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폭탄급 리스트였다.

청와대가 검열을 목적으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9473인의 명단을 작성하여 문화체육관광부로 전달했다는 주장이 지난 10일 <한겨레>의 단독 보도를 통해 제기됐다. 지난 2015년 5월 29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의록 전문을 시인이자 국회의원인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하면서 촉발된 이 이슈는, 국정감사를 거치면서 불이 붙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1일 현안 브리핑을 통해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친 정치검열"이라며 "의혹을 밝혀 '윗선'의 월권에 대해 그 책임을 분명하게 물어야 한다"고 공세의 고삐를 조였다. 반면 여당인 새누리당은 14일 "단순히 짜깁기한 자료"라며 사실무근이라고 맞섰다.

문화예술계의 전반적인 입장은 '황당' 그 자체였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들 중 몇몇의 이야기를 <오마이스타>가 직접 들었다.

 배우 송강호, 김혜수.

배우 송강호, 김혜수. ⓒ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영화인준비모임


[영화] 전방위로 압박 받는 스크린

문화계 블랙리스트에서 대중들의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건 아마도 영화인들일 것이다. 김태우·김혜수·문성근·문소리·박해일·송강호·신은경·윤진서·정우성 등 정상급 배우들부터, 김기덕·류승완·민규동·박찬욱·방은진·이명세·이준익·이창동 감독 등 스타 감독들까지 대거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적극적으로 정치 이슈에 목소리를 내 온 이들도 있고, 의외라는 평을 받는 인물들도 있다. 현 정권과 대척점에 있는 박원순·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이들은 물론, '세월호'라는 보편적인 감수성만 있다면 공감할 수 있는 이슈에 서명한 이들까지 모두 포함됐기 때문이다.

정지영 "일부러 창작기금 등 지원도 안 해"

부산국제영화제 참석한 정지영 '#SUPPORT BIFF #SUPPORT MR.LEE' 정지영 감독이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과,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 등을 요구하며 '#SUPPORT BIFF, #SUPPORT MR.LEE'라고 적힌 스티커를 옷에 부착하고 입장하고 있다.
올해 영화제는 69개국에서 301편의 영화가 초청돼 부산 영화의전당, CGV센텀시티, 롯데시네마센텀시티, 메가박스 등 5개 극장 34개 스크린에서 오는 15일까지 상영된다.

▲ 부산국제영화제 참석한 정지영 정지영 감독이 지난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과,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 등을 요구하며 '#SUPPORT BIFF, #SUPPORT MR.LEE'라고 적힌 스티커를 옷에 부착하고 입장하고 있다. ⓒ 유성호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남부군> <하얀 전쟁> 등을 연출했다. 영화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대표적인 진보 성향의 감독이다.

"그간 나도 모르는 불이익을 당해왔을 거라 생각한다. 결과가 훤히 내다보여서 일부러 창작기금 등에는 지원도 안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과연 명단에 있는 문화예술인을 빼면 몇이나 남을까? (이렇게 리스트를 만들면서) '문화 융성의 해' 같은 말은 코미디다. 세월호 이후 어처구니없는 시국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놀라울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사건은 계속 일어날 것이고, 빨리 극복해야 한다고 본다."

김조광수 "21세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동성애자이자, 영화감독인 김조광수씨가 21일 오후 7시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소수자라서 행복하다'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강연에 앞서 일부 시민들이 "동성애 강연을 취소하라"고 시위를 벌였지만, 강연은 큰 마찰 없이 마무리 됐다.

동성애자이자, 영화감독인 김조광수씨가 지난 2015년 4월 21일 오후 7시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소수자라서 행복하다'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김조광수 감독 역시 블랙리스트를 피하지 못했다. ⓒ 소중한


영화감독이자 영화사 <청년필름>의 대표다. <해피엔드> <질투는 나의 힘> <조선 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등을 제작했으며, 2006년 커밍아웃한 뒤 <후회하지 않아> <친구 사이?> 등 게이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를 제작, 연출하기도 했다. 레인보우팩토리 김승환 대표와 결혼 후 동성결혼 합법화에 힘쓰고 있다.

