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가 공개한 <오버워치> 코믹스 <성찰> 중의 한 장면. <오버워치> 속 캐릭터 중 한 명인 트레이서는 레즈비언이라는 설정이 밝혀졌다.

블리자드가 공개한 <오버워치> 코믹스 <성찰> 중의 한 장면. <오버워치> 속 캐릭터 중 한 명인 트레이서는 레즈비언이라는 설정이 밝혀졌다. ⓒ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게임은 결국 만든 사람들의 손을 떠나 게이머들에 따라 흥행이 결정되지만, 잘 만든 게임은 최소한 그 방향을 성공에 가까워지게끔 이끄는 재주가 있다. 이러한 게임들은 대개 장르적/기술적 요소 이상의 무언가, 즉 세계와 인간에 대한 고민을 품고 있다. 게임회사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아래 블리자드)는 지난 21일, 인기 1인칭 슈팅게임 <오버워치>의 누리집에 <성찰>이라는 코믹스를 공개했다.

이 공식만화에서 <오버워치>의 캐릭터 트레이서는 연인 에밀리에게 스카프를 선물로 주고 키스를 나눈 뒤 함께 윈스턴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한다. 트레이서와 에밀리는 여성이다. 즉 트레이서는 성 소수자이다. 블리자드는 해외 게임 매체 <코타쿠>(Heather Alexandra, Our Thoughts On Overwatch's Tracer Being Gay, <Kotaku>, 12월 20일)를 통해, "사람들의 성격, 정체성, 배경은 다양하기에 실생활처럼 가상 세계도 풍부하고 깊이 있게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오버워치>가 사람들을 환영하고 포용적으로 느껴지기를 원했습니다"라고 밝혔다. 과거, 트레이서의 게임 내 승리 포즈가 지나치게 '섹스 어필'에 치중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블리자드는 이런 지적을 수용하여 트레이서의 자세를 수정한 바 있다.

게임에 소수자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것의 의미

 트레이서

<오버워치>의 트레이서는, 블리자드가 공식적으로 밝힌 첫 성 소수자 영웅이 됐다. ⓒ 블리자드 코리아


<코타쿠>의 패널들과 팬들은 블리자드의 시도를 의미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동시에 논의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현실의 다양한 정체성들을 게임에 반영할 때, 일부 팬들이 '놀랐다, 게이(혹은 이외의 다른 소수자 정체성)라니!' 정도로 해석하고 말 수도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게임을 만드는 업체의 입장에서 게이머들의 해석을 통제할 수 있을까 없을까. 이러한 설정이 마케팅적 요소를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을까. 어떻게 하면 게임을 즐기는 소수자들의 삶을 자연스레 반영할 수 있을까. 기타 등등 보완점들에 대한 의견도 오갔다.

게임에서 또 다른 '내'가 되어 동료들과 한 판 놀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과 인간에 대한 시야까지 공유할 수 있다니! 좋은 게임 기획자와 게이머란 어쩌면 '좋은 게임이란 무엇인지 성찰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성찰>이 모든 나라에 공개된 것은 아니다. 동성애를 향한 반감이 심한 러시아, 중국, 중동 등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바꿔 생각해보면 한국에 <성찰>이 공개된 건 젠더나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한국이 '최소한의 포용성'은 보여주리라는 신뢰 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실제 국내 반응은 어땠을까. "벌레 캐릭터 아니랄까 봐 설정도 벌레 같은 것 좀 봐라" 같은 혐오 반응을 시작으로, "최고다 트레이서! 개인과 개인의 사랑이 뭐가 그렇게들 아니꼽죠?"라는 옹호 반응, "어차피 0과 1로 이루어진 가상세계. 게임을 하는데 밸런스 지장 없음" 같은 무미건조한 반응까지. 팬들의 견해는 각양각색이다.

소수자에 대한 인정이 일상적으로 자리 잡기에, 아직 우리나라는 과도기인 것 같다. 소수자란 단순히 수적으로 적은 사람 혹은 사람들을 일컫는 개념이 아니다. 특정 사회의 지배 질서에 종속된 모든 사람을 말한다. 가령 백인 중심 사회에서는 유색인종이 소수자, 남성 중심 사회에서는 여성이 소수자,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는 장애인이 소수자이다. 또,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인간 중심 사회에서는 동물이 소수자일 수도 있다.

