부문 후보들이 대거 불참한 채 열린 '제53회 대종상 영화제' ⓒ 이정민


7. 할리우드 스튜디오 직접 투자 성과

올 한 해 한국영화계엔 보기 드문 풍경이 펼쳐졌다. 할리우드 자본으로 제작된 한국영화 두 편이 나란히 흥행하며 4년 연속 관객수 2억명 돌파의 한 축을 책임진 것이다. 주인공은 김지운의 <밀정>과 나홍진의 <곡성>으로 각각 워너브라더스와 20세기폭스가 제작을 맡았다. 특히 워너는 한국영화 첫 투자로 <밀정>의 성공을 통해 지속적인 한국영화 투자를 예고한 상태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해외영화 직접투자는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영화사들이 세계 각국에 투자해 영화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이중 폭스가 만든 인도영화 <내 이름은 칸>은 전 세계 4000만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폭스는 <황해>부터 <곡성>까지 한국영화 5편에 투자한 상태다.

이들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한국 투자시장 진입으로 CJ와 롯데, 쇼박스, NEW가 과점해온 영화시장이 변화에 직면하게 됐다. 기존 사업자의 과점이 낳은 부작용은 말해야 입만 아프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신규진입은 제작자 입장에선 더 많은 선택지가 제공되는 것으로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이미 한국에 그들이 투자·제작한 영화를 직접 배급하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 투자까지 더하게 되면 '투자-제작-배급-상영'으로 이뤄지는 4개의 큰 고리 가운데 2개 부문을 수행하게 된다. 기존 사업자 가운데 CJ와 롯데는 자회사를 통해 이 같은 일련의 과정 모두에 개입하는 수직계열화를 이룬 상태다.

8. 멀티플렉스 일감 몰아주기 의혹

수직계열화가 문제인 건 자유경쟁의 시장질서를 어지럽혀 영화산업 전체에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자사 계열사가 투자한 영화에 특혜를 주는 불공정거래가 일반적인 형태로 이를 감독·개선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와 영진위의 활동은 미비하기 짝이 없다. 수직계열화로 경쟁이 적다보니 경쟁력을 갉아먹는 불공정거래도 빈발한다. 수익이 많이 남는 매점사업과 광고 대행계약은 좋은 먹잇감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그대로 소비자들에 전가된다.

특히 올해는 3대 멀티플렉스 가운데 2개 업체의 불공정거래 행위가 드러나 영화팬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수사에서 롯데시네마가 총수일가 관련 기업에 각종 사업을 몰아준 사실이 발각됐고 CJ CGV 역시 이재현 회장의 동생 이재환씨 소유 회사에 스크린광고 대행계약을 몰아주는 형식으로 100억원대 부당지원을 한 의혹으로 검찰수사를 받았다.

9. 유료시사회 변칙개봉에 멍드는 작은 영화들

투자와 상영이 과점된 반면 제작과 배급은 치열한 경쟁의 장에 놓여 있다. 첫 일주일 상영으로 흥행의 성패가 갈리는 한국 극장가에서 배급경쟁은 생사를 건 결전의 장이다. 경쟁이 치열하니 편법으로 관객을 끌기 위한 꼼수도 등장한다. 변칙개봉이 대표적이다.

목요일 개봉이 관례인 한국 극장가에서 하루라도 일찍 개봉해 힘빠진 영화들과 맞서려 수요일 개봉을 선택하는 영화도 적지 않다. 법으로 정해진 규정이 없으니 개봉일 조정은 배급사 마음이다.

올해는 변칙개봉 가운데서도 유료시사가 특별히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올해 유일한 천만영화 <부산행>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는 개봉일 이전 닷새에 걸쳐 유료시사를 통해 87만 관객을 확보하며 한 달 만에 800만 관객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부산행>이 개봉 전 주 주말동안 시사회 명목으로 확보한 스크린은 400개가 넘는데 웬만한 영화가 정식 개봉하고 얻는 스크린 수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나우 유 씨 미 2> 포스터 <나우 유 씨 미 2>는 케이퍼 무비의 교범 같은 영화이다.

<나우 유 씨 미 2>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부산행> 외에도 <나우 유 씨 미 2>,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와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등이 개봉 전주 300개가 넘는 상영관에서 유료 시사회를 열고 흥행을 확정한 상태에서 개봉했다. 사실상 며칠 앞서 개봉한 거나 다름 없는 일이다.

이 같은 현상은 소위 '첫 끗발이 개끗발'이란 한국영화 흥행규칙에 최적화된 전법으로 미국이나 유럽처럼 흥행성적에 따른 장기상영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더욱 효과적이다. 롤아웃 배급방식이 있는 해외에선 작은 개봉관에서 시작해 반응에 따라 상영관을 차차 늘려나가는 경우가 상당하다. <스포트라이트>, <비긴 어게인>, <버드맨>, <링컨>,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롤아웃 배급의 대표사례로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역시 개봉 첫주 9개 상영관에서 시작해 넷째주엔 275개관으로 상영관을 확대한 바 있다.

문제는 변칙 개봉이 이전 주 개봉영화의 상영관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홍보가 덜 된 작은 영화가 직격탄을 맞기 일쑤다. 입소문이 나기도 전에 다음주 개봉작이 머리를 들이밀면 가뜩이나 부족한 상영관을 지켜낼 명분이 없다. 더욱이 특정영화가 300개가 넘는 상영관을 유료시사 명목으로 접수하면 작은 영화는 눈뜨고 종영을 맞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한국영화계의 현실에서 변칙개봉이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10. 그럼에도 등장한 주목할 만한 영화인

앞서 언급한 수많은 악재에도 올 한국영화계엔 주목할 만한 영화인이 여럿 등장했다. 그 가운데 특별히 두 명의 작가를 따로 떼어 언급할 가치가 있을 듯하다. 하나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이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경직화된 한국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유의 비관적인 세계관 가운데 독특한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온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을 통해 자신이 상업영화 감독으로 충분한 가능성이 있음을 입증해보였다. 단조로운 구성과 감성에 호소하는 신파적인 장면이 거듭된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그보다는 남녀노소 모두 즐겁게 볼 수 있는 보편성을 얻었다는 호평이 힘을 얻는다. 변칙개봉과 스크린독점 등 여러 문제가 제기됐으나 <부산행>이 끝내 1000만이 넘는 관객을 모은 데는 이 같은 요소가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우리들 6월 16일 개봉한 <우리들>은 전국 누적관객수 4만6000여명을 기록했다. 다양성영화 랭킹 상위권에 진입해 비교적 안정된 스크린수를 보장받았고 입소문을 타며 점차 관객이 느는 모습을 보였다.

▲ 우리들 6월 16일 개봉한 <우리들>은 전국 누적관객수 4만6000여명을 기록했다. 다양성영화 랭킹 상위권에 진입해 비교적 안정된 스크린수를 보장받았고 입소문을 타며 점차 관객이 느는 모습을 보였다. ⓒ (주)엣나인필름


윤가은 감독도 만만찮은 영화를 내놨다. 첫 장편인 <우리들>은 아이들의 세상을 통해 어른들이 겪는 문제를 그대로 구현했다는 극찬을 받았다. 감상적인 드라마 가운데 쉽게 잊히지 않는 메시지를 던져놓은 윤가은 감독의 섬세함에 감동한 관객이 결코 적지 않다.

한국영화계는 올 한 해 동안 최소한 두 명의 기억할 만한 작가를 얻었다. 이들의 영화로부터 수십 수백의 작가가 다시 태어날 것을 믿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영화진흥위원회 대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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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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