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넛과 상어 중에 뭐가 더 사람을 많이 죽일까? 너무 높이 매달린 복지가 전쟁과 질병 같은 직접적 위협보다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이 나라 지도자들이 새겨들었으면 하는 물음이다.

코코넛과 상어 중에 뭐가 더 사람을 많이 죽일까? 너무 높이 매달린 복지가 전쟁과 질병 같은 직접적 위협보다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이 나라 지도자들이 새겨들었으면 하는 물음이다. ⓒ 영화사 진진


"코코넛과 상어 중에 뭐가 사람을 많이 죽일까?"

너무 작은 집에 살아 몹시 산만해졌다는 꼬마 딜런(딜런 맥키어넌 분)에게 평생을 목수로 산 다니엘(데이브 존스 분)이 묻는다. 상어와 코코넛이라니,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 질문이 바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관객에게 던지는 화두다.

수십 수백 번 바닥에 공을 튀기며 목소리 한 번 들려주지 않던 꼬마 녀석이 어느 날 문득 "코코넛이에요"하고 답하기까지의 가슴 벅찬 변화는 어떻게 일어났을까. 어떻게 코코넛이 상어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걸까. 이 두 가지 물음은 영화가 끝난 뒤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남겨진다. 켄 로치는 이 질문을 통해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자신이 진단한 이 시대의 문제를 내보이고 해법을 제시한다.

백발의 청춘 켄 로치는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몇 안 되는 감독이다. 그는 폭압적 지배체제로부터 인간의 존엄을 지켜내야 한다는 당위적 명제를 여러 작품을 통해 거듭 강조해왔다. 혁명적인 영화 <랜드 앤 프리덤>으로 파시즘과 대항한 혁명세력의 분열과 실패, 희망을 이야기했고 <빵과 장미>에서 존엄을 지켜내려 분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연대를 그렸으며 <자유로운 세계>로 신자유주의 체제의 비인간성을 고발한 켄 로치의 시선은 언제나 세상과 인간을 향했다.

그런 그의 관심이 신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이르러 영국 복지제도의 허실에 머무른 건 당연한 귀결이다. 갈수록 심화하는 경쟁과 무너지는 사회안전망, 그로 인한 도시 빈민의 증가는 지난 십수 년 간 영국사회가 걸어온 길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켄 로치는 즉각 이 모든 부조리의 중심으로 돌입한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았다... 그런데 가난하다

 문을 열고 나오길 기다리지 말고, 먼저 문을 두들겨라. 내 생각이 아니다. 켄 로치의 웅변이다.

문을 열고 나오길 기다리지 말고, 먼저 문을 두들겨라. 내 생각이 아니다. 켄 로치의 웅변이다. ⓒ 영화사 진진


다니엘은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목수다. 인터넷이니 스마트폰이니 새로운 문물은 잘 모르지만, 나무와 작업 도구만 있으면 뚝딱뚝딱 못 만드는 게 없다. 하지만 정신질환으로 오랫동안 투병하다 죽은 아내를 간호하며 그간 모아둔 돈을 모두 쓴 그의 삶은, 심장병 진단과 함께 나락까지 추락한다.

주치의는 다니엘에게 일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작업 중에 쓰러진 그의 몸에 더 큰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다니엘은 일을 그만두고 복지국을 찾아 질병으로 일하지 못한다며 수당을 신청한다. 하지만 웬걸. 다니엘은 질병 수당 대상자가 아니란다. 설상가상, 구직활동을 증명하지 못해 실업급여까지 끊긴 다니엘은 정부 당국과의 지루한 싸움에 내몰린다.

영화는 관료화돼 사람을 돌아보지 않는 영국 복지체계의 허상을 드러낸다. 외주업체 콜센터 직원이 쇄도하는 상담 전화에 기계적으로 응답하고 정부 공무원들은 양식화된 매뉴얼만 요구한다. 눈앞의 진실엔 누구도 관심이 없고 돈 없는 사람은 지폐 한 장보다 배려받지 못한다. 관청 밖에선 성실한 시민이 역시 성실한 시민이었을 누군가에 '복지나 타내는 게으른 놈'이라는 비난을 쏟아낸다.

다니엘의 옆집에 사는 청년이 거리에서 신발장사로 돈을 버는 광경은 이 모든 문제의 기저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켄 로치다운 은유다. 그는 광저우 공장에서 뉴캐슬로 유명 브랜드 신발을 밀수입해 정식 통관절차를 거친 제품보다 훨씬 싼 가격에 내다 판다. 자본은 바다와 대륙을 가로질러 뉴캐슬 사람이 신을 신발을 광저우 공장에서 가져오는데 그사이 가격은 몇 배로 치솟는다.

그런데 그 많은 차익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왜 뉴캐슬 노동자는 여전히 일자리가 없고 종일 일 해도 방값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가.

가드를 뚫고 들어온 어퍼컷 한 방

 막연한 선의가 아닌 실제적 도움. 비록 그것이 점퍼 한 장일지라도. 우리를 구하는 건 오로지 우리 자신뿐이다. 역시 내 생각이 아니다. 켄 로치의 웅변이다.

막연한 선의가 아닌 실제적 도움. 비록 그것이 점퍼 한 장일지라도. 우리를 구하는 건 오로지 우리 자신뿐이다. 역시 내 생각이 아니다. 켄 로치의 웅변이다. ⓒ 영화사 진진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 분)가 식료품 지원소에서 통조림을 뜯어 먹던 장면은 이 영화가 준비한 강력한 한 방이다. 간신히 지켜온 자존심마저 와르르 무너지는 이 장면은 가드를 뚫고 들어온 펀치처럼 관객의 뇌를 사정없이 진탕 시킨다.

그런 케이티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다니엘이다. 무너져 내리는 그녀에게 "괜찮아. 네 탓이 아니야. 넌 엄마로 잘 버텼어."라고 말하는 다니엘의 모습에서 한국의 오늘을 떠올린다. 강남 세 모녀의 죽음과 서울역 노숙인들의 절망 앞에서 '괜찮다'고,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해줄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켄 로치가 영화 가운데 심어 놓은 희망이 한국사회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화 가운데 다니엘의 동료와 친구는 2번에 걸쳐 다니엘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이야기해요"하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의 선의는 다니엘에게 끝내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

다니엘과 케이티를 구하는 건 막연한 선의가 아닌 실제적 도움이다. 다니엘이 케이티에게, 다시 케이티의 딸이 다니엘에게 그랬던 것처럼 단순한 선의가 연대로 발전해 구체적인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는 게 켄 로치가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통해 내놓은 해답이다. 네가 문을 열고 나오기 전에 내가 너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는 것, 이것이 다니엘과 케이티, 강남 세 모녀와 우리 모두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생각해 본다. 하늘 높이 매달린 코코넛은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성실한 사람들을 추락시켰을까. 대체 얼마나 많은 코코넛을 위해 우리는 나무를 오르고 또 올라야 할까. 그 가운데서 우리는 얼마나 더 비루해질까.

다니엘 블레이크가 그토록 외치고 싶었을 말로 글을 마친다. 돌아보면 나 역시, 다니엘 블레이크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보험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나는 요구합니다. 당신이 나를 존중해 주기를. 나는 한 명의 시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제69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 포스터. 켄 로치는 이 영화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 수상한 9명의 감독 가운데 한 명이 됐다.

제69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 포스터. 켄 로치는 이 영화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 수상한 9명의 감독 가운데 한 명이 됐다. ⓒ 영화사 진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노숙인 자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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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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