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접어든 중년 여성의 일상. 프랑스는 다르지 않을까? 영화는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어느 모로 보나 우리네 50대 어머니이다.

50대에 접어든 중년 여성의 일상. 프랑스는 다르지 않을까? 영화는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어느 모로 보나 우리네 50대 어머니이다. ⓒ 찬란


30대 남자로서 50대의 여자를 알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어떤 패턴으로, 어떤 생각으로, 어떤 신념으로 살아가는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어머니 나잇대기에 뜻밖에 궁금해지는 건 사실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앞으로 다가올 것들에도 똑같이 대응하며 살아갈까, 지금까지는 이렇게 살아왔으니 앞으로는 떠나보내며 멀어지는 삶을 살아갈까. 대부분은 다가오는 것들에도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무던히 대응하며 살지 않을까.

프랑스 영화 <다가오는 것들>은 50대에 접어들어 이룰 것을 다 이루고 안정된 삶을 영위하는 한 여성의 일생을 그녀의 일상을 통해 들여다본다. 고등학교 철학 교사이자 작가라는 안정된 직업의 외적인 면과 그녀의 일상을 들여다본 후에 받게 되는 충격 아닌 충격들이 은근히 긴장감 있게, 심심치 않게 진행된다. 어느 모로 보아도 우리네 50대 어머니의 일상이자 일생이다.

'멀어지는' 것들의 다가옴

 '다가오다'는 분명 좋은 의미로 비친다. 그러나 좋은 것들만 다가오진 않는다. 특히 중년에 들어선 이들이라면, 별의별 것들이 다가오지 않을까. 그 중엔 '멀어짐'도 있을 거다.

'다가오다'는 분명 좋은 의미로 비친다. 그러나 좋은 것들만 다가오진 않는다. 특히 중년에 들어선 이들이라면, 별의별 것들이 다가오지 않을까. 그 중엔 '멀어짐'도 있을 거다. ⓒ ?찬란


나탈리(이자벨 위페르 분)는 파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교사다. 그러며 책도 쓰는 '지식인'이다. 그러는 한편 자신을 존경해 불성실한 학생에서 성실한 지식인의 대열에 합류한 제자도 있다. 화목한 듯한 가족도 있고, 좋은 집에, 번듯한 별장까지 갖추었다. 그 나잇대에 그 정도면 당연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절대 쉽지 않은 안정적인 삶의 양식이다.

무엇 하나 모자랄 게 없는 안정된 삶을 영위하는 그녀에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다름 아닌 '엄마'다. 혼자 있으면 불안증에 몸서리치며 딸을 찾는 엄마.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의 연락을 받으며 시달린다. 급기야 엄마가 무슨 일을 저지르면 만사를 젖혀두고 달려가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정녕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진다. 남편의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통보. 무심하게 내뱉는 한마디. '다른 사람이 생겼어. 그 사람이랑 살 거야.' 그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한마디 한다. '평생 나만 사랑할 줄 알았는데.'

남편의 소식을 포함해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들은 모두 다 그녀에게서 멀어진다. '멀어지는' 일 자체가 다가왔다는 게 맞겠다. 이후로도 그녀에겐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멀어지는' 일들이 다가온다. 그녀는 전에 없이 외로워질까, 전에 없이 자유로워질까. 그건 그녀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프랑스인 삶, 프랑스식 삶

 그래도 프랑스는 프랑스다. 프랑스인의 삶과 프랑스식 삶이 존재한다. 영화는 꼼꼼히 프랑스를 들여다본다. 하나하나 짚어보는 맛이 있다.

