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콜>의 한장면

<커튼콜>의 한장면 ⓒ (주)모멘텀엔터테인먼트


연극 연출자 민기(장현성 분)와 프로듀서 철구(박철민 분)는 같은 극단에서 삼류 에로 연극을 공연해 온 오랜 친구 사이다. 그러던 어느날 이들은 에로 연극조차 지속할 수 없는 경기 불황에 극단 해체 통보를 받는다. 이에 민기는 마지막 공연으로 '햄릿'을 무대에 올리고자 하고, 철구와 배우들도 의기투합해 극단 대표 몰래 연습을 이어간다. 마침내 무대에 올라 관객과 만난 이들. 하지만 공연은 예기치 사고가 발생하면서 중단 위기에 처한다. 이에 민기는 즉석에서 시나리오를 바꿔가며 공연을 강행하고, 그렇게 어디에도 없던 '햄릿' 무대가 위태롭게 이어진다.

영화 <커튼콜>은 미국 브로드웨이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 <버드맨>(2014)을 대학로 연극계로 옮겨온 듯한 작품이다. 연극에 대한 애정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고 대부분의 시퀀스가 연극무대를 중심으로 벌어진다. 모든 걸 건 연극 한 편을 영화의 중심에 두면서도 공연 자체와 더불어 무대 뒤 인물들의 모습을 내내 뒤쫓는다. 다만 <버드맨>이 브로드웨이 한구석에서 '마음의 병'을 앓는 개인들의 서사에 집중한다면, <커튼콜>은 소규모 극단이 처한 어려움과 더불어 그곳에 몸담은 이들의 꿈과 열정을 응원한다. 그렇게 영화는 '이 작은 나라에서도 특히나 작은 무대'를 지키는 이들을 소환해 연극계의 현주소를 스크린 위에 전시한다.

 <커튼콜>의 한장면

<커튼콜>의 한장면 ⓒ (주)모멘텀엔터테인먼트


줄곧 에로 연극만 해온 단원들이 '햄릿'을 준비하며 맞딱뜨리는 문제들은 영화를 관통하며 웃음과 시사점을 동시에 남긴다. '에로 전문배우'라는 딱지를 떼고 딸 앞에 당당한 '배우 엄마'가 되고 싶은 지연(유지수 분), 걸그룹 출신이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 만큼은 누구 못지 않은 슬기(채서진 분), 그리고 재치 넘치는 애드립 때문에 관객 앞에 코믹 배우로만 각인된 철구까지. 대중이 규정한 이미지 속에 안주하지 않고 실패를 감수하며 새로운 무대에 도전하는 이들의 태도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절실하다. '산으로 가는' 공연에 관객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나도록 계속되는 우스꽝스런 무대는 결국 관객의 가슴을 힘껏 울리고야 만다.

민기와 철구는 물론이고,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이 매력적이란 점은 <커튼콜>을 견인하는 또다른 동력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영화 속 연극'을 다루는 참신한 설정이 큰 몫을 한다. 카메라 앞에서, 동시에 무대 위에서 종횡무진하는 인물들의 개성은 각각 더할 나위 없이 뚜렷하고, 극중 <햄릿> 공연을 대하는 이들의 열정은 동시에 영화에 임하는 실제 배우들의 열정으로도 비춰진다. <커튼콜>을 준비하면서 "연극 연습실을 장만해 다같이 오랜 시간 호흡을 맞췄다"는 배우들의 연기가 실제 극단 동료처럼 서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이유다.

 <커튼콜>의 한장면

<커튼콜>의 한장면 ⓒ (주)모멘텀엔터테인먼트


그런 의미에서 출연 비중과 무관하게 영화에서 반짝이는 배우들의 발견은 <커튼콜>의 커다란 수확이다. 특히 지연의 복합적인 감정을 심도 깊게 보여주는 배우 유지수, 그리고 지연과 '19금' 연기 호흡을 맞추며 내심 그를 좋아하는 봉수 역 장혁진의 연기는 인상깊게 남는다. 걸그룹 출신 '낙하산' 배우 슬기 역의 채서진과 그의 매니저로 분한 고보결 또한 신예 여배우 특유의 발랄한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부산행>에서 승무원을 연기했던 배우 장혁진, 극중 연극 나레이션을 담당하는 문성 역의 신문성의 코믹 연기도 영화 속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제 사람들은 내가 무슨 말만 해도 웃는다." 극중 철구의 입을 빌어 한탄하는 배우 박철민의 속내는 영화의 메시지를 그대로 대변하는 지점이다. 대중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내면의 유혹과도 싸워야 하는 운명을 지닌 사람들. 이들을 조심스레 위로하며 넌지시 응원을 건네는 <커튼콜>은 관객에게도 배우에게도 퍽 고마운 작품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스크린에 다시 등장해 커튼콜에 화답하는 배우 한 명 한 명에게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커튼콜 에로연극 연극배우 박철민 장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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