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답답한 시대. 희망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낮게 드리운 하늘 아래서 그저." - 뮤지컬 <팬레터> No.08 '신인 탄생' 중에서

그런 시대였다.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조선에서 희망은 쉬이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시대, 그 안에서 치열하게 조선어를 가꾸는 이들이 있었다. 경성의 모더니스트 문인들의 동인 '7인회'. 자꾸 결원이 생기는 바람에 한 번도 7명이었던 적은 없지만(아마도 그건 누군가의 지적처럼 무대 위 의자가 7개가 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름다운 말로 아름다운 정신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

순수예술을 향한 이들의 열정 모두가 빛났지만, 그중에서도 누구보다 반짝이는 문인이 있었다. 천재라고 불리는 소설가 김해진. 7인회에 합류하기로 한 그의 결정에 기존 회원들은 크게 기뻐했다. 김해진을 남몰래 흠모하고 있던 그의 팬이자 작가 지망생 정세훈의 마음은 특히나 더 터질 것 같았다. 7인회의 곁에서 이들의 일을 돕던 세훈은 바로 옆에서 해진과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한다. 그런데 그 만남이, 비극으로 치달을 것이라 누가 생각했으랴.

지난 5일,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에서 막을 내린 창작 뮤지컬 <팬레터>는 폭압의 시대에 강렬하게 무언가를 사랑했던 이들의 이야기이다.

특수한 시공간 속 보편적인 감정에 대하여

뮤지컬 <팬레터> 창작 초연에 나선 뮤지컬 <팬레터>의 드레스 리허설 사진. 일제강점기, 아름다운 조선어를 가꾸는 모더니즘 사조의 문인 '7인회'의 이야기를 다뤘다. 지난 10월 8일,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극장에서 개막하여 4일 막을 내렸다. 김종구·이규형·문성일·김성철·고훈정·배두훈·소정화·김히어라·양승리·손유동·권동호 등.

▲ 히카루의 편지를 받은 해진 소설가 김해진은 자신의 슬픔과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히카루에게 강하게 끌린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상처를 가지고 있고, 그 상처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비로소 이해받는다. ⓒ (주)벨라뮤즈


세훈은 이전부터 해진을 향해 '히카루'라는 가명으로 팬레터를 보냈다. 해진은 세훈의 팬레터에 크게 고무되어 히카루와 끊임없이 서신을 교환한다. 서로의 진솔한 감정을 나누며 교류하던 어느새, 해진은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히카루를 사랑하게 되고 만다. 일방향적 애정의 교차, 세훈은 해진의 문장을 동경하며 사랑을 보내고, 해진은 세훈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 히카루에게 연심을 품게 된다.

처음에 세훈은 이 오해를 모두 풀려고 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실망하게 될 해진의 얼굴을 지근거리에서 볼 자신이 없다. 그래서 자기 내면의 히카루를 보다 구체화시켜 나간다. 원고지 안에서만 존재하던 히카루는 점점 명료한 인격이 되어간다. 해진의 '뮤즈'가 된 히카루는 이제보다 적극적으로, 격렬하게 자신의 욕망을 표출한다. 해진은 폐렴과 맞서 싸우면서, 히카루와 함께 자신의 유작이 될지 모르는 소설을 써 나간다.

히카루로서 해진과 함께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 스스로 생을 갉아먹으면서 글을 쓰는 걸 더 지켜볼 수 없다는 세훈으로서의 욕망. 두 욕망이 충돌하면서 오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극은 예정된 파멸을 향해 달려간다. 그 파국을 목도한 세훈은, 결국 다시는 글을 쓰지 않기로 다짐하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상회로 돌아간다.

뮤지컬 <팬레터> 창작 초연에 나선 뮤지컬 <팬레터>의 드레스 리허설 사진. 일제강점기, 아름다운 조선어를 가꾸는 모더니즘 사조의 문인 '7인회'의 이야기를 다뤘다. 지난 10월 8일,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극장에서 개막하여 4일 막을 내렸다. 김종구·이규형·문성일·김성철·고훈정·배두훈·소정화·김히어라·양승리·손유동·권동호 등.

