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0여년간 권력의 정점에서 무소불위의 전횡을 일삼아 왔던 왕실장 김기춘. 그런 그가 이제 피의자 신분이 되었다. 특검은 그를 최대난관으로 칭했다.

지난 40여년간 권력의 정점에서 무소불위의 전횡을 일삼아 왔던 왕실장 김기춘. 그런 그가 이제 피의자 신분이 되었다. 특검은 그를 최대난관으로 칭했다. ⓒ JTBC


드디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이 출범했다. 특검에서 밝혀야 할 이번 게이트의 중요 3인은 박 대통령·최순실 그리고 '왕실장' 김기춘이다. 박영수 특검은 "최대 난관은 김기춘"이라며 40년 동안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김기춘 전 실장을 크게 경계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이런 천하의 김기춘이지만 그의 치부가 여과없이 기록된 김영한 비망록이 나타나면서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다. JTBC <스포트라이트> 취재팀이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유가족으로부터 단독으로 입수한 '김영한 비망록'에는, 왕실장의 행적과 발언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비망록에 드러난 유신잔재 김기춘...탄압 또 탄압

박 대통령이 세 차례에 걸쳐 담화하고, 비선실세 최순실, 장시호와 안종범, 정호성 등이 줄줄이 구속되었다. 자신의 비리의혹을 묻는 기자들이 질문에 "의혹은 사실 아니다"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김기춘. '10년 권세 없다'는 말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40년 권력의 정점에 있으며 수사의 칼날을 비웃듯 빠져나갔던 그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떨 것인가? 현재 김기춘은 직권남용 혐의로 피의자 신분이 되었다.

김기춘의 혐의를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는 것이 바로 2014년 6월부터 2015년 1월까지 7개월의 국정 기록이 담긴 '김영한 비망록'이다. 비망록은 '김기춘 발언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왕실장 김기춘의 지시사항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비망록에는 언론·예술계 등에 김기춘이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고 여기저기서 벌어진 예술,언론 등에 대한 탄압의 정황. 지금 우리는 유신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가?

박근혜 정부 들어서고 여기저기서 벌어진 예술,언론 등에 대한 탄압의 정황. 지금 우리는 유신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가? ⓒ JTBC


지난 4일 방송된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예술계 인사에 대한 김기춘의 직접 탄압사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바로 2014년 9월 21일 비망록에 홍성담 화백의 이름이 등장한 것이다. 미국 외교전문지 <폴린 폴리시>가 뽑은 '세계를 뒤흔든 사상가 100인'에도 선정되었던 홍 화백. 김기춘은 홍 화백을 사이비 예술가로 치부한다. 홍 화백이 김기춘에게 소위 찍힌 것은 바로 2014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에 걸리기로 예정되었던 '세월 오월'이라는 작품 때문이었다.

홍 화백은 취재진과의 자리에서 박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한 그림 부분에 대한 수정 이야기를 했다. 작품 속 박 대통령은 김기춘의 조종을 받는 허수아비로 분해있다. 수정요구를 듣고 홍 화백은 대통령의 얼굴을 닭으로 교체하지만, 개막식에는 끝내 전시하지 못한다.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에 걸린 예정이던 홍 화백의 작품 '세월 오월'은 압력을 받고 박 대통령의 얼굴을 닭으로 교체하지만 끝내 걸리지 못한다.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에 걸린 예정이던 홍 화백의 작품 '세월 오월'은 압력을 받고 박 대통령의 얼굴을 닭으로 교체하지만 끝내 걸리지 못한다. ⓒ JTBC


이와 관련 취재팀은 광주 시장에 외압이 있었는지 문의한다. 광주 시장은 외압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바로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의 압력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홍 화백의 전시 철회를 유도하기 위해 사전모의까지 했다.

비망록에는 '우병우팀 애국단체 허수아비 그림. 애국단체 명예훼손 고발'이라는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다. 보수단체가 홍 화백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할 것을 주문한 내용이 적혀있는 것이다. 홍 화백의 말에 따르면 150명이 넘는 보수단체 인원이 여러 대의 대형 버스를 타고 안산까지 와서 홍 화백을 협박하고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때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예술가와 시민단체의 검열을 강화한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며 정무회의에서 강하게 지적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대통령의 의지는 김기춘을 통해 수석회의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다. 2014년 8월부터 11월까지의 비망록 기록에는 홍 화백의 이름이 10번이나 언급된다.

