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영화단체의 영진위 김세훈 위원장, 박환문 사무국장 고발 기자회견에서 영진위의 영화발전기금 유용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한국영화감독조합 대표 봉준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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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왔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등 박근혜 정부로부터 탄압받은 대표적인 문화예술인들인 영화인들의 반격이 본격화 되고 있다. 최근 영화인들은 특검과 부산지검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블랙리스트 작성 관련자들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고 영화진흥위원회(아래 영진위) 김세훈 위원장과 박환문 사무국장을 고발했다.

먼저, 한국독립영화협회를 비롯한 영화단체연대회의 8개 영화단체는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영화진흥위원회 김세훈 위원장, 사무국장 박환문 검찰 고발 및 영화진흥위원회 적폐해소를 위한 영화인 기자회견'을 열고, 이후 부산지검에 김세훈 위원장과 박환문 사무국장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한국영화감독조합 대표이자 <옥자>의 촬영을 마친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 등이 참석했다.

앞서, 지난 12일 문화예술인들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블랙리스트 작성 주동자들에 대한 고발장을 특검에 제출한 가운데, 7개 영화단체(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 고영재, 한국영화감독조합 대표 봉준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대표 안병호, 사단법인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 안영진 사단법인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대표 이은 사단법인 여성영화인모임 대표 채윤희,  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 대표 김형구)도 고발인으로 참여한 바 있다.

이들은 박근혜 정권이 자행한 광범위한 영화인 탄압에 적극 대처하는 동시에 김 위원장과 박 사무국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그리고 공범들에게 농단을 당한 문화체육관광부(아래 문체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것도 모자라 불공정한 밀실행정을 자행하고 업무추진비 등 형법상 횡령 혐의를 저지르고, 영화계 전반에 막대한 피해와 피로감을 입힌 것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기로 한 것이다.   

왜 영화인들은 영진위 위원장과 사무국장을 검찰에 고발하나

 23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영진위 김세훈 위원장과 박환문 사무국장 고발 방침을 밝히고 있는 영화단체 관계자들

23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영진위 김세훈 위원장과 박환문 사무국장 고발 방침을 밝히고 있는 영화단체 관계자들 ⓒ 성하훈


"한국의 영화발전을 위해 힘써야 할 영화진흥위원회의 수장 김세훈 위원장과 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의 관장 업무를 총괄 처리하며 소속 직원을 지휘·감독해야하는 박환문 사무국장은 누구보다 청렴을 중요시해야할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업무추진비를 무분별하게 남용, 심각한 도덕적 해이 및 법령을 위반해 오고 있습니다.

2016년 국정감사에서 영화진흥위원회의 무분별한 업무추진비 사용 등 관련 법령 위반사실이 구체적으로 확인되었고 문화체육관광부는 2016. 12. 7 영화진흥위원회 박환문 사무국장에 대해 '성희롱 발언, 부적정한 예산집행, 복무 위반 등' 규정 위반에 대한 중징계 처분을 요구하였으며 김세훈 위원장의 부적절한 업무추진비 중 일부를 반환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이에 우리 영화인들은 문체부의 문책요구를 넘어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계는 불공정한 밀실행정으로 일관하고 있는 영진위의 시대 역행적 행태와 김세훈 위원장, 박환문 사무국장의 책임회피로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영화인들은 이번 고발을 시작으로, 영화진흥위원회가 진정 한국영화발전을 위한 기관으로 거듭날 때까지 압박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더불어 문화체육관광부의 문책요구에 대해 현재까지 회의를 열지 않은 9인위원회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영화단체들의 고발장 중 핵심 내용이다. 실제로, 지난 9월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은 "영진위는 모럴헤저드"라며, 심의와 의결 없이 랜더팜 사업에 100억의 예산을 증액한 과정과 무분별한 업무추진비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한 바 있다. 또 이들 영화 단체는 김세훈 위원장 하에서 벌어진 영진위 전반의 전횡과 비위 사실에 대해 조목조목 언급하기도 했다.

"<천안함프로젝트>, <다이빙벨>과 같은 영화들을 상영한 영화관을 지원 배제시키기 위해 ①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 편법운영 ② '민간독립영화전용관(인디스페이스, 오오극장, 아리랑시네센터) 지원 배제와 같은 직접적 탄압을 진행해 왔고, 또한 부산국제영화제의 다이빙벨 상영강행과 관련하여 ③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 대폭축소 결정을 내렸으며, 영화진흥위원회의 각종 제작지원, 홍보마케팅지원사업 등에서 특정 영화인들 및 제작사, 배급사의 작품을 배제시키기 위해 ④ 심사위원명단의 공개 거부 ⑤ 심사과정 회의록의 축소 작성을 진행했으며, 이 모든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있는 ⑥ 9인위원회 회의록의 축소작성이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영화발전 중장기계획안 및 년도별 사업계획안을 영화단체들과 주기적으로 점검하기로 한 약속을 뒤집고 ⑦ 독단과 불통으로 한국영화발전 중장기계획안 및 년도별 사업계획안을 입안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⑧ 140여억원의 렌터팜 사업을 무리하게 강행하다가 사업 자체가 좌초된 바 있습니다. 또한 ⑨ 등급분류면제추천조항을 악용하여 각종 영화제 및 상영회의 실행을 어렵게 했으며, ⑩ 보조금을 빌미로 영화단체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각종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조직보다 개인의 안위가 먼저라면, 김세훈 위원장은 지금 당장 물러나라"