▲ 원고지 속 그녀 그저 문장 안에서만 존재하던 히카루는, 점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세훈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뮤지컬 <팬레터>의 조명은 다소 아쉬운 점이 많았다. ⓒ 벨라뮤즈(주)


뮤지컬 <팬레터> 창작 초연에 나선 뮤지컬 <팬레터>의 드레스 리허설 사진. 일제강점기, 아름다운 조선어를 가꾸는 모더니즘 사조의 문인 '7인회'의 이야기를 다뤘다. 지난 10월 8일,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극장에서 개막하여 4일 막을 내렸다. 김종구·이규형·문성일·김성철·고훈정·배두훈·소정화·김히어라·양승리·손유동·권동호 등.

▲ 해진의 뮤즈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 삶을 갉아먹으면서까지 써야 하는 것일까. 뮤즈란 누구인가. 그 뮤즈가 나를 죽음으로 몰아가도 좋은 것일까. 우리는 때로 그런 존재를 만난다. 나를 파멸시킬 것을 알고 있으면서, 동시에 나를 지금보다 더 대단한 존재로 만들어줄 그런 누군가를. 그런 뮤즈를. ⓒ 벨라뮤즈(주)


전쟁 중에도 사랑이 꽃피듯, 인간은 가장 비인간적인 시대에도 한 줌의 인간성을 유지한다. 뮤지컬 <팬레터>는 1930년대 경성이라는 시공간의 폭력을 특별히 폭로하지도 그렇다고 순화하지도 않는다. 비록 폭압의 시대였지만, 이 순진한 예술가들은 문학의 힘을 믿었다. 그래서 <팬레터>의 이야기는 보편적이다. 설익은 사랑과 설익은 욕망이 뒤범벅된 이 작품은, 온전하고 완성된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한 번쯤 품어봤을 법한 그 풋풋하면서도 어설픈 감정에 대해 노래한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관계없다. 우리는 각자의 뮤즈를 꿈꾸고, 그 뮤즈 때문에 다치고, 그 뮤즈 덕분에 성장한다. 뮤즈를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 7인회가 그랬고, 히카루라는 뮤즈를 지나치게 사랑한 해진도, 해진이라는 뮤즈를 너무 아꼈던 세훈도.

"뮤즈, 달콤하고 뮤즈, 잔인해. 영감을 주고, 생명을 빼앗아가는 그들은 잔인한 천사. 그러나 누가 그들을 감히 거부하겠는가. 내 모든 걸 잃어도 좋으니 오늘 밤 나의 창가에 찾아와주오." - 뮤지컬 <팬레터> No.10 'Muse' 중에서

공연 칼럼니스트 권혜은은 지난 10월 19일 <아이즈>를 통해 "<팬레터>의 배경을 우리의 근현대사 중 아무 때를 골라 치환한들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공감 가는 지적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굳이 이런 배경을 설정해야 했는지 극은 명쾌하게 설득하지 못한다. 이전까지의 김태형 연출이 보여줬던 완성도에 비하면 어딘지 모르게 삐걱거리는 부조화도 간간이 눈에 띈다.

하지만, 그 다소 안 맞는 아귀의 우리네 감정을 극이 보여주려고 했기에, 가슴 한구석에 커다란 구멍 하나씩 안고 살아가는 우리를 대변하기에 그렇게 나쁘지 않다. 흔들리던 혼란의 시대만큼이나 그들의 감정도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러웠을 테니.

극의 제일 마지막, 해진은 히카루의 손을 잡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세훈 앞에 나선다. 히카루는 해진의 손을 잠시 놓고 세훈에게 다가온다. 실수하고, 오해하고, 아팠던 그 마음을 다시 움켜쥐고, 과거의 미진했던 나를 마주한다. 세훈은 잃었던 뮤즈를 다시 찾았다.

뮤지컬 <팬레터> 창작 초연에 나선 뮤지컬 <팬레터>의 드레스 리허설 사진. 일제강점기, 아름다운 조선어를 가꾸는 모더니즘 사조의 문인 '7인회'의 이야기를 다뤘다. 지난 10월 8일,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극장에서 개막하여 4일 막을 내렸다. 김종구·이규형·문성일·김성철·고훈정·배두훈·소정화·김히어라·양승리·손유동·권동호 등.

