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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한눈에

  • "어이가 없습니다. 도저히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벌어진 거죠."
  • "'우주가 도와준다'? 연설기록비서관 수준에서 나올 수 없는 말"
  •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모두 본인 책임 아래 연설문 최종적으로 완결지었다"
  • "대통령은 말로 국정 운영하는데... 누군가 연설문을 고친다면 그 사람의 뜻대로 국정이 좌지우지된다"
JTBC는 24일 메인 뉴스프로그램 <뉴스룸>에서 "최순실씨의 PC에서 대통령 연설문 등이 나왔다"라고 보도했다.
 JTBC는 24일 메인 뉴스프로그램 <뉴스룸>에서 "최순실씨의 PC에서 대통령 연설문 등이 나왔다"라고 보도했다.
ⓒ <뉴스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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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연설과 발언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둔다"거나 안중근 의사의 순국 장소를 '뤼순'이 아닌 '하얼빈'이라고 하는 등의 발언으로 국민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지난 19일 JTBC는 청와대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보도 후 청와대는 "말도 안되는 일"이라면서 펄쩍 뛰었다. 그러나 지난 24일 JTBC는 최순실씨 컴퓨터 속 파일을 입수해 박 대통령의 연설문 한글 파일을 찾아냈다. 이날 보도에 따르면 최씨는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대중에 공개되기 전 미리 받아본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국민의 정부 후반기와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연설 비서관를 지낸 강원국 전 연설비서관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강원국 전 비서관과 나눈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연설문 유출? 시스템이 없었거나 아직도 유신인 줄 알거나"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 비서관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 비서관
ⓒ 강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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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수정했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청와대는 부인했지만, 24일 JTBC 보도에 따르면 최씨의 컴퓨터에서 박 대통령의 연설문이 나왔습니다. 이 사안을 어떻게 보시나요?
"어이가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요. 대통령 연설문은 청와대 문건 중에서도 극도로 보안에 신경 쓰는 대상입니다. 도저히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벌어진 거죠."

- "도저히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하셨는데...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시스템이 무너진 거죠. 시스템이 애초에 있지 않았거나. 혹은 세상이 바뀐 걸 모르고 과거 유신 시절처럼 그래도 되는 줄 알고 있거나."

- 이전부터 박 대통령의 발언들은 도마 위에 자주 올랐습니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란 발언이나, 최근 광복절 연설에서 안중근 의사의 순국 장소를 잘못 말한 것 등 논란이 좀 있었는데요. 논란이 된 연설 및 발언을 들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우주가 도와준다'는 문구 등은 연설기록비서관 수준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들입니다. 누군가 최종적으로 손을 보는 '핵심 참모'가 있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철저하게 공식라인을 존중했습니다. 청와대 참모들의 의견을 적극 청취하지만, 연설문 작성 과정에는 개입시키지 않았죠. 공식적으로 연설 비서관 손에서 마무리되게끔 했습니다.

대통령이 청와대 내부 직원이라고 해도 연설 비서관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보호해줬습니다. 두 대통령 모두 본인 책임 아래 연설문을 최종적으로 완결지을 수 있는 역량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연설문조차 자신이 쓰지 못하는 사람이 대통령?"

- 그럼 연설문에 대통령의 능력은 어느 정도 반영되나요?
"대통령은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하고, 그 내용을 국민과 소통하면서 힘있게 추진해 나가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그게 대통령 역할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대통령의 말로 실현됩니다. 판단과 결정도 말로 표현했을 때 의미가 있고, 소통 역시 말로 하지요. 연설문이 바로 그 역할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연설문을 자신의 손으로 쓸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리더 자격이 없습니다. 시간이 없어 참모의 손을 빌릴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역량은 갖추고 있어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 일반적인 연설문의 오류는 사람이 하는 이상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연설문이라면 말은 달라지지 않습니까. 비서관들이 체크할 텐데…. 최씨가 개입해서 오류가 났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이런 오류 말고도 다른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요.
"(최씨가 개입해서 오류가 났다는 건) 개연성이 충분히 있죠. 무엇보다 대통령 연설문을 연설에 앞서 받아보는 것은 국가 기밀을 사전에 입수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그 내용이 국외로 유출돼 국익에 엄청난 손실을 입힌다든가, 정보를 입수한 개인이 사적으로 그것을 이용해 이득을 취할 수도 있지요. 거기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주식에 투자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대통령 지시 없이 가능했겠는가 생각도... 지시 없었다면 국기문란 이상 범죄"

- 대통령의 연설문은 청와대 비서관 이외엔 공유할 수 있나요?
"노무현 대통령 당시, 대통령 연설문이 사전에 외부로 나가는 경우는 제 기억으로 한두 번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광복절 경축사를 대통령 연설 몇 시간 정도 앞서 3부 요인 등에게 극비로 보내줬지요. 그것도 대통령께서 지시하셔서 그렇게 했습니다.

연설문은 대통령의 말이기 때문에 비서실장도 그런 지시를 할 수 없어요. 이번 건이 과연 대통령 지시 없이 가능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지시 없이 그런 일이 자행됐다면 이것은 국기 문란 차원 이상의 범죄행위죠."

- 대통령의 연설문은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담겨져 있잖아요. 그런데 외부인이 연설문을 수정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국정농단'이죠. 대통령은 말로 국정을 운영합니다. 대통령 연설이 곧 국정 운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연설문을 누군가 고친다면, 고치는 그 사람이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것입니다."

- "연설문을 누군가 고친다면, 고치는 그 사람이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대통령 연설문은 대통령의 생각이고 말이잖아요. 우리나라 같이 대통령이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국가에서, 특히 지금과 같이 여당과 공무원은 대통령 입만 쳐다보고, 청와대는 받아쓰기만 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나라가 일사분란하게 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태그:#강원국, #박근혜, #최순실, #연설문, #비선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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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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