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럭키>에서 재성 역의 배우 이준이 2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는 배우다> <손님> <서울역> 그리고 <럭키>에 이르기까지 벌써 이준은 여러 영화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 이정민


<배우는 배우다>(2013)로 영화 작품의 첫 주연을 맡은 이후 이준은 충무로가 발견한 '의외의 수확'이었다. 아이돌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또래보다 캐릭터 해석과 감정 처리가 탁월했다. 동료 배우들마저 긴장시킬 정도로 그는 꽤 좋은 연기를 보이며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승승장구했다.

최근 상영 중인 <럭키>도 그 연장선이다. 단독 주연은 아니지만, 유해진에 맞서 이야기의 한 축을 끌어가는 청년 재성 역을 맡았다. 경력으로만 치면, 분명 유해진과 함께한 영화를 이끌기엔 부족하다 생각할지도 모른다. 지난 2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 역시 "이 영화를 하면서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동시에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다했다"며 작품과 자신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또 하나의 도전

 영화 <럭키>의 한 장면.

영화 <럭키>의 한 장면. 이준은 변변한 직업 없이 생활고에 시달리며 운명을 비관하는 청년 재성 역을 맡았다. ⓒ 쇼박스


영화는 누적 관객 수 400만 명을 넘기며 순항 중이지만 이준 만큼은 감정이 복잡했다. 이번 작품에서 본인 연기에 대해 사람들의 평이 유독 갈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성은 정말 어려운 캐릭터였다"고 그가 설명을 시작했다. 참고로 <럭키>는 일본 영화 <열쇠도둑의 메소드>를 원작으로 했지만, 도입부를 제외하곤 모든 내용이 달라졌다. "원작을 보긴 했다"면서도 전혀 참고할 순 없었던 그의 고충이 간접적으로 느껴졌다.

"영화에 참여한 건 시나리오를 보고 '현실 웃음'이 터졌기 때문이에요. 글만 읽어서 웃기 쉽지 않은데 말이죠. 근데 저도 감독님도 재성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첫 등장부터 스스로 죽으려고 하고, 이후에 범죄도 저지르잖아요. 정신이 나약한 인물입니다. 쉽게 말하면 도둑놈이죠. 저조차도 장점이 뭘까 생각하던 인물이에요. 자칫 잘못하면 관객들이 유해진 선배만 나오길 기다리겠다 싶더라고요. 결국, 재성이가 나빠 보이면 안 된다는 것에 중점을 맞췄어요. 최대한 귀엽게 보여야 한다! 이 생각으로 했죠."

 영화 <럭키>에서 재성 역의 배우 이준이 2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준은 여전히 선배들을 어려워 한다. 그 '어려움'이 그를 겸손하게 만들고, 배우로서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자세가 되지 않았을까. ⓒ 이정민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만년 백수인 재성은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져 정신을 잃은 형욱(유해진)의 키를 주워들고 그의 집으로 들어가 산다. 바로 직전까지 월세를 못 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까지 고민하다가 반전 인생을 맞이한 거다. 그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은주(임지연)를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서 보고 그를 파헤치며 사건에 연루되기 시작한다.

"회의를 많이 했어요. 저도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는데 사실 현장이 진지하긴 했습니다. 유해진 선배도 현장에선 매우 진지하세요. '난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하려고 한다' 선배가 그러시면 전 그에 대해 답하곤 했죠. 마치 대학 동기가 만나 팀 과제를 하듯 의견 교환을 한 거 같아요. 해진 선배가 어렵다기보단 제가 저보다 나이가 많으면 다 어려워하는 거 같아요. 고등학교 때 선배들이 그렇게 무서웠는데 그게 남아 있는 거 같네요. (웃음)"

아이돌 가수라는 선입견

 영화 <럭키>에서 재성 역의 배우 이준이 2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질문에 답하는 그의 눈빛엔 종종 장난기가 어려 있었다. 그렇다고 진지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제 나이에 맞는 청년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이다. ⓒ 이정민


앞서 언급했듯 그는 가수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아이돌 그룹 엠블랙의 멤버로 인기를 구가하다 2014년 탈퇴를 선언하고 연기에 전념하기로 한다. 나름 큰 결단이었을 법했지만 이준은 가수 활동을 그만둔 것에 "크게 결심하고 그런 건 아니"라면서 "잘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생각에 내린 결정"이었음을 설명했다.