그래도 프랑스는 프랑스다. 프랑스인의 삶과 프랑스식 삶이 존재한다. 영화는 꼼꼼히 프랑스를 들여다본다. 하나하나 짚어보는 맛이 있다. ⓒ 찬란


영화는 프랑스 중년 여성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프랑스인의 일반적인 삶이자 프랑스식 삶의 일반적인 모습을 들여다본다. 프랑스식 간식이나 식사, 프랑스식 집 꾸미기(인테리어), 프랑스식 옷 스타일(패션), 프랑스식 장례, 프랑스식 여행, 그리고 프랑스식 교육까지. 프랑스인의 일상을 스케치하듯, 나름 정밀하게 들여다본 느낌이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프랑스식 교육이었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고등학교 교사다 보니 교육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몇 번이나 교육 장면이 나올 때까지 고등학교 교사가 아닌 대학교 교수인 줄 알았는데, 굉장히 수준 높은 내용과 함께 야외에서 자유로운 자세로 토론하는 모습, 무엇보다 학교 앞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를 하는 모습들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선 대학생이나 되어야 가능할까 하는 모습이다.

프랑스의 다른 모습들은 우리네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교육만큼은 크게 다른 듯하다. 그녀의 일상과 일생이 곧 프랑스인 중년 여성 일상과 일생의 표준이라고 할 때, 그리고 그녀의 일상과 일생에서 교육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바, 영화는 그녀를 따라가며 프랑스를 들여다보는 것과 다름없다.

한편 <다가오는 것들>은 영화만이 가지는 다양한 기교를 전혀 부리지 않는 것 같다. 그저 먼발치에서 보며 가끔 그녀의 뒤를 따라갈 뿐이다. 중요한 순간에도 클로즈업 등을 통해 부각하지도 않는다. 폭풍 OST로 감성을 끌어올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별것 없으면 없는 대로 지켜볼 뿐이다. 영화가 그녀를 휘두르지 않는 것이다. 그녀에게 모든 걸 맡기고 따라간다. 왠지 이 또한 프랑스식 같다는 느낌이 든다. 배경이 프랑스가 아니어도, 배우가 프랑스인이 아니어도, 프랑스 말을 쓰지 않아도, '프랑스 영화'라는 건 알았을 듯하다.

그저 보여줄 뿐

 이 영화는 참 영화 같지가 않다. 그렇다고 다큐멘터리 같지도 않다. 뭐랄까. 그냥 삶?

이 영화는 참 영화 같지가 않다. 그렇다고 다큐멘터리 같지도 않다. 뭐랄까. 그냥 삶? ⓒ 찬란


힐링 영화도 아니고, 교훈 영화도 아니고, 할리우드식 감성팔이 영화도 아니다. 그렇다고 잔잔하게 마음을 훑는 영화도 아니고, 감정이 이입되게 하지도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그게 마음을 움직인다. 여운을 남긴다. 진하지 않다. 잔잔하다는 느낌도 아니다. 대신 오래갈 것 같다. 인생을 살면서 순간순간 생각날 것 같은.

영화는 결론이 나지 않고 다시 시작되는 끝맺음을 하는데, 그게 또한 인생 그 자체 아닌가. 인생에서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 한 결론이 어디 있겠는가. 끊임없는 시작만 있을 뿐. 누군가에겐 지루하게 다가갈지도, 누군가에겐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루하게 다가갈 이에게 더욱 필요한 영화 같다. 그들에겐 힐링도 되고 교훈도 주고 잔잔하게 마음도 훑고 감정도 이입될 것이기 때문에.

다가오는 것들을 무력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나탈리이지만, 과감하게 탈피해 이겨내고 자신의 길을 가려는 모습도 보인다. 다가오는 것들을 멀리하려는 것이다. 그런데도 실패는 계속된다. 멀리하고 싶은 것들을 멀리하지 못할 때의 기분이란.

그런 것들이 미래를 보고 앞으로 가려는 사람의 발목을 잡는 법이다. 다가오는 것들을 선별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데, 다가왔던 것들이 계속 괴롭히면? 멀리했던 것들이, 떠났던 것들이, 다가와서 내 품에 안았던 것들이 괴롭히면? 그러나 그 또한 인생이다. 그 모든 것들이 인생을 이루는 정수인 것이다. 다가오는 것들에 희망을 걸고 살아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것들 멀어짐 일생 일상 중년 여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