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카운턴트> 영화 포스터

▲ <어카운턴트> 영화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어카운턴트(Accountant)는 회계사를 지칭하는 단어다. 영화 <어카운턴트>의 크리스찬 울프(벤 애플렉 분)는 마약 조직, 무기 거래상, 돈세탁을 하는 범죄자, 암살자 등 검은 돈의 뒤를 봐주는 회계사다. 그는 자폐증을 앓고 있지만, 숫자에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 그는 의뢰인의 요구를 받아 퍼즐을 맞추듯 돈이 새고 있는 구멍을 찾아내어 해결한다.

<어카운턴트>의 초반부엔 어린 크리스찬이 신경학자의 상담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크리스찬은 직소 퍼즐(불규칙한 모양 조각으로 나누어진 그림을 원래대로 맞추는 퍼즐)을 맞추고 있다. 영화 역시 크리스찬처럼 퍼즐을 한 조각 한 조각 맞추면서 의문을 풀어간다. 첫 장면으로 보여주었던 살인 사건의 진실은? 크리스찬과 다나(안나 켄드릭 분)를 죽이려고 하는 자는? 뛰어난 수학 천재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살상 능력을 갖춘 크리스찬의 실체는? 크리스찬을 돕는 베일에 싸인 전화의 주인공은? 영화가 관객에게 던졌던 이런 의문들은 영화의 진행에 맞추어 전모를 하나씩 드러낸다.

연출을 맡은 게빈 오코너 감독은 "비밀을 품은 사람은 항상 흥미롭다. 언제나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게 드러나곤 한다"라고 영화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의 말처럼 <어카운턴트>는 예상하지 못했던 면모를 보여주는, 감췄던 '이중성'을 다룬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개의 그림, C. M 쿨리지의 '포커 게임을 하는 개'와 잭슨 폴락의 추상 미술 작품은 이중성을 강화하는 장치로 중요하게 기능한다.

<어카운턴트> 영화의 한 장면

▲ <어카운턴트> 영화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크리스찬은 다나에게 '포커 게임을 하는 개'가 모순을 가지고 있어서 좋아한다고 말한다. 모순이란 개념 속엔 두 가지의 충돌이 있다. <어카운턴트>는 다른 두 가지가 구도를 형성한다. 크리스찬이 잘하는 수학과 좋아하는 미술, 숫자로 대표되는 뇌의 힘과 완력으로 나타나는 근육의 힘, 형과 동생, 회계사를 추적하는 재무부의 범죄 전담반 요원 레이 킹(J.K.시몬스 분)과 도망가는 크리스찬, 좋은 요원(직장)과 좋은 아버지(가정), 외형적인 결함으로 괴물로 치부되는 자와 내면 깊숙이 괴물성을 감춘 자. 이들은 대립하며 모순을 강조한다.

크리스찬은 자신의 은밀한 공간에서 잭슨 폴락의 그림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진중권 교수는 미술 평론 글에서 잭슨 폴락의 말("나는 우연을 사용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연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을 옮기며 우연의 외관 속에 미적 질서가 존재하고, '우연과 질서의 긴장'이 잭슨 폴락의 작업 요체라고 설명했다. 크리스찬은 잭슨 폴락의 그림을 보며 '우연과 질서의 긴장'을 느끼며 혼돈 속에서 논리를 찾는다.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말이다.

혼란에서 패턴을 발견하며 실마리를 얻는 크리스찬의 행동은 극 중의 한 대사와 연결된다. 크리스찬은 회계사라는 직업을 "숨겨진 것을 찾고 균형을 맞춘다"라고 풀이한다. 회계 자료를 분석하며 퍼즐을 맞추듯이 돈이 새는 구멍을 찾는 해결 능력은 후반부로 갈수록 자신을 죽이려는 조직을 처단하는 해결 능력으로 확장을 꾀한다. 점차 모순은 질서를 찾고 이야기의 의문은 풀린다.

<어카운턴트> 영화의 한 장면

▲ <어카운턴트> 영화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어카운턴트>는 <레옹>이나 <본> 시리즈, <첩혈쌍웅>처럼 '절대로 건드려선 안 되는 남자'의 서사를 충실히 따른다. 지켜야 할 대상을 위해 주인공이 스스로 정했던 룰을 깨면서 죽음의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모습도 그대로다. 그런데 여기에 <배트맨>의 색채가 덧칠되면서 영화는 독특한 향을 낸다.

노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카운턴트>엔 <배트맨>이 존재한다. 주인공 벤 애플렉이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배트맨 정도론 약과다.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인물, 이중적인 삶, 초월적인 육체 능력, 정부 조직과 맺고 있는 관계 등은 <배트맨>에서 만났던 설정이 아닌가! 크리스찬을 돕는 여자 목소리는 알프레드 집사를 연상케 한다. 게다가 J.K.시몬스는 2017년에 선보일 예정인 <저스티스 리그>에서 제임스 고든 역을 맡았다. <어카운턴트>에서 크리스찬이 줄곧 되뇌는 영국 동요 '솔로몬 그런디'가 DC 코믹스 세계의 악당 '솔로몬 그런디'와 겹쳐지면서 웃음이 터진다.

<어카운턴트>는 정교한 듯 엉성하고, 약하면서 강한 이중적인 얼굴의 영화다. 물론 게빈 오코너의 전작 <워리어>만큼 빼어나진 않다. 그러나 특별한 재미를 가졌다. 또한, <배트맨>의 요소가 있어 눈길을 끈다. 어쩌면 <어카운턴트>는 제작에 들어가는 벤 애플렉의 연출과 주연 영화 <배트맨> 솔로 무비의 훌륭한 예습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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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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