"2016년에도 이런 일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만든 것도 웃기지만, 세월호나 특정 후보 지지 서명한 사람들이라는 게 더 웃기다. 이게 블랙리스트 만들 만한 일인지 개탄스럽다. 누가, 무슨 의도로 만들어 배포했는지 철저히 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야 이 정부에서 지원하는 일을 신청한 일이 없기 때문에 직접적 불이익의 경험이 없지만, 독립영화 하시는 분 중에 석연찮은 이유로 계속 심사에서 떨어지는 분들이 있었다. 왜 그런 건지 지레짐작만 했었는데, 이렇게 리스트까지 만들어 관리한 줄 몰랐다. 이름 있는 게 영광이고 없는 게 부끄럽다고 농담은 하지만, 21세기, 2016년에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굉장히 가슴 아프다."

최광희 "리스트의 존재 자체가 웃기다"

 YTN 기자 출신으로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최광희 영화평론가도 이번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실렸다.

YTN 기자 출신으로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최광희 영화평론가도 이번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실렸다. ⓒ 강원문화재단


YTN, 필름 2.0 기자 출신 영화 평론가로 현재 YTN 웨더&라이프 <시네마 레인보우>의 진행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센스&난센스> <무비스토커> <천만 관객의 비밀> 등이 있다.

"문화예술인에게 실질적으로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일단 내게 돌아오는 결과 중 어떤 것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불이익을 받은 내용인지 모를 것이다. 체감을 못 한다. 게다가 크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불이익을 준다 해도 눈에 띄게 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리스트에는 충무로 막내 스태프들까지 있다. 그 모든 인원을 어떻게 일일이 뭘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겠나. 하지만 일단 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자체가 웃기다. 현 정권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 공유하면서 스크리닝 정도의 역할은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코멘트를 요청한 모든 이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당당하게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대중의 폭넓은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는 영화계에도 자기 검열이 횡행하고 있었다.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익명의 한 감독은 <오마이스타>에 다음과 같이 소감을 전했다.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도 없다.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발상 아닌가. 지금은 어떤 정보를 통제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 아닌가. 아날로그 시대에는 소수가 정보를 통제해 정권을 장악했지만, 21세기 정보화 시대에는 소수가 정보를 쥔다고 해서 권력을 장악할 수 없다. 이런 현대사회에 대한 '인지 부족'이 낳은 어처구니없는 사태다."

[문학] 문인의 붓을 탄압하는 정권

문인들 역시 이번 문화계 블랙리스트 속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안도현 시인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중에 내 이름이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명단을 살펴보았다. 참 다행이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를 포함해 많은 문인들이 블랙리스트의 존재 사실을 알고 SNS 등을 통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소설 <은교> <고산자>를 쓴 박범신 작가는 세월호 관련 성명서에 이름을 올려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는 "스스로 앞장서 예인들을 적으로 돌리는 시대착오적인 자들을 일꾼으로 거느린 대통령이 불쌍타"고 말했다.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만드는 사람조차 왜 이런 걸 만들어야 하는지 제 팔자를 한탄하며 만들었을 것"이라며 "샤머니즘 정치 아래서는 만인이 불행하다"고 언급했다.

송경동 "군부독재시절도 아니고... 반국가적인 일"

쌍용차 정리해고 알리기 위해 창간한 '굴뚝신문' 송경동 시인이 7일 오전 서울 구로구 쌍용자동차 구로정비사업소 앞에서 정리해고 비정규직법제도 전면폐기를 위한 2차 오체투지 행진 기자회견에 참석해 쌍용차 공장 굴뚝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과의 연대와 정리해고 문제를 공론화 하기 위해 창간한 '굴뚝신문'을 보여주고 있다.

