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보다 거대한 게' 과연 무엇일까? 진실을 마주하는 시간이라, 충격일까 슬픔일까 둘 다일까. 이 가족에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무슨 일이 일어날까.

'폭탄보다 거대한 게' 과연 무엇일까? 진실을 마주하는 시간이라, 충격일까 슬픔일까 둘 다일까. 이 가족에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무슨 일이 일어날까. ⓒ 그린나래미디어


투철한 종군 사진작가 이자벨, 그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3년이다. 남편 진은 그녀의 3주기에 맞춰 기념 전시를 열기로 한다. 어린 나이에 교수가 돼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은 큰아들 조나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 진과 작은아들 콘래드가 함께 사는 집, 어색하기 짝이 없다. 어색하기보다 서먹하고, 서먹하기보다 반목이 존재한다. 이자벨이 죽기 전에도 그랬을까, 이자벨이 죽고 나서일까.

한편, 이자벨의 동료였던 리차드는 이자벨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죽음의 비밀을 밝히겠다고 말한다. 그게 도리에 맞거니와 이자벨도 그걸 원했을 거라면서. 큰아들 조나는 알고 있지만 작은아들 콘래드는 아직 모르는 그 비밀을, 진은 말하고자 하고 조나는 안 된다고 못을 박는다. 그 와중에 조나는 엄마에 대한 진짜 비밀을 알게 되는데….

영화 <라우더 댄 밤즈>는 북유럽 태생답게 건조하고 싸늘하고 잔잔한 느낌이 주를 이룬다. 거기에 무채색의 예리한 칼날이 도처에 있어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오는 듯하다. 제목부터가 '폭탄보다 거대한'이 아닌가. 이 제목이 수식하는 단어는, 그 행간에 감춰진 단어는 '충격'보다는 '슬픔'이 아닐까 예측해본다. 강렬한 제목과 무미건조해 보이는 분위기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 이자벨, 진, 조나, 콘래드. 이 가족을 깊이 들여다보는 게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일이자, 모든 것일 것 같다.

지극히 평범한 문제를 지닌 '문제적 가족'

이 문제적 가족의 균열은 종군 사진작가 이자벨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직업 특성상 집에 거의 있지 못하고 세계 각지의 위험 지역을 돌아다녀야 하는 이자벨. 남편도 남편이거니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 문제다. 특히 작은아들은 한창 학창시절을 보내며 사춘기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을 때이다. 더구나 위험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다치기 일쑤이고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종군 사진 작가'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이자벨, 그녀의 죽음. 그녀의 살아생전에도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그녀의 가족은 문제가 있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문제들.

'종군 사진 작가'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이자벨, 그녀의 죽음. 그녀의 살아생전에도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그녀의 가족은 문제가 있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문제들. ⓒ ???그린나래미디어


그 모든 걸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가슴앓이를 하는 이는 다름 아닌 남편 진. '가족'을 위해 연기자 생활을 접은 그이기에 그녀를 보는 시선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진정 가족을 위한 행동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녀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아주 복잡한 심정이다. 걱정도 되면서 화도 나는, 그녀에 대한 걱정이 곧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지고 자신의 선택과 현재를 보며 그녀의 선택과 현재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의 소용돌이치는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큰아들 조나는 엄마의 죽음의 비밀을 알고 있다. 그는 엄마가 살아있을 때, 아버지와의 이혼을 종용하기도 했을 만큼 아버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 무관심보다는 적대감에 가까운, 데면데면한 사이랄까. 한편 그는 이제 갓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지만, 그래서 어느 때보다 아내가 사랑스러울 때지만,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아내를 자꾸만 피하게 되고, 오히려 옛 연인에게 더 마음이 간다. 그는 그런 자신이 괴롭다. 그 와중에 엄마의 생전 비밀을 알게 되니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작은아들 콘래드는 엄마의 죽음의 비밀을 모른다. 생전 비밀도 당연히 모른다. 그저 엄마가 보고 싶고 엄마 품이 그리울 뿐이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지만 쳐다보기도 말을 섞기도 싫다. 사춘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엄마가 없기에 더 삐뚤어진 것 같다. 자꾸 '대화를 위한 대화'를 원하는 아버지가 더 싫어진다. 대신 오랜만에 돌아온 형과 자주 대화한다. 한편 그는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다. 좀 '노는 아이'인 것 같아 다가가기 어렵지만, 용기를 내보려고 노력 중이다.

