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이 끝났다. 2016년에도 많은 작품이 공연됐으며, 그만큼 많은 관객이 공연장을 찾았다. 많은 스타의 연극·뮤지컬계 진입, 연극·뮤지컬 배우들의 스타화, 팬 사이의 입소문 등 덕분에 올해도 공연 시장은 몸집을 부풀릴 수 있었다. 이는 일반 관객들뿐 아니라 '연뮤덕(연극 뮤지컬 마니아)'의 증가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이 커졌고, 다양한 작품들이 공연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적인 관점의 공연들은 아직 충분하지 못했다.

공연은 2016년에만 올라오는 것이 아니다. 2017년에도, 2018년에도, 그 훗날에도 많은 작품은 올라올 것이고 또 올라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으레 하던 연말 정산처럼, 몇 가지 작품을 '여성주의'라는 키워드로 읽어보는, '연극 뮤지컬 #여성주의 연말 정산'을 해보려 한다. 다음에 올라올 때는 더 좋은 작품이 되어 있기를 바라면서. [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뮤지컬 <씨왓아이워너씨> 지난 9월 27일, 서울 대학로 홍익대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씨왓아이워너씨>의 포스터 및 프로필, 공연 스틸 이미지. <씨왓아이워너씨>(See What I Wanna See)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뜻으로,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사실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인간의 한계 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삼각형으로 구성된 무대는 관객이 어느 자리에 앉아 있느냐에 따라 진실의 어느 한 부분만 인지하게끔 한다. 오는 11월 20일까지. 강필석, 문혜원, 박인배, 백형훈, 유리아, 이준혁, 조진아, 최수형, 최재림.

▲ ㄹ쇼몽 속 릴리 <씨왓아이워너씨>에서 '릴리'의 강간 장면은 극 중에서 분명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간에 대한 묘사가 극 중에서 필요하다는 것과, 그 강간을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 달컴퍼니


2016년,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여겨지던 공연이 돌아왔다. 지난 2015년, 이 공연의 귀환은 많은 관객에게 반가움과 놀라움을 안겨줬다. <씨왓아이워너씨(See What I Wanna See)>(아래 <씨왓>). 이 공연은 "역시 '씨왓'이다"라는 소리를 낳을 만큼 파급력이 대단했다. 2016년 홍익대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2달간 재공연된 이 작품은 그동안 이 작품을 못 본채 앓던 관객들에게도, 초연을 본 관객들에게도 모두 반가운 작품이었다.

이 공연은 다른 공연들과 많이 다르다. 색다르다. 무대는 삼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밴드가 위치한 한쪽 면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면에 관객들이 앉는다. 배우들은 자신의 장면에 등장하지 않더라도 무대와 객석 사이 어디에 의자를 두고 앉는다. 이 공연의 특이점은 단순 연출적 측면에서 그치지 않는다. <라쇼몽>을 재창작한 이 공연은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1막에서는 하나의 살인사건을 둔 세 가지 충돌하는 입장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저 경비일 뿐, 그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야기하는 경비가 함께 나온다. 2막에서는 '영광의 날'을 주제로 하여 신에 대한 회의로 가득 찬 신부가 꾸미는 엄청난 사기극에 대해 보여준다. 그리고 두 막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케사와 모리토'는 같은 멜로디에 유사한 가사지만 각자 다른 관점에서의 노래를 보여준다.

이 공연은 '진실'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씨왓>은 기존에 '진실'이라 여겨지던 것들을 부정한다. 이는 어쩌면 더 명확한 진실로 다가갈 방법일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아예 진실이란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메시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이 공연은, 파격적이며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이 공연의 파격성과 매력이 이 극이 마주해야 할 젠더 문제에 대한 고찰을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젠더적 측면에서의 아쉬움

뮤지컬 <씨왓아이워너씨> 지난 9월 27일, 서울 대학로 홍익대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씨왓아이워너씨>의 포스터 및 프로필, 공연 스틸 이미지. <씨왓아이워너씨>(See What I Wanna See)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뜻으로,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사실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인간의 한계 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삼각형으로 구성된 무대는 관객이 어느 자리에 앉아 있느냐에 따라 진실의 어느 한 부분만 인지하게끔 한다. 오는 11월 20일까지. 강필석, 문혜원, 박인배, 백형훈, 유리아, 이준혁, 조진아, 최수형, 최재림.

