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춘몽> 포스터

영화 <춘몽> 포스터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영화의 플롯은 얼기설기 섞여있다. 마치 잠을 자며 토막 꿈을 꾸듯, 한 토막 두 토막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영화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것이 꿈이고 어떤 것이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의 모호함을 띠며 진행되는 모든 에피소드는 '예리'라는 한 여자의 행동반경을 중점으로 모여드는 인물들을 통해 형성된다. 그렇게 만들어져 어떤 일정한 결말과 흐름대로 향하지는 않는다. 각 장면의 특성 그 자체로 톡톡 튀며 빗물 고여 있듯 제자리이다. 해가 들지 않아 마르지 않는 고인 빗물 웅덩이에 빠진 것처럼, 영화 속 그들은 갈피하나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어쨌든 그저 산다.

예리와 세 남자의 흑백같은 현실

서울 수색동의 오래되고 낡은 느낌의 주택가 골목 한 켠에 자리한 '고향' 이라는 이름의 주막은, 예리가 식물인간이 된 병든 아버지를 모시며 운영하는 곳이다. 그 곳을 제 집처럼 뻔질나게 드나들며 예리를 보러 오는 세 남자가 있다.

한 눈에 봐도 동네건달이라고 말하는 옷차림과 말투, 껄렁한 농담까지 익준은 영화 <똥파리>에서 그대로 옮겨온 듯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동네골목을 돌며 꺾어온 봄꽃을 예리에게 선물하는 로맨스적인 감상도 있다. 팍팍한 삶이더라도 웃음이 많은 사람이지만 주변엔 여자도 없을뿐더러 가족도 없다. 동네건달들 중에서도 소일거리조차 없는 퇴물에 속하는 그와 함께 하는 이들은 고향 주막의 예리와 탈북자 정범, 예리네 집 건물주 아들 종빈이 전부다.

눈이 슬프다며 월급도 못 받고 공장에서 부당해고 당했다는 정범은 탈북자이다. 사장의 차가 공장을 빠져 나간 지 한참이 되었음에도 공장 입구에서 허리가 꺾일 듯 90도로 반복인사를 하는 그의 기이한 행동. 그것은 그가 할 수 있는 생존을 향한 절제된 처절함이다. 고향을 떠나 왔건만, 그에게 찍힌 탈북자라는 낙인과 닥친 현실은 행복과는 멀어 보였다.

또 한 남자, 예리네 건물주 아들이자 간질을 앓고 있는 종빈은 극중 가장 바보스럽지만 동시에 제일 순수하고 어리며 본능적인 인물로 해석된다. 주막에 찾아와 예리가 읽고 있던 책을 읽어달라고 조르는 행동은 그의 어린아이스런 구석의 일부였다. 예리가 읽어주자 듣다 말고 "예리씨는 목소리가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라는 황홀에 젖은 한 마디를 뱉은 뒤 일으킨 발작.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도 그리 크게 당황하지 않고 예리와 두 남자는 종빈의 주위로 모여들어 그가 발작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영화는 종빈이 사회로 나가 많은 이들과 소통하기 어려운 가장 큰 원인인 발작이, 수색동의 한 동네 주막에 모인 이들 사이에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게 비춘다.

중국에 살다 병에 걸린 엄마를 떠나보내고, 얼굴도 모르고 살던 아빠를 찾아 한국에 온 예리는 동네 세 남자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그녀가 한국에 오자마자 병이 들었다는 식물인간 아빠의 수발을 하느라 진이 빠지는 예리는 청춘이 건조하다. 그녀가 거동 못하는 아빠를 목욕시키다 초주검이 된 몸을 일으킬 때 튀던 물방울만이 그녀가 처한 현실의 건조함을 적셔주는 듯했다.

