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상에 감응하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여러 다큐멘터리들. 좌측 상단 부터 시계방향으로 <워낭소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자백> <울지마 톤즈>의 한 장면.

사회 현상에 감응하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여러 다큐멘터리들. 좌측 상단 부터 시계방향으로 <워낭소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자백> <울지마 톤즈>의 한 장면. ⓒ 스튜디오 느림보, 아거스필름, 뉴스타파, KB


상업 영화의 가시적 대흥행 기준이 천만 관객이라면 다큐멘터리 영화는 십만 관객이다. 배급 규모와 영화 제작비를 고려할 때 십만 관객을 넘은 다큐멘터리는 그 자체로 크게 성공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숫자가 전부는 아니다. 상업영화야 장르와 이야기 구조, 배우의 연기 등이 변수지만 현실 세계를 바라보는 감독의 관점이 두드러지게 담기는 다큐멘터리 특성상 작품의 존재 자체로 소중한 경우가 많다. 

그만큼 다큐멘터리는 이 사회와 그 구성원과 밀접하다. 관객 수의 증감으로 영화의 가치를 따진다는 게 일정 부분 오류도 있을 수 있지만 그만큼 해당 작품에 대한 가장 민감한 반응척도는 될 수 있다. 역대 흥행 다큐와 우리 사회상의 상관관계가 있었을까. <오마이스타>가 이를 정리해보았다.

[휴머니즘 결핍 시대] <워낭소리>(2009),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워낭소리>는 우선 다큐멘터리 사상 처음으로 대흥행 기록을 세운 작품이다. 경상북도 봉화 산골에서 팔순 노인 부부와 이들이 키우는 늙은 소의 일상을 담담하게 다룬 해당 작품은 종영 당시 최종 누적관객 수가 293만에 달했다. 개봉 당시 단 6개의 상영관에서 시작한 영화는 한 달 만에 193개 상영관으로 확대돼 꾸준히 관객을 불러들였다.

당시는 이명박 정권 때였고, 배우 출신 유인촌씨가 문화부장관을 하던 때였다. 독립영화 및 작은 영화를 장려해도 시원찮을 판에 "될성부른 영화 몇 편을 집중 지원해야 한다"며 독립영화 개봉 지원 예산 5억을 삭감해버리는 등 문화정책이 한창 퇴보하던 때이기도 하다. 또한 당시는 일명 'MB노믹스' 혹은 '7‧4‧7 공약' 등 경제 정책이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무한경쟁체제 강화를 유지한다는 비판이 일던 때였다. 이 와중에 인간의 가치와 교감의 진실성을 다룬 작품이 나오며 관객들의 마음을 훔쳤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워낭소리> 개봉 두 달 후 참모진과 함께 관람하며 다큐멘터리 대기록에 숟가락 하나를 얹기도 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1일 국회 문방위 국정감사에서 답변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010년 국회 문방위 국정감사에서 답변자료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워낭소리>의 흥행 기록을 깨며 580만 관객이라는 다큐멘터리 사상 최다 관객을 불러들였다. 이 작품 역시 이야기 자체는 매우 담담하다. 죽음을 앞둔 노부부의 삶을 그리며 이들의 변치 않는 사랑을 잔잔하게 제시했다. 당시 진모영 감독은 흥행 이유에 대해 "사랑이 무엇인지 그 마음을 가꾸고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그걸 제시하는 영화라서 아닐까"라고 말한 바 있다.

동시에 2014년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사회,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한 해였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으며, 정부의 무책임한 처사와 안일한 대처에 국민적인 분노가 커졌던 때였다.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돈으로 환산해 유가족들을 오히려 공격하는 일부 누리꾼과 보수층에 대한 환멸이었을까. 일반 관객들은 당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헝거게임> 시리즈나 국내 상업영화 <빅매치>에 버금 갈 정도로 <님아...>를 관람했다. 

[분노의 시대] <두 개의 문>(2012), <자백>(2016)

 영화 <두 개의 문>과 <자백>의 포스터.

영화 <두 개의 문>과 <자백>의 포스터. ⓒ 연분홍치마, 뉴스타파


다큐멘터리의 본질적 기능 중 하나가 사회 고발 내지는 환기라면 <두 개의 문>과 현재 상영 중인 <자백>은 거기에 충실한 작품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2009년의 용산 참사 사건은 생존권을 부르짖은 주민에 폭력으로 대응한 정권의 무자비함을 고발했다. 단순히 고발한 것뿐만이 아니라 세련된 방식으로 시민을 호도하고 증거를 조작하는 뻔뻔함을 제사하게 제시했다. 2012년 6월 개봉한 <두 개의 문> 역시 16개라는 초라한 상영관 수로 시작했다. 이후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아 6만 관객을 돌파했고, 종영 당시 7만 여명의 관객이 호응했다.