한 사회 또는 사람에게는 다양한 차원의 소수자성이 존재할 수 있다. 성적 지향도 그 일부다. 소수자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많은 사람이 지배질서에 속해 있는 상황에서 별다른 의식과 불편 없이 행동하고 말하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큰 시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인간성을 얼마나 상상해낼 수 있고 또 인정할 수 있는지에 따라 한 사회의 인권 수준은 가늠된다.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하여

 아나

전장으로 복귀한 과거의 전쟁 영웅 아나. 그 역시 여러가지 소수자 정체성을 지닌 캐릭터이다. 그리고 그러한 속성들이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게임에서 표현되었다. ⓒ 블라지드 코리아


타인의 인간성을 상상할 줄 아는 사회, 또 그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 당신은 그런 유토피아를 꿈꿔본 적 있는가. <오버워치>는 그러한 세계를 가상에서나마 '어느 정도' 구현한다. 트레이서 외에도 오버워치에는 다양한 소수자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짧은 글에서 다 소개할 수는 없기에, 몇 명만 예를 들어보자. 최근 경쟁전에서 각광받고 있는 '아나'라는 캐릭터가 있다.

그는 여성, 노인, 유색인종이며 한쪽 눈이 실명된 장애인이다. 젊었을 적 오버워치 부사령관이자 유능한 저격수였던 그가 전장에 복귀했다. 최근 유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아나는 '팀에 가장 필요한 영웅' 2위에 뽑혔다(관련 기사: 심해 탈출을 위한 '키플레이어', 이 영웅을 익혀라!). 또한, 루시우라는 발랄한 캐릭터도 있다. 그는 유색인종이자 빈민가 출신이며 재개발과 노동 착취에 반대하는 뮤지션 '운동권'이다.

 유저들도 <오버워치>의 영웅 23명 중 더 많은 소수자들을 찾아내보자. (블리자드 이미지 재가공)

유저들도 <오버워치>의 영웅 23명 중 더 많은 소수자들을 찾아내보자. (블리자드 이미지 재가공) ⓒ 블리자드 코리아/하지율


솔저, 라인하르트, 토르비욘 같은 노병들은 백인 남성이긴 하지만 종종 '틀딱(틀니 딱딱)'과 같은 혐오 표현으로 조롱당한다는 측면에서 노인 혐오의 희생자일 수 있다. 악당 해커로 흑화하기는 했지만 솜브라는 여성이자, 전쟁고아 출신이다. 또한, 네팔에서 도 닦는 인공지능 로봇 젠야타나 영화 <혹성탈출>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한 유전자 조작 탄생 고릴라 과학자 윈스턴 등도 있다.

이처럼 <오버워치>에는 인종, 국적, 계층, 세대, 성별, 종교, 종, 기술, 직업 등 다양한 차원의 개성을 캐릭터에게 부여하려는 기획자의 고민을 담고 있다. 세계 각국을 배경으로 한 아기자기한 맵과 다양한 문화권의 특성을 반영하는 캐릭터 스킨, 대사들까지 더해져 무한한 조합의 경우의 수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게임의 다양성은 극대화된다. 탄탄한 게임성 위에 '덕질'과 2차 창작 욕구를 부르는 세계관, 애니메이션과 코믹스까지. 흥행을 피해 갈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오버워치>는 '다양성만을 위한 다양성'을 추구하는 오류에 빠지자는 것은 아니다. 캐릭터들의 개성을 중구난방 두지 않고 '팀 경기'의 규칙과 공동 임무로 수렴시킨다. 그래서 게이머들은 하나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 하나가 되는 황홀함을 경험한다. 다양성과 보편성. 두 조건을 성공적으로 조화시키는 공동체야말로 승리하는 공동체라는 교훈을 <오버워치>는 전한다.

 오버워치의 캐릭터 D.Va(디바 A.K.A 송하나)

오버워치의 캐릭터 D.Va(디바 A.K.A 송하나) ⓒ 블리자드 코리아


게임이란 게 정확히 어떤 개념인지는 게임 연구자들조차 의견통일을 못 보고 있지만, 적어도 '규칙'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데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까 우리는 게임을 통해 서로의 다양한 인간성을 이해하는 상상력과 공동체성을 기를 수 있다. "전쟁은 게임이 아니야"라는 솔저의 말에 디바는 "솔저 아저씨! 우리의 인생이 게임이 아니라는 거, 확신해요?"라고 반문한다.

현실의 모든 다툼이 사라지고 게임 속에만 존재하는 형태로 바뀌는 세상, 가상 세계의 정의가 현실에서도 실현되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올까. 적어도 가까워질 수 있도록 작은 실천들을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뭐가 있을까. 경쟁전에서 팀원들과 조합을 맞추는 연습, 보이스 채팅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희롱하지 않기, 지고 있다고 일희일비하며 서로 헐뜯지 않기, 앞으로 블리자드가 또 공개할 성 소수자 영웅들 환영하기 등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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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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