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까칠하게 공연을 보고, 이야기 합니다. 때로 신랄하게 '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잘 만든 작품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하지 않을까요?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 작품들이 더 많이 올라오길 바라봅니다. [편집자말]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투쟁이다. 사회적으로 주어진 '여성성'은 여성의 작은 행동, 마음가짐 심지어 욕망까지 통제한다. 여성의 욕망을 통제하는 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자신이 진정으로 무얼 원하는지 잘 모르고 살아가야 '한다.'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거세' 된 채, 제1의 성 남성과 다른 존재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돌아올 것 같지 않던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의 귀환은 반가운 일이다. 2012년 이후로 4년 만에 돌아온 이 뮤지컬은 초연에도 용주와 옥임으로 연기했던 신의정과 최미소가 함께 돌아옴으로써 더욱 화제가 됐다. 그리고 화제 속에 돌아온 <콩칠팔 새삼륙>은 첫 공연이 올라오기 무섭게 관객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여성 중심적인 서사가 가능케 한 일이었다.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오는 8일까지 만날 수 있다.

자신이 거래됨을 자각하는 여성 캐릭터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 공연 사진 지난 2016년 12월 4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개막한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의 공연 사진. 창작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은 4년 만에 돌아온 작품으로, 경성시대를 배경으로 서로 사랑했던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신의정,최미소,유연,최정수,김대현,김바다,정재헌,서요나,이초롱,이정휘 등.

▲ 두 여자의 사랑지난 2016년 12월 4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개막한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의 공연 사진. 창작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은 4년 만에 돌아온 작품으로, 경성시대를 배경으로 서로 사랑했던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신의정,최미소,유연,최정수,김대현,김바다,정재헌,서요나,이초롱,이정휘 등.ⓒ 컴퍼니엠


극 중 옥임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그녀의 혼사가 진행된다. 홍 박사는 류씨에게 딸과의 결혼을 '허락'해주고, 이후 옥임은 류씨에게 청혼받는다. 옥임의 거절 이후 홍 박사는 류씨와 옥임의 혼인 성사를 위해, 두 사람이 결혼한다면 '아메리카'에 보내주겠다는 약속까지 내건다. 이는 옥임이 모르는 채 진행된 것들이었다. <콩칠팔 새삼륙> 옥임의 혼인 이야기를 통해 여성이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어떻게 거래되는지 보여준다. 거래 대상인 여성은 교환자들의 의사에 의해 움직일 뿐, 그녀는 자신이 누구에게 거래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류씨는 옥임을 유혹할 때 '자유'나 '아메리카'를 이야기한다. 류씨는 자신과의 결혼이 옥임에게 자유를 줄 수 있을 거라 이야기한다. 이에 옥임은 "자유는 당신만이 가지는 것이 아니냐"며 반문한다. 옥임의 대사를 통해 <콩칠팔 새삼륙>은 여성 거래의 현실을 냉철하게 꼬집는다. 여성을 거래함으로써 남성은 자유나 권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거래가 여성에게도 자유를 줄 수 있는가.

이후 홍 박사와 화동의 스캔들을 본 이후, 옥임은 자신을 미국으로 보내기로 했던 게 화동과의 관계 때문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자신이 결혼도, 유학도 가지 않을 것이라 밝힌다. 이는 자신이 거래됨을 인지하고 그 거래 되기를 거부하는 여성을 보여준다. 옥임의 대사처럼, 홍 박사에겐 '화동'이라는 새로운 여성이 등장하며 자신의 '권력'과 '자유'를 뒷받침해줄 대상이 생긴 것이다.

성 정체성, 이는 선천적인 것인가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 공연 사진 지난 2016년 12월 4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개막한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의 공연 사진. 창작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은 4년 만에 돌아온 작품으로, 경성시대를 배경으로 서로 사랑했던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신의정,최미소,유연,최정수,김대현,김바다,정재헌,서요나,이초롱,이정휘 등.

▲ 정체성에 관하여그들의 성 정체성이 본래 무엇이었는지, 그 정체성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컴퍼니엠


