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까칠하게 공연을 보고, 이야기 합니다. 때로 신랄하게 '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잘 만든 작품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하지 않을까요?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 작품들이 더 많이 올라오길 바라봅니다. [편집자말]
올해 초 트라이아웃 공연으로 큰 성원을 받았던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아래 <나나흰>)가 정식 공연됐다. 11월 초 개막한 이 공연은, 많은 관심을 받으며 현재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에서 상영 중이다.

익히 아름다운 토속어를 살려낸 모더니즘 시인으로 알려지며, 훗날 많은 독자와 시인들에게 사랑을 받은 백석을 뮤지컬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충분히 의의가 있고 주목할 만하다. 또한, 보통 먹먹한 감정으로 읽히던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두 사람이 재회하며 부르는 넘버로 만듦으로써 새로운 시의 해석을 보여준 것 또한 흥미로운 점이다. 더 나아가 강필석, 오종혁, 이상이, 최연우, 정인지, 안재영, 유승현이라는 대학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다 모인 캐스팅은, 이 뮤지컬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킬 만 하다.

기대했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아쉬웠던 이유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공식 포스터.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공식 포스터. ⓒ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기대가 많았던 탓일까, 소문난 잔치에 먹을거리가 없다고, <나나흰>이 끝난 발걸음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100분간의 러닝타임동안 <나나흰>은 '가난한 시인'이라는 대사를 통해 두 주인공이 백석과 자야 임을, 또 백석이 가난한 시인이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극 중에서는 백석이 백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당시 모더니스트 시인 백석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백석이 그 당시에 향토적인 시를 많이 썼다고 해도, 그는 일제 강점기 시대의 작가이다. 일제 강점기 시대의 작가의 작가라는 점에서, 우리는 백석이 시대적인 고민을 충분히 했었으리란 추측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극 중에선 백석의 시대적인 고민은 드러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백석이 시인으로서 예술에 대한 의지, 글에 대한 열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극 중 '백석'이라는 인물이 정말 '시인'인지조차 의문으로 남는 것이다.

이는 이 서사가 '백석과 자야가 아니어도 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으로 전환된다. <나나흰>은 백석의 시를 노래로 만들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의가 있을 수 있는 극이다. 굳이 이 서사에 백석과 자야의 사랑 이야기를 끼워 넣어 의미를 이중적으로 부여하지 않아도 됐으리란 의미다. 굳이 꾸역꾸역 집어넣은 백석과 자야의 이야기는 오히려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또한 시대적인 고민을 배제했다면 적어도 두 사람의 이야기만큼은 와 닿아야 한다. 하지만 백석의 감정만큼은 짙지 않다. 이 점에서 <나나흰>은 필연적으로 '그렇게 꾸역꾸역 백석의 시를 활용했어야 할까?'하는 아쉬움으로 이어진다. 물론 극 중에는 '어느 사이에' 같이, 백석의 괴로움을 그려낸 넘버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넘버들은 '토속적인' 감정을 노래한다. 물론 백석이 토속적인 시어를 활용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토속적인 시로 만든 넘버를 조금 줄이더라도 묵직한 감정을 노래했으면 어땠을까. 적어도 백석과 자야의 감정이 더욱 이해되고, 이 극이 단순히 백석의 시를 차용한 것뿐 아니라 '백석과 자야'의 이야기여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주지 않았을까.

왜 백석과 자야여야 했을까

최연우가 연기하는 자야 뮤지컬 <나와 나타샤의 흰 당나귀>에서 '자야' 역에 더블 캐스팅된 배우 최연우. 지난 10일 오후,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에서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최연우 배우가 백석을 사랑한 기생 자야로 분하여 열연하고 있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천재시인 백석과, 백석이 사랑한 여자 '자야' 김영한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 최연우가 연기하는 자야 뮤지컬 <나와 나타샤의 흰 당나귀>에서 '자야' 역에 더블 캐스팅된 배우 최연우. 지난 10일 오후,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에서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최연우 배우가 백석을 사랑한 기생 자야로 분하여 열연하고 있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천재시인 백석과, 백석이 사랑한 여자 '자야' 김영한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 곽우신


무엇보다 가장 아쉬운 것은 자야의 캐릭터였다. 이 극은 분명 자야라는 여성 화자의 기억을 따르나 극의 시선은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이다. 가부장적, 남성 중심적인 시각을 마치 '여성 화자를 내세운 새로운 시도의 극'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일으킨다.

