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현, 두 도시 이야기> 포스터. 그를 추억하게 된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포스터.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배급위원회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세상, 모두가 먹는 거, 입는 거,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신명나게 이어지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아래 <무현>) 속 노무현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그가 떠난 지 7년,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더불어 함께 살고 있는가. 먹는 거, 입는 거 걱정은 덜 하게 됐나. 그래서 하루하루 신명나게 살고 있는가. <무현>은 그렇게 우리의 현실을 때로는 고통스럽게, 때로는 실감나게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노무현이라서'만이 아니다. 때마침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때문도 아니다. 20여 년 전 노무현의 말들이, 그의 눈빛이, 그의 눈물과 아픔이 바로 지금, 여기의 우리들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기억하는 '우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노무현과 현재를 연결 짓고, '또 다른 무현' 백무현 화백은 지난 4.13 총선 출마라는 무모할지 모르는 도전을 감행했다. 자칫 잘못하면 전직 대통령 기록영화로 전락할 수 있었던 <무현>은 그렇게 과거와 현재를 부지런히 오가며 노무현을 기억하는 우리들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 진심 어린 시도가 통했던 걸까. 크라우드 펀딩으로 1억2300여만 원을 모았다. 노무현을 기억하는 관객들이 직접 제작자로 나선 셈이다. 지난달 26일 30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무현>은 관객들의 입소문과 응원에 힘입어 박스오피스를 역주행 중이다. 100개가 채 되지 않는 스크린 수로 박스오피스 3위까지 올랐다. 9일까지 9만 명을 동원하고, 10일 10만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 여세를 몰아 독립다큐 흥행 기록을 갈아 치울 기세다.

개봉 둘째 주 주말이던 지난 5일, 전국을 돌며 무대인사에 한창이던 <무현>의 세 주역을 만났다. 극영화를 준비하다 노무현 다큐에 뛰어든 전인환 감독, 노무현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내레이션을 맡고 출연까지 감행한 김원명 작가, <그라운드의 이방인>, <60만번의 트라이> 등의 다큐를 제작했던 조은성 총괄 프로듀서가 그 주인공이다. 고인에게 누가 되지 않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의기투합한 세 남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우리들과 백무현, 노무현을 소환하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좌로부터) 김원명 작가, 전인환 감독, 조은성 PD.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좌로부터) 김원명 작가, 전인환 감독, 조은성 PD.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배급위원회


- 흥행세가 뚜렷하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전인환 감독 : "얼떨떨하기도 하고 담담하기도 하다. 축하 인사가 오긴 하는데 아직 실감은 안 난다. 워낙 적은 극장 수로 시작하기도 했지만, 관객들 호응이 중요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우리 영화 10만은 상업영화 100만, 500만 보다 가치가 있지 않나 싶다." 

김원명 작가 : "여러 군데 개봉 인사를 다니는데, 개봉관 규모도 작고 그런데도 공기가 무척 따뜻하다. 그러니까 신이 더 난다. 관객들이 관람 후에 격려를 많이 해주시니까 더더욱.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서도 관객들이 얼굴이 빨개져서는 자리를 지켜 주신다."

전인환 감독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그렇고 얼마나 상황이, 시국이 엉망이면 이럴까도 싶고. 무언가 목이 말랐던 차에 노무현이 그 상처받은 관객들을 위로해 주는 거다. 어제 도덕선생님은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중학생인 제자 이야기를 하더라. 나라가 뭐냐는 질문에 "조국은 부모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조국은 자식이라고. 자식은 내가 안 돌보고 내버려두면 비뚤어지고 엇나가지 않느냐고. 관객들이 전부 박수를 쳤다. 관객들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지만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도 참 많이 하신다."

- 소위 '노무현 영화', 민감할 수도 있는 소재다. 의기투합한 계기가 있을 텐데. 
전인환 감독 : "가족친지나 지인들 모두 많이들 말렸다. 제가 그런데 좀 둔하다. 창작열이 강했던 '때'가 맞기도 했고. 노무현 서거 국민장 영상을 소장하고 있기도 했다. 당일 날 왠지 기록을 해둬야 할 거 같아서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의무였는지, 의지였는지. 남겨야지, 기록해야지 했었는데, 이제야 그 영상을 의미 있게 쓰게 됐다."

김원명 작가 : "처음 조은성 피디에게 토크 장면에 나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따로 생각을 했지.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시국이 어수선 했잖나. 마흔이 넘어가면서, 나도 기성세대로서 사회적인, 공동체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더라. 또 전인환 감독을 만나면서 확실하게 하게 됐다. 첫인상이 무척 진솔해 보였고, 무게 있게 이야기를 꺼내더라. 그 다음엔 오히려 비중 있게 참여해달라고 해서 고마웠다. 좋은 사람들끼리 의미 있는 작업을 해 보는 것도 내 삶에 있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 함께 작업했더라도 '인간 노무현'에 대한 각자의 기억은 다를 것 같다. 작업 전후로 느낌이 달라졌을 수도 있고.
전인환 감독 : "과거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찍었는데, 재임 때는 실망하기도 했고, 원망도 들었고. 어떤 트라우마를 겪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출발부터 '노사모'나 '노빠'들이 나오는 것 보다 '우리들'이 나와야 한다 싶었다. 그리고 삼백 시간이 넘는 영상들을 체크하다 보니, 노무현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원망도 있었지만, 그 강함도 그렇고 인간적으로 좋아지더라. 편집도 괴롭고, 돈도 없고, 힘들긴 했지만, 이제 관객들과 만나면서는 노무현 때문에 웃고 울었던 시간이 끝났구나 싶기도 하고."

