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드슨강의 기적'을 소재로 만든 영화가 두 편 있다. 하나가 <설리:허드슨강의 기적>(2016)이고 다른 하나가 <플라이트>(2012)다. 알다시피 허드슨강의 기적은 지난 2009년 1월 15일 미국에서 일어났다. 뉴욕의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한 US에어웨이 1549편 항공기가 이륙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새떼와 충돌하고 엔진고장을 일으킨다.

이때 비행기는 체슬리 설렌버거 기장(애칭 설리)의 노련한 조종술과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 허드슨강에 비상 착수한다. 뭍에 착륙(着陸)한 것이 아니라 강물 위에 착수(着水)한 것이다. 다행히 승무원을 포함 탑승객 155명 전원이 사건 발생 20여 분 만에 무사히 구조됐다. 동체 착수하여 조종사를 비롯하여 탑승객들이 살아난 유례가 없다는 점에서 이 사건에 '기적'이라는 명사가 붙었다고 한다.

허드슨강의 기적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만든 영화가 로버트 저메키스가 감독하고 덴젤 워싱턴이 주연한 <플라이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은 아예 이 실화를 전면 채용하여 각색한 것이다.

두 영화는 동일한 사건을 바탕으로 유명 감독이 연출하고 연기파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들이 현실 속의 설리 기장과 마찬가지로 최고의 조종 실력을 갖고, 위험하지만 화려한 불시착을 성공리에 완수하고 하루아침에 영웅이 된다는 공통점도 있다.

짧은 역사 속에서 이른 바 '위인'이 많지 않은 미국인들은 소소한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시민영웅'을 갈망한다. 할리우드 영화가 유난히 영웅 만들기에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도 부단히 영웅을 만들어내는데 현실에 나타난 영웅을 할리우드가 그냥 지나칠 리가 있겠는가. 

'일탈형 조종사' <플라이트> 

 영화 <플라이트>

영화 <플라이트> 포스터. <플라이트>의 주인공은 여러모로 <설리>의 주인공과 비교된다.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플라이트>의 주인공 휘태커(덴젤 워싱턴 분)는 외견상 특급 파일럿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술과 마약에 찌들어 사는 일종의 사회 부적응자다. 반면 <설리>의 설리 기장(톰 행크스 분)역시 특급 파일럿이지만, 휘태커와는 무척 대조적으로 설리는 가정과 직장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바른생활 맨'이다.

바이런의 말처럼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된 것을 알게 된 휘태커와 설리. 이 놀라운 영웅담을 당사자들 그리고 항공회사와 정부당국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두 영화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걸어간다. 흥미로운 것은 일반 시민들이 새로운 영웅의 출현에 열광하는 와중에도, 그 이면에서 '일탈형 조종사'와 '범생이형 조종사'를 대하는 관련 기관의 태도가 우리의 일반적인 예상을 벗어난다는 점이다.

휘태커는 알코올 중독에 마약 중독자다. 술이 없으면 잠시도 견디지 못하는 인물이다. 불시착 사고가 일어나기 전날 밤에도 그는 여태 그래왔듯이 술을 마셨다. 비행기 탑승 전에는 술을 깨기 위해 마약까지 복용했다.

영웅 휘태커가 탄생한 이면의 추악한 진실에 항공사, 조합원, 변호사들이 서서히 접근해온다. 휘태커도 불안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들은 휘태커의 술과 마약 관련 진실을 은폐하려 든다. 조종사의 관리책임을 물어 항공사가 큰 타격을 입게 될 경우, 그 이후의 부정적인 파장에 주목한 이들이 은폐 공작에 가담하는 한 것이다.

 영화 <플라이트>

영화 <플라이트> 속 휘태커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 CJ 엔터테인먼트


관건은 휘태커의 반응이다. 휘태커는 번민 끝에 진실을 밝히고 그에 따르는 법적인 책임까지 감수한다.

"비행 전날 밤에 아무 일도 없었다. 술과 마약은 모르는 일이다!"

