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후쿠아 감독의 <매그니피센트 7> 포스터.

안톤 후쿠아 감독의 <매그니피센트 7> 포스터.ⓒ UPI코리아


세칭 '명문대학'을 나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입신출세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둔 아이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아이는 '조부와 부친 보기에 부끄럽지 않아야 할 텐데...'라는 부담감 속에서 살아갈 소지가 다분하다. "그들의 넘어서야 한다"는 열망과 동시에 가지게 될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자괴감.

최근 개봉한 <매그니피센트 7>을 연출한 안톤 후쿠아 감독은 바로 이 2가지 감정 속에서 헤맸을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팬들이 알다시피 이 영화는 1954년 작 <7인의 사무라이>(구로사와 아키라 연출)와 <황야의 7인>(1960년·존 스터지스 연출)을 리메이크한 작품.

후쿠아 감독은 수많은 영화학도의 숭배를 받으며 거장으로 평가받는 '구로사와 아키라'라는 할아버지와 반백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아직도 마니아들의 입에서 회자하는 서부극의 명인 '존 스터지스'라는 아버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

게다가 이 영화는 '정의와 선(善)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공자 말씀'이 주제인 까닭에 극을 위악적으로 비틀거나 다채롭게 변용하기도 어렵다. 선배들의 명성을 '훌쩍 뛰어넘기'가 힘들고, 여러 측면을 고려할 때 연출하기도 쉽지 않았을 작품.

어깨에 힘을 빼고 정직하게 선배들의 뒤를 따르다

  <매그니피센트 7>은 <황야의 7인>을 유쾌하게 답습한다.

<매그니피센트 7>은 <황야의 7인>을 유쾌하게 답습한다.ⓒ UPI코리아


하지만, 이런 우려는 뚜껑이 열린 <매그니피센트 7>을 직접 보고 나면 상당 부분 불식된다. 후쿠아 감독이 아키라와 스터지스의 지울 수 없는 후광에 주눅 들어 어깨가 굳었을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실상은 133분의 상영시간을 통해 관객들에게 통쾌함과 카타르시스는 선물하고 있는 것.

이처럼 영화가 '보통 이상'의 수준에 이를 수 있었던 건 감독이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매그니피센트 7>에선 "어차피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넘어설 수 없다면 그들이 이룬 예술적 성취의 후광이라도 지켜내자"는 후쿠아의 혼잣말이 들리는 듯하다.
영화는 <7인의 사무라이>와 <황야의 7인>이 걸었던 길을 정직하게 따라가고 있다. 7명의 '정의로운 사내들'이란 등장인물이 그렇고, 다소간 '함부로 살아왔던' 그들이 힘없고 가난하지만, 더없이 선량한 사람들에게 동화된다는 이야기 흐름이 그러하고, 여기에 극적 재미를 위해 양념처럼 섞여드는 로맨스와 총격·액션 장면이 그렇다.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영화가 판박이스티커도 아닌데 50년 전의 작품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고 식상함을 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달걀' 일화를 떠올려보면 그건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의 과욕일 뿐. 게다가, <매그니피센트 7>에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작품을 넘어서는 성취도 보인다.

흑인과 동양인, 멕시칸과 인디언...

 <매그니피센트 7>에서 호연한 헤일리 베넷.

<매그니피센트 7>에서 호연한 헤일리 베넷.ⓒ UPI코리아


할리우드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상당수 영화가 가진 문제점 중 하나는 크건 작건 '백인우월주의의 그림자'가 일렁인다는 것이다. 해서 "어려움에 부닥친 약자를 돕거나, 불합리한 현실에 저항해 다수를 위한 대안을 찾는 주인공은 왜 모두 백인인가"라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연출과정에서 인식했건 인식하지 못했건 간에 <매그니피센트 7>은 이러한 비판에선 완벽히 자유로울 수 있을 듯하다. 절대 악으로 묘사되는 금광업자 '보그'에 대항해 선량한 '로즈 크릭' 마을의 평화를 되찾아주려는 주인공들의 면면을 보면 인종전시장을 방불한다.

'정의로운 7인'의 리더 격인 샘 치좀(덴젤 워싱턴 분)은 흑인이고, 한국 배우 이병헌(빌리 락스 역)은 황인, 여기에 코만치족 인디언과 남아메리카 멕시칸까지 악랄한 강자에 대항해 무력한 약자를 돕는 역할을 맡고 있다. 우스개를 섞어 말하면 '인종 간 호혜·평등의 영화적 실현'이라 해도 좋겠다.

마지막으로 <매그니피센트 7>을 보는 재미 2가지 더.

댄디한 도시 청년의 깔끔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 에단 호크(굿나잇 로비쇼 역)가 술에 망가진 늙은 총잡이로 등장하는 모습은 에단의 전작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킬킬거리는 웃음을 선사한다. 하지만 "망가져도 멋있긴 마찬가지"라 말하는 팬들도 적지 않을 듯.

여주인공 엠마로 열연한 헤일리 베넷은 이 영화를 통해 발견된 진주다. 슬픔과 격정을 동시에 담은 눈동자로 이성과 감정을 적절히 조절해내는 연기력이 필자의 기억 속에 또렷하다. 벌써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등의 저자. <경북매일신문> 기자.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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