▲ 쌍용차 정리해고 알리기 위해 창간한 <굴뚝신문> 송경동 시인이 지난 2015년 1월 7일 오전, 서울 구로구 쌍용자동차 구로정비사업소 앞에서 정리해고 비정규직법제도 전면폐기를 위한 2차 오체투지 행진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이다. ⓒ 유성호


시집 <꿀잠>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 노동 르포 <섬과 섬을 잇다> 등을 발간한 송경동 시인은 대표적인 '노동 전문' 참여 시인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그가 포함된 게 그리 이상하지 않다.

"보도를 보고 알게 됐다. 헌법에 보장된 정치사상·표현의 자유를 누렸다고 특정인의 리스트를 만들어 불이익을 주기 위해 별도로 관리하다니. 국가의 기본적인 자리를 망각하는 일이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문화예술계에 대한 탄압은 계속 이어져 왔다. 군부독재시절도 아니고 국가가 개인을 사찰했다는 것이지 않나. 이는 반국가적인 일이다. 관련 지침을 내려 보낸 사람들에 대해 분명한 사실 확인과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지요하 "야만적인 미친 정권"

 명예의숲 오름상을 수상한 지요하 시민기자.

▲ 시민기자 자격으로 참석한 지요하 시인 지난 2015년 1월 24일,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로 명예의숲 오름상을 수상한 지요하 시인의 모습. ⓒ 이희훈


장편 소설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 시집 <그리운 천수만>을 쓴 지요하 시인도 블랙리스트에서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있었다. 지요하 시인은 "지인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실을 알려줬다. 축하한다더라"라며 <오마이스타>에 그 소감을 전했다.

"사실 아직 내게는 현실적으로 불이익으로 보일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불안하다. 어떤 형태로든 불이익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지 않나. 이 야만적인 미친 정권이 끝나야 숨을 쉬고 살지."

[공연] 무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극·뮤지컬을 포함한 공연계 역시 이번 블랙리스트의 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세월호 관련 선언에서도 눈에 띄는 인물들이 있었지만, 특히 지난 2014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있었던 문화예술계의 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에 많은 이름이 포함됐다. 당시 서울연극협회가 나서면서 총 370여 명의 연극계 인사들이 대거 블랙리스트에 합류하는 '영광'을 누렸다.

김태형 "이름만 얹어서 부끄럽다"

 지난 1월 23일,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관객과의 대화 사진

▲ 김태형이 그리고 싶었던 세계 대학로에서 주목 받고 있는 김태형 연출도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 지난 1월 23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김태형 연출이 극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곽우신


김태형 연출은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카포네 트릴로지>, 뮤지컬 <로기수> <팬레터> 등으로 최근 대학로에서 가장 주목 받는 연출 중 한 명이다. 극적 재미와 사회적 메시지를 작품 내에 세련되게 융합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냉소적인 태도로 오늘을 바라보면서 바꿔나가야 할 내일에 대해 얘기한다. 그 역시 이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

"정부의 검열에 가까운 움직임 그리고 세월호 등과 관련해서 여러 번에 걸쳐 성명서를 내고 목소리를 내는 활동이 있었다. 더욱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신 분들이 많았고, 난 그냥 이름 하나만 보태었을 뿐인데, 이름만 얹어서 좀 부끄럽다.

나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공연하는 상업판에 있는 사람이라, 이 일로 직접적인 불이익은 없었다. 하지만 정말 아찔할 만큼 시대가 후퇴한 것인가 혹은 여전히 이런 후진적인 시대였는데 발전한 척 속고 살아온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아주 유치하고 반민주적인 일이다."

변정주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명예의 전당"

마이크를 잡은 변정주 연출 뮤지컬 <러브레터>의 연출을 맡은 변정주가 24일, 공연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서 사회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그는 원작의 원형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나름의 재해석과 각색을 시도했으며, 그 결과물은 나쁘지 않다.