 영화단체들이 23일 영진위 김세훈 위원장과 박환문 사무국장을 업무상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영화단체들이 23일 영진위 김세훈 위원장과 박환문 사무국장을 업무상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 성하훈


문제의 심각성은 내부 고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진위 노조 역시 23일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영화 진흥정책을 망친 김세훈 위원장을 규탄한다"는 성명을 내고, 김세훈 위원장과 박환문 사무국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세훈 위원장과 박환문 사무국장 취임 이후, 영진위는 영화를 진흥하는 본연의 역할 대신 박근혜 정부의 뜻에 따라 영화계를 드러나지 않게 탄압하는 역할을 안팎으로 강요받았다. 더 나아가 많은 영진위 노동자가 자기검열에 빠져 그 역할을 자처하면서, 그 무력감과 자괴감으로 기관 전체가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이 사태의 중심인 두 사람은 이 순간까지도 모든 책임을 철저히 부인하고 있다."

특히 박환문 사무국장의 비위 행위는 심각했다. 앞서 문체부는 지난 12월 7일 영진위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를 통보했다. 문체부는 사무국장의 성희롱 발언, 부적정한 예산집행, 복무 위반 등에 대해 중징계 요구 처분을 내렸고, 위원장과 사무국장에게 부적정하게 집행된 업무추진비, 월세 지급금액 등 3천4백여만 원을 환수, 시정 조치하라는 처분을 지시했다. 이와 관련 박 사무국장의 대응은 영진위 노동자들의 공분을 샀다.

"문체부 감사결과가 통보된 이후 박환문 사무국장은 사내 공지사항 게시판을 통해 성희롱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등 가해자의 전형적인 태도로 궤변에 가까운 무책임한 변명만 늘어놓았으며, 마치 자신이 누군가가 만든 프레임의 억울한 희생자가 된 것 마냥 포장하기에 급급했다. 심지어 공공연히 제보자를 색출하겠다는 발언까지 했다는 그의 행태는 이미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되어 조롱거리로 전락했고, 그간 사무국장의 행태를 직접 목격해 온 우리 영진위 노동자들은 그의 안하무인격인 태도에 자괴감과 수치심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문체부의 꼭두각시부터 정권과 연관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램더팜 사업비 100억 증액, 그리고 치졸하기 짝이 없는 개인 비위까지. 취임 초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의 낙하산 인사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던 김세훈 위원장은 특히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서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까지 출석한 김종덕 전 장관과 차은택의 커넥션으로 인해 박근혜 정권 '부역자'로 의심을 받고 있다.

<다이빙벨>을 상영하는 독립영화관에 예산을 배제하고, 논란의 중심에선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을 축소하는 과정 역시 석연치 않다는 점은 이미 영화계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김영한 비망록'과 함께 청와대가 영화계에 직접 탄압을 지시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영진위 역시 이러한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세훈 위원장은 보신으로 일관하고 있다. 영화게 안팎에서 질타가 쏟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진위 노조의 아래와 같은 글에서 이러한 사태를 바라보는 참담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과 함께 사회 전반에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특검과 검찰 고발이란 강수를 둔 영화인들, 그리고 영진위 노조의 분노가 영화계와 영진위의 현실을 개선하는 결과를 낳을지 좀 더 오래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이 사태의 총 책임을 져야하는 김세훈 위원장은 사무국장에 대한 문화부의 중징계 처분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언제는 자신이 데려온 사람이라며 끝까지 책임진다고 하더니, 지금 상황이 바뀌었으니 나 몰라라 하면 자신의 책임이 아닌 게 되는가. 김세훈 위원장에게 조직보다 개인의 안위가 먼저라면, 지금 당장 기관장에서 물러나야 한다.

또한 그간 영진위 안팎에서 벌어진 수많은 상식 밖의 행태들에 대하여 우리 영진위 노동자들도 이제 진실을 직시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영화계 탄압을 위한 각종 부당한 요구에 대해 대다수 직원들이 숨죽이고 동조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 사이 영진위에 대한 영화인들과 국민들의 신뢰는 회복조차 어려울 정도로 바닥에 떨어졌고, 한국영화를 진흥하는 공공기관으로서의 위상은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영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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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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