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수 시아(Sia)의 'The Greatest' 뮤직비디오를 보았을 때, 나는 당혹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이달 초 발표된 이 노래와 뮤직비디오는 미국 올랜도에서 발생한 게이 클럽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뮤직비디오는 통상적으로 누군가를 애도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과는 매우 달랐다. 보통 추모를 위해 제작된 뮤직비디오는 비극적인 사건을 담되, 남겨진 사람들이 여기에 무너지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혹은 희생자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 담은 후, 이 모습들을 기억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시아의 뮤직비디오에는 이런 작품들이 보이는 메시지들이 없다. 이 뮤직비디오에는 씻어낼 수 없는 죽음을 상징하듯, 얼굴에 회빛 분칠을 한 댄서들이 등장한다.(그리고 이 댄서들은 희생자들과 동일하게 49명이다.) 이들은 뮤직비디오가 시작하며 춤을 추지만, 마지막 클럽으로 추정되는 배경에서 모두 쓰러진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시아의 페르소나라 할 댄서 매디 지글러가 등장하는데, 그녀는 뮤직비디오의 마지막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이 영상은 분명 올랜도 총격 사건을 재현한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친다. 죽은 사람은 다시 쓰러지고, 남겨진 자는 통곡한다. 애도의 과정은 없으며 우리는 이 뮤직비디오를 통해 오직 비극적인 사건과 그것이 남겨준 감정만을 재확인 할 뿐이다.

그렇다고 '추모'를 위해 나온 이 영상이 단지 슬픔과 고통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뮤직비디오는 그것 외에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나에게 한동안 찜찜한 물건으로 남아있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는다는 것

 시아의 'The Greatest'

시아의 'The Greatest' ⓒ 시아 뮤직비디오 갈무리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나는 작년에 내가 겪은 상실을 떠올렸다. 그 해 겨울, 나는 갑작스럽게 한 친구를 잃었다. 나와 SNS로 종종 근황을 주고 받던 그녀는 어느샌가 말이 뜸해졌고, 결국 내가 마지막으로 듣게 된 소식은 그 친구가 자살을 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죽음으로 잃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것이 애도의 과정이다. 상실의 대상으로부터 애착을 거두어 들이고, 이제는 그 사람을 볼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 사람을 과거에 남겨둔 채 또 다른 하루를 향해 나아가는 일, 보통 상실을 겪은 사람들이 밟는 과정이 이럴 것이다.

나 역시도 누군가의 죽음을 그런 식으로 정리해왔다. 하지만 그 친구의 경우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나는 그런 식으로 가까운 사람을 갑작스레 잃어본 경험이 없었다. 나는 병에 걸린 친척이나, 노환으로 몸져 누운 어른들의 죽음은 겪은 적이 있었다. 말하자면 그 죽음은 어느 정도 예견이 가능했고, 나는 다가올 상실을 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상실은 달랐다. 준비한 것이 없었다. 나는 그녀와 아무것도 정리한 것이 없었다. 갑작스레 죽음은 일상에 얼굴을 들이 밀었고, 나는 그 앞에서 우왕좌왕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일단 그 죽음 자체가 믿기지가 않는다.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을 가던 나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가족상일거라고. 문자를 잘못 보낸 것일 거라고.

말하자면 그 친구의 죽음 앞에서 내가 느낀 것은 단지 슬픔만이 아니었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이 이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무력감, 그 어떤 작별의 과정도 없이 누군가를 잃었다는 황망함, 그리고 이런 감정들이 몰고온 공황이 나를 엄습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그녀의 부재를 인정하는 과정이었다. 나도 믿지 못하는 죽음을, 이미 벌어진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설득해야했다. 아직도 어디선가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거리를 돌아다닐 것 같은 사람이 이제는 움직이지 않는 다는 것을 머리로도 몸으로도 받아들여야 했다. 사실 나는 아직도 가끔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잊곤 한다. 여전히 그 모든 것이 거짓말 같은 순간이 있다.

남겨진 사람들의 소망

때문에 이런 식의 죽음 앞에서, 남겨진 사람들은 꿈꾸곤 한다.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이기를. 그 죽음이 없었던 것이기를. 차라리 상실을 또다시 겪게 된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끝맺음을 짓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그 뮤직비디오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작품은 남겨진 사람들의 소망에 관한 것이 아닐까하고. 올랜도 총격 사건에서의 희생도 정말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아닌 밤중에 49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심지어 장소도 클럽이었다. 죽음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공간. 그 곳에서 춤을 추며 행복을 만끽하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누가 그 죽음을 쉬이 믿을 수 있겠는가.

뮤직비디오의 도입부에서 카메라는 마치 시체처럼 널부러진 댄서들을 비춘다. 그리고 이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이라할 매디 지글러는, 마치 이들에게 다시 일어서라고 말하는 듯 절규에 가까운 몸부림을 친다. 여기에 화답하듯 댄서들은 다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한다. 지글러는 춤을 추다 쓰러지길 반복하는 댄서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얼굴을 확인하길 반복한다. 나는 그녀의 춤에서 절박함과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영상의 마지막, 그녀가 애써 막고자 했으며 무서워 했던 일은 벌어진다.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댄서들은 모두 쓰러지고, 다시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남겨진 자들의 꿈은 결코 성취될 수 없다. 죽음은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시아의 'The Greatest'

시아의 'The Greatest' ⓒ 시아 뮤직비디오 갈무리


어쩌면 이 뮤직비디오는 갑작스런 상실에 직면한 사람들이 가지는 가장 강렬한 소망, 그 자체가 아닐까. 하지만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고, 우리는 다시 망연자실함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뮤직비디오는 마지막에 비탄에 빠진 지글러의 얼굴을 비추며 그 감정까지도 갈무리한다. 나는 시아가 올랜도 사건 앞에서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이 뮤직비디오와 노래를 통해 진솔하게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그 감정은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이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될 때, 당사자는 여전히 아플지언정 적어도 외롭지는 않게 된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이 뮤직비디오가 참으로 묘한 방식으로 남겨진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허황된 것을 알아도

나는 긴 시간 이 노래의 가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궁금해 했다. 그것은 죽은 자의 말일까 아니면 살아남은 사람들의 말일까. 그리고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그 가사는 어쩌면 남겨진 사람들이 떠나간 사람들이 해주었으면 하고 소망한 말들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시아는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여전히 위대해질 자유가 있다고. 또 다시 넘어야 할 파도가 있지만 나는 이겨 낼 힘이 있다고. 나는 포기할 수 없고 그러지 않을 거라고. 나는 계속해서 춤을 줄 것이라고. 그렇게 나는 그렇게 살아남을 것이라고. 망자들이 이 말을 한다는 것은 곧 그들의 죽음이 번복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이유로 올랜도에서 벌어진 비극은 내게도 깊은 고통으로 남았다. 때로는 그 사건 이후로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은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시간은 여전히 총격이 시작되기 전으로 멈춰있고, 아직도 펄스에서는 희생자들이 춤을 추며 밤을 즐기고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 느낌은, 참사를 마주한 내가 가지는 소망이기도 하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이미 흘러버렸다. 떠나간 사람들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그들은 우리가 해주길 원하는 말을 결코 해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아가 그랬고, 뮤직비디오 속 지글러가 그랬던 것처럼, 그것이 허황된 것을 알아도 남겨진 사람들은 계속 노래할 수밖에 없다.

당신은 위대해질 자유가 있다고. 당신에겐 힘이 있다고. 포기해선 안 된다고. 그렇게 살아남아 달라고.


시아 THE GREATEST 올란도 총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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