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큰 눈에서 정이 뚝뚝 떨어졌다. 이제 정말 <구르미 그린 달빛>을 보내야 할 시간이다. 김유정은 드라마가 끝난 후 수많은 매체와 인터뷰를 가졌고 김유정과 만난 지난 2일은 공교롭게 <구르미 그린 달빛> '종영 인터뷰'를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간 인터뷰를 하며 드라마에 대해, 자신이 분했던 '삼놈'이나 '라온'에 대해 반복해서 여러 번 말했을 법한데도 그는 "끝이 나 속상했다"고 말했다.

 KBS 2TV 월화미니시리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홍라온 역의 배우 김유정이 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KBS 2TV 월화미니시리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홍라온 역의 배우 김유정이 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드라마 끝난 지금은 멍한 상태, '라온이' 때문"

- 여러 인터뷰 기사에서 느꼈지만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것 같다. 인터뷰 마지막 날인데 라온을 잘 보내고 있나.
"드라마나 현장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머릿속에서 조금씩 정리가 되는 것 같다. 라온에 대해서 떨치기 싫을 정도로 즐겁게 촬영했고 행복했기 때문에 마음 속에 간직하고 싶다."

- 보통 작품이 끝나고 후유증이 오래 가는 편인가.
"어느 샌가 나도 모르게 무뎌지는 순간이 있다. 아직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연습이 안 된 것도 있어 아직 낯설고 어렵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올 초부터 촬영을 시작해 긴 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에 바로 마음을 정리하기 힘들더라. 스태프들이랑 다른 선배 배우들이랑 헤어지는 것도 힘들었고."

- 허한 마음이 들 것 같다. 그런 마음을 평소에 어떻게 달래는 편인가?
"먹는 걸로. 좀 많이. (웃음) 정말 다 잘 먹는다."

- 그동안 여러 작품을 해왔는데 정이 많이 들어 힘들었다고 생각한 역할이 있다면.
"라온이. 가장 큰 것 같다. 라온이를 연기하면서 따라 성장한 것도 있고 촬영을 하면서 라온과 너무 많이 닮아 영향을 많이 끼쳤다. 지금 상황이... 심리적으로 멍한 상태? 허하고... 그런 상태인 것 같다."

- 라온과 많이 닮았나.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라온이 귀엽고 사랑스럽고 통통 튀는 캐릭터지 않나. '삼놈'으로 사내 행실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귀엽고 쓰다듬어주고 싶은 캐릭터여서 '이만큼 재밌게 표현할 수 있을까' 불안했고 의구심이 들었다. 감독님과 이야기하면서 캐릭터를 많이 잡아갔던 것 같다."

김유정, 세자가 반한 미소 KBS 2TV 월화미니시리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홍라온 역의 배우 김유정이 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김유정, 세자가 반한 미소 KBS 2TV 월화미니시리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홍라온 역의 배우 김유정이 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때로는 삼놈처럼 때로는 라온처럼 연기했던 김유정. 그는 무엇보다 더위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 이정민


- '남장여자' 캐릭터를 시청자들에 설득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한 삼놈의 모습은 남자인 척하면서 남자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앳된 소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사내행세를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행동이나 말투가 '진짜 그런 소년이 있다'고 믿게끔 신경을 썼다. 오히려 남자처럼 지내니 더 편했다. 오히려 가장 힘들었던 건 더위였다."

- 올 여름 정말 더웠다.
"마지막 장면 정도를 제외하고 계속 압박붕대를 감고 촬영했다. 감독님께서 후반부에 여자로 많이 나올 거라 하셔서 '언제 이렇게 남자 역할을 해보겠어' 하면서 촬영을 해나갔는데 끝까지 하는 거다! (웃음) 내 몸에게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가슴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으니 호흡이 잘 되지 않았다. 남자 배우들이랑 붙었을 때 목소리에 그만큼 맞붙는 힘이 있어야 했는데 그게 좀 속상했다. 처음에는 그래서 목소리가 탁하게 나왔다. 나중에는 익숙해서 괜찮았지만 초반에는 스트레칭을 해도 풀리지 않더라."

- 남장여자인 삼놈에서 라온으로 그리고 연애편지를 대필해주는 유쾌한 캐릭터에서 자신의 운명을 인지한 캐릭터로 감정의 폭이 큰 캐릭터였다. 후반부에는 눈물도 많이 흘렸다. 라온의 여러 모습들 중 어떤 모습이 본인과 닮았다고 생각했나.
"지금은 많이 닮게 됐다. 촬영하면서 익숙해진 것이 있어서. 지금 내 안에 밝고 통통 튀고 능청스러운 삼놈의 모습도 있는 것 같고. 라온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연기하면서도 좋았다. 같이 위로 받은 느낌이고 드라마가 끝나고 라온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받아 지금은 밝은 기운이 있다."

