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대한민국 사회 전반을 뿌리채 흔들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스포츠계까지 마수를 뻗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이 배출한 대표적인 스포츠스타인 수영의 '마린보이' 박태환과 '피겨여제' 김연아 등도 권력에 의하여 부당한 대우를 강요받은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박태환은 2014년 금지약물 복용혐의로 국제수영연맹으로부터 18개월 징계를 받았다. 여기까지는 본인이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규정에 따른 합당한 징계였다. 박태환은 징계가 끝난 후 4월 동아수영대회를 통하여 리우올림픽 본선출전 자격을 획득했지만 돌연 대한체육회가 '징계를 받은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자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규정을 내세워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도 금지하는 '이중 징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큰 논란을 불러왔다.

체육회도 처음부터 이 규정이 국제 스포츠계 원칙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개정 논의가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 여부가 핫이슈로 떠오른 지난 4월에 돌연 규정 개정은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 오히려 특정인을 의식한 규정 개정이 특혜라는 논리에 초점을 맞춰 이중징계의 본질을 호도하기도 했다.

대한체육회의 이상했던 박태환 발목 잡기

마지막 경기에 긴장한 박태환 26일 오후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남자 자유형 1500미터 패스트히트 경기에서 결승전에 출전하기 위해 경기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지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박태환의 모습. ⓒ 이희훈


당시에도 체육계에서는 노골적으로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을 저지하려는 듯한 체육회의 집착에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사실상 체육회가 정부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압박을 받은 게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했다. 일개 스포츠선수인 대체 박태환이 무엇때문에 정부의 눈 밖에 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박태환은 이후 국내 법원과 국제 스포츠중재 재판소의 결정을 통하여 합법적으로 국가대표 자격을 회복하고 극적으로 리우올림픽 출전에 성공했지만, 정작 올림픽에서는 전 종목 예선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을 지지했던 이들도 실망스러운 성적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박태환은 오명 속에 잊혀진 선수가 되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언론을 통하여 터져나오면서 그동안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권력의 전횡이 사회 곳곳에 개입한 정황이 세상에 공개되기 시작했고, 스포츠계와 박태환도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공교롭게도 리우 올림픽 당시 박태환의 대표 선발 논란은 사실상 정유라의 나비효과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2013년 4월 경북 상주에서 열린 승마대회에서 비선 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우승에 실패한 이후 이례적으로 문체부가 대대적인 감사를 통하여 승마협회를 압박하는가 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체육계 비리를 근절시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감사 결과가 청와대의 의도와 달리 나오자 오히려 문체부의 감사 책임자들을 경질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국가 권력이 스포츠계에 개입하여 특정 협회를 장악하고 특정인을 밀어준 엽기적인 사건이다. 박태환의 발목을 잡을 뻔했던 국가대표 선발 규정 강화도 이때 이루어졌다.

체육계 실세이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인물 중 하나로 거론되던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 차관이 박태환을 직접 만나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도록 협박한 사실도 최근 공개됐다. 박태환의 에이전트사인 에스피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지난 5월 김종 차관과 박태환 측도 만나 이번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면 기업 스폰서를 알아봐주고 추후 대학 교수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회유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다행히 재기 청신호 밝힌 박태환

 '마린보이' 박태환이 21일 오전 일본 도쿄 시내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인터뷰하며 김종 전 차관과 관련된 발언을 하고 있다.

'마린보이' 박태환이 21일 오전 일본 도쿄 시내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인터뷰하며 김종 전 차관과 관련된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결국 문체부는 박 대통령의 의지로 이루어진 새 규정을 어떻게든 지키기 위하여 이중징계라는 무리수에도 불구하고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을 막으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결국 박태환처럼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인재조차도, 정유라처럼 부와 권력을 등에 업은 타락한 금수저 앞에서는 무기력한 흙수저에 불과했다는 씁쓸한 사실을 보여준다.

박태환이 리우 올림픽에서 유난히 부진했던 사정도 그동안은 단순히 훈련 부족 정도로만 알려져 왔지만 앞뒤 정황을 살펴보면 더 소름이 돋는다. 이미 올림픽  출전을 둘러싸고 대한체육회와 갈등을 벌이며 육체적-심리적으로 지쳐있을 상황에서, 공적인 권력을 등에 업은 '국가 관료'에게 올림픽 출전을 넘어 향후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노골적인 협박까지 들었다. 일개 스포츠선수이자 어린 청년으로서 이런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결국 어렵게 올림픽 출전권은 획득했지만 박태환은 물리적인 시간 부족은 물론이고 도저히 훈련에 몰입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컨디션은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부패한 권력이 공정해야 할 스포츠의 순수성은 물론이고 한 개인의 인생까지 얼마나 짓밟아 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섬뜩한 장면이다.

다행히 올림픽의 시련을 극복하고 박태환은 다시 일어섰다. 박태환은 최근 일본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수영선수권'에 출전하여 동메달 1개 포함 4관왕을 휩쓸며 건재를 과시했다. 박태환이 여전히 국내 수영의 독보적인 간판스타이자 세계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선수라는 것을 증명했다.

김연아의 스포츠영웅 제외, 이것도 권력의 보복인가

김연아 역시 정부 행사에 불참한 것이 빌미가 되어 보복을 받은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2014년 11월 26일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시를 받은 체조협회는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한 늘품체조 시연회에 김연아를 초청했으나 당시 김연아는 평창 올림픽과 유스 올림픽 홍보를 이유로 거절했다.

이후 김연아는 대한체육회가 선정하는 2015년 스포츠영웅에서 제외되면서 의혹이 일었다. 당시 김연아는 12명의 후보 가운데 온라인 투표에서 약 83%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고도, 최종심사에서 돌연 규정에 없던 나이 제한이 신설되며 후보에서 제외됐다. 물론 이를 두고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김연아는 2016년에는 다시 스포츠 영웅에 포함됐지만 뒷맛은 여전히 찜찜하다. 그나마 김연아가 은퇴 선수가 아니었다면 박태환 같이 심각한 정치적 보복을 당했을 가능성도 있다.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스러운 스토리, 정상적인 사회적 상식과 선진 민주주의 의식이 자리잡은 국가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유치하고 한심한 일들이 2016년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공공연한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공평한 경쟁과 기회가 보장되어야 할 스포츠와 문화 분야에서마저도 국가 권력이 일부 기득권의 사리사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는 모습은 국민들을 분노하게 한다.

스포츠와 문화 예술이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반드시 독립되고 보호받아야 할 이유를, 바로 지금의 정권이 반면교사로서 보여주고 있다. 부패한 권력의 폭주를 막고 모든 것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힘은 오로지 깨어있는 국민들의 심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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