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T는 스펀지 같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느낀 많은 감정들이 OST 한 곡 안에 스며들어 있다. 물을 가득 머금은 스펀지가 오래도록 마르지 않는 것처럼, 드라마가 끝나고 한참 후에 OST를 들어도 그때 느낀 진한 감정이 축축하게 배어나온다.

수록곡의 수가 많을 필요도 없다. 잘 만든 OST, 그러니까 드라마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지는 한 곡의 좋은 노래는 드라마 속 세상을 마음속에 고스란히 박제한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문득 보고 싶거나 당시의 내 감성이 그리워질 때면 '다시보기' 대신 OST 한 곡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작품을 소환할 수 있다.   

사극 OST에 영어가사, 어색하지 않나

 <해를 품은 달> OST 중에는 연주곡도 눈에 띈다.

<해를 품은 달> OST 중에는 연주곡도 눈에 띈다. ⓒ MBC


사극의 OST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좋은 OST'란 앞서 말했듯 드라마의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지는 곡인데 요즘 사극 드라마를 보면 '좋은 곡'은 많아도 '좋은 OST'는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곡 자체의 완성도가 높을지는 몰라도 극과 하나의 분위기로 녹아나는 곡들이 많지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 사극은 동양적인 분위기의 노래가 잘 맞는데 점점 트렌디한 분위기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우우 i need u / baby 너에게 하고픈 말 / 내가 못다 한 말 / baby baby love is true." - 로꼬&펀치, 'Say Yes' 중

"고백합니다 그대에게 / 온 힘을 다해서 / my love my love my love / 내 말 들리나요 그대." - SG워너비, '고백합니다' 중

현재 방영 중인 SBS 드라마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아래 <달의 연인>)의 OST 'Say Yes'나 '고백합니다'의 경우 힙합풍 혹은 발라드풍의 노래다. 같은 드라마의 OST인 에픽하이의 '내 마음 들리나요'도 랩이 꽤 많이 들어갔다. 아무리 퓨전 사극이라지만 랩과 고려시대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트렌디한 곡의 스타일도 스타일이지만, 영어가사가 쓰이는 점도 반갑지 않다. 연기자는 천년 이상 시간여행을 하여 사극 말투로 대사를 읊는데 배경 음악에는 "baby baby"가 반복되는 건 지나친 퓨전이 아닌가 싶다. 극중 의상이나 소품들은 모두 고려 정통의 것인데 왜 음악만 퓨전인지 모를 일이다.    

지난 2012년 방영한 <해를 품은 달> OST 중 린이 부른 '시간을 거슬러'나 2003년 작 <다모> OST 중 페이지가 부른 '단심가'는 사극에 잘 어울리는 노래다. 동양적인 멜로디 라인도 그렇고 서정적인 가사도 그렇다. 영화 <왕의 남자> OST 중 이선희가 부른 '인연'이란 노래도 사극에 잘 어울리는 신비로우면서도 한스러운 곡이다.

"구름에 빛은 흐려지고 / 창가에 요란히 내리는 / 빗물 소리만큼 시린 기억들이 / 내 마음 붙잡고 있는데." - 린, '시간을 거슬러'

음악감독, 드라마엔 없는 건가요?

 성악가 임선혜가 <달의 연인> OST에 참여했다.

성악가 임선혜가 <달의 연인> OST에 참여했다. ⓒ CJ E&M MUSIC


드라마에도 영화처럼 음악감독이 있다. <달의 연인>의 경우 <태양의 후예> <괜찮아 사랑이야> OST를 책임졌던 송동운 프로듀서가 총괄 OST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하지만 영화에 비해 대부분의 드라마 OST에서 음악감독의 존재가 잘 느껴지지 않는 건 노래가 각각 개별로써 튀고, 극을 관통하는 하나의 일관된 분위기가 없기 때문이다. OST의 음원수익을 내는 게 중요해져서일까. 유명 가수를 대거 참여시키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물론 누가 부르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극과 노래가 전체적인 그림을 완성시키며 일관된 작품으로써 완성도를 갖는지 여부다.

<보보경심 려> 5회에서 해씨부인(박시은 분)이 왕욱(강하늘 분)의 등에 업혀 숨을 거두는 장면에서 흘러나온 노래가 무척 인상 깊었다. 하얀 설원을 배경으로 해씨부인의 비극을 더 극대화시키는 노래였는데 듣자마자 참 '좋은 곡'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 곡이야 말로 사극 <보보경심 려>의 분위기에 가장 잘 맞는 동양적이고 한스러운 느낌의 '좋은 OST'이기도 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음원으로 바로 나오지 않아 의아하고 아쉬웠다. 그러던 차에 지난 28일 이 곡이 음원으로 발표됐는데 성악가 임선혜가 부른 <꼭 돌아오리>라는 곡이었다. 이 노래는 지난 회에서 오상궁(우희진 분)을 떠나보내는 장면에도 적절히 사용돼 슬픈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꼭 돌아오리>와 같은 곡이 더 많이 실린다면 좋을 것이다.

한 전문가는 OST가 트렌디화 되고 사극에 영어가사가 쓰이는 경향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다음처럼 답했다.

"드라마 OST를 만들 때 음원 자체로도 얼마나 사랑 받고 흥행할 수 있느냐, 드라마의 인기를 끌어올려줄 수 있느냐를 먼저 고려하고, 그 다음으로 드라마와 노래가 어울리느냐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영화 OST는 영화와 곡이 잘 어울리는지를 우선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OST가 한 번에 귀를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즉 드라마가 영화에 비해 OST 시장 안에서 경쟁이 심하고, 개별 음원으로써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흥행을 해야 방영 중인 드라마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지 않는 이들에게도 한 번에 어필할 수 있는 트렌디한 곡을 만드는 추세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 OST, 연주곡이 많으면 어떨까

 영화 <시네마 천국>

영화 <시네마 천국> ⓒ 미라맥스 필름스


영화 <올드보이> OST 중 '미도테마'로 불리는 'The Last Waltz'는 심현정이 작곡한 곡으로 첫 소절만 들어도 <올드보이>의 비장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떠올릴 수 있다. 영화 <장화 홍련>의 OST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이병우 작곡)도 영화의 공포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담고 있으며, 제목을 통해서도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담아냈다. 일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중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인생의 회전목마'도 OST 계의 명곡으로 손에 꼽힌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러브 어페어>와 <시네마 천국> 주제곡은 말할 필요도 없는 고전 OST다.

위의 OST들의 공통점은 모두 연주곡이란 것이다. 영화 음악은 이렇게 연주곡이 많은데 이에 비해 드라마 주제곡은 OST 음원으로써 정식 발표되는 연주곡이 많지 않다. 주인공이 대사를 하면 그 배경음악이 깔릴 때 가사가 없는 연주곡도 좋을 것이다. 대사와 가사가 겹치지 않는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사극이라고 퉁소나 해금연주를 듣자는 게 아니다(물론 그럴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스토리'에 음악을 입히는 게 OST인 만큼 곡 자체의 트렌디함보다 드라마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잘 조화되는 OST가 많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그런 OST만이 세월이 흘러도 드라마를 볼 당시의 감정을 고스란히 소환해줄 것이다.

OST 보보경심 강하늘 박시은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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