- 반대로 어두운 역할을 맡으면 그만큼 영향이 크겠다.
"맞다. 차분해지고 조용한 걸 좋아하게 되고 그렇다. 라온이를 만나고나서부터는 다 같이 웃고 떠들고 하는 게 즐겁다. 그럴 때마가 내 안에 있는 새로운 면들이 꺼내지는 것 같아 신기하다."

- 앞으로도 밝은 캐릭터를 하고 싶을 것 같다.
"구르미를 하고 싶었던 이유도 그거다. 밝고 귀엽고 아기자기하고 싱그럽고 풋풋하고... 그런 작품을 하면 영향을 많이 받는다. 곧 개봉할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에서도 엉뚱하고 차원을 상실해 미친 것처럼 사는 친구를 연기했다. 그 영화를 촬영하면서도 재밌고 즐길 수 있었다. 반대로 어둡고 힘든 작품을 하면 또 도움이 되는 게 있다. 나를 다잡을 수 있는 힘이 생기기도 하고."

- 결국 둘 다 하고 싶다는 걸까? (웃음) 대본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는 편인가.
"긍정적이고 밝은 시너지를 주는 작품을 대체로 좋게 생각한다. 연기하면서도 재밌고 즐겁고 시청자 분들에게도 그런 기운을 드릴 수 있지 않나. 반면 기이하고 심오한 이야기를 다룬 소재는 이해하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은 것들이다. 영화 <비밀> 같은 작품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오랫동안 기다렸다. <앵그리맘> 같은 경우도 바로 옆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학교 문제를 다룬 드라마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관심이 많이 갔다. 물론 엄마와 같이 학교를 다닌다는 건 말이 안 되지만 (웃음) 또 엄마를 이해해보고 싶기도 했고."

 KBS 2TV 월화미니시리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홍라온 역의 배우 김유정이 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KBS 2TV 월화미니시리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홍라온 역의 배우 김유정이 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극퀸' 김유정은 사극을 "우리가 살아볼 수 없는 세상이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 사람들이 그때 입었던 것 먹었던 걸 경험하면서 살아본다는 건 진짜 좋은 경험인 것 같다. 장터나 시장이 있고 '저잣거리'에 가면 정말 내가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떄가 있다." ⓒ 이정민


"시간에 대한 욕심이 있어"

- 스무살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연기활동을 하면서 늘 '빨리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같은 말을 들었다. 누굴 만나든지 항상 이를 물어본다. 나는 그냥 빨리 어른이 되고 싶지 않더라. 스무살이 된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인위적으로 보자면 성인이지 않나. 나는 지금 이 시기가 스무살보다 일이년 어리고 덜 성숙하기 때문에 더 자유롭고 낙천적인 꿈도 꿀 수 있고 여러 가지로 좋은 것 같다. 친구들과 있는 시간이 하루하루 소중하고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간다는 것도. 난 지금이 딱 좋다. 스무살이 되고 어른이 되면 그만큼 책임감도 느껴야 하고 그것에 대한 무게감도 있고. 그래서 이야기한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돈을 관리하는 것도 배워서 익혀야 하고 (웃음) 부모님 아래 보호받아야 할 청소년으로 살 때와 다르지 않을까."

- 몇 년 전에는 또 그때가 가장 좋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중학교 졸업할 때쯤부터 어른이 빨리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니 내가 18살이 된 것도 믿기지 않고 적응이 안 되는데 19살을 코앞에 두고 있다. 많은 일들이 지나가고 알게 된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조심스러워지는 것이 분명 있다. 많이 배우면 장점이 되고 좋은데 많이 안다고 다 좋은 건 아니지 않나."

- 개인적으로 욕심을 내는 것이 있나.
"시간에 대한 욕심이 있다. 어떨 때는 빨리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고 어떨 때는 붙잡고 싶고 아예 멈추었으면 좋겠고. 항상 좋은 추억만 남길 수는 없고 힘들고 좋지 않은 순간들 회피하고 싶은 순간들은 빨리 보내버리고 싶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시간들이 가장 많이 배웠고 단단해졌구나, 내가 이를 통해 고민하게 됐구나 생각한다. 지나고 보면 끝나길 바랐던 순간들이 그립더라. <구르미 그린 달빛>도 지치고 덥고 다들 너무 고생하니까 '언제 끝나' '안 끝날 것 같아' 그랬는데 끝나니 그 시간들이 그리운 거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고."

 KBS 2TV 월화미니시리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홍라온 역의 배우 김유정이 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작품을 끝마치니 한 해가 훌쩍 가있더라. 2016년 한 해는 <구르미>로 보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놓치기도 했지만 큰 사랑을 받았고 많은 것을 배웠다." ⓒ 이정민



김유정 구르미 그린 달빛 비밀 스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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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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