김원명 작가 : "예나 지금이나, 노무현의 정책이나 인간성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건 없다. 하지만 이번 작업을 하면서 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영화 초반부에도 나오지만,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점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 전엔 자살이란 전제 하에 프레임을 짜놓고 원인을 파악했던 것 같다. 근데 아버지(문재인, 노무현 등과 부산시민민주협의회를 만들고, 고 장준하 선생이 운영했던 도서출판 사상의 편집주간을 지낸 김희로씨)는 다르더라.

자살, 타살이 문제가 아니라 투쟁의 일환이고 역사발전의 하나라는 관점으로 보는 거다. 장준하 선생도 돌아가신 뒤로 의문사 1호, 실족사 그렇게만 판단된다. 그 분이 한 항일운동부터 반독재 운동까지는 기억을 못한다. 제 딸도 몇 년 전에 '노무현이 자살했어?'라고 묻는데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자살이니 타살이니 하는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흐름에 있어 투쟁이고 저항이라는 관점으로 변한 게 큰 것 같다."

조은성 PD : "4년 전 기획하면서부터, 평범한 우리가 기억하는 촌놈 노무현이 로그라인이었다. 카메라 하나 들고 지인들을 찾아가서 각자 기억 속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거지. 그에 관련된 소품들도 찍고. 우여곡절 끝에 완성했는데 처음과는 많이 달라졌다. 카메라도 여러 대 쓰고, 드론까지 띄우고(웃음).

막상 극장 개봉을 앞두니 두렵긴 하더라.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고, 욕을 먹으면 어떡하나. 그래도 전인환 감독이 한정된 예산과 시간 안에 잘 뽑아낸 것 같다. 아쉬운 건, 상영시간 때문에 빠진 미공개 컷이 너무 많다. 그 자료화면들이 너무 아깝다. 내년 5월 8주기 때 2시간, 3시간 버전으로 편집하면 어떨까 싶다."

영화보다 재밌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경쟁하는 힐링 다큐

 충무로의 한 극장에서 무대인사에 나선 (좌로부터) 장철영 사진사와 김원명 작가, 전인환 감독, 조은성 PD.

충무로의 한 극장에서 무대인사에 나선 (좌로부터) 장철영 사진사와 김원명 작가, 전인환 감독, 조은성 PD.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배급위원회


- 일부에선 영화적인 완성도에 대해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조은성 PD : "불친절한 부분이 있다. 과거와 현재, 두 무현이라는 중심축에 우리들의 이야기까지. 과거와 현재, 씨줄과 날줄을 엮어가는 구성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관점이 다른 것 같다. 설명적인 시퀀스가 들어갔다면 쉬웠을 텐데, 그럼 또 방송 다큐와 차별점도 없어지고. 일일이 다 이해시킬 것인가에 대한 결정의 순간들이 있었는데, 지지자였든 아니든 확실히 그 모두를 이해시키려고 하진 않았다."

김원명 작가 : "영화적으로 감독과 많은 얘기를 했는데, 노무현을 제외한 나머지 출연진들에 관해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백무현과 노무현의 투톱이 말이 되나? 팟캐스트 <이이제이> 출연자든 이름 없는 '우리들'이 어떤 대표성을 띠나? 그런 비판들을 많이 듣기도 했다. 아쉬운 점은 없지 않지만 전반적으로 전 감독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캐릭터에 집중한 것 말이다. 제작비나 현실적인 부분을 감안해도 그렇고. '우리들'이 더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갔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은 있다."

전인환 감독 : "저도 아쉬운 건 많은데(웃음). 우선 내년으로 넘어가면 안 됐다. 대선정국이라서 여러 문제가 있을 걸로 판단했다. 그런 점에서 제작위원회 역할이 컸다. 정무적인 현실 얘기도 많이 들었고. 올해 안에 끝내자, 그래서 밤을 새고 최대한 맞춰서 개봉한 거다.

백무현 후보님에 대해서도 원명 형도 이의제기를 많이 했는데... 토크로 참여하신 분들도 그렇고 참 다들 집요했다. 그 만큼 충고도 많이 해주고 방향에 대해 얘기해 주고. 김원명 작가도, 노무현 전속 사진사인 장철영 사진사에게도, 정말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 사람들과 시너지가 크게 났다. '두 도시 이야기'라는, 그러니까 백무현 후보를 또 다른 축으로 잡는 것도 김원명 작가와 이야기하다 나온 거다.

