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테일 오브 테일즈>의 한 장면. 늙은 노파 도라는 난봉꾼 왕의 사랑을 얻기를 갈구했으나 높은 성에서 던져져 깊은 숲 속에서 사경을 헤매게 된다. 그녀를 발견한지나가던 마녀가 젊음과 아름다움을 되찾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영화 <테일 오브 테일즈>의 한 장면. 늙은 노파 도라는 난봉꾼 왕의 사랑을 얻기를 갈구했으나 높은 성에서 던져져 깊은 숲 속에서 사경을 헤매게 된다. 그녀를 발견한지나가던 마녀가 젊음과 아름다움을 되찾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 01 디스트리뷰션


유럽의 동화집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독일의 그림 형제 동화집이나 프랑스의 샤를 페로가 쓴 동화집입니다. 그런데 그림 형제보다 약 200년, 샤를 페로보다 50년 앞서 민담들을 수집하여 책으로 낸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17세기 이탈리아의 시인 잠바티스타 바실레입니다.

그가 쓴 동화집 <펜타메로네>(2016년 국내 출간)는 10명의 이야기꾼이 하루에 1편씩 열 개의 이야기를 5일 동안 들려주는 형식으로 돼 있습니다.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의 구성과 형식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순화되기 전의, 원색적이고 잔인한 이야기들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잠자는 숲속의 공주>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 등 유명동화의 최초 버전이라고 할 만한 작품들이 실려 있기도 하지요.

이 영화 <테일 오브 테일즈>는 이 책의 첫째 날 이야기 중 세 편을 뽑아, 인접한 세 왕국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로 각색한 것입니다. 왕자를 낳기 위해 괴물의 심장을 먹은 여왕, 벼룩을 사육하는 재미에 빠진 끝에 공주를 괴물에게 시집 보내게 된 왕, 난봉꾼 왕의 연인이 되기 위해 젊음을 꿈꾼 노파 자매가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독자적인 줄거리를 갖고 진행되며 다소 느슨한 방식으로 교차 편집되어 있습니다.

 영화 <테일 오브 테일즈>의 한 장면. 오랫동안 불임이던 롱트렐리스 여왕(셀마 헤이엑)은 괴물의 심장을 먹고 남편을 희생시켜 가면서 얻은 왕자 엘리아스에게 무시무시한 집착을 보인다.

영화 <테일 오브 테일즈>의 한 장면. 오랫동안 불임이던 롱트렐리스 여왕(셀마 헤이엑)은 괴물의 심장을 먹고 남편을 희생시켜 가면서 얻은 왕자 엘리아스에게 무시무시한 집착을 보인다. ⓒ 01 디스트리뷰션


세 이야기 모두, 기괴한 설정이 만든 균열이 서서히 커진 끝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는 식의 구성을 보입니다. 여느 동화가 그렇 듯, 특별한 반전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인과응보의 원리가 작용하고, 불길한 예감이 언제나 틀린 적이 없이 들어 맞지요.

전체적인 느낌은 영화로 읽는 동화책이라고 하면 딱 맞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 속 한 문장 한 문장을 차근차근 읽어 나가는 기분이 드는 느린 템포, 동화 속의 환상적인 삽화를 그대로 옮긴 듯한 화면 구성, 대사를 가급적 절제하고 인물의 행동과 표정으로 상황을 보여 주는 데 집중하는 연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우아하게 엮어 나가는 음악 등이 어우러져 그런 느낌을 만들어 냅니다. 

그 중에서도 판타지의 특별한 느낌을 자아내기 위해 선택된 로케이션 장소들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은 이탈리아 각지의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에서 촬영되었다고 합니다. 시칠리아의 알칸타라 협곡을 비롯한 자연 지형들과, 풀리아의 카스텔 델 몬테 성 같은 중세 건축물들은, CG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그 자체로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냅니다.

감독 마테오 가로네는 나폴리 폭력 조직의 세계를 다룬 <고모라>와 리얼리티 쇼를 통해 인생 역전의 꿈을 꾸는 남자의 이야기 <리얼리티: 꿈의 미로>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두 차례 받은 바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생생한 현장감을 살리는 스타일이 돋보였는데, 이 잔혹 동화 아이템 역시 이야기 속 판타지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도드라집니다.

국제적으로 명성을 쌓은 셀마 헤이엑과 뱅상 카셀, 토비 존스는 각각 주요 배역인 괴물의 심장을 먹는 여왕과, 호색한 왕, 벼룩을 사육하는 왕 역할을 맡아 영화의 중심을 잘 잡아 주고 있습니다. 존 C. 라일리도 작은 배역이지만 초반의 집중력과 흥미를 충분히 유지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테일 오브 테일즈>의 포스터. 무분별한 탐욕의 결과는 파멸이라는 주제를 가진 이 영화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일족 및 그 부역자들로 대표되는 탐욕의 화신들의 전횡과 그들이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려 준다.

<테일 오브 테일즈>의 포스터. 무분별한 탐욕의 결과는 파멸이라는 주제를 가진 이 영화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일족 및 그 부역자들로 대표되는 탐욕의 화신들의 전횡과 그들이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려 준다. ⓒ 01 디스트리뷰션


이 영화 속 세 가지 이야기의 공통된 주제는, 불가능한 욕망에 집착하면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룰 수 없는 욕망에 매달리다가 사달이 나는 인물들의 이야기니까요.

인간의 욕망을 과도한 것으로 보아 늘 경계하는 철학 사조들도 있지만, 인류는 주어진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욕구를 지속적으로 추구한 끝에 발전하게 된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제의 불가능한 욕망을 내일의 새로운 발견과 도약으로 연결짓곤 했던 것이 우리의 역사였습니다.

욕망과 탐욕을 구분하는 것은 언제나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입니다. 현실적인 조건과 자격을 갖추고 잘 준비된 상태에서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과, 아무 것도 노력하지 않으면서 반칙을 일삼으며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니까요.

각종 전횡과 부패로 점철된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일족 및 그 부역자들의 악행을 탐욕이라 부르면서 모두가 치를 떠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이 영화 속에 드러난 자연의 섭리에 따르면 그런 자들의 결말은 언제나 파멸 뿐입니다. 이 어지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떠맡은 책무는, 그들을 제대로 단죄하여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는 일일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테일 오브 테일즈 마테오 가로네 셀마 헤이엑 뱅상 카셀 토비 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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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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