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후예> 포스터. 사전 제작 드라마 중 가장 성공했다는 평을 듣는다.

<태양의 후예> 포스터. 사전 제작 드라마 중 가장 성공했다는 평을 듣는다. ⓒ KBS2


'사전 제작.'

2016년 '드라마'의 가장 뜨거운 화두를 꼽으라면 단연코 '사전 제작'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기획부터 촬영에 이르는 전 과정을 미리 완료하는 사전 제작 방식은 드라마계 종사자들에게 '꿈'과도 같은 일이었다. 촬영 현장에서 민망한 '쪽대본'이 난무하고, 방영 직전에야 완성본을 전달할 정도로 '생방송'을 방불케 하는 촉박한 일정. 배우들은 이야기의 전개는 고사하고 자신의 캐릭터를 이해할 시간마저 보장받지 못했다. 시간에 쫓긴 편집은 당연히 엉성하고 빈틈이 많았다. 이것이 한국 드라마의 민낯이자 고질병이었고 병폐였다.

열악한 환경과 그에 대한 순응은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덧칠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드라마의 '질'을 갉아먹었고, 더 나아가 한국 드라마의 수준을 격하시키는 '짓'이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최초의 100% 사전 제작 드라마인 MBC <내 인생의 스페셜>(2006)을 비롯해서 SBS <비천무>(2008), MBC <로드넘버원>(2010), SBS <파라다이스 목장>(2011) 등이 차례로 시청자의 안방을 찾았지만, 10% 안팎의 시청률에 그치며 실패의 고배를 마셨다.

이대로 '사전 제작'의 이상(理想)은 저물어 버리는가. 드라마 현장에 대한 거듭된 비판과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자성(自省)은 실패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다시 '사전 제작'에 대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궁극적으로는 그 방향이 옳은 길이었고, 유일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2016년 최고의 화제작인 KBS <태양의 후예>가 탄생하게 됐고, 그 뒤를 이어 우후죽순 사전 제작 드라마들이 쏟아졌다. <태양의 후예>가 쏘아 올린 '대박'은 마치 '사전 제작'이 성공으로 가는 보증수표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안타깝게도 실상은 정반대였다.

실패한 사전 제작 드라마들, 대체 왜?

 '실패'의 쓴맛을 봤던 2016년 사전 제작 드라마들

'실패'의 쓴맛을 봤던 2016년 사전 제작 드라마들 ⓒ KBS2/SBS/tvN


▲ 사전 제작 드라마들의 최고 시청률
KBS2 <태양의 후예>: 38.8%
KBS2 <함부로 애틋하게>: 12.9%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11.3%
tvN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 3.903%
tvN <안투라지>: 2.264% (첫회)

KBS2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이경희 작가가 극본을 맡고, 수지·김우빈의 출연으로 엄청난 관심을 받았던 <함부로 애틋하게>는 '진부함'과 촌스러움'에 파묻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 감각적인 연출로 유명한 김규태 PD가 진두지휘하고, 사극의 황제 이준기와 이지은(아이유)이 뭉친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는 연기력 논란에 휩쓸리며 KBS2 <구르미 그린 달빛>에 시종일관 끌려다니다 KO패를 당하고 말았다. 사전 제작 드라마의 수난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던 tvN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도 초반에는 연기력 논란, 중반 이후에는 엉성한 스토리로 휘청하다 조용히 퇴장해야만 했다. 재벌이라는 뻔한 공식과 '신데렐라'의 전형을 답습했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tvN <시그널>의 조진웅의 드라마 복귀작이었던 tvN <안투라지>의 성적표는 더욱 처참하다. 14회 시청률은 고작 0.705%에 불과한데, 이대로라면 '최악의 리메이크'라는 수식어와 함께 '첫 회가 최고 시청률'이라는 불명예까지 짊어지게 됐다.

고민의 지점이 생긴다. 이런 질문이 당장 떠오른다. 어째서 다른 사전 제작 드라마들은 <태양의 후예>의 후예가 되지 못했는가. 여러 대답이 떠오른다. 여러 기사를 통해 당신이 읽었던 그 대답들이다. 그런데 사실 이 물음은 '적절한' 질문은 아니다. '본질적인' 접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질문의 포인트를 바꿔보자. (1) 과연 <태양의 후예>의 성공은 '사전 제작' 때문인가?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2) 앞서 언급했던 사전 제작 드라마들은 '사전 제작'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 드라마였던가?

