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일 원전사고를 소재로 한 재난영화 <판도라>가 개봉한다. <부산행>, <터널>에 이어 올해만 세 번째 재난영화다. 2009년 <해운대>를 기점으로 이젠 국내에서도 재난영화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데, 중요한 건 이런 재난영화에서 주로 쓰였던 클리셰들이 있다는 사실. 종류별로 알아보자.

[하나] 사전 위험 감지, 경고 무시하는 사람들

 <해운대>에서 초대형 쓰나미를 예견했던 지질학 박사로 나온 박중훈

<해운대>에서 초대형 쓰나미를 예견했던 지질학 박사로 나온 박중훈 ⓒ CJ엔터테인먼트


재난영화 시작에서 가장 흔한 경우 중 하나다. 사고 직전 위험을 감지하지만 경고를 무시하는 사람들 때문에 재난이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해운대>가 그렇다. 국제해양연구소의 지질학자 김휘 박사(박중훈 분)는 대마도와 해운대를 둘러싼 동해의 상황이 5년 전 발생했던 인도네시아 쓰나미와 흡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수차례 관계 당국에 경고하지만 재난방재청은 지질학적 통계로 쓰나미가 한반도를 덮칠 확률은 없다고 단언한다. 결국 박사의 주장대로 일본 대마도가 내려앉으면서 초대형 쓰나미가 해운대를 덮쳐 참사가 일어난다.

<타워> 역시 시설관리 팀장 대호(김상경 분)가 사전에 스프링쿨러 물이 없다는 것을 알아내고 일단 소화기를 늘려야 한다고 의견을 내지만 묵살 당한다. <감기>도 마찬가지다. 인애(수애 분)를 비롯한 의사들은 스페인 독감에 맞먹는 인플루엔자를 발견하고 분당 지역 폐쇄를 주장하지만, 지역구 국회의원은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든다며 무시했고, 사태를 더 악화 시키고 만다.

이처럼 사전 위험을 경고한 이들이 있지만 이를 무시하는 정부 관료들이 여럿 있었다. 영화는 이런 관료의 무능함을 비꼬곤 했는데 어찌 보면 지금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둘] 아빠들의 사투

 <부산행>에서 딸을 지키기위해 사투를 벌였던 공유

<부산행>에서 딸을 지키기위해 사투를 벌였던 공유 ⓒ NEW


유독 재난영화는 가족의 생존을 위한 아빠들의 사투가 많이 그려진다. 아예 아빠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은데 봉준호 감독의 괴수재난영화 <괴물>에는 송강호가, <해운대>에는 박중훈, 화재재난영화 <타워>에는 김상중, 변종연가시를 소재로 한 <연가시>에서는 김명민, 좀비재난영화 <부산행>에서는 공유와 마동석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영화 <투모로우>의 데니스 퀘이드, <2012>의 존 쿠삭, <샌 안드레아스>의 드웨인 존슨 등 할리우드 재난영화에서도 이런 케이스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족애를 다루고 싶은데, 아무래도 재난영화에서 특성상 액션신이 필요로 하다 보니 엄마보다는 아빠가 주인공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은 걸로 보인다. 예외적으로 <감기>는 딸을 가진 엄마 인혜(수애 분)가 주인공이었지만, 역시 액션은 그녀를 짝사랑하는 지구(장혁 분)가 도맡았다.

[셋] 살신성인 캐릭터들

 <타워>속 소방대원들

<타워>속 소방대원들 ⓒ CJ엔터테인먼트


재난상황에서 충분히 벌어질 만한일이기도 하지만 영화 막판에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자 사용하는 익숙한 장면이 있다. 바로 사람들을 구하며 죽는 캐릭터들이다. 직업적 특성상 구조대원들이 많이 나온다. <리베라 메> <타워>같이 화재 속 소방대원들, 그리고 <해운대>에서의 해상구조대원 같은 예가 있다.