'퀴어 이론'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호모포비아에 반박하는 전략은 '선천성'을 따지는 것이었다. 이는 퀴어가 '후천성'을 띈다는 전제하에 퀴어에게 수도 없이 가해졌던 폭력들 때문이기도 했다. '퀴어로서 나는 태어났고 그리하여 당신들은 나를 고칠 수 없다'와 같은 부류의 언어는 퀴어를 '교정'하고자 하는 사회에 가장 보편적으로 대응하던 방식이었다.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에서 용주와 옥임은 서로 사랑했다. 옥임은 용주를 마음에 품었으나 자신의 감정이 '우정'일 뿐이라 생각한다. 용주가 옥임에게 고백하려고 할 때도 옥임은 '우린 단짝이잖아' 같은 말로 일관한다. 하지만 서로 만나지 못했던 시간 동안, 각자 마음고생을 하며 옥임은 자신이 용주를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옥임은 용주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이 자연스러운 서사에서 '용주'와 '옥임'에 대한 '성 정체성'은 질문되지 않는다. 어쩌면 두 사람이 자연스레 사랑에 빠졌다는 점에서 혹자는 두 사람이 원래 '동성애자'였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내가 남자였으면 너에게 청혼했을 거야' 같은 대사를 뱉는 옥임이 이성애자였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콩칠팔 새삼륙>에서 애틋하게 그려진 두 여성 인물의 사랑은 둘의 성 정체성에 대해 초점을 두지 않는다. 둘이 선천적으로 '동성애자'였던 '이성애자'였든, 아니면 '양성애자', '다성애자', 혹은 '범성애자'였든지 파헤치지 않는다. 다만 이 공연은 두 사람의 '사랑'만을 그릴 뿐이다.

결국, 퀴어 운동의 지향점은 퀴어가 퀴어로서 존중받는 사회를 넘어서 퀴어가 스스로를 퀴어라고 정의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콩칠팔 새삼륙>은 그 퀴어 운동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퀴어 운동은 필연적으로 페미니즘 운동과 맞닿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퀴어가 반드시 '선천적인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여성성'에 대한 담론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언제나 여성성이나 남성성은 '타고난 것'으로 그려진다. 이는 사회적으로 개개인의 역량이나 특색은 무시한 채 객체화된 존재로서의 인간을 그려냈다. 여성은 오랜 역사에서 '여성'으로서 억압받았고, '여성'이어야 한다고 억압받았다. <콩칠팔 새삼륙>이 제시할 수 있는 '성애'에 대한 질문은 더 나아가 '여성성'에도 질문할 수 있다. 과연 여성은 태어나는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여성간의 연대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 공연 사진 지난 2016년 12월 4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개막한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의 공연 사진. 창작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은 4년 만에 돌아온 작품으로, 경성시대를 배경으로 서로 사랑했던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신의정,최미소,유연,최정수,김대현,김바다,정재헌,서요나,이초롱,이정휘 등.

▲ 여성 그리고 소수자생물학적으로 여성이면서 동시에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닌다는 것.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이는 이중 억압으로 다가온다.ⓒ 컴퍼니엠


<콩칠팔 새삼륙>은 1931년 경성시대 기찻길로 뛰어든 두 여인, 용주와 옥임에 대한 이야기이다. 둘은 서로 사랑하며, 각자가 지닌 상처를 보듬는다. 시로맨스적 관계 맺기도 찾아보기 힘든 근래 여러 여성 서사들 사이에서, 서로 사랑하며 상대방을 보듬는 용주와 옥임은 그 자체만으로 어마어마한 목소리가 된다. 이때 두 사람의 연애 관계는 로맨스이기도 하지만 또 동시에 '여성 간의 연대'로 비칠 수도 있다. 옥임과 용주는 연애를 통한 연대를 이뤄낸 것이다.

더 나아가 두 사람의 연대는 더 나아가 화동에게까지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화동은 용주를 도와 퍼플살롱에서 일거리를 주었으며, 용주가 살아갈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주었다. 용주는 그런 화동을 자신의 생명의 은인처럼 여긴다. 반면 극 중 옥임은 화동을 미워한다. 그녀는 언론과 세간 사람들이 '콩팔칠팔' 떠들어대는 것을 수용하여, 화동이 아버지를 '흔들어 놨다' 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동이 용주를 도왔다는 것을 안 후 옥임의 심정은 변한다. 심지어 용주는 화동에게 옥임을 소개하기에 이른다. 두 사람은 싸우지 않는다. 오히려 옥임은 화동에게 자신이 당신을 오해한 것 같다 이야기하며 미안함을 표한다. 그런 옥임과 용주에게 되려 화동은 '집에 돌아갈 수 있을 때 돌아가라'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조언을 한다. 이는 화동이 꽤 진심으로 옥임과 용주를 생각해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옥임과 용주가 자살한 후 신문에는 옥임의 자살 사유가 화동과 홍 박사의 불륜이라고 밝힌다. 이는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며, 여성에게 권력을 부여해주지 않는 사회가 어떤 식으로 여성들 간의 관계를 폄하하는지 정확히 보여주는 예시이다. 기사에서 여성 간의 연대는 지워지고 사회가 여성들에게 가하는 압박은 감춰졌다. 하지만 관객들은 옥임이 화동에게 건넨 말을 알지 않는가. 또한, 옥임과 용주의 자살 사유가 무엇인지 알지 않는가.

