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까칠하게 공연을 보고, 이야기 합니다. 때로 신랄하게 '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잘 만든 작품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하지 않을까요?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 작품들이 더 많이 올라오길 바라봅니다. [편집자말]
뮤지컬 <곤 투모로우> 프레스콜 지난 9월 22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 뮤지컬 <곤 투모로우>의 프레스콜 현장에서 배우들이 열연하고 있다. <곤 투모로우>는 오태석의 희곡 <도라지>를 원작으로 삼아 각색한 뮤지컬 작품으로, 갑신정변 이후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분투했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누아르 뮤지컬이다. 올해 창작 초연으로 9월 13일 개막하여 지난 6일 폐막했다.  강필석·임병근·이동하·김무열·이율·김재범·조순창·박영수·김민종·김법래·임별·강성진·김수로·정하루 등.

▲ 다시 꿈을 꾸는 김옥균 뮤지컬 <곤 투모로우>는 김옥균과 홍종우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상이 드러난 작품이다. 그런데 이런 작품 내 서사에서 여성이 지워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 곽우신


9월 13일 압구정 BBCH홀에서 개막했던 뮤지컬 <곤 투모로우>가 11월 6일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화려한 창작진과 훌륭한 작품성으로 무장한 이 작품은 많은 관객을 '도라지'(<곤 투모로우>를 사랑하는 관객들을 이르는 말)로 만들며 사랑받았다. 당대 시대를 반영한 것 같은 어두운 무대는 당시 시대를 다시금 느끼게 해줬고 '민중의 힘으로 세상을 바꿔야 함'을 노래하는 '도라지'는 우리에게 익숙한 민요를 편곡하여 감동을 줬다.

특히 이 작품은 현 시국과 맞닿아 관객들에게 더욱 깊은 울림을 줬다. <곤 투모로우>의 시대적 배경은 1890~1910년의 조선으로, 당시의 혼란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비롯한 시국과 마냥 동떨어져 보이지 않는다. 물론 <곤 투모로우>는 관객을 위로하는 작품은 아니었다. 새로운 조선을 만들고자 했던 김옥균의 혁명과 홍종우의 작전은 실패로 끝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곤 투모로우>는 그 모든 것이 실패할지라도 옳은 것을 추구하고 시대에 저항해야 한다고 노래하며, 김옥균의 마지막 넘버로 커튼을 내린다.

공연이 끝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234표로 가결되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이에 대한 기쁨을 표현했다. 특히 뮤지컬 팬 중에서도 <곤 투모로우>의 가사와 대사를 패러디하며 탄핵 가결을 축하하며, 즉각 퇴진을 이야기하는 이도 있었다.

박근혜 탄핵 가결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곤 투모로우>를 떠올리며 새로이 나아가야 할, 앞으로 또 피워내야 할 '도라지'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진다. 그런데 김옥균이라는 급진 개화파 혁명가를 앞세워서 급진적인 메시지를 노래했음에도 불구하고, <곤 투모로우>에서 지워지고 간과된 부분이 있다. 바로 '여성'이다.

좋은 작품이었지만, 여성주의적으로는 비판 소지 많아

뮤지컬 <곤 투모로우> 프레스콜 지난 9월 22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 뮤지컬 <곤 투모로우>의 프레스콜 현장에서 배우들이 열연하고 있다. <곤 투모로우>는 오태석의 희곡 <도라지>를 원작으로 삼아 각색한 뮤지컬 작품으로, 갑신정변 이후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분투했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누아르 뮤지컬이다. 올해 창작 초연으로 9월 13일 개막하여 지난 6일 폐막했다.  강필석·임병근·이동하·김무열·이율·김재범·조순창·박영수·김민종·김법래·임별·강성진·김수로·정하루 등.

▲ 고종의 명을 받드는 홍종우 고종(조순창)의 명을 받든 홍종우(김무열)는 김옥균 암살에 나선다. 누아르라는 장르적 특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는 여성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 ⓒ 곽우신


물론, 기존의 연극이나 뮤지컬이 전형적으로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이 그대로 재현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강간은 무대 작품에서 굉장히 손쉽게 그리고 자주 사용되는 장치이다. 여성 캐릭터를 강간하는 장면을 묘사한 후, 그 강간이 여성 캐릭터 인생의 최대 불행 혹은 트라우마인 것으로 풀어간다. 혹은 성녀/창녀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여성 캐릭터를 분류하기도 한다. 이처럼 공연계 내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전형적인 여혐'은 <곤 투모로우>에 없다. 대신 <곤 투모로우>에는, 제대로 된 여성 캐릭터가 아예 없다.