예컨대 백석이 자야에게 사랑에 빠지는 것은 잘 묘사가 되나 자야가 백석에게 감정이 동하는 것은 잘 묘사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백석이 자야에게 반했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자야의 의사는 무시된 채 (적어도 이 극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채) 둘의 사랑은 전개된다. 여성은 남성에 의사에 의해 선택된 거래 대상일 뿐이다. 그녀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이는 전통적으로 여성이 거래되던 방식이었다. 더 나아가 여성 거래를 통해 거래하는 '남성'들의 관계는 돈독해진다. 이는 백석과 남자를 통해 알 수 있다. 남자는 백석에게 자야를 소개해줬고 이는 비록 백석이 사랑하던 란이가 남자와 혼인을 치르지만 이를 축하해주러 통영까지 먼 길을 가는 것으로 이어진다.

극 중 자야는 기생으로서 삶을 살고 싶지 않아 하나 '가난한 시인'인 백석과의 생활을 위해, 그리고 백석이 다시 돌아왔을 때 그가 마음껏 글을 쓰게 하고 싶다는 이유로 끔찍이도 하기 싫었던 기생 일을 다시 시작한다. 심지어 극 중 자야는 직접 '당신이 다시 돌아오면 마음 편히 글을 쓰게 하려고 기생 일을 다시 시작했다'는 내용의 대사를 직접 뱉는다. 물론 '픽션'인 뮤지컬이 실재 인물과 반드시 동일시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재구성'을 이뤄냈다면 적어도 더 설득력 있고, 흥미로워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날처럼 '젠더적 관점에서의 문화'가 각광받는 때에는 더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자야의 인생은 자야의 것이다

최연우가 연기하는 자야 뮤지컬 <나와 나타샤의 흰 당나귀>에서 '자야' 역에 더블 캐스팅된 배우 최연우. 지난 10일 오후,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에서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최연우 배우가 백석을 사랑한 기생 자야로 분하여 열연하고 있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천재시인 백석과, 백석이 사랑한 여자 '자야' 김영한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 최연우가 연기하는 자야 뮤지컬 <나와 나타샤의 흰 당나귀>에서 '자야' 역에 더블 캐스팅된 배우 최연우. 지난 10일 오후,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에서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최연우 배우가 백석을 사랑한 기생 자야로 분하여 열연하고 있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천재시인 백석과, 백석이 사랑한 여자 '자야' 김영한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 곽우신


물론 실제 자야가 자신의 기생이라는 신분이 백석의 앞길을 막을까 걱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저서 '내 사랑 백석'에서 기생에 대해 "조선 역사상 음악, 가곡, 가무뿐 아니라 여성계의 미풍과 양속을 새롭게 가꾸어간 개척자"라고 적을 만큼,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함께 가진 사람이었다. 또, 성리학 사회 질서 아래 기생이라는 직업 때문에 받아야하는 시선을 두려하면서도, 동시에 그 안에서 양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기생들의 지성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더 나아가 그녀는 해방 이후 그 당시 여성으로서 영어영문을 전공했을 만큼 '신여성'이었다.

극 중 그려진 자야와는 다른 인물로 느껴진다. 설령 그녀가 기생으로서 자부심보다 자책감이 더 깊은 사람이었다 해도, 그녀의 삶을 그저 '백석을 위한 것'으로 한정 짓는 것은 여성을 소극적이지만 사랑하는 '남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여성으로 그려내는 것은 어찌 보면 그녀의 삶을 통째로 부인하는 것과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그녀의 성격을 모두 간과한 채, 더 흥미롭기는커녕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시각으로 자야를 그려낸 것은, 극 중의 '여성 거래'적인 모습과 맞닿아 극작의 여성관까지 의심하게 한다.

분명 백석의 시를 가지고 뮤지컬을 만든다는 것은 재미있는 시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기대가 많았던 탓일까, <나나흰> 공연장을 나서는 발걸음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백석은 '흰 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고 노래했다. 분명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아야 하는데, <나나흰>이 그저 '아무 맛도 나지 않는' 흰 밥과 가자미인 탓일까, 좋음보다는 아쉬움, 더 나아가 불편함 밖에 곱씹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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