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한선희 (왼쪽), 싱어송라이터 이광석

가수 한선희 (왼쪽), 싱어송라이터 이광석 ⓒ 이재원


늦은 밤 으끄러진 몸으로 들어서는 사거리 국밥 집, 부옇게 습기 찬 유리문이 이제는 겨울임을 말해줍니다. 뭉그러진 마음을 의자 위에 앉히고 보니 건너 편 자리 잡은 사람 곁에 초록 병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 되어서야 아직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는 늦은 밥 한 술 뜰 수 있었나 봅니다. 고단했을 하루를 떠나보내려는 이별주에 국밥이 나오길 기다리며 2016년 11월 세상에 나온 <길을 걸으며> (한선희 2집)을 틀어보았습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윤동주의 시에 이광석이 곡을 붙인, '새로운 길'. 치열한 현장에서 노래를 불러온, 거리의 가수가 부른 노래라고는 믿기지 않는. 곡을 쓴 작곡가 이광석도 놀랐을 이 감수성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가수 한선희는 2003년 솔로 1집을 내고 13년이 지나서 2집을 냈습니다. 음반에 담긴 열곡의 노래들은 시인 윤동주, 정희성, 이재무, 김소월의 시들과 이광석, 백자, 윤민석, 산티지나의 글에 작곡가인 이혜진, 백창우, 윤민석, 백자, 이광석이 곡을 썼습니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뛰어 본 적이 없고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걸어 본 적 없는데
왜 빨리 빨리 흔들림 없이 살아야 한다고 다그치는 걸까'

가슴 아픈 실화를 시로 옮긴 '사는 건 또 뭐가 다른가'. 노래 가사 한마디 마디에 슬픔이 뚝뚝 떨어집니다.

이광석이 글과 곡을 쓴 '그런 나이'를 듣고 있자니 느리고 낮은 감탄사가 나옵니다.

'꽃이 보이고 새가 정답고
하늘이 눈물 나게 푸르고
봄이 새롭고 가을이 아쉽고
바다가 사무치게 그리운 그런
살아온 날들이 살아 갈 날들보다
잊혀진 것들이 기억할 것들 보다 많지만' 

그리고 한선희에게 묻다

 가수 한선희

가수 한선희 ⓒ 이재원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과 거리에서 '주 6일' 일하게 된 2016년 겨울, 가수 한선희에게 물었습니다.

- 새 노래들 열곡에 어떤 사연들이 있는가.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모든 노래가 그렇지요. 제가 직접 쓴 곡들은 아니지만 저마다 사연과 내용이 있는 노래들이라서 다 나름의 애정선이 있답니다. 제 나이도 느지막한 나이를 향해 가는 때라 자연스럽게 서정적이고 느린 노래들이 아무래도 먼저 귀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노을', '길을 걸으며', '그런 나이', 이 노래들은 제 얘기를 하는 마냥 불렀어요. 지금까지도 잘 걸어왔고, 앞으로도 잘 걸어가야지 하는 마음으로요.

또 전부터 알아왔던 노래였지만 부를수록 의미가 곱씹어지는 노래라서 용기를 내어본 정희성 시인의 시에 백창우 선배님이 곡을 입히신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은 마침 음반 발매 즈음에 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에 추모 영상 삽입곡으로 쓰여서 의미가 더 깊어지기도 했고요. 같은 팀에서 활동하는 이광석씨와 이혜진씨가 제 목소리를 생각하며 작업을 해준 곡들이 있는데 '새로운 길' 그리고 '사는 건 또 뭐가 다른가'라는 노래들 입니다. 덕분에 음반 분위기가 편안하고 깊어졌다고 생각해요.

윤민석 선배님의 곡 '난 소중한 사람이야' 역시 인연이었는데, 한 7,8년 전쯤 3‧8 여성대회에 주제곡으로 녹음했던 곡이었죠. 배경은 그렇고요. 사실 그 즈음 제가 힘들었던 때여서 녹음하는 중간에 경쾌한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울컥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번에 다시 녹음을 하면서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면서 불렀지요. 이번 음반에 시 노래가 많은데 얼마 전 3집 <화양연화>를 발표한 백자씨의 도움이 컸어요. 이재무 시인의 '밥알', 김소월 시인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등 제가 좋아하는 곡들입니다. 시 자체의 의미로도 좋지만 제가 부르게 될 곳곳의 의미에 따라 더 풍성해 질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가수 한선희(앞), 싱어송라이터 이혜진

가수 한선희(앞), 싱어송라이터 이혜진 ⓒ 이재원


- 13년만의 솔로 음반인데 감회가 어떠신지. 
"지난 시간에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편이라 사실 별 감회는 없어요. 팀 활동으로 다양하게 노래를 불러오기도 했고, 개인 활동을 적극적으로 고민해 본 시간이 얼마 되지 않기에 2집을 낸다는 것이 무모한 것은 아닐까 망설여지긴 했지요. 그럼에도 2집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하게 된 건 제 스스로의 준비를 갖춰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노래할 이유를 찾고 실천하고 그러려면 준비된 노래가 있어야 하니까요. 2집 작업을 진행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질책도 하고, 다른 음악가들을 보면서 무한한 존경심도 생기고. 무엇보다 아직 노래할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들이었어요. 조금 더 부지런해지면 지난 13년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 가수 한선희의 팬들이 많은데.
"조금 어색한 단어죠, '팬'. 저를 지켜봐 주시고 힘 북돋워 주시고 기억해 주시는 분들입니다. 가난한 살림살이라 어쩔 수 없이 십시일반 후원을 부탁 드렸는데 흔쾌히 마음 내어 주신 고마운 분들이고요, 아직은 포기하지 말라고 감싸주시는 것 같아요.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라고…. 그 고마움을 쉽게 얘기 할 수는 어려울듯합니다. 그 당부 그대로, 마음 다해 노래할 수밖에요."

새벽 한 시, 사거리 국밥 집

 가수 한선희

가수 한선희 ⓒ 이재원


주인아주머니는 꾸벅 꾸벅 주무시고, 건너편 중년의 노동자는 마지막 소주 한 잔을 앞에 두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여섯 잔을 들이키면서 쓸쓸하고 고단했을 그의 하루는 어찌 위로가 되었을까. 2016년 가을과 겨울, 오천만 명이 입은 상처를 톺아봅니다. 앞서 세상을 살았던 사람들은 이런 속담도 남겨두었더군요.

'우는 가슴에 말뚝 박고' - 그렇지 않아도 아픈 가슴에 더 큰 상처를 주는 걸 이르는 말이라고 하지요. 추운 겨울, 최순실-박근혜씨가 남겨놓은 상처들을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듭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선희'가 있습니다. 가수 한선희의 따듯한 노래들이 추운 겨울, 거리에 함께 서있는 억울한 사람들의 상처를 위로해주기를 바래봅니다.

가수 한선희의 2집 앨범 발매기념 콘서트는 2016년 12월 11일 일요일 오후 5시, 홍대 벨로쥬에서 열립니다.


가수 한선희 한선희 2집 길을 걸으며 2016 촛불 박근혜 최순실 한선희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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