실제 <곤 투모로우>는 리딩 당시 '명성황후(민비)'를 주요 인물로 넣으면서 김옥균-고종-명성황후라는 갈등 구도를 만들었다. 리딩 공연을 봤던 관객 중에는 저 갈등 구도에서 고종보다 '김옥균-명성황후'의 대결 구도가 더 빛나 보였다는 평을 남기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곤 투모로우>가 본 공연으로 올라오며, 이지나 연출은 과감하게 명성황후 캐릭터를 삭제한 후 '이완'이라는 가상의 남성 캐릭터를 세웠다. 여성 메인 캐릭터가 사라지면서 <곤 투모로우>의 주연 캐릭터는 모두 남성 인물들이다. 작품 전체로 봐도, 앙상블을 포함해 남배우가 27명이나 됨에도 불구하고 전체 여배우는 6명에 채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단순히 김옥균과 홍종우, 고종의 서사에 집중을 한 극을 가지고 남녀 성비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지 않으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성비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예컨대 독립운동 시퀀스에서도, 여성 앙상블들은 총을 가져와서 남성에게 '건네어' 준다. 대부분의 여성 앙상블은 교지를 들고 있다. 교지를 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총을 들기도 하는 남성 앙상블들과도 대조된다.

물론 교지를 전달하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장면을 통해 '직접 싸우는 일은 남성들이 하는 것'이라는 사회이분법적 남성관과 여성관이 명확히 드러난다. 고정된 성 역할 속에서 여성은 남성의 보조자적 위치에만 머물게 된다. 이 장면에서 지금껏 배웠던 역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관순 '언니' 외에 우리가 직접 배웠던 여성 독립 운동가가 몇이나 있는가. 분명 총을 들고 용맹하게 싸운 여성 독립 운동가가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거사'를 치르는 일은 남성들이 주도했다는 사고관을 학습해오지 않았나. '독립운동=싸우는 것=남성의 역할'이라는 등식이 은연중에 재생되지는 않았나.

물론 개화파 옥균의 동지로 등장하는 한 여성 앙상블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정장을 입은 이 캐릭터는 기존의 젠더 관념을 해체했다기보다는, 남성성을 일시적으로 답습한 데 지나지 않는 느낌이다. 연기하는 배우가 여성일 뿐 젠더적 관점에서는 남성에 다를 바 없는 캐릭터일 뿐이다. 결국, 이 캐릭터는 사회 내 젠더 체계에서 '여성'은 아니었다.

뮤지컬 <곤 투모로우> 프레스콜 지난 9월 22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 뮤지컬 <곤 투모로우>의 프레스콜 현장에서 배우들이 열연하고 있다. <곤 투모로우>는 오태석의 희곡 <도라지>를 원작으로 삼아 각색한 뮤지컬 작품으로, 갑신정변 이후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분투했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누아르 뮤지컬이다. 올해 창작 초연으로 9월 13일 개막하여 지난 6일 폐막했다.  강필석·임병근·이동하·김무열·이율·김재범·조순창·박영수·김민종·김법래·임별·강성진·김수로·정하루 등.

▲ 고종과 엄 상궁 잠깐씩 등장하는 조연 여성 캐릭터들도 대부분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 곽우신


또한, 극 중 카즈에, 엄 상궁, 소피 등의 인물은 앙상블로 짧게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을 야기한다. 엄 상궁은 역사 속에서도 알 수 있듯 고종의 애첩이었고, 카즈에는 극 중 가상의 인물로 옥균을 따르는 모습을 보이는 게이샤로 등장한다. 또한 소피는 표면적으로는 극 중 종우와 친구인 듯하지만, 서브 텍스트 상 소피가 홍종우에게 가지는 감정이 친구 이상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세 인물은 모두 '남성과의 연결'을 통해 이름을 부여받는 셈이다. 그들에게는 독립된 서사가 없다. 오로지 남성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많은 작품이 그렇듯, <곤 투모로우> 역시 여성이 '쇼'를 위해 소모되고 대상화됐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극 중 '해 뜨는 나라로' 넘버에서 여성 배우들은 쇼적인 장면을 위해 각선미를 드러내는 짧은 치마를 입고 춤을 춘다. 이는 남성 배우들이 긴 정장을 입고 '파인 상의' 정도의 노출이 전부라는 점과 대비된다.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쇼 비즈니스'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 쇼적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여성의 노출에만 의존하는 게 과연 온당할까. 사회적으로 남성의 노출과 여성의 노출이 지닌 함의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도 말이다.

