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오디션 프로그램의 재미는 참가자들의 멋진 퍼포먼스와 인상적인 비하인드 스토리에서 나옵니다. 무명의 참가자가 놀라운 노래 실력을 선보일 때 느끼는 전율과,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오디션에 참가하여 결과물을 낸 이들이 전하는 감동 스토리는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습니다.

오디션 우승자가 거치는 과정은, 자신의 귀한 재능을 활용하여 여러 단계의 경쟁을 거친 끝에 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는 점에서 고대 영웅 신화의 현대적 등가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나 테세우스 이야기도, 타고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고, 여러 단계에 걸친 온갖 방해와 고난을 이겨낸 끝에 영웅의 칭호를 받는다는 식으로 전개되니까요.

애니메이션, 음악을 만나다

 영화 <씽>의 한 장면. 시내에 위치한 문(Moon) 극장을 운영하는 버스터 문(매튜 맥커너히)은 꿈을 꾸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낙관적인 인물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식으로 어려움을 회피하다가 결국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영화 <씽>의 한 장면. 시내에 위치한 문(Moon) 극장을 운영하는 버스터 문(매튜 맥커너히)은 꿈을 꾸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낙관적인 인물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식으로 어려움을 회피하다가 결국 큰 위기를 맞게 된다. ⓒ UPI 코리아


이 영화 <씽>은 가상의 동물 도시에서 벌어진 오디션 대소동을 그린 애니메이션입니다. 극장주 버스터 문(매튜 매커너히)은 점점 기울어 가는 자신의 극장을 살리기 위해 오디션을 개최하기로 하지만, 예기치 못한 실수로 우승 상금으로 10만 달러를 걸게 됩니다. 그런 사정 때문에 오디션 참가자가 몰려 대성황을 이룬 거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버스터 문은, 상금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본선 진출자들과 함께 공연 준비에 매진합니다.

<슈퍼배드> 시리즈와 <미니언즈>로 이름을 알린 애니메이션 제작사 일루미네이션은 올해 여름의 히트작 <마이펫의 이중생활>에 이어 또 다시 동물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을 내놓았습니다. 전작에서는 인간과 같이 살아가는 애완동물들의 이야기가 뉴욕을 배경으로 펼쳤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다양한 동물들이 인간처럼 섞여 살아가는 가상의 도시가 배경입니다.

동물 종의 특징을 캐릭터의 개성으로 연결시켜 의인화한 점이 돋보이며, 일루미네이션 작품 답게 시도 때도 없이 개그가 만발하는 작품입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2005)를 영화화했던 감독 가스 제닝스는, 자신의 유머 감각를 자유롭게 펼쳐 보일 제작사를 제대로 만난 것 같습니다.

매튜 매커너히, 리즈 위더스푼, 스칼렛 요한슨, 태런 에저튼 등 유명 배우들이 목소리 출연하고 노래까지 소화한다는 점 역시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여기에 <19곰 테드>의 감독 세스 맥팔레인과 신예 팝가수 토리 켈리가 가세하였습니다.

이 영화에는 총 64곡의 팝 히트곡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고전부터 최신 히트곡까지 골고루 배치되어 있어, 세대를 막론하고 누구나 영화를 보며 한 번쯤은 노래를 흥얼거리고 어깨를 들썩일 수 있습니다. 삽입곡들은 원곡 그대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몇몇 노래들은 솜씨 좋게 편곡되어 캐릭터의 감정을 진솔하게 담아냅니다.

흥겨운 원곡 'Call Me Maybe'를 애쉬(스칼렛 요한슨)가 실연당한 마음을 담아 흐느끼며 부르는 장면, 25명의 아이를 키우는 로지타(리즈 위더스푼)가 'Shake It Off'를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안무와 함께 불러 감동을 주는 장면, 그리고 늘 자신감이 없었던 미나가 'Don't You Worry 'Bout a Thing'로 짜릿한 해방감을 선사하는 장면 등이 대표적입니다.

꿈, 성공, 실패

 영화 <씽>의 한 장면. 예기치 못한 사고로 붕괴된 문(Moon) 극장에서 가설 무대를 꾸미고 본 공연에 돌입한 참가자들은 저마다 해방감을 맛본다. 수줍고 자신감 없던 미나(토리 켈리)는 무대 위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인다.

영화 <씽>의 한 장면. 예기치 못한 사고로 붕괴된 문(Moon) 극장에서 가설 무대를 꾸미고 본 공연에 돌입한 참가자들은 저마다 해방감을 맛본다. 수줍고 자신감 없던 미나(토리 켈리)는 무대 위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인다. ⓒ UPI 코리아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도 이제껏 나온 일루미네이션 작품들 중 가장 괜찮은 편입니다. 로지타, 애쉬, 미나는 모두 자기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서 성장하는 캐릭터들입니다. 가사와 육아의 굴레, 남자 친구에 대한 의존적 태도, 가족들의 지나친 기대 등 그동안 자기들을 억압해 온 것들을 힘겹게 넘어서서 자신만의 재능을 펼쳐 보일 기회를 잡습니다.

아쉬운 점은, 여러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모두 조금씩은 해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 전개가 다소 산만하다는 것입니다. 메인 플롯은 결국 버스터 문이 우여곡절 끝에 극장을 되살린다는 이야기이지만, 오디션 본선 진출자들의 개인적인 사연들도 임팩트 있게 다뤄야 하기 때문에 종종 집중력이 흐트러지곤 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돌아서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들이 모두 비웃고 스스로도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이 영화의 버스터 문 역시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재능 없음을 탓하고 절망에 빠질 필요는 없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성공할 수는 없으니까요. 성공의 척도를 돈과 명예에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전을 이어가고, 좋아하는 일을 위해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크고 작은 깨달음과 실패의 기억들은, 이후에 계속되어야 할 인생의 여정을 밝혀 주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든든한 후원자를 만나 극장 사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되는 버스터 문을 제외하고, <씽>의 오디션 출연자들이 얻은 성공의 열매는 바로 그런 종류의 것입니다. 그들이 가수로 성공할 지 어떨 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주체적으로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된 것만은 확실하니까요.

 영화 <씽>의 포스터. 익숙한 팝 음악이 주는 흥겨움과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개그 장면들이 장점이지만, 다소 산만한 이야기 전개가 아쉽다.

영화 <씽>의 포스터. 익숙한 팝 음악이 주는 흥겨움과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개그 장면들이 장점이지만, 다소 산만한 이야기 전개가 아쉽다. ⓒ UPI 코리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가스 제닝스 매튜 매커너히 리즈 위더스푼 스칼렛 요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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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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