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드라마시티>로부터 바통을 넘겨 받아 2010년부터 <드라마스페셜>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KBS 단막극. 상업성과는 크게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이 세계에서 많은 연출자와 작가들의 데뷔작이 나왔다. 또 그만큼 많은 신예 배우들이 발굴됐다.

신인 배우뿐일까. 장편 드라마 혹은 영화를 통해 '라이징스타'로 데뷔는 했지만 자신의 연기력을 보여줄 기회에 목말라 있던 스타 배우들에게 단막극은 작품 선택 폭을 넓히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연기자 생활을 오래한 배우에게도 단막극은 좋은 기회다. 이들은 작품이 좋아서, 혹은 여러 배우와 작가, 연출가의 데뷔 기회를 마련해주는 그 취지에 공감해 출연을 결정한다. <드라마시티>부터 <드라마스페셜>까지 여러 단막극을 통해 자신의 연기를 보여준 중견배우 김갑수는 2013년 KBS와의 인터뷰에서 "자기 연기와 캐릭터를 만드는데 단막극이 도움이 된다"며 출연 이유를 밝혔다.

올해 KBS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다시 한 번 '인생 필모그라피'를 쌓은 김유정과 MBC <W>의 이종석, JTBC <청춘시대>의 한예리, tvN <싸우자 귀신아>의 김소현까지 인상적이면서도 탄탄한 연기를 보여준 이들은 모두 <드라마스페셜>을 거쳐간 배우들이다.

자, 이들이 선택한 <드라마스페셜> 속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김유정의 '곡비'(2014)

 KBS <드라마스페셜>을 거쳐간 2016년 올해의 대세 배우. '곡비'의 김유정.

ⓒ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의 김유정은 지난 2014년 KBS <드라마스페셜> '곡비' 편에 나왔다. 곡비는 양반의 장례식날 주인을 대신해 곡을 하는 계집종을 이르는 말로 김유정은 여기서 어미를 따라 '곡비'가 되는 운명을 지닌 연심 역을 맡았다. 곡비가 없으면 장례를 치르기 어려울 정도로 당시 장례에서 곡비는 빠져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양반들의 장례 때마다 불려다니며 곡을 해주고 삯을 받는 그들의 신분은 그럼에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

김유정은 '우는 것'이 싫다며 어머니를 따라 곡비가 돼야한다는 운명을 거부하고 차라리 웃고 사는 기생이 되기를 택한다. 비록 우발적이나 내시가 돼 궁에 들어간 <구르미 그린 달빛>의 홍라온처럼 김유정은 '곡비' 속에서도 당대의 순리에 순응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든 맞선다. 그런 김유정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더 특별하다. '곡비' 속 김유정의 소신은 과연 극의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을까. (다시보기 링크)

이종석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2012)

 KBS <드라마스페셜>을 거쳐간 2016년 올해의 대세 배우. '내가 가장 예뻤을 때'의 이종석.

ⓒ KBS


이종석이 하이킥 세 번째 시리즈 <짧은 다리의 역습>을 마치고 택한 작품은 단막극 '내가 가장 예뻤을 때'다. 이종석은 2013년 KBS와 인터뷰에서 단막극을 선택한 것에 대해 "주변에서 의문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이종석은 남편이 있는 여성을 사랑하는 남자, 여자친구를 버리면서까지 그 여성을 사랑하는 역할을 연기해야 했다. 또 주인공이지만 배우 전익령에 비해 분량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연기한 이후 이종석은 <학교2013>의 고남순 역할으로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니 이종석의 선택이 옳았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단막극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어느 날 병이 재발해 병원을 찾게 된 중년 여성 신애(전익령 분)의 고독을 그린다. 그녀에게는 투병 중 만나 결혼한 헌신적인 남편이 있지만 어쩐지 둘의 관계는 자꾸 어긋난다. 그러던 중 그녀의 앞에 몹시 나이가 어린 정혁(이종석 분)이 나타난다. 극의 마지막, 그녀는 남편에 이별을 고하며 '어떤 말'을 한다. 누구라도 그 말 한마디를 듣는다면 그녀의 다소 갑작스러운 '외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보기 링크)

한예리의 '연우의 여름'(2013)

 KBS <드라마스페셜>을 거쳐간 2016년 올해의 대세 배우. '연우의 여름'의 한예리.

ⓒ KBS


한예리는 계절의 정서를 투명하게 담아내는 배우다. 그리고 그런 그의 장점이 '연우의 여름'에서 더해져 연우라는 캐릭터를 보다 입체적으로 보이게 한다. 인디밴드에 몸을 담고 있는 연우는 다친 엄마를 대신해 건물 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그 건물에서 일하는 친구 지완(임세미 분)을 만난다. 아나운서가 된 지완의 모습에 연우는 여러모로 주눅이 든다. 연우에게 대신 소개팅을 나가달라고 부탁하는 지완. 연우는 그의 강압적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억지로 소개팅에 나가 운명처럼 앞으로도 계속 만나고 싶은 남자를 만나게 된다.

자신과 신분이 영 다른 것처럼 보이는 지완의 앞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연우. 한예리는 연우가 순간순간 느꼈을 쓸쓸함을 정확하게 포착해 연기한다. 자신의 구두가 아닌 지완의 구두를 빌려 신어 발이 아팠던 연우에게 소개팅에서 만난 남성 윤환(한주완 분)은 '봉투 위에 발을 받치라'며 서류봉투를 건넨다. 그 위로 연우는 수줍게 혹은 부끄럽게 자신의 맨발을 내려 놓는다. 연우의 감정이 꼭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만 같다.

한편, 한예리는 '연우의 여름' OST '연우수리점'과 '제이름은요'를 불렀다. 이 두 곡을 만든 송라이터 정바비는 극 중에서 인디밴드의 보컬로 등장하는 한예리의 기타레슨을 맡았다. 정바비는 '연우의 여름' 앨범소개를 통해 "시간이 날 때마다 한예리의 출연작을 보았"고 "'한예리의 연우가 만들어서 부르는 어떤 노래일까 상상하며 곡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김소현의 '다르게 운다'(2014)

 KBS <드라마스페셜>을 거쳐간 2016년 올해의 대세 배우. '다르게 운다'의 김소현.

ⓒ KBS


어학연수 갈 돈이 필요해 떨어져 사는 아빠의 전화번호를 어렵사리 구해 전화를 걸었다. 자식을 버린 아빠는 딸의 전화에 반색한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털어놓는다. 자신이 중병에 걸렸으니 이제 가족들끼리 뭉쳐 같이 살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딸의 상황. 여기에 같이 어학연수를 가기로 했던 친구는 하필 자신과는 달리 돈이 많은 집에 태어나 어학연수를 가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그는 돈도 없고 화목하지도 않은 집구석이 지긋지긋하다.

'류지혜'라는 현실에 있을법한 고등학생을 연기한 김소현은 그가 가진 결핍과 정체 모를 열등감을 내면에 새기고 성실하게 연기한다. tvN <싸우자 귀신아>와는 다른 김소현의 진지하고 다소 어두운 연기를 '다르게 운다'를 통해 볼 수 있다.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만 같은 집안 식구들. 지혜는 무능한 가족들에게 분노를 느끼지만, 한편에서는 그럼에도 그들을 껴안고 가야 한다는 책임감 또한 느낀다. 김소현은 이렇듯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인채 너무 빨리 어른이 된 지혜를 연기한다. 2013년 KBS 극본공모 최우수작. (다시보기 링크)

드라마스페셜 이종석 김유정 한예리 김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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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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