"가수로 활동할 때도 그렇고 마음가짐은 똑같아요. 다만 <배우는 배우다> 때 가수 활동을 병행했으니 여유가 없었죠. <우리 결혼했어요>에도 출연 중이었고, 행사도 뛰고 연습도 하다 보니 현장에서 리허설도 없이 촬영한 적도 있어요. 당시 스태프분들께 죄송한 일이지만 정말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인사할 시간도 없이 바로 촬영하기도 했거든요.

아이돌 가수 출신이라는 편견이요? 배우와의 그 경계선이 애매한 거 같은데 저 스스로는 깨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가수 활동 역시 내 인생이었고, 후회 없이 살았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는 겁니다."

재치와 농을 섞어 가며 인터뷰에 응한 그지만 사뭇 이 지점에선 진지했다. 특히 이준은 "카메라가 내 얼굴을 크게 잡을 때 무섭다"며 "온몸을 움직이면서 연기하는 걸 좋아하는데 카메라가 가까이 들어오면 경직되곤 한다. 깨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카메라의 무서움을 안다는 건 그만큼 자기반성을 한다는 의미 아닐까. "대중 앞에 서는 사람으로서 그 반응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며 이준은 그간 느껴온 고충 일부를 전했다.

"제가 보이는 만큼 멘탈이 강하지 않아요. 슬럼프도 굉장히 많고요. 이틀에 한 번씩은 옵니다! 이 직업이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물론 다들 힘든 삶이고, 어른으로 사는 게 이런 건가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버티는 거겠죠. 요즘 드라마 촬영 중인데 법정 장면에서 어설퍼 보이면 안 된다고 다짐하면서도 제 대본을 제대로 숙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때 괴롭죠.

그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는데 그렇질 못해요. 물론 이런 부담감은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직업이니까요. 근데 막상 닥치면 사람인지라 괴롭잖아요. 아직까진 잘 이겨낼 방법은 모르겠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으려 해요. 하지만 집에선 많이 외로워한답니다. (웃음)"

연기의 꿈

 영화 <럭키>에서 재성 역의 배우 이준이 2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위에선 그를 보고 멘탈이 강하다고 평한다. 정작 본인은 "흔들릴 때가 많다"며 "인터넷 댓글도 사실 꾸준히 본다"고 말했다. ⓒ 이정민


인터뷰 중 이준은 그간 밝히지 않았던 사실 하나를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창피한 일"이라며 몇 년 전 경희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시험 보러 간 일을 언급했다. 결과는 낙방. 이준은 "그때 붙은 친구들도 몇 명 있었는데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참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그만큼 연기에 대한 그의 갈증이 컸다고 볼 수 있다. 대체 언제부터 그의 마음에 연기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 걸까.

"특별한 계기 없이 그냥 연기하고 싶었어요. 당시 중학생이었는데 선생님이 제게 떨어질 거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 말에 무용을 배우기 시작한 거고 대학까지 그 과로 간 거죠. 그러다 대학을 자퇴하고 연기를 시작했고요. 제가 시험 봤을 당시 후배 중엔 붙은 이들이 있겠죠? 지금도 연기를 전공한 후배들을 보면 주눅이 들고 그래요. 지금도 늘 부족하지만, 연기에 전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었고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준은 "사람마다 누구나 자기만의 걸음이 있잖나"라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질문의 형식이었지만 이는 곧 자기 자신에게 내리는 선언과도 같은 말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면서도 동시에 가는 길에 대한 강한 확신을 하는 것. 그게 바로 그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었다.

 영화 <럭키>에서 재성 역의 배우 이준이 2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준에게는 이준만의 걸음이 있다. 그는 자신만의 속도와 보폭으로 그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 이정민


 영화 <럭키>에서 재성 역의 배우 이준이 2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럭키>에서 재성 역의 배우 이준이 2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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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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