▲ 다시 글을 쓰다 자신의 글을 완성하고, 자신의 글을 발표하는 세훈. 그의 청춘의 한 페이지가 그렇게 지나갔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들은 떠나고 없지만, 그가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태어났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기대며 나아간다. ⓒ 벨라뮤즈(주)


그렇게 삶과 죽음, 예술과 사랑에 대해 노래하며 세훈은 자기만의 글을 완성한다.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다. 그렇게 그도, 이 야만의 시대에 낭만을 노래하는 문인이 된다. 마지막의 감동이 거대한 파도처럼 객석을 휩쓸고 지나간다. 이 감동의 파고가 높은 건, 그 이전의 혼란스러움이 있었기에, 그런 폭력적인 시대였기에 가능했던 게 아니었을까.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뮤즈를 찾고 그 역경을 이긴 끝에 성장한다는 것을 보여줬기에 가능했던 건 아니었을까.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잘게 분해되는 몸 위로 따뜻한 햇살이 덮였다. 영원히 잊히지도 넘길 수도 없는 그 페이지를 붙들고 오늘을 살아. 난 아직도 그 한가운데에, 하루해살이 풀처럼 내 사랑이 죽었을 때, 내 청춘도 죽었고, 차마 돌아보지 못했던 나의 봄을 이제야 보낸다." - 뮤지컬 <팬레터> No.19 '내가 죽었을 때' 중에서

그러니 우리도, 이토록 아픈 오늘을 이토록 간절하게 붙잡는다. 다시 오지 않을, 너무 고통스럽고 그 이상으로 아름다운 청춘의 오늘을, 사랑의 오늘을.

순수와 참여에 관한 고민, 여전히 유효한 까닭

뮤지컬 <팬레터> 창작 초연에 나선 뮤지컬 <팬레터>의 드레스 리허설 사진. 일제강점기, 아름다운 조선어를 가꾸는 모더니즘 사조의 문인 '7인회'의 이야기를 다뤘다. 지난 10월 8일,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극장에서 개막하여 4일 막을 내렸다. 김종구·이규형·문성일·김성철·고훈정·배두훈·소정화·김히어라·양승리·손유동·권동호 등.

▲ 7인회의 동지들 이 작품은 어찌 보면 7인회의 글처럼 순수한 그리고 모던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내가 자칫 카프처럼 읽은 것은 아닌가 살짝은 우려스럽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 활동 자체가 저항이었듯 이 <팬레터>가 말하는 그 보편의 정서를 품는 것만으로도 저항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벨라뮤즈(주)


순수문학과 참여문학 사이의 논쟁은, 현대에 이르러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우리 문학사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논박이었다. 7인회가 가장 아름다운 순수문학을 추구했다면, 그 반대편에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KAPF, 아래 카프)이 가장 적극적인 참여문학을 주창하고 있었다. 영화 <동주> 속 윤동주와 송몽규의 논쟁도 순수와 참여의 대립이었고, 뮤지컬 <명동 로망스>에도 반영된 박인환과 김수영의 언쟁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그저 예술적인 '미'를 추구할 것인가, 그 예술의 쓰임새와 효용에 관해 이야기할 것인가. 예술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가, 사회적 맥락에서 힘을 발휘할 때 더 의미가 있는가. 예술은 수단이 될 수 있는가, 그 자체로 목적성을 띠는가. 이에 관한 질답이 오가면서 우리 문학은 사회와 소통하면서도 더욱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현대에서 이 물음표가 마침표로 바뀐 이유는 단순하다. 순수와 참여를 무 자르듯이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각자가 지향하는 예술의 목표 지점은 다르다. 한 예술가가 건설하고자 하는 예술 세계 속에서, 순수와 참여의 비중은 제각기 다르게 분배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100% 순수한 예술도, 100% 참여적인 예술도 없다. 예술은 사회와 동떨어져서 존재하는 독립된 섬이 아니기에 온전히 순수할 수 없고, 동시에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 존재하기에 온전히 참여적일 수도 없다.

7인회가 추구했던 모더니즘 문학은 어떨까. 그들이 쓰고 읽고 나누었던 글 자체에는 저항의식이나 시대정신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제라는 거악이 조선을 탄압하던 시절, 조선어를 지키고 가꾸려는 그 노력 자체가 곧 저항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빼앗긴 들에 언젠가 봄이 오리라 믿으며, 그 봄이면 피어날 씨앗들을 애써 품고 지키는 게 문인의 역할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시대의 야만 속에서도 낭만과 서정을 지키는 것은 예술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저항이다.

뮤지컬 <팬레터> 창작 초연에 나선 뮤지컬 <팬레터>의 드레스 리허설 사진. 일제강점기, 아름다운 조선어를 가꾸는 모더니즘 사조의 문인 '7인회'의 이야기를 다뤘다. 지난 10월 8일,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극장에서 개막하여 4일 막을 내렸다. 김종구·이규형·문성일·김성철·고훈정·배두훈·소정화·김히어라·양승리·손유동·권동호 등.

