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알 수 없는 길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 언제까지라도 함께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중에서

지난 여름, 이화여대 학생들이 시위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 학교 측이 내놓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 단과대(미래라이프 대학) 설립 계획'에 반발해 농성을 벌이던 중이었다. 이 노래는 애초에 저항의 의도로 만들어진 곡도 아니고 가사에 정치적 색깔도 없지만 시위현장에서 특정한 의미를 갖고 불렸기에 '저항 가요'로 새롭게 태어났다.

시위 혹은 집회에서 다함께 부르는 노래를 '저항가요' 혹은 '민중가요'라고 한다. '다시 만난 세계'처럼 독특한 사례부터 애초에 저항의 의지를 품고 만들어진 노래까지 저항가요를 돌아보려 한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저항가요가 무척 당기는 요즘이니 말이다.

양희은 '아침이슬' & '임을 위한 행진곡'

 양희은 1집 <고운노래 모음>에는 김민기가 작사 작곡한 '아침이슬'이 수록돼 있다.

양희은 1집 <고운노래 모음>에는 김민기가 작사 작곡한 '아침이슬'이 수록돼 있다. ⓒ (주)벅스


저항가요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양희은의 '아침이슬'일 것이다. 1970년에 발표된 이 곡은 위에서 언급한 소녀시대의 노래처럼 사실 저항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노래가 아니다. 가수 양희은은 데뷔 35주년 기념 콘서트 기자회견에서 "'아침이슬이 사회 참여에 쓰일 줄 전혀 짐작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후에 시위에서 저항가요로 불릴 줄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그는 "노래의 무서운 사회성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 양희은, '아침이슬' 중에서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사람들은 '서러움 모두 버리고' 독재 정권의 억압도 끊어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고 외치며 '아침이슬'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게 이 곡은 민중가요의 대표곡이 됐다. '아침이슬'은 가수이자 작곡가인 김민기가 작사·작곡한 노래로 역시 그가 만들고 양희은이 부른 '상록수'도 시위현장에서 당시 많이 불렸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애창곡이기도 하다.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 양희은, '상록수' 중에서

저항가요 하면 '임을 위한 행진곡'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곡은 1980년에 일어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추모하는 노래며, 민주화운동 때마다 대표적으로 불리는 민중가요다. '다시 만난 세계'나 '아침이슬'과 달리 이 곡은 만들어질 때부터 치열한 투쟁의 비장함을 품고 있었다. 남녀혼성중창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음반에 수록된 이 노래는 소설가 황석영이 백기완의 미발표 장시 '묏비나리'의 일부를 차용해 노랫말을 썼고 김종률이 작곡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순국한 고 윤상원 열사와 박기순씨의 영혼결혼식에 사용됐고, 1980년대 말부터 민주화운동의 열사들에게 바치는 노래로 꾸준히 불리고 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 '임을 위한 행진곡' 중에서

1997년에 5월 18일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후 '임을 위한 행진곡'은 2008년까지 기념식에서 공식적으로 제창됐다. 보훈·안보단체 등은 이 곡을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노래로 규정했다. 국가보훈처가 기념식에서 이 노래를 제창하는 것을 막으려하자 유족들이 항의하기도 했는데, 지난 2013년에는 이 노래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공식 추모곡으로 지정하자는 결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도 했다. 가장 최근인 2016년 5월에는 국가보훈처가 제창을 허용할 수 없고 현행대로 합창만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 내렸다. 이렇듯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갑론을박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 노래는 2012년 발매된 <노무현을 위한 레퀴엠 '탈상'>에도 수록돼 있다.

밥 딜런, 반전·반핵 메시지 노래한 '시대의 양심'

 밥 딜런이 1963년 발표한 < The Freewheelin' Bob Dylan >의 2010 모노버전(Mono Version).

밥 딜런이 1963년 발표한 < The Freewheelin' Bob Dylan >의 2010 모노버전(Mono Version). ⓒ Sony Music


서양의 저항가요도 그 역사를 갖는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인권운동을 펼치던 1960년대에는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는 노래가 흑인운동의 대표곡이었다. 또한 노동계급의 투쟁가인 '인터내셔널가(The Internationale)'는 지금도 메이데이(노동절)에 세계 곳곳에서 불린다. 억압은 국적을 불문하고 어디에나 있었고, 억압이 있는 곳엔 이렇듯 언제나 저항가요가 있었다.

얼마 전 미국 가수 밥 딜런(Bob Dylan)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해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그의 노래가 노벨 문학상의 가치를 지니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시대성과 사회성 때문이다. 밥 딜런은 1960~1970년대 인종차별 반대, 반전·반핵 등의 메시지를 진솔하게 노랫말로 풀어내 세상을 향해 쓴 소리를 '아름다운 방식'으로 해냈다. '시대의 양심'인 밥 딜런은 세계 평화에 기여한 자에게 주는 미국 최고의 시민상 '자유의 메달'을 2012년 오바마로부터 받기도 했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 / 진정한 인생을 깨닫게 될까 /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이 바다 위를 날아봐야 / 백사장에 편히 쉴 수 있을까 / 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 영원한 평화가 찾아오게 될까 /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 밥 딜런, 'Blowing in the wind(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중에서

양희은의 '아침이슬'부터 밥 딜런의 'Blowing in the wind'까지. 저항가요는 시대와 국적을 불문하고 뜨거운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여기, 끝으로 1995년 서태지의 4집 앨범 <컴백홈>에 수록된 '시대유감'의 가사를 옮긴다. 썪은 기득권층을 향한 비판이 다양한 비유로써 표현된 이 곡은 시위에서 불리진 않지만 뜨거운 정신을 품고 있는 저항가요임이 분명하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견뎌내는 많은 국민의 마음을 대변해줄 노랫말이 아닐 수 없다. 이 노래와 더불어 한 가지 소망도 남겨본다. 사랑도 좋고 이별도 좋지만 지금 '해야 할 이야기'를 노래하는 가수들이 나타나 주기를. 2016년 11월, 광화문에 모인 뜨거운 열망들은 하나의 '입'이 되어줄 '시대의 노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거 자식들 되게 시끄럽게 구네! 그렇게 거만하기만 한 주제에 / 거짓된 너의 가식 때문에 너의 얼굴 가죽은 꿈틀거리고 / 나이 든 유식한 어른들은 예쁜 인형을 들고 거리를 헤매다니네 / 모두가 은근히 바라고 있는 그런 날이 바로 오늘 올 것만 같아." - 서태지, '시대유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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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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