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연말이 다가왔고, 크리스마스 시즌이 왔다. 올해가 좀 남다른 이유는 벌써 2개월 넘도록 수많은 국민들이 주말을 반납한 채 일상을 보내고 있기 때문. 100만, 200만이 광화문 등 전국 각지의 중심부에서 촛불을 들며 박근혜 즉각 퇴진을 외칠 때 현장에서 함께 힘을 보탰던 영화인들 사이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 분들이 극장에서 다 영화를 보실 관객 분들이기도 한데….'

그래도 한해를 정리하는 연말이고,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는 크리스마스 시즌 아닌가. <오마이스타>는 근 3년간 이 기간에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영화들의 특징을 살펴봤다. 할리우드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멜로와 코미디는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엔 사회고발성 영화나 가족 영화가 자리했다. 2012년만 해도 <반창꼬>(크리스마스 시즌 박스오피스 3위) 같은 한국형 멜로나 <가문의 영광5>(같은 기간 박스오피스 4위) 등 조폭 코미디가 반짝했는데 그 이후 이런 장르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2013년] 그리움의 정서와 판타지 사이에서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구치소에서 진우를 면담하고 있는 송우석 변호사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 위더스필름


2013년 연말을 달군 영화는 다름 아닌 <변호인>이었다. 누적관객 1100만을 넘기며 당당히 흥행작 반열에 오른 이 작품은 널리 알려졌듯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권변호사 시절을 다룬 전기 영화다. 2013년 12월 18일 개봉해 시즌인 23일부터 28일 내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이 기간만 해도 약 2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원에 의해 탄핵안 가결의 대상이 됐다가 국민들이 촛불을 들며 지켰던 인물.

그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담긴 결과일까. <변호인>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개봉한 1월 16일까지 줄곧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다른 작품에 넘겨주지 않았다.

당시 크리스마스 시즌 2위는 공유가 전면에 나선 액션 스릴러 영화 <용의자>가 차지했다. 24일 야심차게 개봉했으나 <변호인>에 밀려 차주까지 내내 2위에 올라있었다. 그 다음은 할리우드에서 넘어온 로맨틱 드라마 <어바웃 타임> 차지. 12월 5일 개봉한 <어바웃 타임>도 꾸준히 입소문을 타며 대부분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눌러앉아 있었다.

북미에선 판타지 블록버스터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가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 뒤를 코미디 영화 <앵커맨2>, <겨울왕국>이 이었다. 우리나라 사정과는 사뭇 다른 극장 풍경이었다.

[2014년] 가족애 회복에 대한 열망

 노부부의 사랑을 그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한 장면

노부부의 사랑을 그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한 장면 ⓒ 아거스 필름


2014년은 파란의 연말이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독립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극장가를 휩쓸었기 때문. 11월 27일 190개의 스크린 수로 개봉한 이 영화는 시간을 거듭하며 관객들의 입소문을 탔고, 조금씩 극장 수가 늘더니 2014 크리스마스 시즌엔 500여개로 약 3배 가까이 상영관이 확대됐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 관객들이 모처럼 눈물을 훔치며 가족애의 소중함과 사랑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 때였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2014년 12월 23일부터 28일까지 약 130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유지했다. 이 영화는 국내 다큐멘터리 사상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작품으로도 남게 된다.

사실 수치상으론 황정민 등이 전면에 나선 시대극 <국제시장>이 앞선다. 12월 17일 개봉해 크리스마스 시즌을 노린 이 작품은 한국전쟁 직후 폐허 속에서도 사람의 정을 잃지 않은 캐릭터를 그리며 관객을 감동시켰다. 이 역시 가족애가 담긴 드라마로 볼 수 있는데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기성세대의 마음을 건드렸다는 점이 주효하게 작용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만 독재정권 미화와 일방적 애국심 강조 등으로 작품성 면에선 여러 비판을 받기도 했다. 같은 기간 <국제시장>은 약 240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이후 총 누적관객 1400만명을 넘으며 한국영화 흥행 사상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2014년 할리우드는 어땠을까. 국내에선 크게 재미를 못본 <호빗: 다섯 군대 전투>가 1위였다. 그 뒤를 판타지 영화 <숲속으로>와 안젤리나 졸리 연출에 빛나는 전쟁영화 <언브로큰>이 이었다.