한마디만 하면 되는 일을 휘태커는 거부한다. 이것은 영웅의 몰락이 아니다. 화려한 국민영웅에서 진정한 영웅으로의 거듭남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 <플라이트>는 주인공이 '대체 나는 누구인가?'하고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일종의 심리 드라마라고도 할 수 있다.

나중에 수감 중인 자신을 면회 온 휘태커의 아들이 아빠와의 인터뷰 내용을 글로 남기겠다고 말하면서 휘태커에게 묻는다.

"Who are you?"

인터뷰를 마친 아들은 자신의 글의 제목을 '내가 만난 가장 멋진 사람'이라고 정했다고 말한다. 영화의 주제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범생이 조종사' <설리>

 영화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영화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포스터. <설리>는 <플라이트>와 같으면서 다른 영화이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한편 국민적 영웅이 된 '범생이 조종사' 설리를 대하는 당국의 태도는 일탈형 조종사 휘태커를 대하는 태도와 완전히 다르다. 연방교통안전국(NTSB)은 설리 기장이 매뉴얼대로 행동했는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출발지인 라과디아 공항으로도 충분히 회항할 수 있었는데, 왜 무모하게 허드슨 강물 위에 비상착수를 시도했죠?"

설리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각종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비행기가 인근 공항으로 충분히 회항할 수 있었다는 증거가 나오면서 설리도 잠시 흔들린다. 그러나 설리는 숨길 일이 전혀 없다. 설리와 휘태커와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사고 직후 208초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나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승객들을 잘 보살피고 전원 무사하게 구조할 수 있을 것인가만 생각했다."

설리는 소신이 뚜렷하다. 연방교통안전국이 주최한 청문회장에서 설리는 말한다.

"수십 년 무사고의 베테랑 조종사이자 기장인 나의 판단을 믿지 않고, 어떻게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더 신뢰하는가?"

설리 기장은 기계로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오랜 숙련된 경험과 통찰에서 나오는 '직관'과 '인적요소'를 강조하며 항변한다. 바로 이 대목을 통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이 영화가 단순 재난영화도, 개인의 실존적 고뇌를 다룬 심리영화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합리주의, 자연과학주의, 분석적 계량주의 등에 물들어 매뉴얼 속의 문자와 컴퓨터 속의 숫자를 맹신하고 인간적인 통찰과 직관을 불신하는 우리 문명의 아이러니를 차분하게 그러나 통렬하게 질타하고 있다.

영웅신화의 업그레이드

 영화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영화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영웅을 만든다. 그러나 일반적인 방식으로 영웅을 조명하지 않는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플라이트> <설리> 이 두 편의 영화가 전형적인 할리우드판 영웅담이면서도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영웅 만들기에 무조건 가담하지 않고 완강한 문제제기를 통해 영웅 만들기의 정당성을 확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흔한 다큐멘터리형 영웅신화에서 감동적인 휴먼드라마로의 성공적인 업그레이드가 아닐 수 없다.

두 편의 영화를 보면서 각종 재난을 맞아 우왕좌왕할 뿐 매뉴얼조차 제대로 없는 한국 사회가 떠오르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결과만 다 좋으면 좋다!'면서 대충 덮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매뉴얼을 토대로 사건의 전반적인 과정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는 미 연방교통안전국의 성찰적인 자세는 본받을 만하다.

영웅을 거부하는 듯한 태도는 영웅을 갈구하는 대중적인 정서에 부합하지 않고 눈에 거슬릴지도 모르지만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지향하는 태도는 꼭 필요한 자세일 것이다.  

그렇다고 지난 후쿠시마 원전사태 때처럼 세계 각국에서 답지한 구호품이 넘쳐나는데도 매뉴얼에 얽매여 그것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 굶는 사람이 생기게 만드는 융통성 없는 일본사회의 아이러니가 꼭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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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심리학자. 의학자) 고려대 인문 예술과정 주임교수. 융합심리학연구소장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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