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MZ국제다큐영화제


14살 현우에게 아빠는 누구보다 바쁜 사람이다. 매일 밤늦게서야 집에 들어오고, 외박하는 날도 부지기수다. 그렇다고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어오는 것도 아니다. 엄마 혼자 일하면서 가정 경제를 책임진다. 이 모든 일은 현우가 초등학생일 때, 아빠 회사 동료들이 억울하게 해고당하면서 시작됐다. 잘 다니던 회사를 뒤로 하고 아빠는 그들 편에 섰다. 그 때문에 아빠는 1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고, 그 자신 또한 해고됐다. 감옥에서 나온 뒤에는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그렇게 수년이 흘러 현우는 중학생이 됐다. 그리고 이제 현우는 안다. 아빠는 '좋은 사람'이라는 걸.

다큐멘터리 영화 <안녕 히어로>는 한 해고노동자 아들의 시선을 통해 쌍용차 사태를 바라보는 작품이다. 화자는 쌍용차지부 수석부위원장이었던 김정운의 아들 현우. 영화는 현우의 하루하루를 가만히 쫓으며 마음 깊은 곳에 숨은 그의 진심을 조심스레 엿본다. '해고자 전원 복직'이라는 기약 없는 투쟁. 이 길고 긴 싸움을 이어가는 아빠를 대하는 현우의 복합적인 감정은 그렇게 영화 곳곳에 드러난다.

아빠는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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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운동가인 아빠를 대하는 현우의 시각은 인터뷰를 통해 관객 앞에서 하나하나 베일을 벗는다. 어린 시절 현우는 쌍용차 집회 현장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 무대 위 사람들을 따라 다 같이 노래하고 춤추던 기억은 현우에게 즐거운 축제처럼 남아 있다. 연단에 올라 결연한 목소리로 좌중을 휘어잡았던 아빠의 모습은 '멋있었다'는 한마디로 정의된다.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공권력에 대해 "시위 현장의 경찰들은 위에서 시켜서 했다고 쳐도 위에서 시킨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는 현우의 말은 너무 대견스러워 뼈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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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6년째 쌍용차 투쟁을 이어가는 것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는 현우의 감정은 영화를 관통하며 깊은 울림을 준다. 사측의 부당 해고를 주장했지만 항소심에서도 패하고 해고노동자 김득중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배를 마시는 등 현실의 높은 벽은 현우에게도 남 얘기가 아니다. 머릿속에는 "돈과 권력이 곧 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고, 추운 날씨에 밖에서 고생하는 아빠가 '정말 회사에 복직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아빠가 매일같이 쓴다는 글을 좀처럼 신문에서는 볼 수가 없으니 세상을 바꾸는 건 먼일로만 느껴진다. 현우는 이제 아빠가 "남들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아빠가 나중에 후회하게 되는 것도 싫다.

(부분적으로) 복직 협상이 타결되면서 현우의 아빠가 7년 만에 출근하는 영화 말미는 절반의 승리로서 달콤쌉싸름한 뒷맛을 남긴다. 해고자 187명 중 18명이 우선 복직됐고 거기에 현우의 아빠(김정운 수석부위원장)가 포함된 것이다. 복직 투쟁의 선봉에 섰던 터라 동지들을 두고 먼저 복직하는 아빠와 엄마의 마음은 편치 않고, 현우는 그렇게 자신의 '히어로'에게 안녕을 고한다.

해고된 후, 남은 가족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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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히어로>는 제8회 DMZ국제다큐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을 통해 대중 앞에 처음 선보였다. 지난 24일 영화제 상영 이후 연출을 맡은 한영희 감독이 무대에 올라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감독은 이 작품을 연출한 배경에 대해 "해고자들이 가슴 아파 하는 지점이 아이들에게 본인 사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한 가족이 겪고 있는 해고 상황을 두고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랐다"며 "(이 영화를)중학생 현우가 어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이자 심리치료공간 '와락' 대표인 권지영씨 또한 무대에 올라 남다른 심경을 전했다. 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장소, 소품들까지 제가 잘 알고 있는 것들이어서 깊이 공감하며 웃고 울었다"고 입을 열었다. "저도 현우보다 한 살 많은 아이가 있다"고 말한 뒤 "아이 아빠가 해고된 이후에는 아이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다. 괴로울 것 같아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안녕히어로 쌍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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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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