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친구들로부터 이런저런 고충을 듣곤 한다.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면 하나부터 열까지, 안 걸리는 것이 없지만 가장 많이 듣는 불만 중 하나는 '농담'에 관한 것이다. 지인들에게 커밍아웃하고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을 알렸음에도, 혐오·비하나 다름없는 농담을 종종 마주한다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자신이 게이임을 알린 한 지인은, 곧바로 '그럼 너는 '여자(역할)' 하는 거냐?'라는 어이없는 질문과 마주했다고 한다. 질문을 던진 그는 킥킥 거리며 웃었고, 당황한 지인은 그 자리에서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후에 그는 그 농담을 던진 사람에게, 그런 질문은 동성애자에게 굉장히 무례한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되려 'TV에서도 나오던 농담인데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이 아니냐'는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tvN < SNL 코리아 > 유세윤과 김민교

tvN < SNL 코리아 > 유세윤과 김민교가 나온 '귀요미송'의 한 장면.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는 성 편견을 성소수자에 그대로 덧씌워 희화화한다. ⓒ tvN


그가 언급한 프로그램은 유세윤이 게스트로 출연했던 <SNL 코리아>였다. '귀요미송'을 패러디한 영상에서 유세윤은 여장을 한 김민교와 스킨십을 나누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리고 영상의 말미 쇼의 또 다른 캐스트인 정이랑이 등장해 욕설을 퍼붓고 질문을 던진다.

"누가 여자냐?"

조용히 손을 드는 영상 속 유세윤을 바라보면, 친구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식의 유머가 아무런 문제 없이 방송된 것이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여전히 성소수자들에게 무례한 방송

내 친구가 경악했던 그 영상이 방송된 것은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흐른 지금, 방송이 성소수자를 다루는 방식은 더 나아졌을까? 아쉽게도 답은 부정적인 것 같다. 얼마 전 홍석천이 게스트로 출연한 채널A의 토크쇼 <풍문으로 들었쇼>를 보았는데, 자신이 입양한 조카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그에게 한 출연자가 '돌아오신 거예요?'라고 질문했다. 그냥 스쳐 가는 장면도 아니었고, 프로그램은 '돌직구'라는 큼지막한 자막을 달아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발했다. 그리고 웃음을 터트리는 게스트들 사이에서 홍석천은 웃음으로 그 질문을 넘겼다.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 스틸 사진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의 홍석천은 무례한 농담을 들을 때마다 웃어야 했다. ⓒ 채널A


당사자가 웃고 지나갔다지만 그 질문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지적할 점이 한 가지도 아니다. 우선 동성애자에게 던지는 '(이성애자로)돌아왔냐'는 표현부터가 그렇다. 이는 마치 우리는 모두 이성애자로 태어나며, 이성애가 자연적인 것인 양 전제한다. 그리고 이 전제 속에서 당연히 동성애는 일탈적이거나 순간의 방황 정도로 여겨진다. 이러한 인식은 '동성애가 정상이 아니며 치료할 수 있다'는 인식과도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매우 문제적이다. 또한 홍석천의 입양을 놓고 '더 이상 동성애자가 아니냐'는 식의 질문을 던지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부모가 되고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오직 이성애자들 만의 일인가? 누군가가 동성애자라면, 그 사람은 입양할 수도, 아이를 기를 수도 없다는 것일까.

유해한 농담이 미치는 파급력

내게 특히나 그 장면이 기억에 남았던 것은 당황스레 웃음을 짓는 홍석천의 반응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그런 그의 반응을 놓고, 홍석천이 그 질문이 무례하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가 그 질문이 문제적이라는 것을 인식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더 나아가 그것을 알았다고 해도 다른 반응을 보이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질문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던져졌으며, 모든 사람이 그 말에 웃고 있었으니까. 만약에 그가 정색하고 그런 질문이 왜 문제인지를 설명했다면 분위기는 심각해졌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웃자고 던진 농담에 죽자고 덤벼든 예민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방송인으로서 프로답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 스틸 사진

홍석천이 과연 문제를 지적할 수 있었을까. 그 질문에 모든 출연자가 웃고 있었다. ⓒ 채널A


내가 이런 예상을 하는 것은, 일상에서 불편한 농담을 지적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식의 반응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농담으로 불쾌해진 것이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인 경우마저도 그렇다. 모르고 그랬는데 너무하는 거 아니냐, 사람들 다 즐거운 자리에서 왜 흥을 깨냐, 다들 재밌다고 그러는데 네가 문제 있 는거 아니냐, 좋게좋게 넘어가면 안 되냐, 왜 감정에 치우쳐서 잘 노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못하느냐 등등. 그리고 이런 식의 반응들을 줄기차게 마주하다 보면, 결국 사람들은 불쾌감을 표해봤자 본전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다. 방송에서 보인 홍석천의 그 반응은, 내 성소수자 지인들이 사석에서 무례한 농담을 마주했을 때 보이는 모습과 같다.

유머를 방송하는 사람들의 책임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방송이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섞인 농담을 내보낼 때 그 파급력은 엄청나다. 누군가는 그 순간만 웃고 넘기겠지만, 당사자들은 비슷한 이야기들을 일상 곳곳에서 마주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그런 농담을 마주한 소수자들이 바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쉽지 않다. 지금은 방송에 등장하는 유명 성소수자가 홍석천 한 사람 정도지만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서는 당사자보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자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옳다. 자신이 만드는 방송의 영향력을 인식하고 거기에 걸맞은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농담이 혐오의 양상을 띠지 않는지 면밀하게 검토하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면 방송에 내보내지 않는 것이다.

소수자에 대한 유머를 방송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소수자들에게 유해한 농담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 속에서 새로운 방식의 코미디가 탄생하기도 한다. 가령 나는 미국 SNL에서 방송된 '게이 캠프(Gay Camp)'라는 스킷을 매우 인상적으로 보았는데, 이 콩트는 사회적으로 한동안 이슈가 됐던 '전환 치료 캠프'를 주제로 했다. 스킷에는 자신은 원래 게이였지만 전환 치료를 통해 이성애자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캠프 강사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캠프 입소자들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탈동성애(?)를 했는지 입증하고자 하지만, 그의 이성애 수행은 어색하기 짝이 없으며 계속해서 함께 캠프 강사가 된 예전 애인에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 SNL '게이 캠프' 스킷 스틸컷

미국 < SNL > '게이 캠프' 과연 이들은 '탈동성애'에 성공할 수 있을까. < SNL >은 그런 생각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 NBC


이 스케치의 인상적인 지점은 영상 속에 여러 성격의 동성애자를 등장시켜 성소수자에 대한 전형화를 탈피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게이 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그 문화 자체를 농담거리로 만들지 않는다. 그 요소들은 동성애자에 대한 전환 치료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즉 성소수자에 대한 병리적 접근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비판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등장한다. 즉 이 영상은 성소수자와 그들의 문화를 주요 소재로 삼지만, 이를 조롱하는 방식이 아니라 여기에 대한 혐오를 비판하는 방식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새로운 농담의 가능성을 찾기를

이 영상 외에도 언급할만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다만 그것들이 모두 한국의 것이 아니라는 점은 유감이다) 이 사례들은 소수자를 코미디의 소재로 삼으면서도, 당사자들에게 무례하지 않은 방식으로 누군가를 얼마든지 웃길 수 있음을 증명한다. 소수자들의 사회적 위치와 이들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혐오를 마주하는지 고민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2016년의 한국에서 이런 유머를 바라는 것은 아직도 요원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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