무엇이 진정 여성에게 '둥지'를 찾아줄 수 있나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 공연 사진 지난 2016년 12월 4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개막한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의 공연 사진. 창작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은 4년 만에 돌아온 작품으로, 경성시대를 배경으로 서로 사랑했던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신의정,최미소,유연,최정수,김대현,김바다,정재헌,서요나,이초롱,이정휘 등.

▲ 퍼플 살롱<콩칠팔 새삼륙>은 뮤지컬이고, 뮤지컬은 쇼 비즈니스 장르이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의 '보여주기' 식 장면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레즈비언 서사 작품에서도 성적 대상화를 봐야한다는 건 많이 아쉽다.ⓒ 컴퍼니엠


극 중 화동은 여성 거래의 현실을 그대로 이용하여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이루고자 했다. 그녀는 사회에서 여성을 대상화 하는 방식을 그대로 차용했고, 홍 박사의 연인이 된다. 하지만 신문 기사에 홍 박사와의 불륜이 기사에 실리고, 옥임이 사라지며 그녀는 홍 박사에게 이별을 선고 받는다. 홍 박사는 심지어 그녀에게 그녀가 운영하는 퍼플 살롱을 접으라는 말까지 건넨다. 화동의 모습을 통해,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이루는 방법은 젠더 권력을 차지한 남성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용주와 옥임의 로맨스는 두 여성이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둘은 이를 추구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좇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사회에서 그들에게 요구하는 '여성성'은 거부됐다. 용주는 시댁에서 뛰쳐나왔고 옥임은 청혼을 거부했다. 욕망이 거세되고 수동적으로 '사랑받아야' 하는 여성상과 달리 둘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더 나아가 둘이 욕망하는 것(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둘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여성 간의 연대'가 필요해졌다. 물론 그 선후 관계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욕망하는 것을 먼저 추구하여 연대를 이뤘을 수도, 연대를 함으로써 두 사람이 욕망하는 것을 이뤄냈을지도, 아니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두 사람의 관계가 결국 서로에게 사회적으로 금지되었던 '리비도'를 가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발현하는 것 역시 가능해졌다. 이는 그들에게 '기차 여행'을 허락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서로 맞잡은 두 손과, 두려움과 함께 공존하던 행복한 미소는 두 사람을 그저 '자살'로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게 만들지 않았나. 오히려 둘은 진정으로 그 순간 해방된 것이 아닐까.

즉 여성에게 '둥지'를 줄 수 있는 것은, 그 여성의 성적 지향이 어떻든 결국 다른 여성들 간의 '연대'인 것이다. 그 연대는 화동과 옥임, 용주 사이에 일어났던 연대부터 옥임과 용주 사이에서의 연애로서의 연대까지, 그리고 그 범위를 넘어서 다양하게 이뤄질 수 있다.

물론 <콩칠팔 새삼륙>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극히 좋기만 한 극은 아니다. '퍼플 살롱'에서 등장하는 '핸드 걸', '모던 걸', '배드 걸', '스틱 걸' 등의 가사는 사회에서 여성들을 'OO녀'로 이름 붙이는 방식을 그대로 재생산했다. 성적 대상화되는 장면도 등장한다. 그런데도 <콩칠팔 새삼륙>은 레즈비언 서사, 더 나아가 여성 서사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레즈비언 서사는 여성 주인공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본격적으로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이는 레즈비언 서사의 한계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극히 현실적인 서사라고도 할 수 있다. 욕망이 거세되어 원하는 것을 원치 못하는 여성들, 삶에 필요한 힘과 권력, 목소리를 부여받지 못한 존재들끼리 우정에서 확장된 사랑을 통해 서로 위로를 건네며 연애를 통한 일종의 연대를 하는 것. 권력이 없는 여성들끼리 함께 살아가며 '권력자'인 '남성'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 이는 그 자체만으로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

게이 서사는 '남녀 젠더 체계' 내에서 '젠더 권력'을 지닌 남성끼리의 결합이다. 성 소수자이기에 억압받지만, 무대 위 게이 서사는 풋풋한 고등학생들의 사랑 이야기부터 욕망에 점철된 이야기까지 꽤 다양하다. 이에 반해 레즈비언들은 여성이면서 성 소수자라는 점에서 동시에 억압받는 존재이다. 레즈비언이나 여성의 서사는 발언권조차 얻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콩칠팔 새삼륙>은 적어도 희망이 아닐까. 앞으로 정말 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둥지'를 찾을 수 있게 할 희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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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까칠하게 공연을 보고, 이야기 합니다. 때로 신랄하게 '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잘 만든 작품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하지 않을까요? / 해외 관극도 함께하며, 잘 만든 서사를 기다리는 중.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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