▲ 조진아 배우 프로필 이미지 배우들의 연기들 모두가 훌륭했지만, 이 작품 역시 여성보다는 남성의 이야기에 방점이 맞춰져 있었다. 영매와 모니카 이모 역할을 했던 조진아 배우의 분량이나 비중은 다소 아쉬웠다. ⓒ 달컴퍼니


우선 노골적이었던 릴리의 강간 장면이 논란이 됐었다. 1막 강도의 진술에서 등장하는 강도가 릴리를 겁탈하는 장면은, 그 묘사가 꽤 노골적이었다. 물론 강도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고, 이 범죄자 '지미 메이코'가 스스로 가장 매력적이라 생각하는 방법이 '한 여성을 마음대로 겁탈할 수 있다'이기는 하다. 하지만 강간에 대한 묘사가 극 중에서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 묘사 방법과 수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설령 자신을 미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성범죄를 자랑스럽게 떠벌릴 수 있는, 이 도덕적이지 못한 범죄자를 그대로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극의 목적이 있더라도, 그 겁탈 장면 전체가 온전히 '합리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출적인 부분도 페미니즘적으로 재고해볼 만하지만, 여성 캐릭터 자체에 대한 묘사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식으로 여성이 이분법적으로 나뉘는지도 함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1막의 릴리는 남편에 대한 지고지순한 마음을 보이는 여성이거나, 혹은 남편을 배신하고 욕망하는 것에 솔직한 악녀, '창녀'와 같은 여성으로 나뉜다.

그중 주목할 만한 점은 릴리의 진술 속에서 릴리 스스로가 묘사하는 방식이다. 각자의 진술은 가장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때 여성인 릴리에게 이 사건에 대해 자신을 가장 잘 변호해줄 수 있는 진술은 "난 강간을 당했다고요"였다. 다른 인물들은 자신이 '행한' 일을 진술한다면 릴리의 최대 진술은 자신이 '당한' 일이었다. 그녀는 남편인 루이가 자신을 죽이라는 말을 했기에 이를 지고지순한 아내답게 수용하여 받아드렸고, 강간을 당해 '더럽혀진 몸'으로 정절을 잃은 자신을 보는 남편의 경멸스러운 눈빛을 참을 수 없어서 함께 죽고자 했다.

즉, 릴리는 다른 측면에서 봤을 때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여성성'을 극대화하여 내재화한 인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녀의 진술 속에서 그녀는 지고지순한 여성이다. 이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던 방법일 것이다.

악마의 재림에 대한 최소의 변론

뮤지컬 <씨왓아이워너씨> 지난 9월 27일, 서울 대학로 홍익대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씨왓아이워너씨>의 포스터 및 프로필, 공연 스틸 이미지. <씨왓아이워너씨>(See What I Wanna See)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뜻으로,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사실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인간의 한계 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삼각형으로 구성된 무대는 관객이 어느 자리에 앉아 있느냐에 따라 진실의 어느 한 부분만 인지하게끔 한다. 오는 11월 20일까지. 강필석, 문혜원, 박인배, 백형훈, 유리아, 이준혁, 조진아, 최수형, 최재림.

▲ ㄹ쇼몽 <씨왓아이워너씨>의 1막 'ㄹ쇼몽'은 소설 <라쇼몽>을 원작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원작 자체가 젠더적으로 불평등한 작품이기에, 이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여성혐오적 요소를 제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반영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달컴퍼니


남편의 진술 속 릴리는 강도와 함께 도망가려 함과 동시에 강도에게 살인을 청부한다. 물론 살인을 청부했다는 점에서 릴리도 비판받을 소지가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성폭행을 계획하고 결국 살인까지 해내는 인물인 강도를 생각해보라. 강도는 극 중에서 심지어 '섹시한 캐릭터'처럼 그려졌다. 강도 역을 맡았던 최재림은 이에 대해 <맥심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공연을 본 관객들은 '강도가 섹시하다'며 표현하더라.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욕망을 가진다'를 하나의 공통점으로 볼 때, 강도와 릴리는 꽤 동일 선상에 놓인 인물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캐릭터가 동일 선상에 놓여있다 해도, 두 캐릭터가 그려지는 방식이 다르다.

첫 번째로, '남편의 진술'에서 드러나는 릴리의 노래에서 릴리와 루이(남편)의 결혼 생활이 어땠는지 읽을 수 있다. 과연 남편이 죽음으로써 명예를 획득할 만큼 릴리를 사랑했던가.

"비꼬는 그 말투."
"뭐든 네 멋대로 하는 똥고집."
"새벽 세시에 자는 사람 깨워 사과한다 해놓고선 내 탓만 하니."