내내 이어지는 흑백의 화면은 어떤 꿈도 행복도 없어 보이는 예리와 세 남자의 무색적인 현실을 반영한다. 다만 시도 때도 없이 "예리가 좋아!" 장난스레 고백하는 조금 모자란 세 남자와 예리의 일상은 그들끼리 즐거울 때가 있긴 있다. 그 마저도 없다면 흑백 같은 하루하루를 버텨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주막 '고향' 앞에서 예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정범, 종빈, 익준

주막 '고향' 앞에서 예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정범, 종빈, 익준 ⓒ 스톰픽쳐스코리아, 프레인글로벌


"여기가 우리 고향이지"

중국을 떠나 온 조선족 여자 예리, 고향을 등지고 이곳에 온 탈북자 종빈, 부모 없는 고아로 고아원을 전전하며 홀로 살아온 건달 익준. 건물주 아들로 수색동에 자리 잡아 살고 있지만 자신 삶의 역사에 아둔한 종빈.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뒤섞인 삶을 사는 이들에게 가장 아픈 단어가 바로 '고향' 아닐까.

이태백의 시를 읊으며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드러내는, 늘 무엇인가를 꿈꾸는 듯한 눈빛을 가진 예리가 운영하는 주막 이름도 '고향' 이다. 마음 둘 곳 없는 그들이 소소하게 어울리는 일상이 코믹함을 넘어서 이상해 보이다가도 고향이란 간판의 주막 이름이 보일 때면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주막 문을 열면 울리는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고향집에 온 것 같은 정겨움이 있고, 그 곳엔 꿈도 희망도 없는 삶을 사는 범상치 않은 세 남자가 앉아 있다. 그리고 봄날의 꿈을 꾸듯, 외형적으로 그들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름다운 여인 예리가 있다.

아프고 힘든 현실이지만, 함께 모여 웃을 수 있는 그 곳이 고향처럼 마음의 안식이 된다. 고향 '주막'은 그들에게 그런 존재로 문을 열어둔다. 고향이 어디냐는 종빈의 물음에 답했던 익준의 한마디가 공중에 퍼졌을 때는, 쉼 없이 주막을 찾는 그들 일상을 정리하는 순간이었다.

"여기가 우리 고향이지."

 영화보러 상암동에 도착한 예리와 삼인방

영화보러 상암동에 도착한 예리와 삼인방 ⓒ 스톰픽쳐스코리아, 프레인글로벌


수색과 상암, 버려진 낡은 것들에 대하여

예리와 삼인방이 사는 수색동 골목의 낡은 집들과 빛바랜 간판 등은 예리가 공짜영화를 보러 지하굴다리를 걸어 도착한 상암동의 반짝이는 화려함과 대비된다.

영화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서울의 재개발 구역에 속하는 수색동의 낡고 버려진 듯한 허전함은, 경의선을 기점으로 상암동과 흑과 백처럼 분리된다.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무료 상영되는 영화를 보러 간다는 이유로 걸었던, 지하로 이어진 굴다리 안에서 예리와 세 남자는 꿈길을 걷는 기분 이었을까? 정반대의 분위기로 이질감마저 풍기는 수색과 상암을 오가는 그들의 장면은, 현실과 꿈이 오버랩 되는 느낌마저 풍긴다.

화려하고 세련된 상암동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예리의 일행이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 꿈길을 건너 도착한 그 곳에서의 일상은 녹록지 않았다. 영화의 지루함을 못 견딘 익준의 힐난에 시끄럽다고 쫓겨난 그들이 다시 돌아갈 곳은 경의선 건너 그들 마음의 고향인 수색동. 곧 잊히고 말 것처럼 낡고 버려진 것들이 난무한 수색동의 흑백 풍경은 가슴이 아릴만큼 현실적이었다. 비단 보여 지는 쓸쓸한 동네 분위기만이 아니다. 재개발로 인해 돈이 없어 이사를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할 이들이 아직 그 곳에 살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영화 <춘몽>에서 등장하는 현실의 공간적 대비는, 한 줌 빛조차 들 것 같지 않은 어두운 어딘가를 지나고 있는 예리와 세 남자의 초라한 인생과 절묘하게 꼭 들어맞는다.


덧붙이는 글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rnjstnswl3 에도 실려있습니다.
춘몽 장률 한예리 양익준 윤종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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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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