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수라>의 포스터. 배우의 면면이 매우 화려하다.

영화 <아수라>의 포스터. 배우의 면면이 매우 화려하다. ⓒ CJ 엔터테인먼트


정우성, 황정민,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

배우에 대한 개인적 선호도가 있을망정 기본적인 능력치만 놓고 봤을 때, 이 정도 캐스팅이면 웬만큼 만들어도 망작(亡作)이 나오기 힘들다. 김성수 감독은 그야말로 아수라(阿修羅)판을 만들어 놓고, 배우들을 그 안에 풀어놓는다. 그리고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그 뚝심이 놀랍다. 배우들은 신(scene) 속에서 격렬히 맞부딪치는데, 각자의 색깔을 드러내는 한편, 서로를 위한 시너지를 끌어낸다. 그 상승 작용이 영화의 몰입도를 극한까지 이끈다.

"아수라(阿修羅): 『불교』 팔부중의 하나.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으로, 항상 제석천과 싸움을 벌인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아수라' 중에서

진(津)하다. 그리고 '징'하다. 그러다 보니 진(盡)하다.

악랄하고 악독한, 악마들의 세상

 강 대 강으로 부딪히는 악마들의 싸움. 흥미롭지만, 너무 과했던 것은 아닌지 의아하다.

강 대 강으로 부딪히는 악마들의 싸움. 흥미롭지만, 너무 과했던 것은 아닌지 의아하다. ⓒ CJ 엔터테인먼트


방금 영화를 감상하고 빠져나온 사람들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에 총총히 올라탄 후,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건 따끈따끈한 후기일 뿐 아니라 걸러지지 않은 생생한 평가이고, 영화의 성패를 가르는 '입소문'의 원천이다. <아수라>의 경우는 이랬다.

"하도 죽여서 질린다, 질려."
"마지막엔 아무런 감흥도 없더라."

애매하다. 굳이 따지자면 부정적인 뉘앙스(흥행에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감독이 바라던 바라는 점에서 '칭찬'처럼 들리기도 한다. 김성수 감독은 '악인들의 지옥 같은 삶을 영화로 만들어내고 싶었다'고 한다. 혐오스러운 악인들이 무더기로 등장하는 <아수라>는 생각했던 것보다 그 농도가 훨씬 짙다. 연출의 공도 크지만, 역시 배우들이 악착같이 연기한 때문이다.

 황정민의 악역 연기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다만 '새로움'에 대해서는 물음표이다.

황정민의 악역 연기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다만 '새로움'에 대해서는 물음표이다. ⓒ CJ 엔터테인먼트


안남시장 박성배(황정민)은 탐욕스러운 악덕 시장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부동산 개발 비리, 살인 교사 등 그의 악행은 끝이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냉혹함과 잔혹함을 지녔다. 검사 김차인(곽도원)은 협박, 폭행, 불법 체포 등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무자비한 인물이다. 권위적이고 저열하다. 한도경(정우성)은 박성배를 은밀히 돕는 비리 경찰이지만, 김차인에게 약점이 잡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박성배와 김차인 사이에 낀 한도경은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친다. 후배 문선모(주지훈)를 판으로 끌어들이지만, 그 선택이 곧 패착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문선모는 영화 속 캐릭터 중 유일하게 '변화'를 겪는 인물이다. 선한 인물이었던 문선모가 어떻게 '아수라'로 변해가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여기에 정만식, 김원해, 윤제문, 김해곤 등의 연기가 더해지면서 <아수라>는 빈틈이 없이 꽉 채워진다. 그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지옥의 모습이 참 징하다.

기존의 누아르보다 새로운 건 없었다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는 정우성의 연기. 기대치에 비하면 약간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는 정우성의 연기. 기대치에 비하면 약간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 CJ 엔터테인먼트


'극한'으로 몰아치는 연출과 '극대화'된 배우들의 연기는 빛을 발한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없다. 영화 속의 장면들은 기존의 누아르 영화들을 답습하는 느낌이 강하다. 이야기의 전개도 이미 많이 봤던 흐름이다. '공멸'은 예고된 패턴이다.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과거 자신들이 맡아왔던 캐릭터들의 표정이 수시로 드러난다. 황정민의 악마성이라든지, 곽도원의 악랄함은 제법 익숙하지 않던가. 차이는 '세기'와 '강도'이다. 어쩌면 <아수라>는 그 익숙함을 극단을 향해 치닫는 강렬함으로 극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정우성의 연기에 대한 평가는 '보류'해야 할 듯하다. '박쥐'처럼 양측을 오가야 하는 이중적 인물을 강렬하고도 적절히 표현해냈다는 칭찬과, 한도경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미묘한 감정선을 표현하기에 그의 표정의 깊이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함께 줄 수밖에 없다. 주지훈은 대배우들 틈새에서 자신만의 영민한 연기를 선보인다. 전작인 <좋은 친구들>에서 보여줬던 연약하면서도 단단한, 선악의 복합적인 느낌을 잘 살렸다.

영화는 후반부로 치달으면서, 아수라들의 민낯을 낱낱이 까발린다. 오도 가도 못하는 건 영화 속 캐릭터만이 아니다. 그 악마성을 지켜보면서 관객들은 몰입하는 동시에 빠져나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폭력을 폭력으로 허물 수 있을까. 악으로 악을 대항하는 게 가능할까. 그리고 그렇게 무너뜨린 폭력과 악, 그 이후는 어떨까. 지옥은 그대로 끝인 걸까. <아수라>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노라면, 이미 진(盡)했던 기운이 바닥까지 다 소진되는 기분이다.

아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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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길을 가라. 사람들이 떠들도록 내버려두라.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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