 이 가족의 문제는 평범한 가족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모두 다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의 크기와 종류가 다를 뿐이다.

이 가족의 문제는 평범한 가족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모두 다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의 크기와 종류가 다를 뿐이다. ⓒ 그린나래미디어


이 가족은 사실 그리 문제가 있지는 않다. 평범한 가족일 뿐이다. 지극히 평범한 문제들을 지니고 있는 그런 가족, 대다수 가족에게서 보이는 문제들을 이들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다만, 엄마의 직업이 남다르다는 것. 이제는 엄마가 없다는 것. 엄마의 죽음이 특별했다는 것. 무엇보다, 문제를 풀 겨를 없이 문제의 중심에 있었던 엄마가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남은 이들끼리 문제를 풀어야 하는 사태에 직면했다는 것. 3년이나 풀지 못하고 지속되어 왔다는 것.

가족이란 무엇인가?

영화는 뭔가 있어 보인다. 구성, 분위기, 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와 포스가 그동안 많이 접해왔던 할리우드 영화와는 너무 다르다. 치밀한 복선과 꽉 찬 서사, 물 흐르는 듯한 전개, 확실한 기승전결을 이 영화에선 찾기 힘들다. 그래서 자칫 겉멋든, 있어 보이려고 하는 영화로 비치기 십상이다. 별것 아닌 내용을, 쉽게 보지 못한 것들로 만들어, 신선함만 부여했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 가족이 지닌 문제는 끝까지 해결되지 못할 것 같고,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문제도 해결되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고 남은 가족들이 대통합을 이룰 것 같지도 않다. 3년 만에 만나 한순간 대통합을 이룬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돼 아픔과 슬픔과 당혹감만 커졌을 뿐인 것 같다.

 문제의 해결보다 시급한 건, 문제의 인식. 그보다 중요한 건 서로를 아는 것. 그 존재 자체를 아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 이상은 자연스러운 것.

문제의 해결보다 시급한 건, 문제의 인식. 그보다 중요한 건 서로를 아는 것. 그 존재 자체를 아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 이상은 자연스러운 것. ⓒ 그린나래미디어


'그런데'라고 영화는 말한다. 그런데 가족이 무엇인가.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의 문제를 속속들이 알고 해결하는 것이 목적인가? 개인의 사적 문제를 일일이 알고 같이 고민하며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는 것만이 진정한 가족의 모습인가? 우린 사실 가족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큰아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작은아들이 사춘기를 지나며 누구를 좋아하고 있는지, 아내가 세계를 돌아다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면 어떤 마음으로 가족들을 대하게 되는지, 남편이 어떤 마음으로 연기를 그만두고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는지 말이다. 알지도 못하는 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중요한 건 먼저 아는 것이다. 공유하는 것이다. 해결하려고 달려들기 전에 일단 알아야 한다. '뭐가 문제야?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겠네. 자, 해결됐지? 그럼 이제 가족의 일원으로서 가족을 위한 생각과 행동을 부탁해.' 대다수가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물론 가족의 일원으로서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 역할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고, 역할을 등한시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될 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은 지옥이 될 수 있다.

거기엔 분명 지켜야 할 것들이 있고 해야 할 것들이 있다. 그건 그리 부담스럽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보다 가족을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도우려 하고, 조금 더 생각하면 된다. 집에 가서는 아무런 걱정 없이 푹 쉬고 싶고 가족들의 품 안에서 심신을 안정시키고 싶다. 더불어 가족들을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다. 그런 마음을 가족들 모두가 갖고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을 가족들 모두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라우더 댄 밤즈 가족 슬픔 문제 이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