릴리를 사랑했다던 루이의 말과 다르게, 릴리는 결혼 생활 속에서 충분한 배려를 받지 못한 듯하다. 어쩌면 릴리의 말대로 릴리는 그야말로 남편의 '소유물'이 아니었을까. 그런데도 릴리는 남편을 사랑할 것을 강요받지 않았을까. 그리고 정말 그 상황 속 그녀가 '루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은, 차라리 '다른 남성'에게 자신의 소유권이 이전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점을 차치하고도, 릴리 그녀를 위한 변론은 존재할 수 있다. 릴리의 도덕성이 결벽하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언제 '특별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이유로 30cm짜리 칼을 들고 다니며 스스로 '살인마의 피'가 흐른다고 하는 강도보다, 릴리가 더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것일까. 강도에게 "저 년은 나보다 더 진한 살인마의 피가 흐른 년이야"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릴리는 '악녀'인 것일까. 강도도 릴리는 루이의 아내라는 것을 알지 않았던가. 과거 따윈 잊고 자신과 도망가자고 하던 강도는 릴리의 분노에 찬 노래 듣자 돌변한다. 그리곤 남편에게 묻는다. '저 년을 죽여줄까?'라고 말이다.

이때 범죄자인 강도는 '악녀'인 릴리를 심판하며 '강도지만 최소한의 도덕은 지닌' 자로 둔갑한다. 한편 릴리는 '돈 때문에 루이를 사랑하는 척했던' (사실 이조차 온전한 신빙성은 없지 않은가. 이 또한 '남편의 기억'이니 말이다) 악녀 중의 악녀, 일종의 성 이분법적인 프레임 속의 '창녀'로 낙인찍힌다. 죽여주게 '섹시한' 여성은, 그 욕망을 드러내자 버림받는다. 심지어 자신을 탐했던 강도에게도 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은 '악마의 재림'이라고 불린다. 성범죄자에 살인마인 '강도'조차 '악마의 재림'이라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말이다.

물론 릴리에게는 강도보다 조금 더 추가된 맥락들이 있다. 그녀는 어쨌거나 루이의 사랑과 신뢰를 받던 '아내'였다. 하지만 2막의 남성 캐릭터 '회계사'를 보자. 약간의 반론이 가능하다. 그에게는 아내와 여자 친구가 따로 있다. 그에 대해 스스로 '바람둥이 남편'이라며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는 이에 대한 도덕적인 책임감을 묻지는 않는다. 아내로서 남편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길' 꿈을 꾸는 것 그리고 남편으로서 아내를 사랑하지 않고 다른 여자를 '안는' 꿈을 꾸는 것. 그 둘은 과연 같은 정도로서 비난받았던가?

릴리는 살인을 '욕망'했지만 실제로 이행은 하지 않았다. 그와 달리 강도는 실제로 루이를 결박하고 릴리를 탐한다. 어쨌든 실제 범죄를 저지른 것은 강도이지 릴리가 아니다. 다시 묻는다. 과연 '릴리'가 정말로 '강도'보다 '더 진한 살인마의 피가 흐르는' 존재일까. 강도가 '섹시하고 욕망에 솔직한' 존재라면, 릴리도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릴리는 그렇게 그려지지 못했다.

릴리가 섹시한 맥락과 강도가 섹시한 맥락은 상이하다. 릴리 그녀가 객체화된 채, '섹시한 여성'으로라도 존재할 수 있던 때는 첫째, 강도의 시선에서 온전히 어떤 말도 없이, 제멋대로 객체화될 때였고, 둘째 욕망을 품지 않고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여성일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릴리가 강도에게조차 버림받는 것은 릴리의 도덕성 때문이 아니다. 그녀의 욕망이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남성'에게 위협을 가하는 욕망이기에 배제된 게 아닐까.

다시 한 번 덧붙이자면, 릴리에 대한 변론이 릴리를 미화하거나 극 중 릴리의 모습이 도덕적으로 타당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릴리의 모습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것들과 그 요구되는 것들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얼마나 여성이 가차 없이 버림받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남성은 '모범생 사장님'에서부터 '강도'까지, 젠더 권력에서 우위를 차지했기에 여성을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릴리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성 캐릭터의 도움이 필요했다. 남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다른 남성의 품에 안겨야 했다. 그조차도 그 다른 남성이 거절한다면 그녀는 다시 제 욕망을 드러내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한다. 이젠 그 어느 남성에게도, 더 나아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소속되지 못한 채로 말이다.

진실은?

