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자백> 포스터. <자백>은 사회적 의미만을 갖춘 작품이 아니다. 그 자체로 이미 잘 만든 영화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 포스터. <자백>은 사회적 의미만을 갖춘 작품이 아니다. 그 자체로 이미 잘 만든 영화이다. ⓒ (주)시네마달


MBC 전직 PD였던 최승호 감독이 만든 <자백>은 전형적인 사회 고발 영화이다. 지난 2013년 있었던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에서 시작되는 영화는 1970년대 있었던 간첩조작사건으로 끝을 맺는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 취재를 영화화했다는 정보만 대강 알고 극장을 찾았던 관객이라면 다소 놀라게 할만한 전개이지만, 유우성을 간첩으로 몰았던 국정원을 다룰 때도, 수많은 재일교포를 간첩으로 몰아세우던 당시 중앙정보부를 추적할 때도 영화가 가진 톤은 비교적 균일하다.

'그들만의 리그'에 갇히지 않다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 한 장면. 최승호 PD의 분투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동시에 톤이 균일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 한 장면. 최승호 PD의 분투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동시에 톤이 균일하다. ⓒ (주)시네마달


보통 <간첩>처럼 민감한 사회 소재, 특히 국정원과 같은 국가 권력 심장부의 비리를 파헤치는 사회 고발 영화는 그 자체로 '꼭' 봐야 하는 영화로 간주하여지곤 한다. 대표적인 예가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이빙벨> <나쁜 나라>가 그랬다. 이 영화들이 개봉할 때, 평소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거나, 세월호 진상 규명운동에 동참하는 이들은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서 '꼭' 봐야 하는 영화로 적극적으로 홍보하곤 했다. 그리고 이 영화들은 만 명만 넘어도 성공이라는 독립영화계에서 '5만296명(<다이빙벨>)', '2만1436(<나쁜 나라>)'(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을 기록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독립영화 혹은 다양성 영화의 경우,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해당 영화들을 볼 수 있는 상영관이 많지 않다는 아쉬움이 크다. 또한 해당 영화들은 평소 독립영화를 즐겨보거나, 세월호 진상 규명에 공감하는 이들만 본다는 한계에 부딪힌다. <자백> 또한 상영관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이 영화에 특별히 관심 있는 사람들만 일부러 <자백> 상영관을 찾아 관람하는 일종의 '그들만의 영화'일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자백>은 개봉 2주차 기준, 100개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77개 상영관(2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에서 무려 9만 명을 기록하는 폭발적인 흥행세를 이어간다. 개봉 첫 주 만에 300만을 기록 했다는 등의 뉴스만 접한 대다수의 네티즌은 고작 '9만 명'의 숫자에 환호하는 것이 어리둥절할 수도 있겠지만, 전국 대부분의 상영관을 독점 하다시피 하는 대기업 계열 투자배급사에서 만든 상업영화들과 달리, <자백>처럼 적은 스크린 수에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다양성 영화가 개봉 2주차 만에 '9만'을 기록 했다는 것은 엄청난 숫자다.

상영관 열세에도 불구 <자백>이 개봉 2주차 9만 명의 관객 수를 동원한 것은, 이 영화가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을 폭로한 고발 영화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최승호 감독이 MBC PD로 재직하면서, <PD수첩>을 만들 당시에는 구태여 이런 사건의 이면을 굳이 극장까지 가지 않아도 TV에서 볼 수 있었지만,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작금의 상황에서는 그럴 수 없다. 그나마 지난 22일 고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의 진실을 추적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공중파 시사고발 프로그램으로서 유일하게 제 역할을 해내는 프로그램으로 평가받지만, 국가 권력기관의 비리를 폭로하는 데 있어서 아쉬움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언론에 염증을 느낀 시민들은, 사회고발 영화로서 그 기능을 충실히 하는 <자백>을 통해 그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자백>의 흥행을 논할 수 있을까? TV 프로그램을 보는 것과 다르게,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본다는 것은 시간 외에도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적지 않은 기회비용을 포기해야 한다. 때문에 관객들의 선택은 깐깐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웬만한 상업 영화처럼 지천으로 널려있는 멀티플렉스 상영관 아무 데서나 볼 수 없는 <자백>과 같은 경우에는 상영관을 찾아가는 데 있어 더 많은 추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그런데도 9만의 관객들이 기꺼이 쉽게 볼 수 없는 영화 <자백>을 보러와 주었고, 영화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멀리서 영화를 보러와 주는 것도 감지덕지한 데, 그 관객들로부터 호평세례를 받는 것은 더 어렵다.

완성도와 작품성이 튼실한 <자백>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은 '다큐멘터리'에 충실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은 '다큐멘터리'에 충실하다. ⓒ (주)시네마달


물론 관객들이 이구동성으로 <자백>에 호평을 아끼지 않는 것은, 요즘 같은 시대 이런 무서운(?) 영화를 만들어낸 최승호 감독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 개념도 크다. 그러나 <자백>은 응원·격려 차원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영화로서의 완성도와 작품성만 놓고 봐도 굉장히 잘 만든 영화이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소재 특성상, 보기 힘든 장면과 내용이 종종 나오긴 하지만, 여러 가지 증거를 토대로 한 인과관계 파악을 통해 감독이 관객들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전달하고, 설령 같은 소재와 주제를 두고 평소 감독과 다른 생각을 하는 관객조차 영화적으로 설득시키는 힘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흔하게 경험할 수 없는 체험이다.

<자백>이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중에서 수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분명 영화계 안팎으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킬 민감한 소재와 주제를 능수능란하게 다룬 방식에 있었다. 이는 오랜 세월 공중파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한 최승호 감독의 깊은 내공에서 비롯된 원숙함이다. 그래서 <자백>을 두고, 시사고발 방송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고, 영화적인 접근방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자백>의 완성도를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그런데 묻고 싶다. 사회고발 혹은 그 확장선 상에서 액티비즘 다큐멘터리를 표방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중에서 <자백>만큼, 차분하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할 말 다하고, 문제의 핵심에 정확히 총구를 겨누는 영화가 있는가 말이다. 물론 아직 극장 개봉은 안 했지만, 박배일 감독의 <깨어난 침묵>, 김일란, 박혁상 감독의 <공동정범> 또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중에서 예외적으로 완성도와 문제의식을 명확히 갖춘 훌륭한 영화이지만 감독의 내레이션이 곁든 <자백>과는 판이한 전개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들 중에서 어떤 영화가 최고인지 우열을 가릴 수 없고, 가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문제의식은 투철하지만,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하거나 혹은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에 빠져, 결국 변죽만 울리거나 아니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고 오직 관객의 판단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듯한 무책임한 영화들과 비교해봤을 때,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확실하고, 장면과 장면 사이 극적인 긴장감 조성과 함께, 탄식과 분노가 절로 나오게 하는 <자백>의 뛰어난 연출과 구성은 영화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대체로 <자백>을 보러 간 사람들은 평소 시사에 관심이 많고, 현 정권에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이 상당수일 가능성이 높고(제발 엄청난 편견이길 바라며), 영화가 아닌 다른 매체로 봐도 충격과 분노, 탄식을 자아내는 사건이지만, 어찌 되었던 영화를 보는 그 순간 관객들을 적극적으로 몰입시키는 <자백>의 탁월한 스토리 텔링과 장면구성은 매혹적이고도 오랜 세월에도 쉽게 잊히지 않을 강한 잔상을 남긴다. 영화가 가져야 할 요소들이 고루 갖춰진 이 영화 <자백>. 감히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로 말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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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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