[2015년] 본격적인 사회고발 그리고 도전정신이 화두   

 영화 <내부자들> 속 이강희 <조국일보> 주필(백윤식 분)

영화 <내부자들> 속 이강희 <조국일보> 주필(백윤식 분)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지난해는 어땠을까. 정치인, 재벌, 언론인의 유착을 날카롭게 그린 <내부자들>의 해였다. 엄밀히 말하면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노린 기획 영화가 아니었다. 2015년 11월 19일 개봉했는데 한 달 넘게 관객들의 지지를 받은 것이다. 물론 여기엔 국내투자배급의 기형적 구조, 즉 상영관 독식 등의 이슈가 있긴 했으나 예매율과 좌석점유율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는 걸 미뤄보면 영화적 힘이 그만큼 탄탄했다고 볼 수 도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내부자들>은 이미 600만 관객을 넘긴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23일부터 28일까지 60만 관객을 더했다. 박스오피스에서도 크리스마스 당일을 제외하고 4위 자리를 지키며 힘을 과시했다. 그만큼 국내 관객들이 우리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영화에서나마 통쾌함을 맛보고 싶어 했다고 풀이할 수 있겠다.

이때 1위는 다름 아닌 산악인 엄홍길 대장의 이야기를 극화한 <히말라야> 차지였다. <국제시장>을 제작한 JK필름의 기획영화로 역시 황정민, 정우 등이 전면에 나섰다. 등정 중 조난당한 동료의 시산을 수습하기 위해 먼 여정을 떠난다는 내용은 많은 관객을 울렸다. 이후 이 영화는 누적관객 수 770만 명을 기록하며 흥행작 반열에 오른다.

북미에선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1위를 이어가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무래도 시리즈의 원조인 이상 고정 팬이 많은 까닭이다. 물론 이 작품은 한국에서도 같은 시간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다만 이후 개봉한 신작 영화에 밀려 관객 수가 급감해 국내에선 총 누적관객 수 327만 명에 그쳤다. <스타워즈> 시리즈 뒤를 코미디 영화 <대디스 홈>과 애니메이션 <앨빈과 슈퍼밴드4>가 이었다. 역시 국내와 달리 변하지 않는 미국 크리스마스 영화 흥행 공식을 재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16년] 더 강력해진 사회 비판과 현실 고발

 '반핵' 메시지를 품은 영화 <판도라>의 스틸 이미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이 작품은 지난 7일 개봉 이후 꾸준하게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반핵' 메시지를 품은 영화 <판도라>의 스틸 이미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이 작품은 지난 7일 개봉 이후 꾸준하게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 NEW



그렇다면 올해는 어떨까. 아직 흥행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고발 대 고발, 비판 대 비판의 대결이다. 영화 <판도라>와 <마스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소의 민낯을 그대로 담으며 재난상황을 묘사한 <판도라>는 지난 12월 7일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었다. 23일 현재까지 누적관객 수는 350만 명.

이 자리를 영화 <마스터>가 지난 21일 개봉하면서 깼다.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을 모티브로 삼은 <마스터>는 경제범죄자들과 이를 쫓는 경찰 간 두뇌싸움을 그린 케이퍼 무비다. 오락성과 함께 자연스럽게 경제사범, 이들과 결탁한 권력자들의 더러움을 비판한다. 개봉 후 이틀만에 76만 명을 동원하며 <내부자들>을 잇는 새로운 흥행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틈을 음악영화이자 멜로 감성이 가득 담긴 <라라랜드>가 채우고 있다. 미국 LA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영상과 특유의 재즈음악이 관객의 마음 문을 두드리는 중이다. 지난 7일 <판도라>와 함께 개봉한 <라라랜드>는 줄곧 2위 자리를 지켜오다 현재는 3위로 밀려나 있다. 23일 현재 누적관객 수는 약 156만 명이다.

판도라 마스터 변호인 라라랜드 내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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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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