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방영한 MBC every1 <PD 이경규가 간다> 한 장면

지난 19일 방영한 MBC every1 한 장면 ⓒ MBC every1


1996년 방영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경규가 간다>(아래 <이경규가 간다>)는 그야말로 사회를 뒤흔들었던 프로그램이었다. <이경규가 간다> 덕분에 사람들은 정지선을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인식을 확고히 하게 되었고, 백해무익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TV 예능프로그램이 스스로 순기능을 증명한 자리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이경규는 자신이 진두지휘하는 MBC every1 <PD 이경규가 간다>(지난 19일 방송)를 통해 당시 양심냉장고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한다. 당시 프로그램을 만든 김영희 PD는 없지만, 그 프로의 공동 주역 이경규가 해당 프로그램을 리바이벌 한다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 없다. 다만 예전과 달리 MBC <느낌표>와 같은 공익 예능 프로그램이 더 이상 시청자들에게 먹혀들지 않는 지금, '양심냉장고'를 다시 꺼내든다는 게 시대착오적이라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지켜본 <PD 이경규가 간다>는 예상과는 달리 정지선을 잘 지키는 시민들의 모습에 살짝 흥분하다가도 여전히 꼬리 물기가 이어지는 시내 한복판 무법천지에 아쉬움을 표하는 순간이 이어졌다. 예전보다 정지선을 잘 지키는 시민들이 늘어났다고 하나, 정작 양심냉장고 주인을 찾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지나야 했다. 촬영 다음날 새벽까지 정지선을 제대로 지키는 시민을 기다렸지만, (물론 있었지만 아쉽게 해당 차량을 놓치고 말았다) 결국 며칠 뒤 가진 재촬영에서 이른 새벽에도 정지선을 잘 지키는 투철한 준법정신을 가진 한 시민을 만날 수 있었다.
 
이경규가 다시 '양심냉장고' 카드를 꺼낸 것은, 그가 기획하고 제작하는 <PD 이경규가 간다>의 흥행을 위한 일종의 선택이었다. 이경규는 '도로 위의 양심' 프로젝트를 오래 진행할 계획이 전혀 없다. 20년 전에는 '양심 냉장고' 하나 만으로 장기간 방영도 가능했던 히트 아이템이 2016년에는 이경규의 과거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단발성'으로만 머무는 것은 앞서 말했다시피 더 이상 공익성 강한 예능 프로그램이 각광받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공익 예능의 전성시대
 
<이경규가 간다> 대성공 이후, <느낌표>를 비롯하여, KBS <좋은나라 운동본부> 등 공익성이 강한 방송 프로그램이 여럿 생겼고,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좋은나라 운동본부> 같은 경우에는 2년 전, 시즌2로 부활하여 방영한 바 있다. 하지만 음주운전의 심각성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한 지난 시즌과 달리, <좋은나라 운동본부> 시즌2는 사회 고발 뉘앙스가 더 강했다. 좋은 취지였지만 시즌2는 18회 만에 종영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이제 더 이상 <이경규가 간다>, <느낌표>, <좋은나라 운동본부>와 같은 프로는 뜨거운 반응을 얻지 못한다. 돌이켜 보면, 정지선은 잘 지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경규가 간다>와 같은 프로그램이 큰 호응을 얻었던 그 시절이 지금보다는 사회 전반적으로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강했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던 것 같다.

 지난 19일 방영한 MBC every1 <PD 이경규가 간다> 한 장면

지난 19일 방영한 MBC every1 한 장면 ⓒ MBC every1



아이러니하게도 20년 전보다 비상식적이고 부조리한 현상이 만연한 지금, 그렇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다수의 시민들에게 정신력 강화나 시민의식 강화를 요구하는 프로그램의 방영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실소만 자아낼 뿐이다. 그렇다고 요즘 예능 프로그램들이 공익을 등한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MBC <무한도전>은 젊은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춘 재기발랄한 기획을 선보이는 와중에도 틈틈이 역사 교과서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역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다. 지난 3월 안중근 특집을 기획한 KBS <해피선데이-1박2일>은 지난 일요일 방송에서 '대왕세종 특집'을 다뤄 호평을 받기도 했다.
 
<무한도전>, <1박2일> 모두 이전 '공익 예능'처럼 시청자들의 준법 의식 향상 등을 목표로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는다. 시청자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보다, 재미있는 놀이를 통해 보통의 시청자들이 미처 알지 못한 걸 알리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시대가 바뀐 만큼 공익을 대하는 예능의 접근 방식도 달라야하고,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또한 무조건 시민들의 정신력 개조를 통해 사회 전체의 이익을 도모 하려는 것이 아닌, 제대로 된 역사교육과 함께 잘못 돌아가고 있는 현실에 당당히 쓴 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전환도 필요하다. 그것이 2016년에 걸 맞는 진정한 공익 아닐까. 교통질서 확립을 위해 정지선은 당연히 잘 지켜야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 진짜 필요한 시민 의식은 그 이상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 미디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PD 이경규가 간다 이경규 양심냉장고 정지선 공익 예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