▲ 마이크를 잡은 변정주 연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주저하지 않는 그도 이번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 사진은 지난 2015년 1월 24일, 뮤지컬 <러브레터>의 관객과의 대화 당시 변정주 연출의 모습이다. ⓒ 곽우신


공연계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없는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는 게 변정주 연출이다. 뮤지컬 <러브레터>에서처럼 특유의 감성을 선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장기는 역시 연극 <보도지침>으로 보여줬듯이 웃음 속에 숨긴 매서운 '한 방'이다. 특히 세월호 문화제 당시, 세월호를 추모하는 작은 뮤지컬 <나 여기 있어요>를 연출했다.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내 이름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다. 막상 확인하고 나니 화가 난다기보다는 우습다. 함께 서명했던 지인들 중 취합 과정에서 누락되었거나 연락이 채 닿지 않아서 명단에 빠진 이들이 있다.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지금이라도 넣어줄 수 없냐고 무척 아쉬워했다. 자녀가 있는 친구들은, 언젠가 자식들이 이 시대에 대해 물었을 때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굉장히 좋아했고.

세월호 서명이든 지지 선언이든 그저 예술인으로서 상식적인 일들을 해왔을 뿐이다. 문화가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건 당연한 거다. 그런데 블랙리스트라니…. 이 명단이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마치 명예의 전당처럼 취급받는 지금의 분위기를 보라. 상황 자체가 코미디다."

탁현민 "무모하고 무식한 짓"

'MBC 규탄 화환' 앞에서 퍼포먼스 벌이는 탁현민 교수 18일 정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MBC 앞에는 '소셜테이너 출연금지법'을 규탄한다는 내용이 담긴 근조화환이 등장했다. 탁현민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가 화환 옆에서 '삼보일퍽' 퍼포먼스를 재현했다.

▲ 'MBC 규탄 화환' 앞에서 퍼포먼스 벌이는 탁현민 지난 2011년 7월 18일 정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MBC 앞에는 '소셜테이너 출연금지법'을 규탄한다는 내용이 담긴 근조화환이 등장했다. 탁현민 당시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가 화환 옆에서 '삼보일퍽' 퍼포먼스를 재현하고 있다. ⓒ 이미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기획자로서 다수의 공연과 콘서트를 꾸려 온 탁현민 공연연출가는 공공연하게 권력으로부터 '찍힌' 인물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한 듯이, 그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갔다.

"박근혜 정부나 이를 지지한 사람들은 능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더한 일들도 하는 사람들이니까. 진짜 절망스러운 건 이걸 실행에 옮긴 실무자들, 뭐라 할 수 없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을 거리낌 없이 의무적으로 실행했으니까. 우리 사회를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좁혀 생각하면, 저항할 수 없는 어떤 끝까지 내몰린 게 아닌가 싶다.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 세상으로 내몰린 게 아닌가…. 세월호 참사 때도 그렇고, 고 백남기씨 사건도 그렇고. 거대한 악의 한 부분으로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움직이는 건 아닐까.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공개된 리스트는 말 그대로 '버라이어티'하게 모두의 이름이 다 들어갔다. 개인적으로 무모하고 무식한 짓이라 생각한다. 블랙리스트라는 건 실체가 없어야 정상 아닌가. 방송국에서 누구누구를 출연 금지시키겠다고 해서 리스트를 따로 만들거나 칠판에 써놓지는 않는다. 암묵적 지시와 동의로 조용하고 은밀하게 정리되는 게 블랙리스트의 실체다. 그런데 이렇게 완전 무식하게….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으로서 이건 뭐 화도 나지 않는 일. 당연히 들어갔겠구나 싶었다. 세월호를 위해 서명한 사람 혹은 누군가를 지지한 사람 이름이 다 있으니까. 들어갈 만한 사람들은 당연히 들어가 있는 분위기다."

제작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배우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많았다. 자기 생각이 확고함에도 제 목소리를 내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이 시대가 어둡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 아닐까. 명단에 오른 몇몇 배우들은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작품이나 단체에 누가 될까봐 특히 조심스러워했다. 현 시국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나눴지만 '오프 더 레코드'로 묻어놓는다. 단, 익명의 한 배우가 전한 소감으로 마무리 지으려 한다.

"지난 몇 년 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쇼크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사실 지금 좀 무감각하다. 내가 내 길을 지금까지 잘 걸어왔구나하는 생각도 들고…. 그저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길을 계속 가면 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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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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