홍 화백은 취재진과 함께 비망록에 나와 있는 자신에 대한 언급을 보면서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노무현, 이명박 정권 때도 풍자 그림을 그려왔던 홍 화백이지만 이렇게 집중되고 조직적인 노골화된 압력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권 좀 풍자했다는 이유로...

 비망록에 자신에 대한 숱한 언급을 보며 홍 화백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이러한 탄압은 전에 없었다는 홍 화백.

비망록에 자신에 대한 숱한 언급을 보며 홍 화백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이러한 탄압은 전에 없었다는 홍 화백. ⓒ JTBC


또, 비망록에는 세월호 관련 언급이 70여 건 나온다. 2014년 5월 16일 유가족과 함께한 자리에서 유가족 의견을 수용할 의사를 밝혔던 박 대통령.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유가족과 정부의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김기춘은 세월호 참사에 쏠린 시선을 유병언 일가의 비리 문제로 몰아가려고 한다. 비망록에는 '유병언'이 20번이나 언급된 것이다. 당시 정부가 시신 인양이나 진상규명보다는 유병언 추적에 더 열을 올렸던 이유가 드러난 것이다. 비망록 메모에 남아 있는 김기춘의 지시, '(세월호 참사는) 유병언 일당의 탐욕 때문'이라면서 정부와 청와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책임을 유병언에게 모두 떠넘겨 혼란한 정국을 벗어나려는 꼼수가 아니었을까?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관련, 유가족과 세월호 특조위도 특별법을 만드는데 동참하겠다고 했지만, 여당인 새누리당의 "법은 국회의원이 만드는 것이다."라는 반대에 부딪힌다. 지켜지지 않는 대통령의 약속에 유가족들은 연좌농성을 하고 이것이 못마땅한 김기춘의 불편한 속내는 비망록에 고스란히 나온다.

김기춘은 세월호 특별법이 국난을 초래하며 세월호 진상규명진영을 좌익이라고 칭한다. 또한 유가족 편가르기도 시도한다. '학생 유가족이 아닌 일반 유가족의 의견은 반영해 분위기 중화'라는 이간책을 쓴 것이다. 수백 명 소중한 국민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기는커녕 오히려 유가족 등을 좌익으로 몰고 탄압하려고 한 의도가 보이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 당시 박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국민적 의심이 높아갈 때 청와대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의심한다.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분노가 치미는 부분이다. 그 중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이 어디 있었는지 모른다며 "알지도, 알려고도 않는다"던 김기춘 전 실장의 발언은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알지도 알려고도 않는다"와 '자료제출 불가'였다. 모르쇠와 조사거부 등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철저한 언론통제 

비밀문건에는 청와대가 철저한 언론 통제를 했던 의혹이 드러난다. 특히 국영방송 KBS는 치밀하게 관리한 정황이 나온다. 비망록에는 KBS 경영진 인사 관련 논의 20여 건 등장한다. 2014년 9월 2일 서울신문에는 이인호 교수가 KBS 이사장으로 내정되었으나 일부에서 반발한다는 기사가 나간다. 그리고 9월 3일 등장하는 김기춘 발언은 지금이 유신의 시대인가 하는 의심을 들게 한다. "정부가 2대 주주인 서울신문, 이인호 위원장 임명내정, (서울신문)의 구독중단·체제수호통제"라는 말이 언급된 것이다. 김기춘의 인식이 수십 년 전 유신 군사정권에 머물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김기춘의 언론대응 방식은 집요하기까지 했다. 2014년 세계일보는 '권력서열 1위 최순실, 2위 정윤회, 3위 박근혜'라는 정윤회 문건을 단독으로 보도한다. 11월 28일 김기춘은 '세계일보 공격 방안'을 주문한다. 세계일보의 이름 옆에 세무조사, 압수수색이 붙은 발언이 13차례나 등장한다. 이 지시는 곧바로 실행해 들어간다.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은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후 바로 검찰 등 국가기관의 압력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2015년 1월 2일 비망록에 '세계일보 사장 교체 움직임'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한 달 후 임시주총에서 조 사장은 해임 결정을 통보받게 된다.