<태양의 후예>의 이응복 PD는 "<태양의 후예>는 사전 제작이 아니었다면 방송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우리에게는 사전 제작이 필수였고 선택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그리스 촬영에만 한 달이 걸렸던 사정과 태백에 대규모 오픈 세트를 제작하는 등 여건들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태양의 후예>는 사전 제작이 '필요'했던 드라마였을 뿐, 성공 요인을 '사전 제작' 덕분이라 보긴 어렵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태양의 후예>는 사전 제작을 했기 때문에 성공했던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재미'가 있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데까지 나아간다.

'사전 제작=성공'이라는 신화는 <태양의 후예>가 만들어 낸 착시에 불과하다. 이응복 PD와 김은숙 작가는 <태양의 후예>에 이어 tvN <도깨비>에서도 의기투합했는데, <도깨비>는 반(半)사전 제작임(100% 사전 제작이 아님)에도 '시청률'과 '호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시청률 고공행진 중인 SBS <낭만닥터 김사부>는 어떠한가. 사전에 제작했든 '생방송' 급으로 제작하든 결국 '재미'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전 제작 드라마 실패의 책임을 '사전 제작'이라는 환경에 돌리지 말자. 그냥 '재미'가 없었을 뿐이니까.

'사전 제작' 환경 탓하기 전에 살펴야 할 것들

이런 의문이 제기될 법하다. 어찌 됐든 '성공률'이 떨어지는 사전 제작을 굳이 고수할 이유가 있을까? 대답을 두 번째 질문으로 받아보자. 과연 지금의 사전 제작 드라마들은 '사전 제작'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가? 최소한 <태양의 후예>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준 드라마가 있었던가? <함부로 애틋하게>와 <달의 연인>은 압도적인 영상미를 제외하면 사전 제작의 의미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안투라지>는 배우들을 활용하지 못하는 시나리오와 산만한 연출로 사전 제작의 취지를 퇴색시켰다.

'완성도'라고 하는 '사전 제작'의 이점이 전혀 드러나지 않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본말전도(本末顚倒)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기형적인 드라마 제작 환경을 개선하고, 자연스레 양질의 드라마를 추구한다는 '사전 제작'의 본래 취지가 중국 시장을 겨냥한 경제적 논리에 잠식당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 방영을 위해 중국 내의 '사전 심의'를 거쳐야 하므로 '사전 제작'이라는 시스템을 받아들인 케이스가 많으므로 이제 '사전 제작=완성도'라는 등식은 성립이 어려워졌다.

결과적으로 사전 제작이라 하더라도 중국 시장의 입맛에 맞는 '캐스팅'을 하는 드라마들이 대다수라서 연기력 논란은 끊임없이 답습된다. 또, 제작 환경도 비(非)사전 제작보다 월등히 나아졌다고 보기 힘들다. 사전 제작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좀 더 엄정하고 신중할 필요가 있다. 물론 '<태양의 후예> 말고는 모두 실패했다'는 쉬운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지금의 사전 제작 드라마들이 그 본래 취지에 맞는 작품들인지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역시 100% 사전 제작으로 진행된 KBS2 <화랑>이 '유치하다'는 혹평과 함께 7.2%의 시청률에 그치고 있는 상황은 그 질문이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해준다. 내년 1월 방영을 앞둔 SBS <사임당>은 다를까? 우리는 언제쯤, '사전 제작'이라는 방식에 걸맞은 '작품성'과 '완성도'를 갖춘 드라마를 볼 수 있을까. 오히려 SBS <괜찮아, 사랑이야>나 tvN <찬란하고 쓸쓸하神-도깨비>처럼 반(半)사전 제작이 훨씬 더 유효한 제작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노희경이나 김은숙처럼 역량 있는 작가의 존재는 필수겠지만.

 과연 <화랑>과 <사임당>은 다를까?

과연 <화랑>과 <사임당>은 다를까? ⓒ KBS2/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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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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