개인적으로는, 과거 부산 유세 장면을 활용하면서 '노무현의 부활'이다 싶었다. 노무현이 살아 움직이면서 우리한테 얘기하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 다큐로 그걸 얘기하는 게 목적이었다. 이런 시대에 마치 노무현이 살아서 우리에게 얘기하는 듯한..."

조은성 피디 : "트위터에서 그런 글을 본 기억이 난다. '영화가 끝나고 노무현이 마치 걸어 들어와 무대 인사를 하러 올 것 같다'고."

- 개인적으론, 국민장 장면에서 울컥할 수밖에 없더라. 익숙한 뉴스 화면과는 다른 시각에서 촬영한 것이기도 하고.
조은성 피디 : "서거 당시 일본에서 <그라운드 이방인>을 작업 중이이라 가보지도 못 했다. 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저렇게 돌아가시는 게 맞나 싶었다. 우리 민주주의가 이렇게 후퇴하나. 원망을 하기도 했다. 왜 돌아가셔서 나라를 후퇴시켰느냐고. 모욕감을 느끼면서도 살아 있었으면 이렇게 후퇴했을까도 싶고. 원망의 다른 말은 그리움이라고 하더라. 리더가 사라지고 어른이 사라진 시대에, 원망이 그리움으로 변해서 다큐를 찍었다. 살아계셨다면 안 만들었겠지."

전인환 감독 : "예전엔 노무현은 자살한 대통령이고, 한편으로 원망도 많았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느낀 건, 노무현이 어떤 멘토 같았다. 인생에 대한 얘기, 정치, 사회, 가족에 대한 얘기들... 편집에서 빠졌는데, 선거에서 지고 단독 인터뷰에서 노무현이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에 관한 얘기를 한다. 딱 같은 생각이다.

노무현이 세상은 아마추어가 만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 프로는 틀에서 움직이지만, 아마추어는 그 틀을 깬다고. 노무현이 그렇지 않나. 변호인이었다가 정치인이 되면서 스스로 그 틀을 깼다. 영화하는 사람으로서 고민이 많았는데, 그런 노무현의 삶과 모습에서 용기를 많이 얻었다."

김원명 작가 :  "어릴 때 봤던 노무현은 내게 그냥 아저씨였고, 변호사였다. 이번 영화를 하면서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봉하음악제도 가고 그랬는데, 그 수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대절해서까지 만나러 오는 걸 직접 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아저씨, 그냥 전직 대통령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들이 건배 제의를 우리는 노무현입니다, 라고 한다. 우리가 뭘까 하는 고민이 들더라.

나쁘다는 말의 우리말 뜻이 '온리 미', '나뿐이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쁜이 된 거라고. 우리 선조들은 자기만 생각하는 걸 나쁘다고 인식한 거다. 우리는, 어떤 우리, 공동체를 생각하는 우리인 거다. <무현>을 보는 관객들 중 가난하고 없이 사시는 분들도 많은데, 희한하게도 그 분들이 더 우리와 공동체를 생각하더라. 그러면, '노무현이 우리다'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 <무현>은 이른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시대에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어떤 관객들에게는 분명 <무현>이 힐링 효과를 주는 것 같다.
김원명 작가 : 지금이 역설적으로, 지난 9년 동안 가장 희망적인 것 아닌가 싶다. 우리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 괴물이 득실거리니까 우리 이성이 반발적으로 깨어나고. 그 속에서 노무현을 등장시키고 싶은 것 아닐까. 이 시국이 영화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요즘은 JTBC가 영화보다 더 재밌는 것 아닌가 싶다(웃음). 섣부르게 희망의 언어를 얘기할 수는 없다. 그래도 갈 길이 멀긴 하겠지만, 이제야 제대로 된 나라가 되어가는 기로에 선 것 같다.

전인환 감독 : 지금 이 상황은 썩을 대로 썩고 모든 게 엉망이어서 필연적으로 터질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그러다보니 노무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제2의, 제3의 노무현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겠지만, 노무현을 찾게 되는 지금 상황이 너무 참담하다. 그래서 연설 장면 중에 노무현이 지난 10년간 어려운 길을 선택해 왔다고 말하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넣었다.

개인적으로도 지난 10년 동안 너무 힘들었고, 고난의 길이었고, 심지어 정치도 멀리하게 됐다. 그런데 다시 정치적인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세상을 다시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생각하게 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다시금 노무현에 대해,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더 나은 세상을 고민하게 만드는 포인트가 되는 것 같다.

조은성 피디 : 우리는 '인간 노무현'만 보여주는데, 그런 모습을 보여준 지도자가 없으니까 더 현정권과 비교되는 것 같다. 이번 게이트만 해도, 김대중, 노무현 때였다면 탄핵이고 하야고 뒤집어 질 일 아닌가. 인간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시대를 현 정권이 만들어 준 거다. 그래서 꼭 와서 우리 영화 좀 보라고 하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은 영화 보는 거 좋아하잖나. 최순실이고, 이정현 대표고 보러 오시라. 김진태 의원이고, 새누리당 의원들 다 와서 보시라고 하고 싶다.

무현두도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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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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