▲ 팬레터에 대한 팬레터 사실은 해진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걸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고, 애써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편지의 주인이 누구이든 사랑할 수밖에 없었지 않은가. 해진은 히카루를 사랑했다. 세훈의 글을 사랑했다. 그러니 세훈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 벨라뮤즈(주)


"갑자기 투서에다 검열이라니? 왜 이렇게 됐지? 확실한 건, 누군가 있어. 마치 저 위에서 우리를 가지고 노는 듯. 이것도, 저것도, 숨겨, 태워. 엎드려서 잠시만 넘겨. 지금은 이렇게 태울 수밖에. 빼앗긴 들판에도 다시 봄은 올 테니…." - 뮤지컬 <팬레터> No.12 '투서' 중에서

투서가 전달되고, 문인들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7인회는 불안해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피땀을 잉크 삼아 쓴 원고들을 어쩔 수 없이 불태운다. 부패한 권력은 예술을 억압한다. 권력의 손아귀에 넣고 권력의 입맛에 맞는 것만 예술로 인정한다. 무엇이 예술인지 아닌지의 잣대는 권력의 손이 아니라 예술가의 손에서 결정되어야 함에도. 그들이 자신들의 글이 사라질까 불안했던 만큼, 그들이 자신들의 문장을 지키고 싶어 했던 만큼, 딱 그만큼 그들은 일제에 맞서 투쟁한 셈이다.

2016년, 억압의 시대가 돌아왔다. 박근혜 대통령을 한 번도 독대한 적이 없다는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있을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는 주장이 <한겨레> 단독 보도를 통해 제기됐다. 인간의 정신을 고양하고, 상상의 한계를 넘어 닿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표현하는 게 예술일진데, 이 정권은 예술조차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예술과 아닌 예술로 나눴다. 특정 영화나 예능 프로그램 코너 때문에 CJ를 향한 정권의 외압이 거세졌다는 의혹도 계속 제기되는 건 왜일까. 아니 땐 굴뚝에서 나는 연기일까.

그러니, 이처럼 회귀와 탄압이 유행처럼 번지는 시대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낭만을 지켜야 한다. 시대가 야만적이라고 우리의 영혼까지 야만적으로 타락할 수는 없으니까. 글을 읽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무대를 보는 이 모든 과정, 예술을 만들고 나누는 이 모든 과정이 우리의 '인간다움'을 지키는 길이요, 저 예술의 가치를 모르는 위에 것들과 맞서 싸우는 길이다. 그러니 우리, 그날이 올 때까지 이 아름다웠던 무대를 기억하자. 끝까지 펜을 놓지 않은 해진처럼, 다시 문학을 노래하는 세훈처럼.

뮤지컬 <팬레터>의 김태형 연출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1인이다.

"더 멋지게, 더 현대적으로. 예술만은 자유로워도 괜찮아. 너희의 글은 무슨 의미냐, 혹은 이런 시도 미친 짓이니 때려치워라 따위 말들을 하지만, 부끄럽지 않나?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가난해도 사랑은 알지. 빼앗긴 땅에도 봄은 올 테니. 아무리 점령당한 땅이라 해도 예술마저 점령당할 수는 없잖아. 그래서 삭막한 이 도시에도 조금은 낭만과 예술이 남기를…." - 뮤지컬 <팬레터> No.04 'Number 7' 중에서

뮤지컬 <팬레터> 포스터 창작 초연에 나선 뮤지컬 <팬레터>의 포스터. 일제강점기, 아름다운 조선어를 가꾸는 모더니즘 사조의 문인 '7인회'의 이야기를 다뤘다. 지난 10월 8일,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극장에서 개막하여 4일 막을 내렸다.

▲ 뮤지컬 <팬레터> 포스터 일제강점기, 아름다운 조선어를 가꾸는 모더니즘 사조의 문인 '7인회'의 이야기를 다뤘다. 10월 8일,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극장에서 개막하여 지난 5일 막을 내렸다. 김종구·이규형·문성일·김성철·고훈정·배두훈·소정화·김히어라·양승리·손유동·권동호 등. 내년 재연의 약속이 반드시 성사되기를 바란다. ⓒ 벨라뮤즈(주)



팬레터 김해진 정세훈 히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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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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