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진실이 너무 비현실적이거든. 하지만 이게 진실이야."

이쯤되면 tvN <THE K2>를 '대한민국 정치 교과서'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처음에는 황당하고 지나치다고 생각했던 '설정'들이 시간 차를 두고 현실에서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 얼마 전에 쓴 리뷰에서 최유진(송윤아)이 불철주야 일하는 검찰의 노고를 덜어주기 위해 미리 압수수색 '당할' 짐을 챙겨두고, 그들의 아침 식사까지 챙겨주는 등 압수수색을 성심성의껏 돕는(?) 장면을 소개했다(관련 기사: 정치드라마의 황당 설정? 현실은 더하다). 적당히 시간을 보낸 검찰 직원들은 상자들을 차에 옮겨 실으면서 온갖 근엄한 표정을 짓더라.

드라마 속 압수수색과 현실의 압수수색

현실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지난 10월 29일, 검찰은 청와대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목록을 제시하면, 청와대 직원들이 자료를 찾아서 건네주는 식이었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급기야 '빈 박스' 논란도 있었다. 10월 26일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압수수색한 검찰은 상당 수의 상자를 들고 나왔지만, 수사관들은 제법 커다란 상자들을 힘들이지 않고 옮기고 있었다. 게다가 비스듬히 기울어진 상자들을 들고 나오는 모습은 '슈퍼맨'을 연상케 했다. 지난 3일, 해운대 엘시티 관련 압수수색에서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황제 수사'를 다뤘던 <더 케이투>

'황제 수사'를 다뤘던 <더 케이투> ⓒ tvN


'압수수색'에 이어 이번에 다룰 이야기는 '검찰 수사'편이다. 우선, <더 케이투> 9회의 한 장면을 살펴보자.

"바쁘시면 지금이라도 나가시죠."
"아이, 아니야. 그럴 수야 있나. 강도 높은 조산데, 2박 3일은 채워야지. 야, 김 검사! 양말 좀 벗어. 남의 집처럼 왜 그러냐"
"아이고, 선배님도 참."

대선 가도에 방해가 될 의혹들을 손수 털어내기 위해 검찰 수사를 자청했던 유력 대선 후보 장세준(조성하)은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검찰청 내부에서 후배 검사와 바둑을 두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전화통화를 하는 장세준에게 검사는 '바쁘시면 지금이라도 나가라'고 권하고, 되려 장세준은 능청을 떨며 2박 3일은 채워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는 검찰에서 강도 높은 '휴식'을 취하고, 다음 날이 되자 "이제 슬슬 나가 볼까?"라며 검찰청을 나선다. 어처구니 없는 장면이라 생각이 들 테지만, '현실'은 결코 그와 다르지 않았다.

 '황제 조사' 논란, 우병우 전 민정수석

'황제 조사' 논란, 우병우 전 민정수석 ⓒ JTBC


드라마 속 검찰조사와 현실의 우병우 검찰 출석

지난 6일 '드디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에 출석했다. 직권남용과 횡령 등 각종 비위 의혹에 대한 수사를 받기 위해서다. 그는 대통령의 최측근의 위치에 있으면서 사정기관을 마음껏 주물렀고, (이번 검찰조사와는 관계없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범이라는 의혹도 받고 있다. 진작 조사를 받았어야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를 '놓지' 못했다. 자연스레 검찰의 소환도 '늑장'이 돼버렸다. 우 전 수석은 검찰에서 15시간에 걸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정말 그랬을까? 괜히 <더 케이투>의 한 장면을 예로 든 게 아니다. 지난 7일 <조선일보>는 '[특종취재기]우병우가 다가가자 수사관이 벌떡 일어났다'라는 기사에서 충격적인 사진들을 게시했다. "검찰 밖에서 보이는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아니라 조사실의 우병우를 찍어보라"는 부장의 취재 지시를 받았다는 기자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맞은편 건물에 자리를 잡고 '흐릿한' 무언가가 보일 때마다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사진 속에는 '우병우'가 정확히 찍혀 있었다.

 11월 7일 <조선일보> 1면에 보도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11월 7일 <조선일보> 1면에 보도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 조선일보


우 전 수석은 자신을 담당하는 김석우 특수2부장실(1108호)의 옆에 딸려 있는 부속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유 있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옆쪽 창문에는 검찰 직원인 듯한 남성이 가지런히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우 전 수석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다. 이처럼 다소곳한 검찰이라니! 사진이 공개된 후 비판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자, 검찰은 비지땀을 흘리며 변명에 나섰다. 조사 중 잠시 휴식을 가지는 사이 후배 검사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찍힌 거라나?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어찌됐든 정치적 문제를 떠나 검찰에 20여 년 있던 사람이니까 '차 한잔 하실래요' 이런 것은 인간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검찰의 편을 들고 나섰는데, 그 얼토당토 않은 쉴드는 검찰의 '과잉 의전'을 비판하고 나선 전국민을 '비인간적'으로 몰아버리는 무리수였다. 우리는 저 사진 속에서 검찰을 쥐락펴락했던 민정수석의 위세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과연 검찰은 우병우를 제대로 수사할 수 있었을까? 아니, 검찰은 애초에 우병우를 수사할 생각이 있었을까? 앞서 살펴봤던 드라마의 한 장면이 오버랩 된다. 장세준이 후배 검사와 느긋하게 바둑 한 판을 뒀던 장면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아이고, 선배님도 참." 이 대사가 우병우가 받았다던 15시간의 강도 높은 조사 과정에서 몇 번이나 나왔을까?

더 케이투 우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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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길을 가라. 사람들이 떠들도록 내버려두라.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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