영화 개봉 때는 이명박 정권 말기였다. 친인척 비리를 비롯해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을 비밀리에 추진하는 등 정권의 문제점이 극대화 되어 있었다. 이와 함께 국민의 목소리를 끈질기게 외면하는 태도에 무력감마저 커지던 당시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당시 정권의 치부를 드러냈다. 700~800개 상영관을 얻어 승승장구 하던 다른 상업영화에 비하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흥행이지만 <두 개의 문>이 개봉 한 달 뒤에도 50개의 상영관을 채 못 넘겼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10만 명은 넘지 않았지만 비율로 치면 그 이상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최근 개봉한 <자백>은 누적관객 수 12만을 기록했고, 여전히 기록을 깨고 있다. 시사 다큐 중 최고의 흥행이다. 알려진 대로 해당 영화는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을 다루고 있다. 유우성씨를 비롯해 독재정권 때부터 쭉 이어져온 국가의 폭력을 낱낱이 파헤쳤다. 우울하고 암울한 현실이지만 현존하는 거대 권력 기관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통쾌함마저 느껴진다. 동시에 이런 고발에도 전혀 사과할 줄 모르는 오만함에 분노가 치밀기까지 한다.

현재는 박근혜 정권 말기로 넘어가는 시기다.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국정 농단의 실상이 드러나고 있고, 외교적으로 매번 무시당하는 통수권자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이 짙어져 가는 요즘이다. 

[추모와 치유] <울지마 톤즈>(2010), <무현, 두 도시 이야기>(2016)

지난 2010년 9월 개봉한 <울지마 톤즈>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생을 마감한 고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메마른 땅에서 교육자이자 종교인, 그리고 의사로 봉사한 그의 헌신적 삶이 관객을 울렸다. 무려 44만 명의 관객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왜 하느님은 빨리 데려가느냐"며 눈물을 흘리는 수단 사람들의 모습이 많은 관객의 마음에 각인 됐을 것이다.

역시 사랑이 부재한 사회에 대한 서글픔이었을까. 광우병 파동과 용산참사에 분노한 국민들이 몇 차례 촛불을 든 이후였다. 2010년 5월 천안함 침몰 사건을 "북한의 군사도발"로 규정해 사회적 불안감이 높아졌던 때였다. 이를 반영하듯 이어진 6‧2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은 야당에 표를 몰아주었고, 이명박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대국민 담화를 했지만 크게 공감 받진 못하는 분위기였다. <울지마 톤즈>의 흥행 요인엔 분명 자기 위치에서 묵묵히 책임을 다하고, 나아가 사람을 사랑으로 품는 진짜 사람다운 사람에 대한 갈망도 담겨 있을 것이다.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한 장면.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한 장면.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배급위원회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을 조망한 첫 번째 다큐멘터리다. 지난 10월 26일 개봉해 10일 현재 9만 명의 관객이 찾았다. 곧 10만 관객 돌파를 예상할 수 있다. 고인을 기억하는 시민들의 술자리 방담과 전라도 여수에서 지역감정을 극복하고자 한 고 백무현 후보가 등장하는데 이들을 통해 우리나라 뿌리 깊은 지역 정서에 도전한 노무현의 정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드러난다. 동시에 독재정권과 권위주의 정권 속에서도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았던 고인의 모습은 오히려 애잔하게 다가온다.

인터넷 상의 몇몇 관객의 관람 평이 눈에 들어온다. "<자백>을 보고 분노와 답답한 마음이 들었는데 <무현>을 보니 왠지 치유가 되는 느낌이다" 는 식이다. 분명 그렇다. 무한경쟁, 책임회피가 만연한 사회에서 좌절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린 이미 우리 손으로 이러한 지도자를 뽑은 저력이 있지 않나. 미국 대선에 승리한 트럼프가 분노와 성차별, 각종 혐오감의 발현이라면 깨인 우리 사회 시민들은 그에 맞설 좋은 지도자를 곧 뽑으면 될 일이다.

자백 노무현 박근혜 오바마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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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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