 세계일보와 시사저널 등의 보도에 통제와 탄압으로 일관했던 김기춘이었다. 세계일보는 검찰수사와 세무조사를 받고 사장이 교체 되었고, 시사저널은 중재위 제소로 반론보도를 하게 만든다.

세계일보와 시사저널 등의 보도에 통제와 탄압으로 일관했던 김기춘이었다. 세계일보는 검찰수사와 세무조사를 받고 사장이 교체 되었고, 시사저널은 중재위 제소로 반론보도를 하게 만든다. ⓒ JTBC


대통령에 대한 비판언론에 대해서도 적대적 조치를 취한다. 비망록에는 '시사저널, 일요신문 발본색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한다며 강한 어조가 나온다. 시사저널에 '정윤회가 박지만을 미행한다'는 의혹을 제기한 기사가 나간 후 김기춘, 이재만, 안봉근, 정홍성 등이 원고로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 요청 및 4천만 원 손해배상청구를 한다. 시사저널은 여러 차례 협의 끝에 반론보도를 한다. 대통령 관련 조금이라도 적대적인 보도가 나가면 언론중재위 등에 제소하여 언론이 쉽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재갈을 물리려는 수작인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현 정권 집권 이후 대통령 직속 기관의 언론중재위 제소, 고소·고발 및 손해배상청구 등이 12건에 달한다. 이중 김기춘이 직접 제소한 것이 5건이나 된다.

 김영한 비망록에 고스란히 드러난 김기춘의 탄압흔적들. 예술가,언론,세월호 유가족 등에 광범위하고 무자비한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속속 드러난다.

김영한 비망록에 고스란히 드러난 김기춘의 탄압흔적들. 예술가,언론,세월호 유가족 등에 광범위하고 무자비한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속속 드러난다. ⓒ JTBC


이에 얼마 전 언론단체는 박 대통령과 김기춘을 직권남용으로 고발하였다. 현 사태에 대해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라는 말만 남기고 칩거에 들어간 김기춘. 얼마 전 김기춘 집 앞 쓰레기봉투에서 발견된 그의 메모에는 비망록에 남아있는 숱한 불법적인 내용에 대해 통째로 부인하는 내용이 나온다. 김기춘은 현재 언론통제에 대한 반박논리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40년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른 김기춘, 하지만 이번엔 그의 전횡이 고스란히 담긴 비망록이라는 완벽한 물증이 나왔다. 비망록의 내용을 입증할 실제 사건들도 있었다. 비망록이 김기춘의 데스노트가 될까?

 김기춘의 언론 탄압에 고발장을 제출한 언론단체, 쓰레기 봉투속 메모에서 김기춘은 이러한 탄압을 전면부정하고 나선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 했던 김기춘, "이와 같은 중대한 우리 생에 다시 없을 것."이라던 그의 말 그리고 2016년 박 대통령 탄핵정국.

김기춘의 언론 탄압에 고발장을 제출한 언론단체, 쓰레기 봉투속 메모에서 김기춘은 이러한 탄압을 전면부정하고 나선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 했던 김기춘, "이와 같은 중대한 우리 생에 다시 없을 것."이라던 그의 말 그리고 2016년 박 대통령 탄핵정국. ⓒ JTBC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발의를 주도했던 김기춘. 당시 김기춘은 "대통령 탄핵심판이라는 이와 같은 중대한 사건은 우리 생에 다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일 232만 국민 촛불이 국회를 향해 탄핵을 반드시 하라는 지엄한 명령을 했다. 현재 9일 탄핵 열차에 탑승한 여야의원 수는 탄핵정족수 200명을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9일 탄핵이 가결될 경우 김기춘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또 그가 저지른 각종 불법적 행위가 직권남용 이외에도 산재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특검에서 청와대의 외압 없이 제대로 된 수사로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경위를 밝히는 것과 더불어 김기춘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하려면 9일 탄핵이 반드시 가결되어 박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최주호 시민기자의 오마이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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