여성이 성적 대상화되는 것은 '유락정'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곤 투모로우>의 원작인 오태석의 희곡 <도라지>에서는 유락정이 도박장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곤 투모로우>에서는 그 이상의 장소로 읽힐 여지가 크다. 술을 마신 도박꾼들 앞에서 지나치게 짧은 치마를 입고 춤을 추는 여성들은 짐짓 '성매매'에 종사하는 이들로 비친다. 이런 유락정을 아무 비판 의식 없이 드나드는 김옥균이라니, 김옥균의 이상에 여성이란 포함되지 않은 것인가. 그가 건설하고자 했던 세계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었다.

조선에도, 광화문에도 없었던 '여성'

뮤지컬 <곤 투모로우> 프레스콜 지난 9월 22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 뮤지컬 <곤 투모로우>의 프레스콜 현장에서 배우들이 열연하고 있다. <곤 투모로우>는 오태석의 희곡 <도라지>를 원작으로 삼아 각색한 뮤지컬 작품으로, 갑신정변 이후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분투했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누아르 뮤지컬이다. 올해 창작 초연으로 9월 13일 개막하여 지난 6일 폐막했다.  강필석·임병근·이동하·김무열·이율·김재범·조순창·박영수·김민종·김법래·임별·강성진·김수로·정하루 등.

▲ 해 뜨는 나라로 향하는 종우 프랑스에 머물던 홍종우(김재범)는 고종의 부름을 받고 조선으로 향한다. 쇼 비즈니스인 뮤지컬에서 배우의 육체를 노출하는 장면이 빈번하게 사용된다. 그러나 대체로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더 세련된 방법은 없는 걸까. ⓒ 곽우신


올해 광화문 광장에 등장한 '여성 혐오'가 떠오른다. '병신년'과 같은 장애인 혐오와 여성 혐오를 동시에 함의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여성 혐오는 단순히 잘못을 저지른 박근혜 대통령에게만 적용된 게 아니었다. 광장에 나선 많은 여성에게도 성희롱과 성추행이 일어났다. 여성들을 향해 '기특하다' 등의 표현이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성차별적 언행은 모두 '여성 혐오'로 귀결된다.

김옥균과 홍종우가 이야기하는 이상향은 사람이 사람답게 갈 수 있는 나라였다. 그러기 위해선 도라지가 피어나야 한다고 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는 배제된 사람이 없어야 한다. 배제되지 말아야 하는 사람 중에는 젠더적 약자인 여성도 있다. '도라지'의 의미와 중요성을 노래하는 김옥균의 마지막 넘버는 객석을 떠나는 관객들의 마음을 묵직하게 한다. 우리 스스로 그 도라지꽃이 되어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2016년, 한국에서 도라지꽃은 피어났다. 하지만 여성주의적 도라지는 아직 다 피지 못했다. 언제쯤 공연계에서, 더 나아가 언제쯤 사회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도라지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박근혜의 탄핵이 가결이라는 한 발자국의 진보를 이뤄낸 이 시점에, 우리는 질문 해봐야 할 것이다.

뮤지컬 <곤 투모로우>의 포스터 지난 9월 22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 뮤지컬 <곤 투모로우>의 프레스콜 현장에서 배우들이 열연하고 있다. <곤 투모로우>는 오태석의 희곡 <도라지>를 원작으로 삼아 각색한 뮤지컬 작품으로, 갑신정변 이후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분투했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누아르 뮤지컬이다. 올해 창작 초연으로 9월 13일 개막하여 지난 6일 폐막했다. 강필석·임병근·이동하·김무열·이율·김재범·조순창·박영수·김민종·김법래·임별·강성진·김수로·정하루 등.

▲ 뮤지컬 <곤 투모로우>의 포스터 <곤 투모로우>는 오태석의 희곡 <도라지>를 원작으로 삼아 각색한 뮤지컬 작품으로, 갑신정변 이후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분투했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누아르 뮤지컬이다. 올해 창작 초연으로 9월 13일 개막하여 지난 11월 6일 폐막했다. 강필석·임병근·이동하·김무열·이율·김재범·조순창·박영수·김민종·김법래·임별·강성진·김수로·정하루 등. ⓒ 아시아브릿지컨텐츠(주)



페미니즘 여성주의 뮤지컬 곤투모로우 곤투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