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비포 애프터>의 한장면

연극 <비포 애프터>의 한장면 ⓒ 김동민


'돌이킬 수 없는 일'의 앞과 뒤에는 엄청난 괴리가 존재한다. 고작 몇 초, 몇 분에 불과한 시간의 강을 사이에 두고 두 세계는 빛의 속도로 서로 아득하게 멀어져간다. 차라리 엎질러진 물 정도라면 주워담을 수도 있고, 시위를 떠난 화살을 붙잡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구도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죽음이다.

연극 <비포 애프터>의 '비포'와 '애프터' 사이에 죽음이 있다. 아버지의 죽음이 있고 친구의 죽음이 있으며, 또한 세월호에 탔던 단원고 학생들의 죽음이 있다. 연극은 시간을 거슬러 2016년에서 2014년 4월 16일 '그날'을 향해 내달린다. 타인의 죽음을 기억하고 당시의 상황을 상상하며 그 아픈 순간을 눈 앞에 들이민다. 그리고 그날 이후 '우리'는 변했다고, 지금도 변해가는 중이라고 역설한다.

 연극 <비포 애프터>의 한장면

연극 <비포 애프터>의 한장면 ⓒ 두산아트센터


<비포 애프터>에는 여섯 명의 배우가 등장한다. 이들은 따로 또는 같이 무대에 등장해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낯선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무대 배경에는 모니터 두 개가 옆으로 나란히 달려 있는데, 여기에는 무대 위 배우들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상영된다. 캠코더가 이리저리 앵글을 바꿔가며 그들을 담는다. 지극히 실험적인 연출 방식에 어딜 응시해야 할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난해한 구성과 전개는 어느새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폐부를 깊숙이 찌른다.  

"그 날의 사건 이후 내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누군가는 "아이를 데리고 시내에 나왔는데 시위대가 있어 너무 불편하다"고 투덜대고, 다른 누군가는 "요구하는 대로 다 해줬는데 뭘 어쩌란 거냐"고 억울해 한다. 세월호 사고 이후 나온 온갖 아픈 말들이 이어진다. "처음엔 무기력했다가 나중엔 기억이 희미해졌다"는 극중 대사는 필연적인 망각을 경계하며 아프게 다가온다.

 연극 <비포 애프터>의 한장면

연극 <비포 애프터>의 한장면 ⓒ 두산아트센터


그리고, <비포 애프터>는 무대 위에 '국가'를 소환한다. "한 번도 국가와 눈이 마주쳐진 적이 없다"는 배우 장수진은 왕관을 쓰고 '국가'로 빙의한다. 그는 "수도 없이 많은 죽음을 지켜봤다"고, "때로는 나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고 담담하게 자백한다. 하지만 "당신의 이름으로 사랑을 보여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묵묵부답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상황이 무대 위에 재연되는 동안 '국가'는 관객석 맨 앞에 앉아 이를 지켜본다. 배에 타고 있던 한 학생이 119에 신고전화를 한 시점부터 기울어질대로 기울어져 돌이킬 수 없게 된 시점까지, '국가'의 얼굴은 무표정하고 눈에는 초점이 없다. "학생들 나오라고 할까요"라는 물음이 몇 번이고 이어지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국가'는 아이들을 죽인다.

 연극 <비포 애프터>의 한장면

연극 <비포 애프터>의 한장면 ⓒ 두산아트센터


결국 <비포 애프터>는 진실을 추구하는 연극이다. 장성익, 나경민, 장수진, 성수연, 채군, 김다흰 등 모든 배우들은 각자 맡은 배역을 연기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내면 속으로 들어간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애도의 마음을 담아 담화문을 읽고 비통한 내용의 뉴스를 보도하면서, 배우들은 대통령이 되고 앵커가 된다. 흐느끼고 자학하며 오히려 당사자보다도 더 진실된 태도를 보여준다. 이들이 추구하는 건 '완벽한 연기'가 아니라 '완벽한 공감'이다. <비포 애프터>를 두고 탁월한 에세이이자 다큐멘터리, 그리고 연기 워크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27~30일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공연.

비포애프터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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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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