뮤지컬 <씨왓아이워너씨> 지난 9월 27일, 서울 대학로 홍익대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씨왓아이워너씨>의 포스터 및 프로필, 공연 스틸 이미지. <씨왓아이워너씨>(See What I Wanna See)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뜻으로,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사실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인간의 한계 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삼각형으로 구성된 무대는 관객이 어느 자리에 앉아 있느냐에 따라 진실의 어느 한 부분만 인지하게끔 한다. 오는 11월 20일까지. 강필석, 문혜원, 박인배, 백형훈, 유리아, 이준혁, 조진아, 최수형, 최재림.

▲ 배우 유리아 프로필 이미지 'ㄹ쇼몽' 속 릴리 캐릭터는 '섹시'하다. 하지만 그 섹시함은 주체적인 섹시함이 아니라 남성의 시선 안에서만 존재하는 섹시함이었다. ⓒ 달컴퍼니


릴리는 양날의 검이다. 그녀는 한 편으로는 여성 캐릭터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 다른 한 편으로는 그런 릴리를 어쨌든 극 속에서는 지독히 '악녀'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욕망에 솔직한 여성 캐릭터는 어떻게 평가받는지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바람둥이 남성 캐릭터는 매력적으로 그려지며, '여성'을 등쳐먹을 수 있는 캐릭터들은 릴리가 받은 부정적인 평가만큼 지독히 악한 캐릭터로 그려지지 않았다. 서사적으로 릴리가 살인을 '욕망'했다지만, 익히 많은 서사 속에서 남성 캐릭터들은 실제로 타인을 죽이는 '행동'을 했다. 그들은 매력적이거나 동정의 아이콘으로 함께 그려지기도 했다.

젠더적인 관점에서 재고가 많이 필요로 한 1막은 1915년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됐기 때문에 지금보다도 훨씬 낮은 여성 인권을 재현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지금이 여성 인권이 온전히 바로 선 시대던가. 물론 1915년보다야 나을 수 있겠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많은 여성 혐오는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들은 책, 공연, 영화 등을 통해 재현되거나 재생산된다.

<씨왓>은 '진실'에 대해 노래하며 막을 내린다. 극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 명확한 답이 부재한 채, 무수히 많은 목소리가 있는 상황이기에 더 명확한 진실이 찾아지는 것 아닐까. 인간은 끊임없이 '진실'을 찾고자 하고, 그 어쩌면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 인류의 역사는 진행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릴리는 양날의 검이다. 그녀는 남편의 시각 속에서도 '남편이 보고 싶은 대로 보여진다(See What I Wanna See).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을 여지를 남기면서 말이다.

어느 한 지점에서 그녀는 여성 캐릭터의 확대를 이뤄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 지점에서는, 여성 혐오를 여전히 반영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는 극 중 그녀가 다뤄지던 '맥락'에서 발생하는 문제였다. 극 중에서 그녀에 대한 담론은 '지고지순한 아내'일까, 아니면 '악마'일까에 머물렀다. 그녀는 '여성성'을 그대로 답습한 '여성 혐오'를 보여주는 캐릭터일까, '욕망을 드러냄'으로서 남성 중심적인 사회의 '악마'가 된 캐릭터일까. 아니면 그녀는 '주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질 수도 있었을까.

하지만 세 번째 답안으로 나아가기엔, '악마의 재림'이라는 그녀에 대한 평가가 너무도 강렬했다. 다음 공연에서, 릴리는 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까.

뮤지컬 <씨왓아이워너씨> 지난 9월 27일, 서울 대학로 홍익대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씨왓아이워너씨>의 포스터 및 프로필, 공연 스틸 이미지. <씨왓아이워너씨>(See What I Wanna See)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뜻으로,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사실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인간의 한계 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삼각형으로 구성된 무대는 관객이 어느 자리에 앉아 있느냐에 따라 진실의 어느 한 부분만 인지하게끔 한다. 오는 11월 20일까지. 강필석, 문혜원, 박인배, 백형훈, 유리아, 이준혁, 조진아, 최수형, 최재림.

▲ 뮤지컬 <씨왓아이워너씨> 포스터 지난 9월 27일, 서울 대학로 홍익대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씨왓아이워너씨>의 포스터. <씨왓아이워너씨>(See What I Wanna See)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뜻으로,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사실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인간의 한계 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삼각형으로 구성된 무대는 관객이 어느 자리에 앉아 있느냐에 따라 진실의 어느 한 부분만 인지하게끔 한다. ⓒ 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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