종종 꼭 누구 하나는 남아서 버튼을 눌러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타워>가 여기에 해당하며 할리우드엔 <아마겟돈>과 <코어>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설정들은 억지로 감동을 강요한다는 이유로 반감을 사기도 한다.

[넷] 평균 이하 캐릭터들의 영웅화

 <괴물>에서 이가족은 나중에 영웅이 된다.

<괴물>에서 이가족은 나중에 영웅이 된다. ⓒ 쇼박스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주인공들은 <코어> <트위스터> <고질라> <인디펜던스 데이>같이 과학자들이거나 <타워링> <샌 안드레아스>같이 구조대원인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국내 재난영화의 경우 주인공이 일반인인 경우가 많은데, 할리우드의 영웅주의 설정과 달리 관객 입장에서 보다 현실적인 감정이입을 가져다주는 효과가 있다.

일반인들을 주인공으로 하다 보니 평균이하의 캐릭터가 영웅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시발점이 된 영화가 바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다. <괴물>은 괴물에게 잡혀간 현서(고아라 분)를 구하기 위한 아빠 강두(송강호 분)네 가족들의 사투를 그렸다. 가족들의 면면들을 살펴보면 솔직히 별 볼일이 없다. 강두는 변변한 직업 하나 없이 아버지가 운영하는 매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언뜻 모자라 보이기까지 한다. 삼촌 남일(박해일 분)은 대학 나온 백수일 뿐이다. 그리고 고모 남주(배두나 분)는 중요한 순간마다 실수하는 궁사다. 그런데 괴물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게 바로 이 가족들이라는 사실. 여기에 노숙자(윤제문 분)까지 한 몫 톡톡히 해내며 영웅이 된다.

<해운대>에선 동네 꼬마를 꾀어 앵벌이나 시키는 한심한 동네 양아치 동춘(김인권 분)이 사람을 13명이나 구하고 용감한 시민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박정우 감독의 전작 <연가시>에선 경찰로서 사명감이라곤 1%도 없고 오로지 주식으로 한탕 할 생각만 있는 한심한 형사 김동완이 주식 뒷조사를 하다가 국가 재난사태를 만든 범인들을 잡기도 한다.

[다섯] 치밀한 현실반영

 안전 불감증이 자초한 <타워>속 대형화재

안전 불감증이 자초한 <타워>속 대형화재 ⓒ CJ엔터테인먼트


특히 한국 재난영화는 우리네 부끄러운 민낯들을 건드린다. <타워>에선 과시욕과 안전 불감증으로 참사를 불러일으킨 더 타워의 회장(차인표 분)과 출세욕에 빠져 VIP 리스트를 들고 인명구조에 바쁜 구조대원들에게 높은 분부터 구조하게 하는 소방청장 등이 등장한다.

<감기>에서는 닭이나 돼지에게 행하던 살처분을 아직 살아 있는 사람에게 시행하고, 시민보다 자신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는 한편 사대주의에 빠져 미국이 기대기만 하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치인들을 또 하나의 재난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연가시>에선 도를 넘어선 의사와 제약회사직원간의 관계를 통해 한국의 갑질 문화를 그렸다. 사람목숨보다 돈을 중히 여긴 '옥시'같은 악덕기업이 등장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터널>에선 한국의 만성적인 부실공사문제와 붕괴된 터널 앞에서 기념사진이나 찍어대는 정치인들, 자극적인 기사거리만 찾아대는 기자들이 그려지기도 한다.

영화가 너무 한국사회를 과장해 표현한 것 같은가? 요즘을 보면 꼭 그런 거 같지도 않다. 지진으로 인한 원전 재난을 다룬 <판도라>에선 과연 어떤 설정이 등장할까.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생각해 가며 관람해 봐도 재밌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구건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zig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재난영화의클리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두 아이의 아빠이자 영화 좋아하는 네이버 파워지식iN이며, 2018년에 중소기업 혁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보안쟁이 입니다.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